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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주의자, 개혁가, 그리고 순교자 조광조
"이상주의자, 개혁가, 그리고 순교자 조광조" 내용보기
'조광조'를 펼쳐 들고 보니 삽화나 사진 한장 없는 것이 그제서야 학술 총서의 한편인 책이 맞구나하는 실감이 들었다. 학술 용어가 많고, 내용도 어렵고 딱딱할 것 같다는 생각부터 들어서 군기 바짝 든 신병처럼 각오를 단단히 하고 책을 읽어갔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걱정은 기우에 그쳤다. 예상과는 다르게 난해하거나 학술용어가 많지 않았고, 차분하게 조광조의 정치 행적을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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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를 펼쳐 들고 보니 삽화나 사진 한장 없는 것이 그제서야 학술 총서의 한편인 책이 맞구나하는 실감이 들었다. 학술 용어가 많고, 내용도 어렵고 딱딱할 것 같다는 생각부터 들어서 군기 바짝 든 신병처럼 각오를 단단히 하고 책을 읽어갔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걱정은 기우에 그쳤다. 예상과는 다르게 난해하거나 학술용어가 많지 않았고, 차분하게 조광조의 정치 행적을 설명하고 있었서, 집중하면서 읽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사림 '조광조', 그가 관직에 있었던 기간은 불과 4년이었다. 4년이라고 하면 요즘으로 치면 국회의원 한 회 임기에 불과한데 그 짧은 기간에 조광조만큼 강렬하고 굵은 발자취와 영향을 남긴 인물은 조선 역사에서도 드물 것이다.


반정 공신들의 위세에 왕권의 제약을 받던 중종은 성리학적 이념으로 무장한 조광조를 중용함으로써 사림의 힘을 빌려 공신 세력을 견제하고, 왕권을 행사하려고 했다. 반면 조광조는 중종을 성리학과 도덕을 갖춘 군주로 만듦으로써  백성들을 교화시키는 한편 정치 구도 개혁을 시도했다.  둘은 이렇게 의기투합했고, 중종의 신임을 등에 업은 조광조 파격적인 승진을 거듭해갔다.


조광조가 이렇게 빠른 시간에 정국의 주도해갔던 무기는 다름이 아닌 성리학적 논리와 도덕성이었다. 세조의 찬탈과 연산의 학정 중종 반정은 성리학적 이념에 반하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했고,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조선 지배층에게 도덕적 각성을 촉구하는 계기가 됐다. 

조광조는 학문과 도덕, 정치를 분리시키지 않은 이상주의자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왕이 학문을 닦고 수행을 하면 선정을 베풀 수 있고, 백성들도 교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지닌 인물이었던 것이다. 반정 공신들이 조광조에게 제대로 반격을 가할수  없었던 것은 그들이 연산군의 신하이면서 연산군을 왕위에서 쫓아냈다는 도덕적 약점때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 정치의 벽은 철옹성처럼 견고했다. 알다시피  논란을 헤쳐가면서 자신의 구상을 실현해나가던 조광조는 붕당 혐의를 받고, 기묘사화의 피해자가 되고 말았다. 천거제로 인재를 뽑는 현량과와 반정 공신을 삭제하는 등 지배 구조를 변화하려는 개혁을 추진한 것이 직접적인 빌미가 된 것이다. 위기감을 느낀 반정공신을 비롯한 훈구파들의 반격과 조광조 역시나 왕권을 제약하는 존재로 여기게 된 중종의 변심이 작용하면서,하루아침에 몰락 해버린 것이었다. 현실정치는 도덕이나 학문이 아니라, 힘으로 결정이 난다는 이 냉혹함을 조광조는 비로소 실감하게 됐다. 조광조의 좌절은 곧 개혁의 좌절로 이어지고 말았다.


'조광조'는 앞서 말한대로 조광조의 정치적 행적 위주로 담담하게 서술한 책이라 조광조의 죽음에 대한 묘사나, 개인적인 일화에 대해서는 단 한줄도 씌여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놀랍게도 인간 조광조가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그 소설보다도 더  생생하게 그려지는 것 같았다.


조광조가 더욱 빛나고 지금까지 평가받는 가장 큰 이유는 조선 명문가의 자손으로 충분히 기득권을 누릴 수 있는 위치였음에도 조선 정치의 구도를 개혁하고자 시도했던 점이었다. 그렇게 아는 것과 꿈꾸는 세상을 위해 자신의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는 열정을 지닌 인물이었다는 점일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성리학이 지닌 가치를 믿었고, 학문과 도덕으로써  세상을 훌륭하게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을 믿었던 이상주의자, 어떻게 보면 순수하기 이를데 없는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결국은 성리학으로 다스리는 세상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끝내 저버리지 못한 채 사약을 받고 죽는 순교자의 운명이 되고 말았다.


그의 죽음이후 다시는 그만큼 조선의 구도를 개혁하려는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조선은 큰 변화없이  체제를 유지하게 되면서 조선 사회는 점점 보수적으로 굳어져갔으니, 조광조가 그렇게 젊은 나이에 스러진 것은  조광조의 비극인 동시에 조선의 비극이었다.

흐트러짐 없는 몸가짐에 형형한 눈빛을 가졌을 것 같은 조광조, 자신을 절제하며 아는 것과 행동을 일치시키려고 했던  조광조, 그는 역사가 기억하는 개혁가이자 순교자였다.


 








 





 




e****0 2012.03.16. 신고 공감 8 댓글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