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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를 잘 들어보면 재미있는 대목이 많아요. 원래 판소리가 서민들이 즐겨 듣고 부르던 소리였으니 양반들 흉도 보고, 말장난도 하면서 힘든 일을 잠시 잊고 즐겼겠지요. 그러던 판소리가 양반들, 조선 후기에는 궁궐에서도 즐겨들으면서 어려운 한자가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미리 공부하지 않고 판소리를 들으면 어떤 내용인지 이해하기 어렵죠. 여기 소개하는 춘향가 '책방에서 춘향 생각하는 대목'과 '천자 뒤풀이'가 그렇습니다. 춘향이 그네 타는 모습을 보고 홀딱 반한 이도령, 집에 돌아와서도 춘향이가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밥도 먹기 싫고, 책을 읽어도 춘향이 생각뿐입니다. 그러니 공자님 맹자님 말씀도 '춘향이가 보고 싶구나.'로 끝날 수밖에요. 어려운 책은 도저히 읽기 힘드니 가장 쉬운 천자문을 펴서 글자 하나하나 뜻풀이를 시작합니다. 그렇지만 그네 타는 춘향이 생각이 어디 가나요. 결국, 춘향이랑 입 맞추고 싶다, 하면서 끝을 맺습니다. 이 대목은 외국 음악 가운데 힙합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라임', 그러니까 각운이 재미있습니다. 또, 천자문, 주역, 십팔사략, 시경, 시경, 추구집 같은 글로 춘향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애틋하면서도 재미있게 표현했어요. 성인군자가 말하는 법도와 덕목, 주역에서 이야기하는 음양오행과 만물의 자연 이치를 노래하는데요, 아마 이도령은 춘향을 만나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이치에 맞는 일이며, 지켜야 할 덕목이라고 말하고 싶었나 봅니다. 한자만 가득한 책을 읽는 대목이라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 많아서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 뜻풀이를 해봤어요. 판소리는 소리꾼에 따라 노랫말이나 가락이 조금씩 다른데요, 여기 실은 노랫말은 김소희 선생이 부른 춘향가 완창에서 따왔습니다.
<책방에서 춘향 생각하는 대목 (자진모리, 아니리)> (자진모리 - 빠르게 연주하는 12박 장단. 치는 법은 '덩 쿵 쿵덕쿵'. 보통 긴박하거나 극적인 대목에서 쓴다.)
도련님 그 시부터 구경에도 뜻이 없고 글짓기도 생각 없어 무엇을 잃은 듯이 섭섭히 돌아와 동헌에 잠깐 다녀 내아에 뵈온 후에 점심상을 받았건만 밥 먹기도 생각 없어 책방으로 돌아와 옷을 벗어 걸고 침금에 빗겨 누우니 몸은 광한루 앉은 듯 눈은 선연히 춘향을 대하는 듯 눈 감으면 곁에 있고 눈만 뜨면 간 곳 없다. 깊은 상사 최심병 도련님 어린 촌장 다 끊어져 아이고 나 못 살겠네!
* 동헌: 고을의 수령(守令) 등이 정무를 집행하던 건물 * 내아: 지방 관아의 안채. 가족이 머물던 곳 * 상사 최심병: 자꾸 생각나고 조급한 마음 병
(아니리 - 한 대목에서 다음 대목으로 넘어가기 전, 일정한 장단 없이 자유롭게 사설을 엮어가는 것. 대부분 장면을 설명하는 역할을 하므로 사설체가 많다.) 도련님 실성 발광이 되니 마음잡기 위하야 만군 서책을 들여놓고 놀이 글로 펄쩍펄쩍 뛰어 읽난디 “맹자견양혜왕허신대 천명지위성이요 솔성지위도라, (맹자가 양나라 혜왕을 찾아보시니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하고 그 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 이른다) 대학지도는 재명명덕하며 재신민하며 재지어지선 이니라.