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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의 아나키즘'이란 책의 제목은 언어학자로서만 알고 있었던 촘스키에 대한 흥미와 아나키즘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유명한 언어학자인 촘스키는 어떤 이유로 무정부주의를 옹호하게 되었을까. 그가 책에서 밝힌대로 인간이 언어를 창의적으로 사용한다는 사실에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인 자유와 자유의지를 설명해낼 수 있으므로 언어학자로서의 촘스키가 억압적인 정부권력이 가하는 제약으로 부터 자유를 갈망하는 아나키즘을 옹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발전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스스로 완벽해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에 무정부주의자에게 자유란 모든 인간이 타고난 모든 권력과 능력 그리고 재능을 발전시켜 사회에 득이 되게 할 수 있는 구체적 개념이므로 정치 세력의 영향을 적개 받을 수록 인간의 개성은 더욱 더 능률적이고 조화로운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 주도적인 생산이 아닌, 노동이 자율적으로 생산자의 관리하에 수행되어야 한다고 봤으며 노동자들이 직접 관리하는 산업 편제 이른바 '무정부주의적 노동조합'을 주장하고 있다.
무정부주의는 모든 권력과 계급 그리고 지배구조를 찾아내고 그런 구조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에 가장 적합하다고 본다 즉 모든 권력은 그 정당성을 입증해야 하며 만약 그 정당성을 입증할 수 없다면 분쇄되어야 하는데 이런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이 무정부 주의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무정부주의자들이 본 국가는 독재국가는 '무력'으로, 좀 더 자유로운 국가는 '사상통제'를 통해서 대중들을 정치에서 소외시키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시켜 국민을 지배하고, 국내에서는 소수 특권층, 부자와 권세가를 옹호하기 위한 강력한 치안 유지와 국외적으로는 약소국에 대한 무력외교를 사용하여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는데 그 권력을 사용하는데 책에서는 미국이 자국의 경제 이익을 위해 쿠바나 나카라과 같은 중앙아메리카에 대한 경제 제재를 그 예로 들고 있다.
책을 읽고 자본주의 국가 권력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나 그들이 말하는 의도는 이해가 가지만 인류의 역사 발전 단계에서 과연 무정부주의가 하나의 실험적 이론이 아닌 구체적인 형태로 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강한 의문이 일었다. 물론 국가가 가지는 많은 극단적인 단점에도 불구하고 국가 존립에 필요한 전문적인 역할을 노동자가 얼마나 커버 할 수 있을까 하는 단순한 의문도 남았다. 자본적 국가주의 이후에 인간의 자유를 향한 갈망을 충족시킬 새로운 정치 체제는 과연 무엇이며 언제 인류 역사에 나타날 것인가.
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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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권력을 발생시키는 구조들은 사실상 자연의 일부처럼 변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이런 형태의 '민간 전제정치 체제(자본권력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형식적인 민주주의 체제)는 20세기에 들어서야 현재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민간 전제정치 체제의 배경이 되는 권리 부여와 법이론은, 20세기 전체주의의 다른 두 가지 주요 형태인 파시즘과 볼셰비키즘을 육성한 것과 거의 같은 지적 토양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인간사에서 나타난 이런 일시적인 체제를 동종의 비열한 체제들보다 더 영구적인 체제로 볼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한마디로 넓고 멀리 크게 보라는 얘기다. 유구한 인류의 역사 중 고작 20세기 들어 형태를 갖춘 오늘날의 권력체제를 사람들은 마치 태고적부터 있어온 것으로 여기는듯, 거기에 아무런 의문도 품지않고 안주한다는 지적이다. '국가'나 '자본주의'를 숨쉬기처럼 거의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현대인에게 주의를 환기시키는 노암 촘스키.
때때로 인간이 지도체제를 필요로 하는 동물이란 사실이 슬프다. 어째서 상층의 몇몇 소수에게 많은 권력을 위임하고 그 체제 아래서 다수가 불편을 감수하며 사는 걸까. 물론 이 문제는 생물학적으로 다뤄야 한다. 인간 본능의 영역을 여기서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이 의문만은 가지고 글을 이어가자.
'작은 정부'는 선거공약이 될 수 있을지언정 현실은 그 반대다. 자본주의가 야기한 문제들은 더 끔직하다. 그럼에도 이 체제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수명을 이어갈 것이다. 나는 바로 이런 체제 아래서 살다 가겠지만, 그럼에도 '대안'을 꿈꾸어 본다.
