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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대에 우리에게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우리는 잘 분별하고 있을까. 어지럽고 어두운 이 시대를 안타까워하는 저자는 명청시대의 구절들을 들어 우리 시대를 비춰보고 우리가 가야할 방향을 제시한다.
끝 모르게 솟아나는 탐욕이나 세상과 삶을 넓게 아우르지 못하는 소인의 행보, 잘못 놀렸다가는 큰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는 혀끝을 조심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반면에 무욕의 삶을 살고 넓은 배포를 갖는 군자의 모습, 책을 열심히 읽으며 평범한 순간에서 감동을 느낄 줄 아는 모습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고전의 한 구절, 한 글귀를 통해 현재의 삶을 성찰하는 저자의 책은 몇 권 더 있다. <일침>, <조심>, <옛 사람이 건낸 네 글자> 등이다. 서로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지만 같은 목소리로 전하는 뼈있는 글귀들은 동일하게 거울이 되어 내 모습을 비춰준다. 거울 속에 나는 비겁하고 불합리한 모습이거나, 약해 빠지고 아첨하기 좋아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옳은 것은 크게 말하지 못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지도 못하는 나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욕심을 쫓아 앞만 보고 달려가기도 하고, 한 번 더 생각하지 않고 날카로운 말을 내뱉기도 했다.
흐린 세상이어서 맑은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맑은 말이 있음으로 내가,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흐린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것이다. 맑은 말을 통해 현실을 바라보면 혼탁하고 흐린 세상이 보인다. 이제 다시 맑은 말에 기대어 우리의 삶을 다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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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뜸과 동시에 '아, 스트레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 이어진다. 무언가 내 속에 쌓인 분노를 풀 상대가 필요해 종종 타인의 말에 불같이 화를 내거나 눈물을 보이기 일쑤라 혹여 내가 우울증이나 분노 조절 장애가 아닌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비단 이런 상황이 이어지는 게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우울이 쌓이고 그로 인해 몸에 이상 증상이 이어지면서 알 수 없는 인생의 답을 찾고자 독서에 집중했고, 그러던 중 마음을 다스릴 만한 책 한 권을 만났다.
"흐린 세상 맑은 말 (정민 엮고 지음, 해냄 펴냄)"이 바로 그 책인데 표지를 보고 너무 어렵거나 동떨어진 이야기를 할까 겁부터 났다. 나는 명청 시대 아포리즘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그런데 책을 펴고 읽기 시작하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를 괴롭히고 아프게 하는 건 나의 욕심 때문인가?'
"빛나고 좋은 것은 저 혼자서만 차지하고 나쁘고 추한 것은 남에게 떠넘긴다. ..... 어디서나 없어서는 안 될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하지만 빛을 감추어 자신을 낮출 때 그 자리가 더욱 빛난다. 좋은 것은 남과 함께, 나쁜 것은 자신과 함께." -p.102 이 부분을 읽으며 혼자 끄덕끄덕. 내가 반대로 살아왔구나 싶어 괜히 뜨끔해졌다. 나는 아마도 좋은 것은 나와 함께, 나쁜 것은 남과 함께로 살아왔는지 모른다. 내가 필요한 곳에서 언제나 나만 빛나야 한다는 헛된 욕심으로 나 자신을 괴롭히며 끈임없이 채찍질을 해댔다. 그것이 독이 되어 결국 길고 오랜 길을 걸어야 하는 때에 풀썩 주저앉아 왜 내게만 인생이 이리 팍팍하냐며 울부짖었다. 나의 헛된 욕심 때문에.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보다 내게 약이 되는 말을 하는 이에게 나를 시기하기 때문이라 모진 말을 해대며 귀를 막고 살면서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스스로 가두고 내가 정한 테두리 안에서 꺼내지 않으려 했다. 