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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조선의 지식인하면 누가 있더라, 생각할 필요도 없이 곧바로 떠오른 이름이 여럿 있었다. 정약용과 박지원, 그리고 최한기를 비롯한 일군의 실학자들이 줄줄이 눈앞을 스쳐갔는데, 이황과 이율곡 등 인물들이 많았던 선조 이래 최고의 인재풀을 보여준 시기가 18세기가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황, 이율곡으로 대표되는 지식인과 18세기 지식인은 그 성격에서 차별화되는 성격이 뚜렷하게 존재했다. 그것이 무엇일까. '18세기 조선의 지식인의 발견'은 그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황이나 이율곡하면 군자를 지향하는 성리학 지식인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면 18세기에는 성리학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전처럼 군자를 이상형으로 삼는 지식인은 아니었다. 정약용이 성리학은 물론이고 의학, 법률 등 실용 분야까지 아우르는 팔방미인었다면 박지원은 소설가였다. 추상적인 공론을 추구하는 유형은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접하고 있는 저서를 보면 이황이나 이이보다는 정약용이나 박지원 것이 더 많다. 시대가 가까워서이기도 하지만, 18세기 지식인의 사상이나 주장이 현대인들에게 공감을 살 여지가 크다는 것이고, 이 무렵에는 성리학의 영향력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과 함께 근대적인 사상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18세기에 새로운 움직임을 보인 지식인이 나타나게 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정보가치의 우선순위가 바뀌어서 실용을 중시한 지식과 정보가 부각됐고, 당시 지식인들은 외국문화도 주체적으로 수용하며 다양한 문화컨텐츠를 개발했던 것이다. 더불어 그 사회변화를 지향하는 실천적인 지식과 정보를 생산했던만큼 18세기 지식인들은 지식인이 감당해야 할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박지원의 '양반전'이나 '허생전' 같은 소설은 지금 중고등학생에게 권장도서로 추천되고 있고, 정약용의 경우는 '목민심서'가 관리들에게는 필독서로 평가되는가 하면 정약용의 사상을 연구하는 다산 연구소가 존재할 정도로 그들이 남긴 정신은 지금도 발전적으로 계승해야 할 유산으로 평가받을만큼 18세기 지식은 그 가치와 진성성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정약용이나 박지원같은 빼어난 지식인이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등장하다니 그것만으로도 대단했다 싶은데, 이 시기에는 더 대단한 것이 요즘말로 하면 매니아, 한자로는 벽(癖)과 치(癡)를 추구하는 인물들이 대거 등장했다는 것이다. 간서치(看書痴)로 알려진 이덕무만 해도 책에 미친 바보를 자처한 것이다. 당시에는 책 뿐아니라, 꽃, 바둑, 벼루 등 자신의 관심사에 과할 정도로 빠져드는 취향이 평가받았고, 확산됐다. 잡기에 빠져들고 몰두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 군자였다면, 매니아들의 존재는 군자상에서 벗어난 새로운 지식인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러보고니 기억이 났다. 몇년 전에 필자가 쓴 다른 책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를 읽었던 것이. 미치지 (狂)않으면 도달할 수 없다는 말인데, 자신의 관심사에 열정을 바친 인물들을 담고 있는 책이었다. 미치는 것 즉 앞에서도 언급했던 벽과 치의 성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그 열정으로 다양하고 새로운 문화적 성취를 이루어냈다는 것이다. '벽'과 '치'를 추구한 지식인들은 다양한 문화 컨텐츠를 생산하는 주역이 됐고, 18세기 문화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풍성해지고 다채로와지는 데 혁혁하게 기여했던 것이다.
