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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이라고 해서 조금 쉽게 생각했나보다. 정약용, 최한기 이들의 사상은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방대했고, 깊었다. 실사구시, 이용후생을 강조하는 학문이라 학문의 쓰임새에 대해 역설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생각해보니 정약용와 최한기 이들의 사상에 대해서는 포괄적으로만 알았지 구체적으로 아는 것이 별로 없었던 거였다.
정약용, 최한기 이들의 사상이 유난히 조명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철학, 경제, 학문,과학 등 그들의 사상 전반에는 변화를 지향하는 성찰적이고 실천적인 학문적 시각과 태도를 지향하고 있었다. '실학에 길을 묻다'란 이 책의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성리학과 봉건제라는 양날개를 주축으로 구축된 조선사회가 새로워져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를 직시하고 새로운 사회를 향해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나아갈 것을 주장했던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에 대한 이런 평가는 익숙하게 들어왔던터라 새로울 것이 없었지만 뜻밖이었던 것은 이들의 사상이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방대했고 깊었다는 것이었다. 정약용이야 법률, 의학 등 여러 분야를 섭렵한 팔방미인 지식인이었고, 최한기는 과학에 일가견이 있다는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그 바탕에는 궁극적 실재나 선과 악, 덕 등 철학적 사색과 모색이 전제돼 있었던 것이다. 단지 실용성을 추구했던 차원이 아니었다.
이 책이 내게 의미가 있었던 건 바로 이 이점이었다. 동양적 사유와 철학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진 새로운 성찰 즉 성리학을 비판하면서 우리가 실학이라고 포괄하는 실용을 강조하고 실천과 변화를 표방할 수 있게 된 사상적 모색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정약용와 최한기의 일맥상통하면서도 차이점을 함께 살필 수 있다는 것은 꽤 흥미있는 체험일 것이다. 정약용은 생각보다 성리학적 사고에 충실했다. 경학이 과거를 위한 학문으로 굳어지면서, 현실과는 유리돼 현실을 개선하고 개혁하는 데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일찍이 천주교를 접했지만 제사문제로 배교하게 된 그의 이력에서도 나타나듯이 경학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문학적 완성도만을 추구하는 문장에 대해서도 경계하고 있었다. 문장 속에는 글쓴이의 진심과 실천이 담겨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점에서 최한기는 정약용보다는 경학의 전통을 부정하는 쪽이었다. 전통과 권위보다는 자신의 주관을 체계적으로 표현하는 글쓰기를 지향했다. 그는 현재의 세계를 사유의 기준으로 삼았고, 이런 사상으로 서구의 자연과학과 문물을 창조적으로 흡수해서 시대의 변화에 걸맞는 새로운 학문을 구상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결과 최한기는 독창적이고 체계적인 학문세계를 구축하게 됐고 시대를 앞서간 그의 성취는 최근 그의 사상과 학문에 대해 활발한 연구와 평가로 이어지고 있다.
'실학에 길을 묻다 정약용& 최한기'는 전환기의 지식인의 역할을 일깨워주고 있다. 사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과 현실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문제의식을 갖는 것, 정약용과 최한기는 분명 조선이 구각을 깨고 탈바꿈하기 위한 성찰을 보여주고 있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두 사람의 사상에 대한 동양적 사유와 철학적 성찰과정을 담고 있어서 쉽게 읽히지만은 않았다. 철학을 유난히 어려워 하고 철학 용어가 나오면 미리 겁부터 먹는 나같은 사람이 읽기에는 어려운 느낌도 없지는 않았지만, 정약용과 최한기의 철학적 사유를 살펴볼 수 있었던 것은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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