어쩌면 나의 외로움은 나 스스로 만든 감옥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우회와 느림 그리고 마음을 열어 맑은 말이 근심이나 걱정보다는 희망을 꿈꾸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책을 읽으며 잠시나마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어 행복했다. 곁에 두고 마음이 어지럽고 아플 때마다 꺼내 읽으며 나를 위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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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내 자신의 행동을 떠올려보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욱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충분히 참을 수 있는 상황인데도 아이에게 소리를 꽥 지르고 남편에게 얼굴을 붉혔던 순간들이 많았다. 왜 그랬을까. 호르몬의 변화라고 하기엔 너무 비겁한 변명이라 자괴감에 빠져들 무렵 이 책을 만났다. 띠지에 적혀있는 ‘분노 조절이 안 되는 사회를 식혀주는 대바람 소리!’라는 문구에 마음이 놓였는지도 모르겠다. 불가에서는 탐⦁진⦁치를 삼독이라 하여 수행에 번뇌를 일으키는 세 가지 독소로 여긴다. 물건에 집착하는 탐욕의 마음, 평정을 깨트리는 분노, 판단을 흐리는 어리석음이 그것이다. (27쪽) 큰 의미로 보자면 인생도 수행이라고 할 수 있기에 세 가지 독소가 그냥 지나쳐지지 않았다. 어쩌면 현재 내가 모두 가지고 있는 독소가 아닌가 싶어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니라고 하지만, 저 독소들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한다고 하지만 내면의 나는 이미 독소에 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그것들이 어디서부터 생겨났는지 정확히 모른다는 데서 오는 불안감이 있었다. ‘조금만 더’ 하고 바라기만 한다면 만족은 없다. ‘이만하면’ 하는 마음속에 절로 남는 즐거움이 깃든다. (45쪽) 내 안의 독선과 주변의 환경적인 요인들이 한데 뭉쳐져 만족을 경험하지 못하게 함으로 내 안의 독소들이 가득 들어찬 것이 아닌가란 생각도 해보게 된다. ‘쉬임 없이 한결같이 노력하는 삶은 아름답다.(81쪽)’고 했는데 나는 그런 아름다움을 한 번이라도 맛본 적이 있는지 떠올려본다. 늘 내가 무엇이 되지 않아도 생각하면서도 무엇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가운데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밥이나 돈만 가지고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혜의 손길은 수렁 같은 절망 속에 드리운 든든한 동아줄이(219쪽)’란 말처럼 지혜를 얻고, 남을 위해 쓸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바랐다. 총 5장에 걸쳐 옛 성인들의 글을 해석하고 그 아래 짧게 저자의 생각이 덧붙인 글들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얻었다. 그리고 책에 관한 글을 보면서 눈빛이 밝았다가 실망했다 번복하는 웃지 못 할 상황도 있었다.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책을 보면 좋은 벗을 얻은 것 같고, 이미 읽은 책을 다시 읽으면 옛 친구를 만난 것만 같다.(독서십육관)’는 글 앞에서는 고개가 끄덕여 지다가도, ‘책에 지나치게 얽매이는 것도 좋지 않다. 까닭 없이 예민해져서 감상적이 되기 쉽다.(119쪽)’라고 말하면 마음이 찔려서 심장이 덜컹했다. 책을 좋아하지만 나에게 책의 의미가 수시로 바뀌니 정면 돌파 할 수 없는 어려움을 들킨 것만 같았다. 이렇듯 많은 글이 있고 많은 생각이 묻어 있어 각자의 처한 마음 상태에 따라 와 닿음이 다를 것이다. 옛 글이라 지금과 맞지 않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하고 잔소리처럼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오래전에 나보다 먼저 살다간 이의 자취 속에서 공감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감격스런 순간이 있었다. 나만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고, 나만 고민스러운 게 아니라는 알듯말듯한 위로가 순간순간 있었던 것 같다. 그랬다면 이제 내 자신을 다듬어 볼 차례다. 세상의 거침으로부터, 내면의 가시로부터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