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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의 언어를 넘어 가능성의 언어로
"비판의 언어를 넘어 가능성의 언어로" 내용보기
이 책을 읽기전 나는 이미 헨리 지루의 애독자였다. 내가 읽은 책은 단 한 권이었지만 그가 이 책을 통해 제공한 통찰력은 나로 하여금 다시 한번 책의 위대함을 찬양하게 만들 지경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를 접하게 되었다. 사실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하지만 지루의 좌파적 언어에 그다지 익숙하지 못한 나로서는 글을 읽는 속도가 현저히 느릴 수 밖에
"비판의 언어를 넘어 가능성의 언어로" 내용보기
이 책을 읽기전 나는 이미 헨리 지루의 애독자였다. 내가 읽은 책은 <디즈니 순수함과 거짓말> 단 한 권이었지만 그가 이 책을 통해 제공한 통찰력은 나로 하여금 다시 한번 책의 위대함을 찬양하게 만들 지경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교사는 지성인이다>를 접하게 되었다. 사실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하지만 지루의 좌파적 언어에 그다지 익숙하지 못한 나로서는 글을 읽는 속도가 현저히 느릴 수 밖에 없었다. 사실 그런 점에서 지루의 첫번째 글 <학교 언어 다시 생각하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의 상상과는 달리 우리가 배우는 학교언어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예를들어 '계급', '이데올로기', '불평등', '모순', '저항' 등은 결코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가 아니다. 오히려 약간의 저항감마저 느껴지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우리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사실 이 책은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교사를 위한 책이다. 물론 일반인이 읽어도 문제는 없겠지만 내 생각엔 교사나 교사를 지망하는 대학생들에게 적합한 책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평범한 교사라면 읽기가 매우 힘들겠지만 '진보' 혹은 '좌파적'이라는 말에 친숙한 교사-혹은 교사 지망생-들에게는 매우 신선한 경험이 될 것이다. 피터 멕라렌이 <지루를 읽기 위하여>라는 글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지루의 많은 연구물들 중 대표적인 것들을 뽑아 엮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4부 16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 중에서 어떤 글을 뽑아 읽더라도 큰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특히 최근에 국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교육이론에 대한 분석의 틀을 제공한다는 점은 이 책의 큰 장점이다. 이 책은 시종일관 교육에 대한 진보적 시각을 보여주고 있지만, 기존의 마르크스주의 담론들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지루의 말에 따르면 기존의 좌파적 담론은 "학교 교육 비판에는 지나칠 정도로 매달렸지만, 정작 대안적 교육이론과 실천을 위한 이론적 토대를 닦는 난제는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헨리 지루가 현 미국의 교육제도를 바라보는 시각은 '비판'적이다. 그러나 '비관'적이지는 않다. 그는 학교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간파하고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해방적 공간으로서의 가능성 역시 주시하고 있다. 학교는 그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하며 그 한 가운데에 교사가 있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

