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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눈이 멀고나서야 진실이 보이더라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읽힌다. 넓은 범주로 보면 이 책도 그 하나다. 마치 리어왕이나 오이디푸스처럼. 손자는 할아버지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온갖 소리와 냄새와 느낌의 진실에, 아름다움에 다가간다. 또, 이 책은 장애에 대한 다른 눈을 전해주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의 교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혹은 자연과의 대화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고 얇은 책이지만 전하는 메시지는 넓고 깊다. 원효대사가 이야기했듯이 눈으로 보는 것이 얼마나 편협되기 쉬운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잠깐 든다. 호불호나 아름다움과 추함이 눈으로 결정되는 세상에 대한 가벼운 일침과, 그 너머에 존재하는 사람 사이, 사람과 세상 사이의 진한 연결을 자연스럽게 전해준다. 할아버지가 그리하여 어느 날 눈을 감았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끝났으면, 어쩌면 좀 시시했을지도 모르는데 이 책은 그런 함정을 잘 피해가면서 울컥하는 감정을 자제시키고 잔잔함을 유지한다. 물론 책을 덮고 나면 독자들은 이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하는 날이 몇이나 남았을까 애잔한 기분도 들지만, 그보다는 더 깊은 관계가 생사를 떠나 오래오래 유지되리라는 확신도 갖게 된다. 전등을 꺼주려다 켜놓고도 그걸 모르는 할아버지에게 손자는 짐짓 전등이 잘 꺼진 것처럼 편안히 누운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들이 이런 심성으로 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 모쪼록 이 책을 통해 우리 아이들도 때로 눈을 감고 세상을 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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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할아버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의미로 해석했었다. 할아버지께서 손주에게 눈을 기증했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해 보았다. 손자가 손으로 찰흙 덩어리 혹은 두상을 만지고 있기에 할아버지를 기억하나 보다했지요.
할아버지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할아버지와 지내는 하루 동안의 일상을 적은 글이다. 동화라고 하기에는 그렇고, 그냥 수필같이 편한 느낌이 드는 책이다. 삽화 역시 아주 편한하게 그려져 있다. 소년이 아침에 일어나서 체조를 하더라도 일상적인 체조가 아닌 시각 장애인 할아버지가 느끼는 세상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 눈을 감아본다. 그러면 다른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던 세상을... 냄새로 아침 식사 알아맞추기, 꽃 알아맞추기는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할아버지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어린 나이기는 하지만, 할아버지 입장이 되어 테이블의 접시를 시계로 놓아 보기도 하고, 할아버지의 첼로를 느끼려고 노력한다. 그러면서 할아버지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실수로 불을 켜고 잘 자라고 했지만, 소년은 미소를 띠며 할아버지의 눈으로 세상이 어두워졌음을 감지하고 잠이 든다.
할아버지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분명 같은 세계이지만,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다. 시각에 의존하던 사람이 잠 잘 때를 제외하고 몇 분만이라도 시력을 잃게 된다면 견디기 힘들 것이다. 4월에는 장애인의 날이 있어서 각 학교에서는 장애체험교육 또는 장애이해교육을 했을 것이다. 1회성 행사가 아닌 진정한 할아버지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같은 세상이지만 아주 다를 수 있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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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입니다. 평소에 장애인의 대해 잊고 있다가도 작년부터는 4월에는 자연스럽게 장애인과 관련된 도서를 읽게 됩니다.
이 동화를 읽으면서 한편의 서정시를 대하는 듯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시각 장애인입니다. 나는 할아버지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맡을 수 없는 향기도 맡을 수 있습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소리로서 할머니가 어디에 계시는지, 또 무얼 하고 계시는지 알 수 있고, 그리고 눈에 보여서 맡기 힘든 꽃의 향기도 눈을 감고 하나하나씩 무슨 냄새가 나는지 찾다보면 어떤 곷의 향기라는 것까지 알 수 있게 됩니다.