18세기에 영향력을 발휘한 동서양의 맛에 대해 쓴 '18세기의 맛'이란 책을 읽은지 채 며칠이 되지 않아서 그랬는지, 18세기가 위대한 시대였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도약의 시대 변화의 시대라고나 할까. 18세기의 조선이 사회문화적으로 활기를 띄게 된 데에는 이렇게 새롭고 실용적인 컨텐츠를 생산하는 지식인들이 활발하게 움직였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관료가 아닌 인물들이 더 많았다는 것인데, 박지원처럼 입신양명에 연연하지 않은 인물, 정약용처럼 유배당한 인물, 박제가처럼 서얼 등 아마도 이들이 관리가 아니었기에 틀에 얽매이지 않은 새로운 시각과 관심사를 가졌던 것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정민 교수의 책을 읽을 때면 매번 느끼는 거지만 한문으로 씌여진 사료에 접근하고 원전을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 큰 힘이다. 일단 출처에 신뢰감이 생기고, 사료 내용을 직접 확인하면서 그 가치를 본인이 판단할 수 있을테니. 그런데 사료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행적을 추적하는 것이 수월하지만은 않아 보였다. 낯선 등장인물에 대해서 어느집의 자손인지, 어떤 관직에 앉았는지 등등. 그래서 어떤 때에는 내용이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런 내용은 빼도 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 2부는 뒤로 갈수록 지루했다. 생소한 자료에 잘 모르는 인물의 사례라 그랬는데, 그러다가 그 장황한 것에 관대해지기로 했다. 한 인물을 밝히고자 족보도 찾아보고 종친회에 문의도 하고, 책 속에 나온 다른 인물하고 연결여부를 검토하는 내용을 보니.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 경우에는 연구자로서 얼마나 속상하고 답답할까. 세상에 쉬운 일이란 없구나하면서도 정민 교수도 '벽' 성향이 있는 학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긴 '벽' 성향이 없는 학자가 어디있을까, 알고자 하는 대상을 집요하게 조사하고 파고드는 열정과 기질이 없다면 좋은 학자가 될 수 없겠지.
김대중 정권시절 '신지식인'정책이 있었다. 구지식인과는 구별되는 것은 학벌이나 학력과는 상관없이 기존 틀에 얽매이지 않고 지식을 능동적으로 활용해서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지식인이라는 것이다. 그 1호로 개그맨 심형래씨가 뽑혔는데, 선정 취지야 충분히 공감할만하지만 아쉽게도 권력이 나서서 신지식인이라는 칭호를 붙이고, 그것이 훈장처럼 권위가 되면서 오히려 그 취지는 빛이 바라고 말았다. 심형래씨의 최근 행보를 보면 그가 과연 신지식인이라는 호칭을 들을만한 인물이었는지도 의문이고. 이와는 달리 18세기 조선의 지식인들이 무엇보다 돋보였던 점은 자생적으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권력의 필요나 요구나 아닌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고, 자신의 욕구와 내면에 충실한 지식인이었다는 점에서,그 다양함과 실용성은 조선사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은 제목대로 18세기 조선 지식인을 발견할 수 있는 귀한 기회였다. 잘 알고 있는 인물들이었지만, 그 한사람 한사람 한국 지성사와 문화사에 남긴 족적이 위대했고, 새로운 변화와 시대정신을 담고 있었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다양하고 새로운, 실용적이고 컨텐츠를 생산할 수 있었고, 다른 시대의 지식인과 다른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외국의 문물에 선입견을 갖지 않은 열린 가슴의 소유자였고,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취향을 고집할 수 있는 즉, 즐거움의 기준을 외부에 두지 않았다. 그만큼 진솔하게 자신의 감정을 추구함으로써 주체적이었고, 외국 문물을 능동적으로 이해하려고 들었다. 또 사회문제에 눈감지 않고 대안을 제시하는 실천성까지 겸비했다.
조선시대에 이렇게 자주적이고 생동감있고, 실천적인 지식인집단이 존재한 예는 없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들이 생산한 지식과 그 정신이 19세기에 이어지고 진일보했는지를 회고해보면 안타까움이 앞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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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읽으면서 지나간 일 비판하기는 쉽다. 이미 벌어진 사건과 그 결과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보면서 여러가지 해석에 비추어 '그 때 이랬어야 하는데' 하면서 못난 조상탓 한다.