어렴풋이 나는 무정부주의를 그 대안으로 여겼던 것 같다. (사실 내가 꿈꾸는 사회는 모든 사람이 聖人수준의 인격을 갖는 사회. 어떤 권력이나 조직도 필요로 하지 않는 말그대로 무위자연의 사회다. 수십만년 인간이 올바른 방향으로 진화를 거듭해 간다면 이런 사회에 다다르지 않을까?) 그래서 각별한 관심을 갖고 이 책을 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이다.
언어학자로서 촘스키의 저작을 한 권 읽어본 적이 있다. 너무 전문 분야라 반에 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어렴풋이 촘스키는 '큰 흐름을 보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언어를 인류의 진화적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고, 인간이 만들어낸 도구인 언어를 통해 도리어 인간 본질을 탐구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이 책으로 '무정부주의' 공부를 한방에 끝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내심 품었던 것이다.
실망스럽게도 이 책은 일관된 흐름을 갖고 집필된 책이 아니라, 촘스키가 언론에 발표한 글들과 언론과 가진 인터뷰들을 모은 것이다. 부정부주의라는 키워드 아래 여기저기 흝어져있던 글들을 묶었다. 이런 류의 책은 입문용으로는 영 별로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도 거의 이런 류이지만, 이 분의 책은 예외다)
촘스키의 무정부주의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없다. 내가 이 책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촘스키의 무정부주의 성격 자체가 정의를 회피한다. 촘스키는 여러 인터뷰에서 선택을 강요당하는 질문을 받는다.
"A보다 B가 옳지 않습니까?" "A와 B는 어울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A 때문에 B가 변화하지 않을까요?"
대략 이런 류의 질문에 대한 촘스키의 답변은 한마디로 '중립'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A가 옳고 경우에 따라서는 B가 옳습니다." "A와 B는 경우에 따라 어울릴 수도 있습니다.".....
이런 대답을 통해 나는 그가 사람들의 편견에 맞서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무정부주의는 국가를 파괴하자는 주장도 아니고 사유재산을 전복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는 좀더 '인간적인' 사회를 꿈꾸고 있고 그걸 실현하자면 안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편견을 일깨워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의 이런 태도는 일종의 계몽주의인데, 여성운동을 예로 든 아래의 설명에서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여성운동의 첫 단계는 이른바 '의식을 고양하려는 노력'입니다. 여성들이 지배받고 통제받는 현재 상황이 잘못됐음을 자각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나의 할머니는 어떤 면에서 조금도 억압당한다고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 운동에 동참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이 해가 아침에 떠오르는 것처럼 그저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삶은 타고날 때부터 고정된 것이 아니라 바뀔 수 있으며 지시도 따를 필요가 없고 두드려 맞을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에는, 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기 전에는, 그리고 그런 문제를 극복하기 전에는, 사람은 발전할 수 없습니다.
사실 그가 꿈꾸는 부정부주의란 지극히 소박하다. 그는 모든 일터에서 노동자가 참여하는 조직을 통해 사안을 협의하고 결정하는 조직체를 꿈꾼다. 그 조직체는 모든 구성원이 돌아가면서 위원회를 구성하고 유연하게 움직이다. 세상엔 노동자 아닌 사람들도 많은데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하는 내 의문에 대답은 해주지 않은 채, 촘스키는 처음부터 끝까지 노동조합을 통해 실현하는 무정부주의를 언급할 뿐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점을 촘스키의 한계로 지적하는 시각도 만만찮았다.)
결국 나는 내 생각을 굳히고 만다. 위에서 언급한 내가 꿈꾸는 사회. 인간 개개인의 인격적 성숙이 따르지 않고는 어떤 조직 어떤 체제도 변질의 우려를 안고 있다는 확신만 재확인했다. 촘스키가 편견타파!를 외치는 것도 개개인의 인격적 성숙을 위한 하나의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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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촘스키의 아나키즘> 이 책을 접하면서 문득 떠오르는 시절-좁은 학회룸에 모이거나 빈 강의실에 모여 선배들이 나눠주는 낯설은 책을 받아들고 한페이지 한페이지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던 시절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밑줄을 바탕으로 서로 열띤 토론을 벌이며 이 시대에 대한 반성과 저항, 그리고 변혁을 꿈꿔왔던 시절. 하지만 지금 읽는 이 책은 그 시절의 아련한 기억과 함께 책장 넘기기가 힘든 나 자신을 발견하게 했다.
