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0%
  • 리뷰 총점8 10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8.0
리뷰 총점 종이책
마틴 데일리, 낳은 정과 기른 정은 다른가
"마틴 데일리, 낳은 정과 기른 정은 다른가" 내용보기
『다윈의 대답』전 4권을 읽으면서 과연 다윈주의적 세계관이 우리에게 어떤 전망을 제시할 수 있을까 내내 궁금했습니다.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좌파의 출발점이라고 강변했던 피터 싱어는 당위로서는 이해했지만 현실로서의 미진했습니다. 그런데 역시 책은 끝까지 읽어볼 일이더군요. 마지막 책, 『다윈의 대답 : 낳은 정과 기른 정은 다른가?』의 저자 마틴
"마틴 데일리, 낳은 정과 기른 정은 다른가" 내용보기
 

『다윈의 대답』전 4권을 읽으면서 과연 다윈주의적 세계관이 우리에게 어떤 전망을 제시할 수 있을까 내내 궁금했습니다.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좌파의 출발점이라고 강변했던 피터 싱어는 당위로서는 이해했지만 현실로서의 미진했습니다. 그런데 역시 책은 끝까지 읽어볼 일이더군요. 마지막 책, 『다윈의 대답 : 낳은 정과 기른 정은 다른가?』의 저자 마틴 데일리와 마고 윌슨이 다윈을 대신해 명확한 ‘대답’을 합니다.


다윈주의 세계관은 그 함의에 있어 (사회과학적 세계관에 비해) 더 추악한가? 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과학학적이고, 유물론적이고, 다윈주의적인 세계관이 그것의 반과학적인 대안보다 더 추악하다는, 기이하게도 널리 퍼진 관념을 거부한다. 대신 우리는 좀더 현실적인 세계관이 공상적인 것보다 좀더 인도적인 태도와 실천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인간의 본성에 대한 보다 타당한 모델을 제시하고 따라서 인간의 필요와 욕망에 훨씬 더 민감하기 때문이다.


옛이야기에 마법사 대신 마녀가, 의붓아버지 대신 의붓어머니가 악역을 도맡아 온 연유를 아시는지요? 전 세계에 콩쥐팥쥐 모티프가 편재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신데렐라, 백설공주, 헨젤과 그레텔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고, 인도, 일본, 프랑스 등 전 세계에서 동일한 모티프의 이야기가 발견된다고 합니다. 그 이유에 대한 심리학적 설명을 이전에 읽은 책 에서 발견했습니다. 브루로 베텔하임이라는 미국의 아동심리학자는 사악한 마녀나 못된 의붓어머니는 아이의 심리적 조작에 의한 허구라고 설명합니다. 아이는 엄마를 완전히 선한 존재라고 믿고 있는데 - 그리고 이것이 아이의 심리발달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합니다 - 어느 순간 엄마가 자신을 혼내기도 하고 때리기도 하면 큰 혼란을 겪는다는 것입니다. 완전한 엄마의 이미지를 훼손시키지 않고 이 심리적 혼란을 극복하는 방법은, 화내는 어머니를 착한 엄마에게서 분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를 때리고 혼내는 사람은 진짜 내 엄마가 아니고 마녀나 의붓어머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럴듯한 설명입니다.1)

