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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나라'라는 단어는 나에게 답답함과 안타까움, 슬픔 그리고 아련함을 불러온다. ‘바람의 나라'는 고구려 3대 왕인 대무신왕의 이야기이다. 왕의 이야기하면 권력싸움과 왕비들의 치정싸움, 자기자식을 왕위에 올리려는 권모와 술수로 가득 찬 추한 것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바람의 나라'역시 그러한 면이 있다. 하지만 '바람의 나라'는 엄연한 권력싸움임에도 추하게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단순한 왕의 이야기가 아니라, 왕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대무신왕인 무휼은 위의 두 형인 도절태자와 해명태자가 아버지인 유리왕에 의해 죽게되자 태자가 되었고, 부여 왕의 조카손녀인 연을 차비로 들인다. 그리고 연이 아이를 낳던 날, 동생인 여진을 자신을 죽이려 한 현무에 의해 잃는다. 현무 한쌍이 한쪽은 무휼을, 다른 한쪽은 연과 호동을 해치려 하지만 괴유와 해명태자(죽은 혼이지만 주인공과 맞먹는 비중으로 무휼을 돕기 위해 늘 등장하므로 그냥 해명태자라 하겠다), 세류의 힘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하지만 현무는 호시탐탐 무휼과 새로 태어난 왕자를 해칠 기회를 넘보다 무휼이 궁을 떠난 사이 무휼과 호동을 동시에 공격하고, 결국 왕자를 지키려는 연이 죽게된다. 이것이 '바람의 나라'의 시작이다.
‘바람의 나라'는 시작부터 이러하다. 서너번은 족히 넘게 이 작품을 보면서 볼 때마다 제발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이 바뀌기를, 연이 죽지 않고 무휼과 호동과 함께 살아가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라며 보는지 모른다. 연이는 무휼과 혼인을 한 이후 그를 간절히 사랑한다. 제발 그를 사랑하고 있는 지금이 꿈이 아니기를, 자신의 사랑이 떠나지 않기를 하루하루 눈물로 간절히 바라며 사랑한다. 그리고 그와 자신의 아들인 호동을 그를 위해, 해명태자를 몸에 들이고 무휼의 칼을 들어 지키다 사랑하는 사람의 곁을 떠난다. 무휼은, 결국 자기 아들 세 명을 죽음으로 몬 유리왕을 보며, 그러한 일들을 모두 겪으며 절대자신은 형들과 동생처럼 죽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자식을 그렇게 사랑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자기 자신보다 사랑하는 연이 품은 아이를 "내가 너를 좋아하니까 아이 이름도 호동이라고..." 라며 기다리지만, 아이가 태어날 때도 연이 아이를 지킬 때도, 연과 호동을 지켜주지 못한다. 이렇게 '바람의 나라'는 서로를 너무나 사랑함에도 엇갈릴 수밖에 없는 것을 왕이라고 하며 시작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람의 나라'의 큰 기둥이고 많은 이들의 사랑이 엇갈리게 된다. 그 사람들이 바로 왕이고 왕비이고 왕자, 공주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사랑보다는 나라와 백성의 부흥과 행복이 우선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무휼을 바라보면 슬프고 안타깝지만 답답하다.
무휼은 본래 냉정한 사람이 아니다. 한 여자를 가슴깊이 사랑할 줄 알았고, 제 형제를 뜨겁게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의 나라와 백성을 그 누구보다 사랑한 이다. 하지만 자신보다 사랑한 이를 지켜주지도 못하고 죽게 한 뒤 무휼은 죄책감조차 느끼지 못하게 할 큰 슬픔을 자기 가슴에 얹고 살아가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을 아끼는 것을 거부하려고 한다. 그것이 연에 대한 속죄일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하여 호동과의 사랑이 엇갈리게 되어버린다. 그 슬픔이 얼마나 큰지, 연과 호동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 무휼의 독백을 읽으면, 읽는 이의 마음이 다 타버릴 것 같다. 죽어서도 사랑하는 이로부터 사랑을 받는 연은 얼마나 행복하느냐고들 하지만 난 이 작품에서 결코 행복한 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휼과 더불어 연이 가장 불행한 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이를 잃을까 그 큰 두려움을 다 담을 수 없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다. 게다가 사랑을 두고, 자식을 두고 죽어버린 사람이며, 죽어서도 사랑하는 이의 힘든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이런 연이 어떻게 행복할 수가 있을까? (나는 절대 연의 추종자가 아니다. 원비 이지에게서도 충분히 안타까움과 불쌍함을 느낀다. 하지만 이지의 슬픔 또한 무휼과 연의 엇갈림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바람의 나라'를 보면 작가가 얼마나 이 작품을 사랑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작가의 진심을 느낄 수 있는 서문과 작품 중간 중간 그 무게와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참고 자료의 내용과 시조들... 그리고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은 나에게 낙랑공주와 호동왕자를 전설이 아닌 역사의 인간으로 살려놓았다. 이 또한 작가의 작품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작품을 진실로 사랑하는 작가이기에 김진님을 좋아하고 존경한다.) 무휼과 연이, 그리고 이러한 작가의 진심이 담겨있기에 난 '바람의 나라'를 소중히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왕일 수밖에 없는 인간, 그리고 인간이기에 슬플 수밖에 없는 왕의 이야기인 '바람의 나라'가 19권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19권까지 오면서 엮인 인연들이 어떻게 풀어져 나갈것인지, 전설을 통해 그 결말을 알고 있지만 '바람의 나라'는 결말을 내기 위해 쓰여지는 작품이 아니기에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무휼과 호동을 지켜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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