이 책에서는 촘스키를 탁월한 무정부주의자이자 자유의지적 공산주의자, 그리고 무정부주의적 노동조합주의자라고 부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개인적 자유의지에 대한 언급한다. 이 책에서 촘스키는 물론 여러 무정부주의자들은 '인간의 본성의 본질은 자유'며 '인간 본성의 핵심은 자유와 자유를 의식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러번 읽었으면서도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인간은 생각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행동라기 위해 태어났다고 말한 프리드리히 셸링의 말을 인용하면서 인간은 인간성에 정신의 자유를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개인의 자유와 인간본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도 자유라고 강조하고 무정부주의의 근간은 자유가 바탕이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이런 무정부주의자들은 어떤 사명감으로 자신들의 사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일까? 이들은 경제적 착취로 노동을 옥죄고 있는 모든 속박을 풀어주고 정치권력에서 비롯된 모든 제도와 절차에서 사회를 해방시키는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언뜻 보기에는 계급혁명과 사회주의 혁명과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무정부주의자들은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고 협동노동과 계획경영에 입각한 자유로운 단체들이 서로 동맹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무정부주의자의 한 사람인 바쿠닌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자유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다. 내가 말하는 자유란 국가가 부여하고 할당하며 규제하는 그런 완전히 공식적인 자유가 아니다. 그런 자유는 실제로는 일부만이 특권을 누리고 나머지 대다수 사람들은 노예상태로 전락하는 것을 뜻하는 영원한 거짓말에 불과하다"
이 얼마나 자유의 억압과 통제를 가장 인간의 본성을 짓밟는 악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무정부주의자는 인간이 인강을 착취하는 것에 반대하고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도 반대한다. 무정부주의자는 모두 다 사회주의자지만 사회주의자라고 해서 반드시 무정부주의자는 아니라고 촘스키는 무정부주의와 사회주의의 경계와 한계를 명확히 한다.
이쯤에서 볼 때 무정부주의가 곧 사회주의로 비칠 수 있고 또 레닌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견실한 무정부주의자라면 생산수단의 개인소유와 이런 개인소유체제를 지탱하는 임금노례제를 반대해야 한다 이런 것들은 노동이 자율적으로 생산자의 관리하에 수행돼야 한다는 원칙에 어긋하는 것이다.> 또 다른 무정부주의자 푸리에는 무정부의자와 그 사상을 갖는 사람든은 역사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해당단계를 이끌어 낸다고 말한다. 첫번째 단계는 노예상태에서 농노로 바꾸는 것이고 두 번째 단계는 농노에서 임금 노동자로 바꾸는 것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생산자들로 결성된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연합체들이 직접 경제를 관리하는 해방의 최종 조치로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다.
헨리 데이비스 소로 역시 최상의 정부는 전혀 통치하지 않는 정부하고까지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무정부주의, 아니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악의 모습은 어떤 것이 있는가? 이 책에서는 미국의 니콰라과 내전 참여, 파나마 사태, 쿠바 미사일 위기, 소말리아 사태, 걸프전,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이 자신들의 정부와 그 사상, 체제를 유지시키기 위해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했다고 규정했다.
<일찍이 니콰라과에서 자원을 가난한 대다수 민중의 소율 돌리려는 시도들이 나타났을 때 미국 정부는 경제전쟁과 이념전쟁을 시작했고 노골적인 테러를 감행했으며 생활상태를 최학의 수준으로 떨러뜨림으로써 자신들의 뜻을 거역한 니카라과를 침공했다.> 촘스키는 "혁명이냐 아니면 사회적, 문화적 진보냐?"라는 수단에 대한 딜레마에 대핸 이렇게 말한다. "그런 문제는 지배와 통제에 따라 작동하는 체제라면 어디에서나 발생하는 것으로 지배와 통제의 범위내에서 가능한 변화를 모색하려면 당연히 생기게 마련다. 만역 넘을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히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충돌과 투쟁, 그리고 혁명적 변화이다." 그렇다. 무정부주의는 반정부주의가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진보냐 보수냐 우파냐 좌파냐하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없다는 것은 정부의 존재보다는 통치나 억압, 무력사용을 위한 결정권과 기득권이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통치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집단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개인 자유의지에 따른 자율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물론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지배와 피지배관계의 계급투쟁도 인정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부정부주의자인가 반정부주의자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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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접하면서 문득 떠오르는 시절-좁은 학회룸에 모이거나 빈 강의실에 모여 선배들이 나눠주는 낯설은 책을 받아들고 한페이지 한페이지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던 시절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밑줄을 바탕으로 서로 열띤 토론을 벌이며 이 시대에 대한 반성과 저항, 그리고 변혁을 꿈꿔왔던 시절. 하지만 지금 읽는 이 책은 그 시절의 아련한 기억과 함께 책장 넘기기가 힘든 나 자신을 발견하게 했다.