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더 밝히는 데 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 있고 착한 데에 머무름에 있다) 마상에 봉한식이요 도중에 속모춘이라 (말을 타고 가다가 한식을 만나니 길 가다가 봄이 저문다) 칠월유화어든 구월수의로다 (7월에는 화심성이 내리고 9월에는 겨울옷 준비하네) 천고일월명이요 지후초목생이라 (하늘이 높으니 해와 달은 밝으며 땅이 두터우니 풀과 나무가 난다)." 가갸 거겨 방자 듣다, ”도련님 이게 웬 야단이시오 아 도련님이 글 난리를 꾸미시오, 글 전을 보시오?“ “이 자식아 듣기 싫다. 주역을 들여라. 건(乾)은 원(元)코 형(亨)코 이(利)코 정(貞)코 (건은 모든 사물의 근본원리니라. - 건은 주역에서 양과 음을 조합하여 나오는 여덟 가지 8괘 가운데 하나로, 하늘, 아버지, 머리, 북서쪽을 뜻한다. 원,형,이,정은 하늘이 갖춘 네 가지 덕으로, 세상의 모든 것이 생겨나서 자라고 이루어지고 거두어짐을 뜻한다. 원은 봄, 형은 여름, 이는 가을, 정은 겨울에 해당한다.) 춘향코 내코 한데 데면 좋코 좋코.” 방자 듣다, “도련님 그게 무슨 책이요?” “이게 주역이다.” “그 어디 주역이요? 코 책이지. 그 책 속에 코 많소. 그 흔한 코 밑에 소인 코도 넣어 주시오?” "이놈아, 네 코는 상놈의 코라 여기 범치 못한다. 사략(짧게 엮은 역사책. 여기서는 중국 18사를 요약한 십팔사략을 뜻한다)을 읽어보자. 태고라 천왕씨는 이(以) 쑥떡으로 왕허시다. (원문은 ‘태고천왕씨이목덕왕’. 임금이 갖추어야 할 목덕(木德), 즉 총명예지와 인, 의, 예, 지 다섯 가지 덕을 오행으로 형상화한, 우주 만물에 그 힘이 미친다는 임금의 덕)." 방자 어이없어, “태고라 천황씨가 이 목덕으로 왕하신단 말은 들었어도 쑥떡으로 왕하신단 말씀은 금시초문이요.” “네 모르는 말이로다. 태고라 천황씨가 일만팔천세에 나이 오즉 많으시냐. 만년 낙치하사 목덕(木德)은 못 자시고 물신물신한 쑥떡을 원하시기로 관학에서 공론하고 사략판을 고쳤기로 동도동읍 향교에서 통문났느니라. (나이 들어 이가 빠졌으니 나무 떡(목덕)은 못 자시고 물렁물렁한 쑥떡을 원하시니, 명륜당에서 함께 의논하여 십팔사략을 고치고 지방 곳곳 학교에 알렸느니라.) 이 글도 정신없어 못 읽겠다. 굵직굵직한 천자를 읽어보자. 하늘 천 따 지.” “허허 양반댁 도련님은 치 된다는 데 우리 도련님은 내려 돼시오 그려!” “무식한 네가 깊은 뜻을 알겠느냐. 천자라 허는 것이 칠서(사서와 삼경)의 본문이라 천자 뒤풀이 하는 것을 뜻을 알면 별맛이라 었느니라. 내 이를 테니 들어보아라.”
<천자 뒤풀이 대목> (중중모리 - 보통 빠르기 장단으로 흥겨운 대목이나 통곡하는 대목에 많이 쓴다.)
자시에 생천하니 불언행사시 유유창창 하늘 천(天) (하늘이 맨 처음 자시에 열리고 아직 사계절의 구별이 없을 때 끝없이 넓은 하늘 천) 생지하야 금목수화를 맡었으니 양생만물 따 지(地) (축시에 땅이 생겨 우주 만물을 이루는 다섯 가지 원기를 맡았으니 땅 위에 모든 것을 키우는 땅 지) 유현미묘 흑정색 북방현무 감을 현(玄) (알기 어렵고 이치가 미묘한 순흑색 북쪽 현무 감을 현 - 현무는 북쪽에 있는 일곱 별자리를 책임지는 수호신. 현무는 뱀과 거북이가 한 쌍으로 얽혔는데, 뱀은 수컷, 거북은 암컷을 뜻한다) 궁상각치우 동서남북 중앙토색 누루 황 (궁상각치우 동서남북 가운데 흙빛, 누루 황 - 궁상각치우는 우리 음악의 오음계를 뜻한다) 천지사방이 몇만 리 하루광할 집 우 (천지사방이 몇만 리인지 크고 넓은 누각, 집 우) 연대국조 흥망성쇠 왕고래금 집 우 (지난 시간 나라의 시조가 흥하고 망하고 성하고 쇠하고 옛날은 지나고 오늘에 와서 집 우) 우치홍수 기자추연 홍범구주 넓을 홍 (우가 홍수를 다스렸으니 기자가 자세하게 덧붙여 설명하고 홍범이 나라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 원칙을 세웠으니 넓을 홍. 