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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실망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제는 혐오를 넘어 분노의 불길로 타오르고 있다. 자신이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을 찍었던지 그렇지 않았던지를 따질 필요는 없다. 지금 우리의 정치인들은 합법적인 선거절차에 따라 우리 국민들이 우리를 대표하도록 뽑았는데 이런 불행한 결과가 빚어진 건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우리가 뽑은 정치인이 문제적 인간이기 때문일까? 우리의 어두운 근현대사 탓일까? 부실한 정치제도 탓일까? 묻지 않을 수 없던 터라 『국민을 위한 선거는 없다』라는 제목에 눈길이 갔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반면 정계를 향한 신뢰는 곤두박질치는 시대는 분명 폭발적인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시민이 생각하는 것과 정치인이 실행하는 것 사이의 괴리, 시민으로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과 시민이 보기에 국가가 소홀히 하는 것 사이의 괴리는 커져만 간다. (...) 점점 더 많은 시민들이 그들이 점점 덜 신뢰하는 권력당국의 일거수일투족을 점점 더 치열하게 지켜보게 되면 한 나라의 안정성에는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인가? (22쪽)" 저자의 주장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선거는 우리의 생각과 달리 민주주의적 제도가 아니다. 처음 선거제도는 프랑스 혁명이나 미국의 독립전쟁때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제를 수립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군주제에서 고귀한 혈통을 가진 군주가 권력을 독점했다면, 공화제에서는 선거를 통해 부유한 시민들이 권력을 나누어 행사하는 과두제가 되었다고 보았다. 선거에서 뽑히는 사람들은 엘리트 층이기 마련이라 민중이 뽑은 대표가 민중을 대표하지 않고 실제로는 특권층의 관점만 대변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미국과 프랑스의 혁명주의자들은 공무는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민중에게 맡겨서는 안된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선거에 의한 소수특권적 체제를 표방한 그들은 정당성보다 효율성을 우위에 두었다. 그 대가를 현재의 우리가 치르는 중이다. 민중은 분노로 으르렁거린다. 민중의 포효는 선거 대의정치 체제의 정당성을 문제삼고 있다.(191쪽)"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고대 아테네나 르네상스 시대의 민주주의 정치제도인 제비뽑기이다. 너무 낭만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을 생각해본다면 제비뽑기로 뽑힌 국민 누가 한다고 해도 이보다 나을 것 같다. 군사나 재정 등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분야는 행정관료들이 담당해야겠지만 적어도 국민의 뜻을 대표할 사람, 이를테면 국회의원에게 필요한 자질은 상식, 정의, 청렴결백이면 충분하다는 저자의 말이 마음에 와닿는다. 직업 정치인이 아니라 제비뽑기로 뽑힌 국민들이 민의를 대변하되, 임기를 짧게하고 겸직이나 연임을 제한하여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거리를 줄이자는 저자의 제안은 고려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구체적 실행방법과 정치적 실험의 예는 책으로 읽어보길 권한다. 또 한가지 우려되는 점은 양차세계대전 사이에 전체주의가 발호했듯이 경제가 어려워지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약해지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극우적 정치세력이 득세하는 현상을 우리 모두 경각심을 가지고 지켜봐야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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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만 되면 한바탕 요란한 소동이 벌어진다. 정치인들은 저마다 거리로 나와 하루 종일 연신 허리를 굽히며 시민들에게 악수를 건네고, 목소리 높여 자신을 뽑아달라는 구걸을 멈추지 않는다. 온 나라가 선거 플래카드와 전단지로 도배되고, 데시벨 높은 유세차의 소음은 온 국민을 한껏 짜증 나게 만든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정책 경쟁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오직 상대방을 헐뜯는 뉴스만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인다. 야비한 정치꾼과 시민들 사이에 속고 속이는 선거판, 결국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고 우리는 정치에 혐오감과 피로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 좋다, 어찌 됐든 그렇게 뽑힌 정치인들이 잘만 하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선출된 정치인은 더 이상 시민에게 허리를 굽히지 않는다. 공공선을 추구하기보다 자신의 이권과 당리당략에 따라 소모적인 알력 다툼만 일삼는다. 1%의 엘리트가 99%의 의석을 장악하고 있어 더 이상 국민을 대표하지도 못한다. 자본과 결탁한 언론은 편향적이고 신뢰할 수 없는 정보를 쏟아내면서 위기에 빠진 대의 정치에 부채질만 할 뿐이다.
