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소명의식'을 찾아가는 과정4월에 국회의원 총선이 있다. 난 원래 정치에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닌데, 전현희 국회의원(더민주당 강남을 지역구에 출마)을 과천 렛츠런경마장에서 지인의 소개로 인사를 나누고나니 이번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자연스레 관심이 생긴다. 경마장에서 열린 행사이다보니 주황색 티셔츠를 입고 줄넘기를 들고 있는 전현희 의원은 정치인 같지 않은 친
4월에 국회의원 총선이 있다. 난 원래 정치에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닌데, 전현희 국회의원(더민주당 강남을 지역구에 출마)을 과천 렛츠런경마장에서 지인의 소개로 인사를 나누고나니 이번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자연스레 관심이 생긴다. 경마장에서 열린 행사이다보니 주황색 티셔츠를 입고 줄넘기를 들고 있는 전현희 의원은 정치인 같지 않은 친근한 분위기였다. 나이도 나와 비슷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난 그날 저녁 식사하면서 남편에게 전현희 의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서울대 치의예과 졸업해서 치과의사 하다가 사법고시 합격해서 변호사가 되었데. 그것도 동차합격. 남편도 서울대 법대 출신 판사였고. 그리고 민주당 비례대표제로 국회의원 했다던데, 대단한 사람 같지 않아? 우리나라 최초의 치과의사 출신의 변호사~~?”
흔히 나누는 밥상머리의 소소한 이야기 거리였다. 검색의 달인인 남편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바로 네이버에 접속했다. “정치는 우리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론을 평소 갖고 있던 남편은 정치 뉴스도 빼지 않고 챙겨보는 편이고, 정치인의 행보에도 나름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전혀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라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아~ 민주당 대변인 했던 분이네. 부산 데레사여고 출신이고.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바로 옆에 있는데. 흐흐. 어!~ 나랑 같은 64년 생이네.”
갑자기 남편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부산 출신이라는 데서 호감도가 갑작스럽게 상승했다. 부산 출신의 정치 신인이 강남을 지역구에서 더민주당 후보로 출마한다는 기사를 읽고는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것이라며 마치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걱정을 하고 있었다. 다음날도 관련 기사들을 계속 검색했다. 그리고 몇 일이 지난 토요일 오후, 남편이 거실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전현희 의원의 책이라고 했다. 눈물까지 흘려가며 자리를 뜨지도 않고 단박에 읽더니 나에게 읽어보라고 권했다.
“나 원래 정치인 책 안 보는데~." 선거 앞두고 나온 책이라 으레 홍보성 내용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서도 책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남편이 그렇게 감동받은 스토리가 무엇인지 궁금했고, 서로 이야기 나눌 공감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남편과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 나오는 사례 만큼이나 참 다른 성향을 가졌다. 여느 집처럼 우리 두 사람도 쉽지 않은 세월을 거치며 최근에서야 교집합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 이때 남편이 먼저 권하는 책을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해서 <살아가는 동안, 지치지 않도록>을 읽게 되었다.
이야기의 중심은 변호사 초년 시절 ‘혈우병 환자, 집단 에이즈 감염 사건’에 무료 변호를 맡게 된 이야기였다. 대형 제약회사의 혈액 응고제를 투약한 혈우병 환자가 사회적인 천형으로까지 인식되는 에이즈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18명의 에이즈 감염 혈우병 환자를 대신하여 제약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승소하기까지 10년 동안의 외롭고 힘들었던 사투의 과정이 그려져 있었다.
신문기자들을 찾아가고 국회의원들을 찾아가도 진실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진상 규명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KBS ‘추적 60분' 이영돈 PD를 찾아간다. 의학적인 어려운 내용을 방송용으로 콘티까지 짜주면서 설득을 하여 겨우 프로그램을 제작, 예고 방송까지 나간 상태였는데, 제약회사에서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을 내서 방송 불발 상황이 되어버렸다. PD들은 방송이 되더라도 소송에 휘말릴 것이 뻔하니 방송을 아예 포기하자는 이야기였다.
“지금에 와서 방송을 안하다니 무엇이 두려워서 그러느냐,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내가 KBS의 변호를 맡겠다. ‘추적 60분’ 팀의 대리인이 되겠다. 방송이 된다면 그 내용과 관련해 어떤 소송이 진행되더라도 내가 두 분은 물론이며 KBS 방송국을 위해 무료 변론을 하겠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법정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홀로 변론을 하는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가슴을 울렸다.
무엇이 전현희 의원을 이렇게 강하게 몰아부쳤을까? 전현희 의원은 치과의사의 단조로운 일에 만족하지 못하고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변호사가 되었다. ‘혈우병 환자, 집단 에이즈 감염 사건’도 의학적 지식이 있는 변호사가 자신 밖에 없기에 꼭 해야 하는 일일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나를 이끌었던 어떤 소명의식과 잠재된 정의감이 내 운명을 이끌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약자의 편에서 정의를 구현하고자 했던 변호사는 마침내 10년 동안에 걸친 소송에서 승소하게 된다. 하지만 변호사는 열심히 일을 해도 소송을 의뢰한 몇 명에게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허탈해다가 점점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다.
피해자들을 위해 국회와 정부를 찾아다니며 호소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냉담한 반응 뿐이었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법을 만드는 것이 더욱 의미있다는 생각으로 국회의원이 되기로 결심을 한 것이다. 그리고 18대 민주당 비례대표제로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얼마 되지 않아 당 대변인이 되어 정치 수련을 혹독하게 해나간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운명은 매일의 작은 선택에서 결정된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 갈등을 하게 되는데, 갈등의 요소를 뚫고 선택을 결정할 때 기준으로 삼는 것이 자신의 ‘가치’이며, 이를 ‘가치관’이라 부른다.
나의 가치관은 무엇인가? 무엇이 나의 삶을 가치있게 하는가? 전현희 의원은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는 가치 기준을 ‘소명의식’이라고 했다. 태어나서 자신이 꼭 해야 하는 일. 어렵지만 의미있고 중요한 일. 그것이 바로 끊임없이 도전하고 새로운 일을 선택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전 의원과 같은 시절에 학교를 다녀서인지 학창시절 때 했을 법한 고민도 이해가 간다. 그 시절의 정치적인 상황은 대학생들에게 참으로 철학적인 고민을 하게 했다. 캠퍼스 커플이었던 전현희 의원 남자 친구가 서울대 법대를 다니면서 고시 공부를 하지 않고 방황했던 이유도 지금의 대학생들이 하는 고민과는 사뭇 다르다. 나중에 세월이 많이 흐르고 사회 분위기가 민주화되면서 정치 논리가 개인의 삶을 억압할 수 없다는 스스로의 답을 찾아내고서야 가족을 위해 고시 공부를 시작하는 것을 보면 어두운 시대를 보냈던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사회 통념적으로 보면 치과의사, 변호사라는 직업은 성공한 모습에 가깝다. 하지만 근사한 명함이 삶의 내용까지 충분히 채워주지는 못한다. 우리가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꿈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거침없이 말한다
“변호사요”
“선생님이요”
“의사요”라는 답변을 한다.
그러면 부모들은 대부분 만족해 한다.
그러나 진정 아이들이 마음 속에 품어야 할 꿈을 심어주고 싶다면
“왜 변호사가 되고 싶니?”
“어떤 변호사가 되고 싶니?”라는 질문을 다시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의 생각도 깊어진다.
꿈은 ‘무엇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모습'으로 되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것은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소명의식’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서 더 명확한 답을 할 수 있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