할아버지는 식사하실 때에도 마치 눈에 보이는 것처럼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할아버지의 눈에만 보이는 시계로 음식의 위치를 찾아냅니다. 이렇듯 할아버지는 시각 장애인이지만 여러 방법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가졌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존경하는 어느 분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시각장애인이 주로 살고 있는 어느 빈민가의 신호등에 초록신호등이 켜지면서 소리로 알려주는 장치를 설치해 줄것을 요구했더니 감감 무소식이더니만 그 지역이 개발되면서 그들은 더 이상 그곳에 머물지 못하고 이주를 했고, 대신 반듯하고 높다란 아파트가 들어섰다고 합니다. 세월이 흘러 그곳을 들르게 된 그 분은 예전부터 있던 그 자리의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초록신호로 바뀌면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멜로디가 들리는데... 차마 그곳을 지나칠 수 없었다고 하네요.
정작 그렇게 신호를 들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한 장애인들이 떠난 자리에 꼭 설치해야 했을까요? 나부터 우리주변의 장애인에게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반성할 수 있는 책읽기가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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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눈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원래 시력이 좋지 않았으나 컴퓨터를 많이 하기 때문에 더 나빠지는 것 같다. 신랑 역시 눈이 좋지는 않기에 아이의 시력보호에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옆에서 보는 것이 텔레비전이나 컴퓨터이니 무턱대고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우리 아이 어릴 적에 눈이 자꾸만 나빠지면 나중에 안보이게 되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할아버지의 눈으로> 왜 그렇게 낯익은 그림이었나 했더니 역시나 예전에 감명깊에 읽었던 책인 <내게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여동생이 있습니다> 책의 그림을 함께 그렸다는 것을 알았지요.
내가 보는 세상과 할아버지가 보는 세상. 어쩜 그렇게 잘 표현하고 있는지 책을 읽어가면서 아이와 함께 많은 이야기들을 했답니다.
작년까지 유치원 생이었던 아이는 장애와 관련된 책을 종종 읽었지만 가까이에서 장애를 가진 또래 친구들을 보지 못했거든요. 올해 학교에 입학한 후 매일같이 휠체어를 타고 등교하는 아이들 보게 되었고 우리 아이는 제게 여러가지 질문을 많이 하네요.
휠체어를 가지고 자꾸 장난치는 아이도 있다고 하며, 그럼 안되는 거라고 다짐도 받고, 한편으로는 느낌이 어떤가 타보고도 싶어하는 것 같네요. 예전에 아이가 병원에서 휠체어를 한 번 타 본 적이 있었는데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나지 않나봅니다.
처음부터 할아버지가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요. 처음부터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고 이렇게 후천적인 요인에 의해 시각장애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아이에게 이야기했습니다.
할아버지가 느끼고 할아버지의 시각으로 보는 방법은 참 멋졌어요. 저나 우리 아이도 그와 같은 방법으로 눈을 감고 느껴보았답니다.
아침 햇살에 눈이 부셔 아침에 일어나는 주인공 소년과 달리 할아버지는 아침 햇살의 따뜻한 기운에 일어납니다. 할머니께서 아침을 준비하는 것도 볼 수 없지만 부엌에서 달그닥거리는 소리를 듣고 알고, 음식 역시 냄새로 느끼며 알게 됩니다.
또한 식사시간에 음식을 먹을 때면 할아버지의 접시는 시계가 된다는 표현이 너무 멋졌어요. 아이와 함께 방 안에 있는 시계를 보면서 식탁 모습을 그려보았고 또 시계는 비행기 조종을 할 때에도 두 시 방향, 아홉 시 방향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는 것도 함께 알려주었지요.
첼로 연주를 할 때에도 주인공 소년이 악보를 보고 한다면 할아버지는 보지도 않고 연주를 합니다.손끝에서 나오는 멋진 멜로디...