18세기 비판 18세기 서양에서 합리주의적 계몽철학이라는 물결이 거세게 몰아칠 때 조선에서도 새로운 흐름이 나타났다. 성리학적 사고에서 벗어난 다양한 지식인 그룹이 생겨났다. 그들은 주류에서 벗어나 이용후생을 주장하고 격물치지를 요구하는 일파였다. 하지만
18세기 번영의 시대가 끝나 19세기 위기의 시대가 오자 조선은 가장 크게 흔들렸다. 세계의 중심이었던 중국이 흔들리자 그 흔들림은 조선을 방황하게 만들었다. 모든것이 한양을 향하던 중앙집권주의국가는 지방 독자적인 실험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모든 사고방식이 성리학적틀에 얽매여 새로운 생각은 계속 변두리에만 머물렀다. 18세기 변화가 미진해 19세기에는 움추릴 수 밖에 없었고 이는 결국 조선망국으로 흐른다. 할아버지 강남 땅이 배밭 뽕밭일때 땅좀 사두시지 그러셨어요? 18세기 변명 18세기로 돌아가보면 주류를 지배했던 이들이 새로운 실험을 시도할 필요는 없었다. 18세기 청나라는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이외에 나라 혹은 세상에 눈길을 돌릴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중국으로 부터 어떻게 정보를 많이 흡수하고 좋은 관계를 이어갈수 있느냐가 조선 발전의 관건이었다. 팍스아메리카시대 미국유학이면 충분했고 특별한 목적이 아니고서야 다른 나라로 유학갈 필요가 없었던 것과 같다. 조선은 세계최강 청나라를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었고 중심이 흔들리자 같이 흔들린 것이다. 오히려 중국중심 밖에 있었던 일본은 흔들림이 작고 서양과 끈을 가지고 있어 새로운 중심궤도로 쉽게 편입될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돌고 있던 중국중심이라는 궤도는 너무 강력했고 빠져 나올 수 없었다. 18세기에 이룬 변화의 힘은 정보화였다. 중국에서 들여온 백과사전류와 총서류들이 우리의 눈을 뜨게 했고 우리 자신에 대한 주체성을 가지게 자극을 주었지만 조선이 보여준 변화도 결국은 청나라 중심의 정보화였을 분이었다. 할아버지 : 요즘 주식이 오른다는데 좀 사두었냐? * 책 내용은 대부분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이 가졌던 "벽", "치" 요즘 말로 하면 오타쿠같은 취미생활(매화 취미, 돌 수집, 벼루 수집, 비둘기에 미친 사람 등등)을 다룬 논문집이다. 최근 오타쿠 문화도 인터넷이라는 정보화의 산물인 것처럼 18세기 정보화도 벽과 치라는 오타쿠 문화를 만들어 내었다. (이 동네도 하나의 오타쿠 문화 아닐까?) * 비슷한 주제의 논문 반복으로 뒤로 가면서 점점 지루해진다. 한 분야만 파는 오타쿠 책의 한계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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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인데, 공부하는 데에 꼭 필요한 책인데, 품절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서 읽으시라고 권할 수 없어 아쉽다.
2-300년 전에 우리 땅에서 공부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어쩐지 등장하는 이름만 다를 뿐, 상황은 별로 달라진 것 같지가 않다. 우리는 지난 2-300년 동안 뭔가 다른 것을 꿈꾸기라도 했던가.
이렇게 같은 가르침을 되풀이하고 있는데, 잘못 또한 되풀이하고 있는 우리네 처지란 무엇이란 말인지. 그렇게 당하고도 그렇게 후회하고도 그렇게 반성하고도 자신을 바꿀 줄 모르고 세상을 바꿀 줄 모르는 어리석음, 산다는 게 그런 것일까. 그래서 만만하지 않다고 하는 것일까.
갑자기 내 머리 속이 정지되는 느낌이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받아들였을 때의 증상이다. 내 의식의 곳곳이 깨져나갈 때의 현상이다. 여태까지 무얼 하며 살아왔던 것인지, 무얼 공부했노라고 한 것인지 스스로 쑥스러울 지경이다. 이 증상이 오면, 나는 자기방어로 숨곤 했는데.