[인상깊은구절]
현재 대다수의 학교의 구조는 교사들을 고립시키고, 민주적 의사결정의 가능성과 적극적 사회관계를 끊어버리고 있다. 학교 행정가는 구상하는 노동을, 교사들은 집행하는 노동을 하는 사람으로 분리하면서 교사들을 힘 빠지게 하는 측면이 있다. 이런 식의 경영 모델은 교사를 학생과 똑같은 처지로 깎아내린다. 우리가 학교 교육에 관한 쟁점들을 진지하게 다루려면, 학교는 사람들에게 민주적 사회관계를 직접 경험할 수 있게 만드는 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m****1 2002.08.0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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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배워온 학교 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
"내가 배워온 학교 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 내용보기
내게 너무 힘겨운 선택이었나? 교사 지망생으로 책이 인터넷에 소개 되자마자 예약 주문했다. 제목과 더불어 소개 글이 너무 좋았다. 책을 다 보고 나서는 개운치가 않다. 아니 제대로 한 권을 다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교육학과 철학에 대한 무지했던 내 탓이겠지만 내겐 너무 벅찼다. 헨리 지루의 비판 범위는 너무나도 넓었고 구조적이었다. 그리고 내겐 내용이 너무 생소해서 이해하
"내가 배워온 학교 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 내용보기
내게 너무 힘겨운 선택이었나? 교사 지망생으로 책이 인터넷에 소개 되자마자 예약 주문했다. 제목과 더불어 소개 글이 너무 좋았다. 책을 다 보고 나서는 개운치가 않다. 아니 제대로 한 권을 다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교육학과 철학에 대한 무지했던 내 탓이겠지만 내겐 너무 벅찼다. 헨리 지루의 비판 범위는 너무나도 넓었고 구조적이었다. 그리고 내겐 내용이 너무 생소해서 이해하기가 힘겨웠다. 그리고 곳곳에 번역이 다소 의심스러운 부분도 있고 번역한 우리말을 이해하는게 더 힘겨웠다. 하지만 권력과 학교의 언어를 분석한 부분은 신선했다. 우리는 항상 배우고 익히기에 더 좋은 방법만을 찾았지 정작 이것을 왜 배우는지에 대해서는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사실 고등학교 때 정답이라고 무조건 외웠던 사실들이 대학에 와서 보니 하나의 학설일뿐 정답은 아니라는 것도 느낄 때 쯤이었다. 배경 지식을 좀 더 갖고 책을 원어로 본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책을 양장본으로 만들어 소장가치를 높이고 표지도 산뜻하고 다 좋은데 주석이 뒤에 몰려 있어 책 보다가 넘겨 보기가 쉽지 않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곳에 부분 부분 기울임 꼴의 활자가 있다.
YES마니아 : 로얄 a*******t 2002.03.2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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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지성인이다(헨리 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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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는 인간 주체가 천부적이고 무역사적 본질의 반영이라든가, 이데올로기 형성망에 걸려버린 수동적 희생자라는 식의 생각에 반대한다. 지루는 사회적 행위자에게는 자신이 물려받은 문화의 역사적 처지를 뛰어넘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개인들을 고정된 생각과 행동에 갇힌 죄수로 묶어두는 이론에서 얘기하듯이 개인들은 어떤 필연성에 복종하는 존재가 아니라 역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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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는 인간 주체가 천부적이고 무역사적 본질의 반영이라든가, 이데올로기 형성망에 걸려버린 수동적 희생자라는 식의 생각에 반대한다. 지루는 사회적 행위자에게는 자신이 물려받은 문화의 역사적 처지를 뛰어넘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개인들을 고정된 생각과 행동에 갇힌 죄수로 묶어두는 이론에서 얘기하듯이 개인들은 어떤 필연성에 복종하는 존재가 아니라 역사적 사건의 과정을 바꾸기 위해 비판적 지식을 활용하는 존재들이다. 지루에게 개인이란 역사를 생산하는 주체이자 역사의 산물이다.

 

학교는 투쟁의 가능성이 살아있는 장이며, 교사는 학교를 민주적 투쟁의 제도로 이해하고 그렇게 학교를 개혁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 존재여야 한다.

 

민주적 공공영역 개념에는 토론, 대화, 의견 교환을 통해 민주적 원리와 사회적 실천을 구성하도록 도와주는 학교, 정치 조직, 교회, 사회운동 등의 공공 네트워크가 포함된다. 학교를 민주주적 공공영역으로 바꾸기 위한 첫 과제는 교육자들을 위해 공적 언어, 바로 비판의 언어를 개발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사회 정의, 평등, 다양성의 원리에 따르는 사회적 구성, 정치적 공동체, 사회적 실천이라는 수준에서 정의된다.

 

18-19세기 미국의 발전은 더 나은 사회 건설을 위해 도덕적인 자기 발달과 자기 연마를 전개하는 것과 관련 있었지만, 20세기의 발전은 더 이상 인간 조건의 향상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물질과 기술의 성장에만 몰두했다.

 

그람시처럼 프레이리도 지식인의 범주를 재정의하여 모든 인간은 지성인이라고 주장한다. 즉 사회적 경제적 함수와 무관하게 모든 인간은 세계에 대한 의미를 계속 해석하고, 그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며, 세계에 대한 특정한 개념에 참여함으로써 지성인의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이다.

 

역사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사건과 연루된 사회적 구성물로서 구체적인 교육 실천이 특정 공간과 특정 시간에서 어떻게 이해되는지를 아는 쪽에 더 흥미가 있다. 이것은 학교 교육과 교육과정이론의 구체적인 사례들이 수많은 가능태 중에서 한가지를 어떻게 재현하는지 생각하는 데 없어서는 안된다. 이 입장은 학교 교육의 사회적이고 구성적 성격을 집중조명하면서 비판적이고 저항적인 사고와 활동의 토대를 제공하기도 한다.