사람의 얼굴이나 다른 것을 볼 때면 손가락으로 만져가면서 느껴보고, 바람이 불어는 방향도 나뭇가지가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 보는 게 아닌, 풀잎이 옷에 스치고 머리카락이 얼굴에 흩날리는 느낌으로 알아차리지요.
찌르레기도 참새도 기러기도 노랫소리를 듣고 알지만, 페인트 색깔은 냄새로 알 수 없어 할머니께 물어보는 할아버지... 우리 아이는 페인트 색깔도 각기 다른 냄새를 만들면 안되는지 물어보네요.
엘리베이터를 탈 때 버튼에 있는 점자, 그리고 신호등에서 초록불이 되면 나오는 멜로디 모두 시각장애인을 배려하는 것임을 잘 아는 아이. 얼마 전 지하철을 타고가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어떻게 계단을 올라가는지 아이가 처음 보면서 무척 신기해하더군요.
그리고 요즘 지하철에 있는 엘이베이터를 보면서 저 역시 이젠 장애인을 위해 배려하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멀었고 또한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되기 위해 우리들이 더욱 노력할 일들이 많이 있을 것 같아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아이도 다른 사람을 위해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 그리고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가 보다 편리하고 즐거운 사회가 되기위한 우리의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만들렵니다.
마지막 잠이 드는 주인공 소년에게 할아버지가 밤인사를 하면서 전등의 스위치를 끄려다 실수로 다시 켜진 부분...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언제나 자신감 넘치는 할아버지를 위한 작은 배려에 저 역시 책을 통한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고, 아이에게 보다 많은 것을 보여주며 배려하는 마음을 가르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만든 책이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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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 잔잔한 호수가 그려집니다. 아이가 들려주는 얘기는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며 제 마음 속에 잔물결을 일으킵니다. 부족함 없이 꽉찬 느낌을 주는 가족 얘기는 분명 부족해 보이는데 그렇지 않게 여겨지는 이야기의 힘이 있습니다.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 아님을, 보지 않고도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할아버지의 얘기는 있고 없고를 떠나 주어진 대로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중요한지 깨닫게 해 줍니다.
<할아버지의 눈으로>는 눈이 안 보이는 할아버지를 둔 아이가 이 세상 누구 집보다 좋은 할아버지 집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다른 멋진 집보다 할아버지 집이 좋은 이유는 할아버지 눈으로 보기 때문이라는 아이의 얘기는 우리를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지요.
우리는 눈으로 보면서도 그 가치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사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눈으로 보지 않는 사람은 그것을 소리로 느낀답니다. 눈이 놓치는 것을 소리로, 느낌으로 찾아내는 할아버지를 둔 아이는 행복합니다. 아이는 건강한 눈을 가졌지만 눈을 감고 할아버지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고 합니다. 금잔화 꽃향기와 햇살의 따뜻함과 찌르레기 소리를 할아버지의 코와 손과 귀로 느끼려 합니다.
조용히 수채화를 감상하는 기분으로 책을 읽으면 연필로 그려진 부드러운 그림이 우리를 포근하게 감쌉니다. 장애를 장애로 여기지 않고 사는 사람들. 그들은 약간의 불편함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줄 아는 지혜가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지혜를 배운 손자는 이제 할아버지를 배려할 줄도 압니다. 잠자리에서 할아버지가 전등 스위치 끈을 잡아당긴 후 실수로 불을 다시 켜도 곧바로 이러나 불을 끄지 않고 방긋 웃으며 할아버지가 갈 때까지 가만히 누워 기다릴 줄 알지요.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며 아웅다웅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을 겹쳐보며 반성합니다. 조금 느리게, 조금은 여유롭게 주위를 둘러보자고요. 앞만 보고 질주하는 삶이 놓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다시 살펴보게 하는 책입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또 그런 가정에서 장애가족을 이 책만큼 지켜볼 수 있다면, 우리 사회의 수많은 편견과 질시가 다 사라지겠지요? 감동적인 책을 읽는 마음은 행복합니다. 다른 분들도 행복한 책읽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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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 보았을 때 낯설지가 않았다. 왜일까. 작가 이름을 봐도 모르겠고 내용은 더더욱 처음 보는 책인데 말이다. 그 의문은 나중에 책 뒷표지에 있는 옮긴이의 말을 읽고 풀렸다. 그림 작가가 바로 <내게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여동생이 있습니다>에 그림을 그린 사람이란다. 그래서 그랬구나. 그림 느낌도 그랬고 바탕색도 비슷해서 그런 느낌이 들었나 보다. 장애에 대해서 다룬 책들을 보면 어딘지 무거운 느낌이 들고 지금까지 가졌던 마음 때문에 죄책감이 들곤 했는데 이 책은 외려 따스함을 느꼈고 편안함을 느꼈다.