이 책에서는 촘스키를 탁월한 무정부주의자이자 자유의지적 공산주의자, 그리고 무정부주의적 노동조합주의자라고 부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개인적 자유의지에 대한 언급한다. 이 책에서 촘스키는 물론 여러 무정부주의자들은 '인간의 본성의 본질은 자유'며 '인간 본성의 핵심은 자유와 자유를 의식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러번 읽었으면서도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인간은 생각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행동라기 위해 태어났다고 말한 프리드리히 셸링의 말을 인용하면서 인간은 인간성에 정신의 자유를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개인의 자유와 인간본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도 자유라고 강조하고 무정부주의의 근간은 자유가 바탕이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이런 무정부주의자들은 어떤 사명감으로 자신들의 사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일까? 이들은 경제적 착취로 노동을 옥죄고 있는 모든 속박을 풀어주고 정치권력에서 비롯된 모든 제도와 절차에서 사회를 해방시키는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언뜻 보기에는 계급혁명과 사회주의 혁명과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무정부주의자들은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고 협동노동과 계획경영에 입각한 자유로운 단체들이 서로 동맹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무정부주의자의 한 사람인 바쿠닌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자유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다. 내가 말하는 자유란 국가가 부여하고 할당하며 규제하는 그런 완전히 공식적인 자유가 아니다. 그런 자유는 실제로는 일부만이 특권을 누리고 나머지 대다수 사람들은 노예상태로 전락하는 것을 뜻하는 영원한 거짓말에 불과하다"
이 얼마나 자유의 억압과 통제를 가장 인간의 본성을 짓밟는 악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무정부주의자는 인간이 인강을 착취하는 것에 반대하고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도 반대한다. 무정부주의자는 모두 다 사회주의자지만 사회주의자라고 해서 반드시 무정부주의자는 아니라고 촘스키는 무정부주의와 사회주의의 경계와 한계를 명확히 한다.
이쯤에서 볼 때 무정부주의가 곧 사회주의로 비칠 수 있고 또 레닌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견실한 무정부주의자라면 생산수단의 개인소유와 이런 개인소유체제를 지탱하는 임금노례제를 반대해야 한다 이런 것들은 노동이 자율적으로 생산자의 관리하에 수행돼야 한다는 원칙에 어긋하는 것이다.> 또 다른 무정부주의자 푸리에는 무정부의자와 그 사상을 갖는 사람든은 역사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해당단계를 이끌어 낸다고 말한다. 첫번째 단계는 노예상태에서 농노로 바꾸는 것이고 두 번째 단계는 농노에서 임금 노동자로 바꾸는 것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생산자들로 결성된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연합체들이 직접 경제를 관리하는 해방의 최종 조치로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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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정부주의, 인간의 자유와 자유의지 촘스키의 비전을 볼 수 있었다. 어떤 비전을 갖고, 어떤 미래를 꿈꾸어야 할지 하나의 방향을 알 수 있었던 책이다. 무정부주의가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지만 비전으로 삼을만한, 참고할 만한 사상이라고 생각하고, 더 공부하려 한다. 개인의 자유와 자유의지는 인간본성이며, 그걸 억압하려해선 안된다는 생각은 꼭 기억해야 하고, 자유에 대한 자유주의의 가장 끝이 무정부주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무정부주의를 공격하는 국가, 부자들, 강자들, 그들의 선전을 간파하고 우리가 선택할 것은 '귀족주의'가 아닌 '민주주의'라는 것을 고통이 따르더라도 그걸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ps. 장기적으론 국가 해체와 공동체 중심의 운영이 목표더라도 단기적으론 그나마 약자를 보호하는 국가와 국가기능을 옹호하고 강화시켜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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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an anti-christ. I'm an Anarchist~." You may say that I'm a dream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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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암 촘스키의 '아니키즘'은 아나키즘 이론과 그것이 어떻게 우리 사회와 연결되는지를 탐구하는 책입니다. 촘스키는 이 책에서 권위주의적인 구조에 반대하는 아나키즘의 기본 원칙을 명확하게 설명하며, 이를 현대 사회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제시합니다. 촘스키의 깊이 있는 통찰력과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아나키즘에 대한 복잡한 주제를 잘 다룹니다. 그는 아나키즘의 역사와 그것이 현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세밀하게 분석하며, 독자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합니다. 