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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정신의학 끝나지 않은 잔혹사
"현대정신의학 끝나지 않은 잔혹사" 내용보기
정신병의 치료는 항상 충격요법이 뒤따른다. 중세의 마녀사냥의 제물로 제일 먼저 표적이 된 정신질환 환우들은 형언 할 수 없는 고통과 핍박을 받았다.  가공할 만한 발전을 가져 온 현대의학 역시 일일이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중세의 암울한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신병은 어느 시대나 질병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악령을 뒤집어 씌워 죄악시 하였고, 가족과 그 주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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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의 치료는 항상 충격요법이 뒤따른다. 중세의 마녀사냥의 제물로 제일 먼저 표적이 된 정신질환 환우들은 형언 할 수 없는 고통과 핍박을 받았다.  가공할 만한 발전을 가져 온 현대의학 역시 일일이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중세의 암울한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신병은 어느 시대나 질병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악령을 뒤집어 씌워 죄악시 하였고, 가족과 그 주변에서는 적극적인 치료 보다는 은닉질병으로 방치되어 치료의 중요한 단계라 할 수 있는 발병초기에 치료시기를 놓쳐 불치의 병으로 진행하고 마는 것이다.


  지금도 정신질환(특히 정신분열증) 치료에 시행되고 있는지 모를 일이지만, 10여 년 전 까지만 해도 전기충격요법(EST. electric shock therapy)이란 치료법이 있었다. 환자의 양 측두(側頭 관자놀이)에 전극을 붙여 전기 자극을 주면 환자는 대발작을 일으켜 치료효과를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1938년 처음으로 시행한 이 치료법은 전기충격에 의한 대발작이 치료효과를 나타낸다는 가정에서 출발한 위험한 치료법이다. 전기충격요법이 병증을 얼마나 완화하고 완치하였는지 충분한 데이터가 없다. 가설이 분분 전기충격요법은 현재까지 효과가 탁월한 치료법으로 사용되어 왔다.「정신의학의 잔혹사」에서 상기 시킨 “그 누가 정신 병원의 치료효과를 강력하게 주장한다 해도, 그곳의 피수용자들과 다수의 대중에게는 정신병원은 살아있는 시체들의 무덤일 뿐이다.”라는 말이  유효한 이유는 이러한 잔혹한 치료법이 현재까지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신의학의 잔혹사」는 사회학과 과학학의 저명한 교수인 앤드류 스콜의 끈질 긴 헨리 코튼이라는 정신과 의사의 추적이다. 헨리 코튼이라는 한 개인을  세부적으로 도해한 이면에는, 현대정신의학의 기층에 침윤된 암울한 역사를 미시적으로 들추어내고 있다. 단순한 전기가 아니라 방대한 기록과 당시를 기억하는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한 정신과의사 헨리 코튼의 일대기와 자기 확신에 찬 한 지식인이 일으킨 사회적 파장을 채록(採錄)했다.

 헨리 코튼은 100년 전 미국 뉴저지 주에 소재한 트렌턴 주립병원에서 첨단과학을 정신의학에 접목시켜 과학적 영웅이 되려한 젊은 의사다. 그가 30여 년 트렌턴 주립병원에 재직하는 동안 정신병 치료의 최고의 권위자가 되었고, 동료 의사들은 그의 치료법에 대해서 어떠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고 동조와 공조로 일관하였다. 그가 시행한 정신병 치료법은 상상할 수 없는 의학적 오만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현업에 종사하거나 이 분야 전문가 집단은 이 책에서 밝히고 있는 세세한 사건들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이 불편한 진실은 방대한 집주(集註)가 말해 주듯이 모두가 가공할 만한 사실이며, 그동안 정신의학의 치료법이 얼마나 잔인한 만행으로 시작되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코튼이 활동했던 당시의 대부분 의사는 정신의학과 과학을 별개의 분야로 인식했다. 19세기부터 마취법과 소독법이 개발되고 많은 질병의 세균학적 기반이 발견되면서 외과수술과 의술의 전망에 변화가 나타났지만, 정신의학은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코튼은 이 시기에 최대 수혜자였다. 독일 정신 의학계의 거두이며 지금의 노인성치매를 발견한 알츠하이머와 정신의학의 질병 분류학의 체계를 수립한 크레펠린의 가르침아래 뇌의 병리학과 조직학을 공부 했다. 코튼은 이들과 함께 연구하고 학문적으로 인정받음으로써 정신의학 세계에서 필적할 경쟁 상대가 없는 우수한 혈통을 이어 받게 되었으며, 그 들과 연구한 토대로 정신의학의 생물학적 뿌리를 찾는데 주력하였다.

 코튼은 세균학, 면역학, 화학요법, 생화학 등 눈부신 현대적 기적을 전부 동원하여 정신병을 자신의 의지대로 진료하는데 투자하였다. 특히 정신병은 발병초기에 감염된 자리를 제거함으로써 치유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국소패혈증 이론은 정신병의 치료를 위한 적극적인 치료법이 되었으며, 코튼의 표적이 된 것은 뇌와 가까이 있으면서 직접적인 병소로 단정 지은 치아와 편도였다. ‘기능성1) 정신환자’들은 모두 치아가 감염되었다고 보았으며 발치는 필수적인 치료방법으로 보았다.