정약용과 박지원에 대한 공부를 조금 더 할 것. 내가 지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갖고 있다고 알고 있는 자료들을 정리할 것. 작은 실천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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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라는 말을 이렇게 무례하게 붙여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18세기를 살아가는 조선 지식인들이 그 시대의 거대 주류를 거스르며 자신의 색을 찾아가는 모습은 별나게 튀는 옷을 입고 별난 메이크업을 하는 오늘날에 '개성'에 대면 너무나 값지고 깊은 것들이다. 모두가 'Yes' 할 때, 'No' 할 수 있는 사람이 멋있는 사람이라면 그 멋진 사람들이 18세기에 몰려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멋진 사람들은 단순히 사회나 시대에 대한 반항심이나 저항 의식으로 자기의 색을 만든 것은 아니다. 그들의 삶, 그 자체가 자기가 좋아하는 무엇인가를 진중하게 관찰하고, 분석하고, 끈질기게 파고들어가는 집요함과 의지로 반죽된 것이기 때문이다.
시대의 요구에 순응하고 유행을 따라간다지만 그래봐야 근근히 이어질 뿐인 우리의 삶보다 근근히 살아도 자기 것을 찾아 우직하게 큰 걸음 옮기는 그들을 괴짜라고 불러보고 싶다.
파격적인 사고의 전환. 손가락질 당할 법한 독특한 벽(癖)들. 아웃사이더들의 심오한 내면세계가 펼쳐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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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이덕일과 함께 내가 가장 흥미를 갖고 있는 조선후기에 관한 문학, 역사학적인 저서를 많이 낸 사람이다.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의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시에 관한 책도 적잖이 펴낸바 있다. 대표적으로는 한시미학산책, 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 꽃들의 웃음판... 이렇게 3권이 한시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책이 되어왔다. 넘어 문화사 전반으로 글쓰기와 사유의 폭을 넓혀가는 현대를 살아가는 고독하고도 세련된 지식인이다. 특징지어진 문화현상, 지식인들의 자의식과 세계인식, 지적 경향 그리고 그들의 내면과 문화변동까지 폭넓게 아우르고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도 고증적인 성격의 내용이긴 하나 정민 선생 특유의 부드러움으로 해설을 덧붙이면서 그 흐름을 유도해 나가고 있다. 정치세력이자 문학,실학자였던 '남인'들의 삶을 많이 다루고 있다. 책의 구성과 그 궤를 함께하는 컨텐츠를 보자면 정민 선생의 책들은 하나의 과학이라는 생각마져 든다. 형식에 점점 더 목매는 양반들. 그리고 그속에서의 권력 암투. 18세기로 넘어오면서 점점 권력에서 소외되어가는 남인들은 오히려 학문에 몰두할 수 있는 여력(또는 자유)를 확보함에 따라 청나라로부터 끊임없이 밀려들어오는 실학에 관한 새로운 정보와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에 나름대로의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과정속에서, 수많은 남인들의 천재가 태어나고 죽어가던 삶속에서 도대체 무엇을 추구하면서 세상의 변화를 희구했고 그에 따라 어떤 노력이 뒤따랐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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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의 사회적 문화적 현상을 통해 새로운 이즘의 발생이 잦은 현대를 재조명할 수 있는 책이다. 같은 말이 장마다 반복되는 아픔은 있지만 저자도 밝혔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삭제하지 않았다고 하니 감수하고 읽는 수 밖에는 없다.
벽과 치로 대변되는 그 시대의 사상들은
지식이 많아질수록 활용도높게 편집하고 골라내는 일은 더욱 중요해 지리라. 18세기를 통해 지금 우리가 할 일을 잘 조명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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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학술서적 냄새 풀풀 풍기는 이 책은 그동안 저자가 발표한 여러 책들을 통해서 이미 접해왔던 내용이 반복되고 있지만 그래도 만족스럽게 읽었다. 이곳저곳에 수록되었던 논문을 추려서 묶은 이 책은 “한국 문화사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18세기를 그리고 그 당시의 조선 지식인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지식, 자아, 글쓰기, 감각, 취미 등이 새롭게 구성된 18세기를 학문적으로 문화사적으로 정리”하려고 했고 이전과는 분명 다른 상황인 그 시절 적극적으로 새로움을 받아들이고(혹은 물리치려 했고) 뿜어내려(혹은 막아내려)고 했던 조선 (주류/비주류) 지식인들은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식으로 살았는지 살펴보고 있다. 내면을 들여다봄과 동시에 그 시대상을 바라보려 한다.