작가의 깊이 있는 분석과 명확한 설명을 통해 독자들에게 아나키즘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공합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아나키즘의 본질과 그것이 현대 사회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과학에 관심이 있거나, 아나키즘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는 책입니다. 이 책은 아나키즘에 대한 복잡한 주제를 명확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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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운동가라고 해서 바로 아나키스트가 되는건 아니지만 촘스키 할아버지는 그리 될줄 처음부터 예견했었다.학위논문을 제외하고는 점점 사회참여의식이 강해지고 있음을 느꼈더랬다.특히 정치의식,대중매체,외교정책에 대해서 말이다.이분이 이상하게도 언어학자라서 매번 생경하다. 정말 요즘같이 퍽퍽한 정치판과 경제판을 보고 있자면 한숨이 연달아 나온다.아나키스트가 되어 변혁의 물결에 나도 선봉에 서고 싶어진다. 앞장서 글과 말로(인터뷰) 부당하고 불법적인 전쟁을 일으키는 강대국(대부분 미국일것이다^^)을 비판하는데 전력을 쏟고 있는 분이다.경제분야 에서도 "신자유주의"의 폐단을 잘 짚고 있는 분이고 이 역시 거대자본의 선두마차인 미국, 그 중에서도 보수ㅡ세력들에게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전쟁을 일으키고 착취하는 과정에서 점점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 경제력 즉 국력뿐만 아니라 인권보호-보장도 그에 따라간다.정부가 세워지고 몰락하는 과정에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생기는 불이익은 모두 착취자인 비양심 정부관료들이 아니라 피착취자인 양심 세력이다. 우리생각으로는 미국정부에서도 촘스키씨를 무척 배척할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나라 처럼 선악을 구분해서 선을 긋고 멸시하고 차별하는 분위기는 아닌것 같았다.이게 바로 선진국과 후진국의 사회문화차이가 아닌가 싶다. 반권위주의를 꿈꾸는 것은 지금의 우리나라 정부와 맥을 같이 하는것 같다^^ 촘스키가 69년부터 근 30년 넘게 펴낸 글들과 인터뷰를 모아서 정리해 놓은 결과물이다. 모든 형태의 착취와 억압을 분석하고 비평한 비평서이다. 무정부주의의 뜻을 깊게 모르더라도 대략 부당한 권력을 방관하지만은 않는다는 걸 알고서 출발해 보면 쉬울것이다.
FTA때문에 계급이 확실히 나눠 지는건 아닌지 걱정해본다.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의 위치는 공산주의에서보다 견고하고 무섭다. 피해가 한번에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다.무정부주의는 역사에 큰 기점에서 만들어지고 성장한다는 말에 동감한다.상호번영이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믿을수 없을만큼 지금 우리정부는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무정부주의는 흥할때나 망할때나 언제나 존재하는것 같다.자본주의의 폐해에서 헤어나올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할 시기인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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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없이 읽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고, 시험공부를 하듯 계획을 세워 각 장마다 진도를 나가보긴 하지만 생각했던 것 만큼 정확한 이미지로는 다가오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무정부주의에 대한 아우트라인을 그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무정부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조직화된 정치적 계급투쟁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모든 정치적 조직·규율·권위를 거부하고 국가권력기관의 강제수단의 철폐를 통해 자유와 평등, 정의, 형제애를 실현하고자 하는 유토피아적 이데올로기 및 운동’이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정의 등은 많은 사람들의 이상일 것이다. 자본주의사회 내에서는 소외와 불평등이 대다수의 행복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무정부주의는 유토피아로 통하는 금으로 만든 문쯤으로 느껴진다. 무정부주의 사상은 계몽운동을 바탕으로, “자유란 그것을 누릴 만큼 성숙해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전제조건이지 먼저 그런 상태에 도달해야만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라는 칸트의 주장에 뿌리를 두고 있다.(p.57)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무정부주의는...살아 있는 모든 개인과 사회 세력들이 제약받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p.50)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그것이 가능한 것일까? 예를 들면, ‘이스라엘의 집단농장(Kibbutzim)...자체적으로 운영하고, 노동자가 직접 관리하며, 농업 분야와 산업 분야 그리고 서비스 분야를 하나로 통합하며, 자체 운영 체제에 개인들이 직접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p.77) 무정부주의 사상에는 정당도 없다? ‘인간의 복잡한 관심사와 삶은 정당을 구분하는 식으로 나눠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정당들은 기본적으로 계급의 이익을 대변합니다. 그런데 무정부주의 사회에서는 계급이 없어지거나 넘어서야 할 대상이 될 것입니다.’(p84~85) 지극히 소모적이며 불필요한 정당간의 싸움을 보면서 뭔가 잘못 그려진 지도위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이 있다. 촘스키에 따르면, 무정부주의는 이데올로기이기 보다는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태도중의 하나’이다. 참다운 자유와 평등을 더욱 가까이 할 수 있다면 그 방식을 좀 빌려와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