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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8, 19세기 조선의 문인들이 쓴 전傳 을 우리말로 옮기고 저자가 자기 생각을 보태 적은 모음집이다.전은 한 사람의 인생을 기록하고 이를 통해 교훈을 얻고 죽은 그 사람을 추억하려고 쓴 것이다. 지금은 유명한 사람의 전기가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에도 쓰여지지만 처음에 전은 죽은 사람을 주인공으로 창작됐다. 한 사람이 생을 마감하기 전에는 인생을 완성했다고 볼 수 없어서이기도 하고, 또 죽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저항의 의미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 담긴 전들은 그 소재가 남다르다. 소위 조선시대 마이너리티라고 할 수 있는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이 그 주인공이다. 당대 문인들이 전이라는 형식으로 기려 후대에 그 사연을 남기고 싶었던 인물들은 어떤 이들일까. 그들은 거지였고, 싸움꾼이었고, 대장장이였고, 기생이었고, 분 파는 할머니 등이었다. 거지였으나 풍류를 아는 이였고, 싸움꾼이었으나 문학청년이었고, 대장장이였으나 철을 다스리는 데 혼을 담을 이였으며, 기생이되 정절을 중시하는 이였다.
각 장마다 전이라는 형식으로 소개되는 이야기들은 하나하나 남다른 감동을 준다. 당시로서는 천대 받는 신분이었지만 자존감을 잃지 않고 스스로의 삶에 최선을 다해 책임지려는 그 열정과 역동성이 돋보인다.
광문은 비루한 거지였지만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재주와 안목이 있어서 각 계층에 친한 친구도 여럿이었고, 이름난 기생이라 할지라도 그에게 칭찬을 듣지 않으면 진정한 예인으로 인정을 받지 못할 정도였다. '거지'는 처음부터 그가 택한 삶의 방식은 아니었지만 어느덧 그의 독특한 삶의 방식이 되었다. 어느 집 대문 앞이 그의 잠자리였고, 만나는 사람 누구나 그의 친구이자 가족이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멋진 삶을 살다 갔다. (박지원의 광문자전)
예술가, 하면 요즘은 추대받는 추세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기이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가난과 벗삼아 살아야 하는 처지였다. 당시 환쟁이였던 최북에게는 그림을 청하는 사람이 많았다. 어느 날, 고관대작이 의뢰한 그림을 독촉하자 그는 자기 한쪽 눈을 찔러 멀게 했다. 그가 힘으로 높은 사람에 대적할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해하는 것으로 자기의 예술혼과 자존심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세상의 힘과 타협하지 않으면서 그림을 향한 열정을 이어나갔던 최북, 그는 기인이자 진정한 예술가였다. (조희룡의 예인전)
어느 마을에 30년도 넘게 두문불출하는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 이름은 이수칙이다. 그녀의 정체가 너무 궁금했던 동네 사람들은 그 집에 불을 지르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끝내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녀는 궁녀였다. 궁녀가 궁 밖으로 나오게 되는 건 흔한 일은 아니지만, 어떤 연유인지 그녀가 궁 밖으로 나와 세상과 담을 쌓기 시작한 건 임오년, 즉 사도세자가 뒤주에 갖혀 죽임 당한 그해였다. 사도세자에게 사랑을 받고 또 그를 사랑해서, 라고 밝힐 순 없었지만 대개 그런 내막을 짐작했고, 후일 정조는 그녀에게 정려를 내려 그 충심을 기렸다. (성해웅, 이건창, 이옥의 수칙전)
이 책은 모두 일곱 장으로 나뉘고, 모두 25개의 전들을 소개한다. 각 전들에 담긴 사연은 저마다 기묘하고도 범상치 않은 인물에 관한 것이다. 그들은 문밖에 나서 자기 기량을 맘껏 펼치고 싶었으나, 신분의 벽, 사회의 편견 때문에 주춤거렸던 이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이 쓰이기까지, 이런 삶을 살아낸 마이너리티도 있었지만, 그 사람들의 삶을 눈여겨 본 문인들이 있었다. 그 붓끝에서 이름 없이 사라질 뻔한 이들이 다시 되살아 나게 된 것이다. 이 책 안에서는 그 문장가들이 각 사연을 전으로 남기게 된 경위부터, 이야기를 조목조목 담았다. 저자의 생각을 풀어 쓴 부분 또한 무척 문학적이어서 재미와 울림을 더해 준다. 한 사람의 인생을 조망해 본다는 것은, 내 인생을 그에 견주어 보게끔 한다. 