후천적 시각 장애인의 경우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무척 힘들어 한다고 한다. 보았던 것을 하루 아침에 못 보게 된다면 누구든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극복하지 못할 것이란 없는 법이다. 다만 포기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 것이지... 존의 할아버지는 시각 장애인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예전에 보았던 모든 것들을 마음 속에 담아두고 지금은 할아버지만의 방법으로 사물을 본다. 그래서 존은 할아버지 집이 좋다.
존은 해가 비쳐서 눈부시면 아침이라는 것을 알지만 할아버지는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햇살 때문에 아침을 안다. 그리고 존은 나무나 풀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바람이 어느 방향에서 불어 오는지 알지만 할아버지는 머리카락이 얼굴에 흩날리는 느낌으로 방향을 안다. 또한 존은 아침 메뉴가 무엇인지 식탁에 와야 알지만 할아버지는 2층에서도 냄새로 알 수 있다. 어디 그 뿐인가. 꽃병에 새로 꽂아 놓은 꽃이 무슨 꽃인지도 알 수 있다. 물론 냄새로...
이처럼 할아버지에게 앞이 안 보인다는 것은 별 어려움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소리를 내지 않을 때는 알 수 없고 색깔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좀 불편할 뿐이다. 집안에 있는 난간은 할아버지 손때가 묻어서 반들반들해 지고 생각에 잠길 때마다 만지작 거리는 나뭇조각에도 길이 나 있다. 존은 할아버지에게 나뭇조각 하나를 얻는다. 아마도 존은 할아버지가 생각날 때마다 그것을 만지작거리겠지. 비록 앞은 볼 수 없어도 할아버지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설거지도 하고 산책도 하고 비가 얼마나 왔는지도 알 수 있다. 존과 할아버지가 나란히 서서 설거지 하는 모습은 문화적 차이를 느끼게 한다. 우리 나라라면... 엉뚱하게도 이 시점에서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전혀 엉뚱한 것은 아니지만 왠지 분위기 깬 기분이다.)
할아버지와 손자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책... 굳이 장애로 분류하고 싶지 않다. <오른발 왼발>을 읽었을 때가 문득 생각난다. 판형도 그렇고 내용도 비슷해서인가. 아마도 할아버지와 손자의 따스한 사랑과 밝게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비슷해서일 것이다. 선명하지 않고 은은한 색조의 그림과 때론 색을 과감히 생략하고 일부만 살짝 칠한 그림들이 더 잔잔하게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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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덜컹 시골길을 멀미로 얼룩진 옷을 입고 잠에 취해 가다보면, 창가로 하얀 수염에 비둘기 깃털 빛의 한복을 입은, 초조한 얼굴로 다가오는 버스를 향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 낯익은 얼굴을 만나는 것이 방학을 알리는 신호와도 같은 어린 시절이 있었다.