금권 정치와 특권 정치가 판을 치는 선거, 우리는 과연 이러한 선거 제도 하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을까? 여기 선거는 결코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책이 나왔다. 벨기에 출신의 문화사학자이자 고고학자, 그리고 작가인 다비트 판 레이브라우크(이하 레이)가 쓴 <국민을 위한 선거는 없다>라는 책이다.
우리는 선거를 민주주의로 치환하는 데 여전히 망설임이 없다. 오늘날 불거진 문제는 본질적이라기보다 그저 운영 상의 실수 또는 단순한 결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긴다. 금권 정치를 타파하고, 미디어 환경을 올바로 조성하기만 하면 언제든 본래의 모습인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게다가 선거 제도는 근현대를 지나는 동안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실현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오지 않았는가. 최소한의 독재를 막고 최소한의 민주주의를 실현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레이는 “선거란 애초부터 민주적인 도구로 고안되지도 않았고 이제까지도 줄곧 그래 왔다”라고 하면서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리고 느닷없이 '제비뽑기'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제비뽑기라니, 이건 대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레이는 제비뽑기와 선거에 대한 완전히 새롭고 놀라운 시각을 제시한다. 역사적으로 제비뽑기는 민주적인 것으로, 선거는 비민주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운영되어 왔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비뽑기는 민주주의적이며, 선거는 과두 정치적이다.”라고 말했으며, 몽테스키외 역시 1784년에 발표한 그의 저서 <법의 정신>에서 “추첨을 통한 투표는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적이며, 선택을 통한 투표는 본질적으로 귀족적이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루소 또한, “추첨을 통하는 길이 민주주의의 본질에 훨씬 가깝다”라고 주장했으며, 혁명이 진행 중이던 프랑스조차 민주주의는 사회 동요를 유발하는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귀족적인 선거 제도를 도입했다고 한다. 심지어 선거(eletion)와 엘리트(elite)의 어원이 같다고 하니 도저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역사 속에서 제비뽑기가 실질적인 정치 제도로 활용된 사례도 수없이 많다. 민주주의의 성지인 고대 아테네에서 제비뽑기로 국정을 운영하였으며, 르네상스 시대의 베네치아와 피렌체, 그리고 아라곤에서도 제비뽑기로 주요 공직자를 선출했다.
레이는 민주주의를 선거로만 축소함으로써 오히려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선거가 민주주의를 구현할 것이라는 이데아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도달할 수도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선거는 고작 민주주의를 흉내 낼뿐이라는 것이다.
레이는 선거 불참, 선거 결과의 불안정성, 정당들의 출혈, 행정적 무능력, 심신의 진을 빼는 미디어 스트레스 등을 '민주주의 피로감 증후군'으로 명명하고, 그 원인을 ‘선거를 통한 대의 민주주의’ 탓으로 진단한다.
그에 반해 '제비뽑기'는 확률 상 대표성을 확보하는 데에도 용이하고, 당리당략에 휘둘릴 필요가 없어 숙의 민주주의가 가능하여 진정한 공공선을 추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무작위로 선출되기 때문에 자본, 언론, 단체 등과 결탁할 가능성도 낮다고 한다.
레이의 말처럼 제비뽑기가 더 민주적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과연 제비뽑기를 현실 정치에 적용할 수 있을까? 제비뽑기로 공직자를 선출하는 것에 대해 시민들이 과연 용인할 것일지가 관건이다. 여기서 레이는 당장 제비뽑기를 도입하자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현실을 고려해, 적용 가능한 분야부터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자고 한다. 예를 들어 국회의원이 상원과 하원으로 나눠진 경우 상원은 선거로 선출하되 하원은 제비뽑기로 선출하자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