우-중국 요 임금 때, 9년 동안 홍수가 나자, 요 임금 뒤를 이은 순 임금이 우에게 명하여 홍수를 다스렸다. 우는 이 공으로 왕위를 물려받아 하나라를 세웠다. 홍범구주 - 홍범이 우 임금이 요순 때부터 내려오는 정치사상을 모은 정치 도의 아홉 가지 법칙. 은나라의 폭군인 주 임금의 숙부였던 기자가 주나라로 도망가서 무 임금에게 이 홍범구주를 자세하게 가르쳐주었다.) 제제군생 수역중에 화급팔황 거칠 황 (많고 많은 군생 오래 사는 가운데 화급세상 거칠 황 화급: 중국 수나라의 무신. 양제와 그의 아들 호를 죽이고 제위에 올라 국호를 허(許)라고 칭하였으나 두건덕의 침공으로 패하여 죽었다.) 요지성덕 장헐시고 취지여일 날 일 (요 임금의 성덕 장하구나 해처럼 빨리 나아가니 날 일 요 임금: 중국 고대 성군) 억조창생 격양가 강구연월 달 월 (모든 백성 태평가 사방팔방 태평한 거리 달 월 - 격양가는 요 임금 때 세상이 태평하여 늙은 농부가 불렀다는 노래. “해 뜨면 일하고 해지면 잠자네.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논밭 갈아 밥 먹으니 임금의 힘이 따로 쓸 데가 있으랴.”) 오거시서 백가어를 적안영상 촬 영 (다섯 수레에 실을 만큼 많은 책, 여러 학자의 말을 담은 책, 책상 위에 쌓이고 함에 가득한 책, 촬 영) 이 해가 어이리 더디긴고 일중즉측의 기울 측 (일중즉측: 해가 중천에 있으면 곧 기운다) 이십팔수 하도낙서 진우청강 별 진 (이십팔수: 천구를 28로 나눈 것. 하도: 고대 중국 복희씨 때 황하에서 용처럼 생긴 말이 지고 나왔다는 그림. 주역 팔괘의 근본이 되었다. 낙서: 하나라 우임금 때 낙수에서 나온 거북의 등에 적혀 있었다는 글. 홍범구주의 근본. 진우청강: 북두칠성) 가련금야 숙창가라 원앙금침 잘 숙 (오늘 밤은 창부의 집에서 머물게 되니 애닯구나, 원앙금침 잘 숙) 절대가인 좋은 풍류 나열준주 버릴 열 (이 세상 비할 데 없는 미인, 좋은 풍류, 술을 모아 나열하니 버릴 열) 의희월색 삼경야의 탐탐정회 베풀 장 (어렴풋한 달빛 삼경 (밤 11시에서 새벽 1시) 밤의 깊고 그윽한 회포 베풀 장) 부귀공명 꿈 밖이라 포의한토 찰 한 (부귀공명은 꿈 밖이라 가난한 선비 찰 한) 인생이 유수 같아 세월이 절로 올 래 남방천리 불모지대 춘거하래 더울 서 (먼 남쪽 지방의 사막지대라, 봄은 가고 여름이 오니 더울 서) 공부자의 착한 도덕이왕지사 갈 왕 (공자의 착한 도덕 이미 지나간 일 갈 왕) 상풍이 소슬 추서 방지초목이 황락 가을 추 (서릿바람이 으스스하고 쓸쓸하구나. 바야흐로 가을이니 누런 잎이 떨어진다 가을 추) 백발이 장차 오게 되면 소년풍도 거들 수 (앞으로 백발이 되면 소년의 모습과 태도 거들 수) 낙목한천 찬바람에 백설강산의 겨울 동 (나뭇잎이 다 떨어진 추운 겨울 찬바람에 하얀 눈 쌓인 강산, 겨울 동) 오매불망 우리 사랑 규중심처 감출 장 (자나 깨나 잊지 못하는 우리 사랑 안방 깊은 곳 감출 장) 부용작약의 세우중의 허정석기 부를 윤 (연꽃 작약꽃 가랑비 속 정원의 돌이 비에 흐뭇이 젖었으니 부를 윤) 저러한 좋운 태도 일생 보아도 남을 여 이 몸이 훨훨 날아 천사만사 이룰 성 이리저리 노니다 부지세월 해 세 (이리저리 놀다가 세월 가는 줄 모르니 해 세) 조강지처는 박대 못 하느니 대전통편의 법중 률 (대전통편: 조선 정조 때 ‘경국대전’, ‘속대전’과 같은 여러 법률책을 한데 모은 책. 법중률: 법 가운데 율령) 춘향과 나와 단둘이 앉어 법중 여(呂)자로 놀아 보자. (呂자는 입 구(口)가 위아래에 둘이니 여기서는 입 맞춘다는 뜻) 이리 한참 읽어가더니마는, “보고지고 보고지고 우리 춘향 보고지고 추천하든 그 맵시를 어서어서 보고지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