저자가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논의를 했었던 내용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저자의 다른 책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렇게 큰 감흥을 느끼긴 어려울 것 같다. 그리고 논문으로 발표된 글이라 상대적으로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하지만 18세기에 관해 다양한 부분을 살펴보고 있어 앞서 읽었던 책들의 내용을 떠올리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섣부른 결론을 내린다면 결국 뭔가 새로운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분출할(뒤바뀔) 것 같았던 18세기 조선은 아쉽게도 변화를 찾던 이들이 철저히 좌절하게 되었고 그 쓰디쓴 결말이 이후 조선의 몰락으로 이어졌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 혼란의 시기를 지금 시대와 겹쳐보기도 하고.
항상 흥미를 갖게 하는 18세기 조선을 여러 방식으로 들여다보고 있어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다만, 저자가 발표한 책 중 가장 학술적인 모양새이기 때문에 좀 더 편하게 읽기를 원하는 사람은 다른 책을 먼저 읽은 다음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또는 저자의 다른 책을 읽어봤던 사람이라면 반복되는 논의가 꽤 있어 읽기 전 전체 내용을 살펴본 다음 읽기를 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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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09.12.03 00:48
유럽에는 르네상스가 있었다면, 우리나라에는 실학운동이 있었다. 열정있고, 지각있는 그 시대 지식인들이라면 청나라를 통해 유입되는 그 엄청난 중국,서구 지식들을 외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조선시대 사상의 근간을 이루고있는 주자의 성리학과 유교가 이들 실학자에게 비판받았던 이유가 지나치게 관념적이고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지식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박지원, 박제가, 정약용등을 중심으로 한 북학파들은 이용후생을 통해 "살림살이좀 나아지"기를 꾀했다.
마침 세종이후 다시 "대왕"이라 불려지는 영,정조 시대의 문예부흥기를 거치기 때문에 학문이나 지식, 과학등은 이 시기를 지나면서 많이 발전을 했지만 아이러니컬 하게도 정조는 능력있는 실학파(백탑파)들을 규장각에 등용하면서도 한편 문체반정을 통해 세력간 균형을 이루고자 한다.
수많은 실학자들이 이 때, 어떻게 학문을 해나가고, 어떻게 한 분야에 집중하고, 어떻게 책을 편찬하고, 어떻게 지식을 수집하는 등의 방대한 이야기가 녹아있다. 이중 놀라웠던 것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이야기인데 강진으로 유배가있는 10여년 동안 자신의 10여명의 수하생들과 함께 무려 100권 이상, 더 실감나게는 1년에 10여권 이상의 책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모두 모여 책의 방향을 정하고, 내용에 맞춰 기획하고 자료조사하고 본문 작성하고 편집하는 등의 방식으로는 1년에 한권도 펴내기 어려운데, 다산은 무려 10여권 이상씩 만들어냈다. 이것은, 이미 이때부터 자신의 제자들과 지식의 공동 분업체제가 이루어져서 동시에 병렬적으로 수 권의 책이 기획됨과 동시에 사람과 activity의 각 단계가 가장 최적의 조합으로 구성된 과정을 거쳐 한번에 엄청난 양의 지식이 넘쳐나올 수 있는 지적 대량생산체제가 구축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알면 알수록, 레오나르도 다빈치 못지 않게 천재란 생각이 드는 정약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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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지금이 아닌 옛일이라는 심리적 거리감 때문일까? 옛글은 단순하고 편안하고 순수해 마음에 오래 남는다. 감히 내뱉는데 우리가 먼저 익히고 교양의 외피를 드러내려는데 더 많이 쓰이는 서양 철학보다 동양 철학이 더 멋스러운 듯도 하다. 가장 좋아한 1부의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자의식과 세계 인식’을 살펴보면 말이다. 박제가, 이덕무 등은 텔레비전이나 책에서 띄엄띄엄 눈에 띄었다. 그리고 잊혀졌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환경, 배경 등을 떠나 진정한 지식인으로서 우리 역사가 묘비명 없이 묻어버렸던 것을 다시 되살려 낸 듯하다. 진정한 지식인을 알아서 좋았고, 18세기가 21세기가 통하는 게 좋았고, 상상도 못한 매력과 생동감을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다. 미래의 누군가가 이 책을 보고 옛날 속으로 빠져 드는 몰입의 즐거움도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은 힘도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