할아버지의 눈으로 보는 세상. 할아버지의 집이 가장 좋다고 말하는 나는, 내가 세상을 보는 방법이 아닌 할아버지만의 방법으로 보는 세상을 만난다.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햇살에 아침을 맞이하고, 할아버지의 눈을 통해 아침 식사 메뉴를 알아맞히고, 할아버지의 손길이 닿아 반질반질해진 나무 난간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며 하루를 시작한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나누는 아름다운 교감을 느끼면서, 할아버지의 사랑을 제일 많이 받고 자랐음에도 어른들 기억 속에 남은 추억만 간직할 뿐, 나의 기억엔 너무나 희미한 존재로 남겨진 우리 할아버지. 손자가 넘쳐나는 집안에 귀하기 짝이 없었던 막내 손녀딸이라는 것만으로도 기쁨이었을 텐데 하고 내 마음을 위로해 보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할아버지가 사다주신 기념품 하나 내 곁에 두지 않은 나의 소홀함을 탓하고 싶은 마음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할아버지와 내가 같은 세상을 바라보았더라면, 할아버지의 일방적인 나눔과 사랑이 아닌 아름다운 시간으로 간직되어 지금쯤 얼마나 행복할까, 얼마나 따스할까 하는 아쉬움을 남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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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베리상]은 세계의 문학상 중에 그 지명도가 높은 상 중의 하나이다. 그 상을 받은 작가가 내어놓은 이 책은 그 상의 이름값을 하기에 충분하다.
이 책은 하나의 풍경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때론 좀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들을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사회가 새로운 인식을 통해 좀 더 나은 사회로 발전되기도 한다. 요즘 여러 매체들을 통해 새롭게 인식하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려는 현상이 있다. 좋은 변화이기도 하지만 자칫 그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는 건 아닐지 조심스럽기만 하다.
이 책에서는 그들은 바라보는 또 다른 방법을 알려준다.
이 글을 옮긴이의 특별한 이력도 눈에 뜨이지만 그가 옮긴 책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의 작가다운 마음에 남다른 매력을 느끼게 된다. 독자와의 관계 소통에 좋은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참 특별한 책을 옮긴다. 그가 옮긴 책을 보면 모두가 따뜻하다. 짧지만 강한 메시지가 있는 것들이다. 그가 옮긴 책이라면 일단 믿어보는 것이 나의 책 선택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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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과의 만남은 낯설음이 아니라 낯익음에서부터 시작된다. 책의 표지를 보면 마음 한켠이 따스해짐을 느끼면서 편안함으로 다가가게 한다. 바로 <내게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여동생이 있습니다>라는 책 표지와 너무도 흡사함을 느끼면서 이질감이 아닌 같은 의미로 다가옴을 느낀다.
이 책은 여느 하루와 다를바 없는 지극히 평범한 손자와 할아버지의 일상을 잔잔하게 그려내면서 손자와 할아버지의 세상을 바라보는 또다른 눈을 보여주고 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세상을 만나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때까지의 소소한 일상을 손자가 바라보는 세상과 할아버지가 바라보는 세상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할아버지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손자의 마음까지 담겨있다.
우리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오직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고, 기억하며, 다른 세상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으로 보는, 소리로 보는 세상은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한 세상까지 다 볼 수 있게 만든다. 존(손자)는 눈으로만 보이는 세상뿐만 아니라 할아버지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더 넓은 마음을 지닐 수 있다는 것과 함께 장애를 지니고 있는 할아버지를 따스하게 감싸안으며, 할아버지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할아버지를 이해하고 존중해줌을 나타내고 있다.
이 책은 존의 눈과 할아버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함께 장애를 지닌 장애우를 바라보는 또다른 눈을 보여주고 있다. 장애우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고, 감싸안아주며, 함께 걸어갈 것을 보여준다. 남과 다른 대우,남과 다른 독특한 대접를 받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감싸안고 함께 보듬으며 걸어갈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할아버지와 손자의 따스한 정이 배여있는 잔잔한 이야기와 함께 마음 가득 편안한 휴식을 제공하는 듯한 그림이 읽는 동안 내내 잔잔한 여운으로 남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