 

새로운 사회이론의 대다수는 학생들이 자기 말과 표상의 정치학을 통해 어떻게 자아와 학교를 구성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학생의 말을 이해한다는 것은 상징, 언어, 몸짓에 생명을 주고자 하는 인간 요구를 파악하는 것이다. 학생의 목소리는 개인의 일대기에서 그리고 축적된 역사에서 나온 일종의 욕망이다. 하나의 언어 안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인정하려는 요구는 사사화된 삶을 재건설하고, 그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세계 속에서 살아온 개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격려해 준다.

 

새로운 사회이론의 발전 덕에 연구의 관심이 마르크스주의의 경제 논리에서 문화, 이데올로기, 주체성 등 사회 결정적인 범주로 옮겨갔다.

t****b 2014.05.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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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지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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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를 먼저 보고 이 책을 본 것은 다행이었다. 만약 헨리지루의 <교사는 지성인이다>를 먼저 읽고, 프레이리의 <페다고지>를 봤다면, <페다고지>를 읽는데 지장은 없었겠지만 <교사는 지성인이다>를 읽는데는 지장이 있었을 것이다.    <교사는 지성인이다>에서 헨리 지루는 파울로 프레이리와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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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를 먼저 보고 이 책을 본 것은 다행이었다. 만약 헨리지루의 <교사는 지성인이다>를 먼저 읽고, 프레이리의 <페다고지>를 봤다면, <페다고지>를 읽는데 지장은 없었겠지만 <교사는 지성인이다>를 읽는데는 지장이 있었을 것이다.    <교사는 지성인이다>에서 헨리 지루는 파울로 프레이리와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그람시, 에른스트 블로흐 등을 인용하면서 많은 부분을 그들에게 할당하고 있다. 때로는 헨리지루가 아닌 다른 이들의 의견이 뒤범벅되면서 내 머리속에서 이리저리 뒤섞이고는 정리가 안되어 지나가기도 하고, 때로는 탁월한 그들의 견해에 감탄하기도 하면서 이 책을 끝까지 읽어냈다. 사실 읽었다기보다는 훑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다.    교육이론에 대한 나의 내공이 부족한 탓인가. 하여튼 이 책을 읽는데 내용이 한눈에 쏙쏙 들어오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별로 어려운 말도 없고, 비비꼬지도 않았건만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결국 그의 주장은 프레이리와 거의 다르지 않고 새로울 것도 없는 듯 하다. 이렇게 평하면 너무 가혹한 것인가? 하지만 동일 주장을 여러 사람이 한다고해서 어느 한 사람만 창의롭고 다른 이는 따라쟁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 각각의 내세우는 주장이 결국 하나의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언어로서 풀어낸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의미가 있는 주장이 될 수 있을 터다.    결국 주장하는 바는 오늘날의 학교는 정지되어 있어 교사가 인위적으로 학생에게 기존의 지식을 주입하는 식의 교육을 답습하고 있으며 변화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교육은 변해야하고 교육의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교사가 변화를 해야한다. 뭐 이런 말인 거 같다. 또한, 교사의 정치중립성을 비판하기도 하면서 교사도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정치적 인간이어야 함을 언급하기도 한다.    교사는 변혁적 지성인이어야하고, 가르치는 학생과 더불어 기존의 헤게모니를 거부하고 개혁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하며, 이것이 결국 사회적인 진보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의 주장에 동의하지만 우리네 학교 현실에서 교사 개인이 그러한 노력을 해서 사회변화를 꽤하기는 힘들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말고도 지나치게 많은 행정업무에 시달리며 녹초가 된 선생이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삶에 찌들어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싶다. 하지만 교사는 지성인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나도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이고 전적으로 그에게 동의한다.    별 다섯개를 다 주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내 탓이다.  글은 좋으나 내가 다 이해하지 못했으니 거기에는 나의 내공이 부족한 탓도 있을 것이요, 나의 게으름도 한 몫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내게 흡족하게 다가오지 않은 것은 나만의 책임은 아니겠다는 생각에 하나를 깎는다. 이번에는 훑어읽었지만 다음에는 제대로 읽어봤으면 한다. 전체적인 주장 밖에는 파악하지 못했다.
d*****t 2006.02.2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