 의학의 획기적인 성과를 불러 온 뢴트겐의 X선은 코튼의 숨은 패혈증을 찾는데 이용된 최첨단의 장비였다. 코튼은 많은 환자가 발치를 통하여 완치되었다고 주장하였으나 일부 깨어 있는 의사들은 트렌턴 주립병원을 ‘발치술의 메카’라는 비판을 가했다. 그때마다 코튼은 치아가 유일한 독소 주원인이 아니라 일부일 뿐이라고 주장하였으며, 그가 관심을 둔 신체부위의 또 다른 하나인 편도가 감염되었다고 확신하면 편도 역시 적출되었다. 정신질환이 만성화 하거나 신속히 재발하는 경향이 있는 사례는 치아와 편도에서 위장으로 전이된 것으로 보아 백신의 투여와 더불어 창자까지 떼어버리는 수술을 감행 했다.

 코튼의 치료법은 발치와 편도 창자에만 그치지 않았다. 독소감염으로 의심되는 모든 장기는 적출의 대상이었다. 여성의 경우 자궁경부가 감염되었다고 판단되면 적출되었고, 남성 경우 정낭을 제거(거세)하였다.

 코튼의 절대적인 치료법인 개복수술도중 숨진 환자가 부지기수였어도 회복한 환자의 위선적인 증례를 통해서 상쇄되었다. 만성변비는 반사회적인 행동의 병증으로 확신되어 결장절제술을 감행 하였고, 비정상적인 성습관을 가진 아동은 만성패혈증과 중독혈증의 병소 때문이라는 것을 정설로 내세워 외견상 정상적인 학생까지 면밀한 검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코튼 자신의 개혁된 정신의학의 확대를 꾀하고, 광기와 범죄와 비행의 뿌리가 신체적인 문제에 있다는 그의 관점의 채택을 통하여 정신공중보건의 혁명을 꿈꾸었기 때문이었다.


 한 사람의 의학적 오만이 가져온 폐해는 헨리 코튼을 지지한 사람들 때문에 더욱 확산되었고 오래지속 되었다고 본다. 이 광기 제국의 절대자는 그의 스승인 미국 정신의학의 태두 아돌프 마이어의 수수방관도 한목을 하였다. 코튼의 정신병치료 있어서 외과수술의 접목이 한 사람의 과대망상에서 비롯됐음을 인지 한 후에도 마이어는 제자를 보호하는데 더 관심을 기울였고, 외과적 수술이 최종점까지 수행되기를 바라기까지 하였다.

 마이어는 그의 또 다른 제자 중의 하나인 젊은 여의사 그린 에이커의 코튼에 관한 면밀한 조사를 토대로 한 연구보고서도 고압적인 의료계의 질서와 권위를 앞세워 침묵시켜버렸다. 더욱이 아돌프 마이어는 영국의료계의 국소패혈증 치료법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 제의를 회피한 결과 1916년부터 헨리코튼이 사망한 1933년까지 17년 동안 스승 아돌프 마이어의 보호막 속에서 안전하게 병소제거술을 자행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코튼의 제국인 트렌턴 병원은 치아가 없고, 특정장기가 없고, 생식능력이 없는 육체들뿐이었다. 이를 어찌 “개척자 정신의 탁월한 성취”로 평가되는 일인가!


 저자는 헨리 코튼이라는 개인사를 세세하게 통찰한 다음 진보와 전문성의 함정을 노출하여 전문가들을 비판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들의 주장대로 ‘공정하고 선하며 과학이라는 중립적인 영토위에 자라나는 진보의 세계를 지키는 사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코튼을 통하여 결론을 내린 것은 이성의 사도들이 비이성과 맞닥뜨릴 때, 광인을 정상인으로 부터 분리하여 보살피겠다고 나설 때 가장 두드러지게 문제가 표출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코튼과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도 코튼이 벌인 유사한 일들이 자행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20세기 벽두에 벌어진 지나친 맹신과 무모한 확신으로 자행된 정신의학의 오만이 부른 폐해를 통해서 전문가집단의 제 편 감싸기 통한 무결점의 지향이 얼마나 큰 결과로 수렴되는지 이 책은 현미경처럼 보여주고 있다.  모든 과학(의학)은 오류가 있기 마련이다. 무오류는 전문가의 지향점일 수는 있어도 무모한 도전이 되어서는 안 된다. 동업자 관계에 있는 전문가집단도 주변 동료가 궤도를 이탈한 사실을 알았을 때, 현명한 비판을 통하여 올바른 길을 갈수 있도록 유도를 해야 한다. 환자들이 한 의사의 과대망상적인 치료법에 의해 불구가 되고, 사망에 이르기 까지 자신들의 연구 성과의 폐기처분을 통한 비판과 명예실추가 두려워 함께 편승해버린 그들의 집단적 방조가 얼마나 큰 재앙이 되는지 이 책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 ‘헨리코튼’이라는 개인사를 통하여 우리 인간 더 나아가 사회의 반성과 더불어 인류의 지향점과 귀결점을 찾는다면 저자의 의도와 상통하게 될지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附言 : 譯者 전대호는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시인이다. “가끔 중세를 꿈꾼다”라는 시집을 90년대 중반에 上梓한 후로는 이렇다 할 詩 창작활동을 안보이더니 그의 전공에 어울리는 과학관련 외국의 서적을 번역 소개하는 일을 주업으로 하는 듯하다. 그의 계속된 작품 활동과 감동으로 전율하는 譯書를 기대한다.


“…작용하는 신비를 만날 때, 아니/정녕 신비가 아님을 알지라도/신비라는 말을 쓰고 싶어질 때/…/난 자랑스럽게/중세/암흑으로 불리는 그 성곽에/갑니다”

「가끔 중세를 꿈꾼다 1」 부분


h***n 2009.03.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