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전을 읽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바람 소리를 내며 왔다가 번개처럼 빠르게, 하지만 지울 수 없이 깊은 흔적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활짝 핀 벚꽃처럼 다가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눈부시게 환해서 고개를 들어 보면 어느새 꽃잎처럼 흩날리며 떨어지는 생각의 조각들은, 오래된 빛의 넋이 아직 살아 있다고 말해 주는 것만 같다.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 그에 관해 썼던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은 나에게 그런 의미다. -저자의 말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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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사회의 그늘에서 고단한 삶을 살았던, 그러나 자기 나름의 몸짓으로 삶의 흔적을 짧게나마 남겼던 사람들의 이야기. 출처는 다양하다. 이덕무나 성대중 같이 잘 알려진 서얼 출신의 문인들도 있고 김조순 같이 뜨르르한 세도가의 글이 되기도 한다. 이런 종류의 글은 이미 여러편이 나왔었다. 왈짜패들의 얘기가 주를 이뤘던 '조선시대 뒷골목 풍경'이라는 책에서는 이 책의 광문편에 나오는 표철주며 장오복등의 이름이 실려 있고, 유홍준의 '화인 열전'에서는 김홍도는 말 할 것도 없고 김명국이나 최북의 삶에 관한 보다 세밀한 얘기를 읽을 수가 있다. 이런류의 책들이 그렇듯 일단 편하게 잘 읽힌다. 말 그대로 옛날 얘기를 듣듯이 편하게 책장을 넘겨가다 보면 어느새 끝이다. 머리 아프게 분석을 할 필요도 없고 의미를 따질 필요도 없다. 결코 지루하지 않은 시간이다. 다만 저자의 주관적 해석이나 사변적인 해설이 관심을 환기 시키는 순기능을 하는 한편 오히려 집중도를 떨어뜨리기도 하는 게 흠이다.
옛날 얘기들이 으례 그렇듯 얘기의 흐름 뒤에 숨겨진 삶의 단면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꽤 다양한 다른 얘기와 사회의 얼개가 그려지기도 한다. 너무 단편적인 얘기들 말고 그 중에서 비교적 내용이 풍부한 '광문'이며 '장생' 같은 걸인의 얘기나 '이언진' 같은 문장가의 얘기에서는 그 당시 사회의 한 단면과 그 속에서 반응하며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유추되기도 한다. 역시나 얘기 자체로는 꽤 긴 '김은애 얘기'나 궁녀 '이 수칙'의 얘기는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드라마틱한 재미가 있다. - 정조 시대에 오면 평민 계급의 여인들도 분명한 자기 이름 석자를 가지고 있었나 보다- '백광현' '조광일' '안황중' 같은 의원들의 삶을 소개한 글들은 짧으나마 당시의 사람들에게 의술이란 게 어떤 의미였느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회의 하층 계급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몸뚱아리 하나 건사하는 일도 만만찮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성의 있는 의원이란 하나의 희망이지 않았겠는가? 사회 전체를 조망하는 '피카레스크'적 그림을 그려 볼 때 이들의 삶은 풍부한 색채로서 되살아 날 수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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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비주류 인생들의 걸출한 인생이란 매우 흥미로운 소재이다. 벙어리 장인, 박명한 문인, 수절한 궁인, 좌판의 협객..
조선시대 '마이너리티'의 삶을 傳을 역하여 傳한 저자의 노력은 빛이 난다.
하지만,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옛사람과 독자의 마음을 하나로 이어 보려는 뜻에서 선비들이 쓴 전에서 필자의 상상력을 보탰는데, 그것이 도리어 빛을 가리는 폐가" 되고 말았다.
글의 전개는 전을 역한 것이 한 부분. 그리고 필자의 생각과 감상이 한 부분이다. 하지만 필자의 감상과 상상이 너무 진하게 묻어나는 바람에, 원전의 향기를 조용히 감상할 여백이 사라졌다고나 할까.
비슷한 소재를 다룬 "알아주지 않은 삶(진재교 편역/태학산문선)"에서도 어부, 책 장수, 여성 경학가, 조선무사, 무명악사의 삶을 전하고 있지만, 이 책의 필자는 한 걸음떨어져서 그냥 조용히 그들의 삶을 관망한다. 책을 읽는 독자들도 비슷하게 한 걸음의거리를 유지하며 조선시대, 역사가 알아주지 않은 사람들의 역사를 바라본 다.
역사서의 경우, 원전의 고스란함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 때문이겠지만, 이야기를 향해 나의 손을 끄는 이 책보다는, 짐짓 나의 옆에서 그저 이야기를 가리키는 "알아주지 않은 삶"이 더 맘에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