그런데 마틴 데일리와 마고 윌슨은 신데렐라 이야기가 단순히 심리적 사실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진화론적 결과라고 주장합니다. 친부모에 의한 친자식 학대보다 의붓부모에 의한 의붓자식 학대의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것이죠. 이러한 주장에 대한 근거를 찾기 위해 여러 나라에서 방대한 조사를 합니다. 극단적인 예를 하나만 들겠습니다. 아동학대에 대한 17년간의 캐나다 자료와 14년간의 영국 자료를 종합해보면 자신의 친자식을 죽인 390명의 사람들 중에서 73명이 함께 자살했지만 의붓자식을 죽인 197명 중에서는 자살을 택한 사람이 겨우 3명 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자들은 이렇게 정리합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유전적 자식을 죽인 부모는 때때로 크게 낙담하여 자신의 아이들이 잠자는 동안 살인을 저질렀다. 그리고 많은 경우, 잔인한 세상에서 도피하기 위해서 살인과 자살을 동시에 감행했다. 반면에 살인을 저지른 의붓부모 중에 자살을 시도한 경우는 거의 없었고 그들이 보여준 잔인한 폭력성은 희생자들에 대한 적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진화론자들은 또한 인간의 진화론적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동물을 관찰합니다. 동물에게서 발견되는 본성은 동물인 인간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이죠. 저자들은 사자를 예로 듭니다. 잘 알고 계시는 것처럼 사자는 모계를 중심으로 무리를 지어 생활합니다. 수컷은 길어야 수년간만 무리를 다스리고 다른 수컷에 밀려 무리를 떠납니다. 그런데 기존의 수컷을 내쫓고 무리의 지도자가 된 새로운 수컷은 기존의 수컷 자식들을 차례로 물어 죽입니다. 그 이유는 ‘양육 투자’라는 개념으로 설명됩니다. 암사자가 새끼를 양육하는데 들이는 노력은 일종의 ‘자원’이고 수사자가 자원의 통제권을 얻었을 때, 그 자원을 자신의 경쟁자가 아닌 자신의 번식이 성공하는데 이용하려는 것은 진화론적으로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동물들 세계에서도 친자식 이외의 새끼를 돌보는 예가 종종 발견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의붓자식보다는 친자식을 양육하려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본능이라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접하면 매우 불편해 합니다. 이혼율이 증가해 불가피하게 의붓부모와 의붓자식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현대사회에서, 특히 최근에 이혼율과 재혼율이 급증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명백한 진화론적 사실을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의붓가족에게 오명을 씌우기 않기 위해서, 또는 그들을 더 힘들게 하지 않으려는 인도적 차원이라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애정을 포함하는 모든 인간관계는 임의적인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가정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애정은 본능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습득된다는 사회학적 전제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의붓부모와 의붓자식을 학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를 부인하는 것이 정말로 그들을 돕는 길일까요? 저자들은 이 질문에 ‘불행하게도, 의붓가족의 ’신화들‘을 좌절시키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그들은 사실에 반하는 자기들만의 신화를 만들어냈다.’고 개탄합니다. 그래서 저자들은 이렇게 제안합니다. ‘의붓부모와 의붓자식을 학대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그리고 의붓부모의 양가적이고 때로는 고통 받는 감정 - 친자식보다 의붓자식을 학대하는 성향 - 이 정상인 것으로 인지된다면, 유전적 부모 - 혹은 사회가 - 의붓부모의 투자를 당연한 것으로서 요구하는 대신 그에 대해 감사하자. 그 편이 의붓가족에게 더 큰 도움이 된다.’ 저도 이러한 주장에 동의합니다. 전술했듯이 ‘좀더 현실적인 세계관이 공상적인 것보다 좀더 인도적인 태도와 실천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번역한 주일우는 진화론적 사실을 수용하는데 유용한 관점을 제시합니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인간이나 사회를 재해석한 주장들이 사회적 통념과 배치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문화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서로 다른 시간을 산다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진화의 시계는 시침에 해당한다면 문명의 시계는 초침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즉 현대인의 생물학적 특징은 구석기인과 별 차이가 없지만 문화에 있어서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그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할 때 인간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역자는 주장합니다. 이는 1권의 역자인 최정규가 제도와 본성간의 공진화를 주장한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의붓부모가 의붓자식을 학대할 가능성이 높다는 진화론의 진실을 불편해하는 우리들은 친부모가 친자식을 버리는 인간사회의 현실에 대해서는 얼마나 불편해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전자는 본능이니 어쩔 수 없다는 궁색한 변명이라도 가능한데 후자에 대해서는 뭐라 말해야 할까요. 조선조에서 비교적 정치적으로 안정기였던 세종에서 성종 조에 살았던 성간이라는 문인의 문집 『진일재유고』에는 실린 「굶주린 여인」[餓婦行]이라는 장편시는 이러한 부조리한 현실이 현대 자본주의만의 문제가 아님을 증명합니다.

 

<전략>

굶주린 아기들 제 어미 두 손을 잡고 있어

주는 음식 받을 수 없는지라

그 어미 아기를 자리 옆에 밀쳐놓고

음식을 쓸어 자루 속에 담더라.

어미는 마침내 자식을 길가에 버리고서

아주 영영 떠나갔다네

두 아기 길에서 울어대니

울음소리 듣기에 목에 멘다

탐탐히 노리던 북산의 호랑이

두 눈에 번쩍번쩍 불을 켠 채

으르렁거리고 산에서 내려와

와락 달려들어 아침 식사 하는구나


그러나, 의붓부모가 의붓자식을 학대할 가능성이 높다고는 하지만 표독한 의붓어머니보다 자애로운 의붓어머니가 훨씬 더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전에 ‘생물학적’ 존재입니다. 그래서 유구한 진화의 과정과 결과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진화론적 본성을 거부하는 것은 그것을 맹신하는 것, 꼭 그만큼 위험합니다. 우리가 진화론적 결과에 불편해 하는 사실에서 한 가지 시사점을 얻어야 합니다. 한 선생님이 급훈을 ‘이성(理性)’으로 고집하는 것은 이성이 세상사를 모두 해결해 주기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이성이 오히려 배척되는 현실에 개탄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은 있는가?’, ‘왜 인간은 농부가 되었는가?’, ‘남자 일과 여자 일은 따로 있는가?’, ‘낳은 정과 기른 정은 다른가?’라는 네 가지 질문에 진화론적 답을 하고 있는 『다윈의 대답』을 읽는 이유는 바로 그 기본을 잊지 않기 위해, 그래서 잃지 않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d********n 2008.11.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