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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공맹의 도라 부른다. 공자는 제자가 3000이나
되었다고 하는데 왜 공자의 후계자에 맹자가 등장할까? 그리고 제자백가의 사상을 집대성했다고 알려진 순자는
유가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우리가 순자에 대해서 아는 것은 공자나 맹자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 의외로
적다. 맹자의 성선설과 대비되는 성악설을 주장했고, 후에
성리학자들에 의해 이단으로 치부되었다는 것 정도가 우리가 순자에 대해서 아는 것의 전부라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공맹의 도가 말해주듯 유가는 공자에서 시작하여 맹자에서 완성되었다는 생각이 순자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았지 않나
싶다.
그러나
순자는 전국시대 제자백가의 종결자, 혹은 최후의 유자로 규정할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는 말 그대로 백가쟁명의 시대였다. 순자는 그런 백가쟁명의
시대가 저물어가던 시절, 조나라에서 태어나 천하를 주유하다 제나라에 정착하여 직하학궁에서 활약했다. 그는 유가의 입장에서 제자백가의 사상을 종합하고 통일천하를 다스릴 규범과 기준을 만들었다. 현장과 각론에서 취약하여 외면을 받았던 공자의 학문을 현실과 정치공간에서 통할 수 있는 학문으로 발돋움하게
만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읽을 수 있는 텍스트로서의 [순자]는 총 20권 32편으로
되어있다. 26편까지는 순자가 직접 저술했고, 나머지는 제자들이
추가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책은 저자가 보령이라는 가상의 대학생을 인터뷰어로 등장시켜 순자를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인터뷰어는 순자의 사상은 물론 맹자와 다른 제자백가들의 사상과는 어떻게 다르고,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를 다루고 있다.
순자가
활동하던 전국시대 말기는 난세가 그 끝을 향해 가고 있었으며 지식인은 물론 일반민중들도 참혹한 시대가 끝이 나야 한다고 생각한 시기였다. 또한 제자백가들도 직하학궁에서 학문의 통합에 열중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공자의
사상이 현실성과 효용성 면에서의 약점 탓에 다른 사상에 치여 사라질지 모른다는 절박함이 순자로 하여금 현실에 눈을 돌리게 했고, 결국 순자는 유가사상을 중심으로 법가, 도가, 묵가의 사상을 받아들여 유가의 실용성과 유효성을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한대에 이르러 유가사상이 관학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멸망 이후 순자유학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고 또한 지주인 사대부들을 위한 유학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원리주의적 성격을 띤 맹자가 각광을 받게 되었다.
순자의
사상은 크게 천인지분(天人之分)과 성위지분(性僞之分)으로 요약할 수가 있다. 천인지분(天人之分)이란 하늘의 운행에는 일정한 법칙과 규칙성이 있을 뿐 인간과
사회의 운명을 지배하거나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순자는 인간도 태어날 때는 자연이 주는 그대로 태어나지만, 교육을 통한 노력, 실천, 행위들이
천과 구분되게 한다고 보았다. 즉 인간에게 일어나는 일은 인간의 대응방식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는 것으로, 하늘에 대한 인간의 독자성 혹은 능동성을 이야기 한 것이다. 천은
제자백가의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하늘을 포함한 자연과 자연사물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인간도 포함된다. 다른
사상가들이 인간과 천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은 반면 순자는 하늘과 인간 사이에 분명하게 선을 그은 셈이다. 이처럼
순자는 천인지분을 통해 묵자가 비판하던 유가 내부에 있던 운명론이나 미신을 정리하고자 했다.
또한
성위지분(性僞之分)은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것을 구분하라는
말이다. 여기서 성이란 인간이 생존의 과정에서 보이는 경향을 말하며,
자신의 안에 지닌 어떤 내재적 성질이나 본질이 아니라고 한다. 성을 인간의 본성, 본질로 이해하는 것은 서구적 사유의 산물로 동아시아 사상을 그렇게 이해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반면에 위는 인간의 후천적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도덕과 윤리는 바로 위의 산물이라고 한다. 성위지분이란 바로 이런 성과 위를 구분하라는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어 순자와 맹자의 사상을 비교하기도 한다. 사실 맹자와 순자만큼 많은 부분에서 뚜렷하게 대조되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유학에서 말하는 결론은 착하게 살자, 도덕적
인간이 되자는 것이다. 이런 인간이 되기 위한 이론, 사상, 배움의 묶음과 체계가 바로 유학이라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 맹자는
안을 들여다보자고 했다면 순자는 밖을 내다보라고 했다. 맹자가 인간 본래의 착한 성을 자각하고 키우라고
한 반면 순자는 인간의 성을 다스리고 변화시키라고 했다. 서양에서는 인간의 욕망이나 충동을 그것과 투쟁해서
극복하는 금욕의 대상으로 보았으나, 동양 특히 유가에서는 예(禮)로써 욕망이나 충동을 적절히 길들이고자 했다. 이에 대해 맹자는 과욕(寡慾) 즉 욕망을 줄이라고 했지만,
순자는 양욕(養慾) 즉 욕망을 적당히 충족해주고
인도하라고 했다. 천에 대해서도 두 사람은 극히 대조적이다. 맹자가
사천(事天)과 순천(順天) 즉 하늘을 섬기고 따르라고 한 반면 순자는 제천(制天)과 사천(使天) 즉 하늘을
제어하고 사용하라고 했다. 저자는 이처럼 순자 사상을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순자야말로 공자 사상을 잇는
유가의 적통이라고 강조한다. 후에 주희가 성인의 도통을 세우며 자신을 공자, 맹자에 이은 성인의 반열에 올려놓으면서 이단으로 치부했지만 말이다.
저자가 말하는 순자는 우리가 기왕에 알고 있던 순자와는 다른 모습이다. 아니 우리가 순자에 대해 그만큼 알지 못했던 것이다. 순자의 사상을 알아가면서 텍스트로서의 [순자]를 다시 한번 찬찬히 음미하면서 읽어보고 싶다. 원전을 읽고픈 욕심이야 한이 없지만, 원전을 읽지 못하는 수준에서는 해설서를 찾아 읽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해설서는 고전이 향하는 길을 가르쳐주기는 하지만 그 길이 어떤 길인지는 해설서마다, 설명하는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순자의 사상을 염두에 두고 읽는 [순자]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기대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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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순황. 경칭으로는 순경 또는 손경자로 불린 이 사람. 맹자의 성선설과 대비되는 성악설로 유명한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 순자의 행보의 결정적인 특징은 '법치주의' 를 주장하며 '군주의 권력' 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다. 맹자가 이상주의자라는 말을 듣는 결정적인 차이로, 고국의 왕한테도 '왕이 정치를 잘못하면 신하는 역성 혁명 일으킬 만하죠. 나라의 근본은 왕이 아니고 백성인데.' 하는 바람에 평생을 등용되지 못한 것에 비하면 순자는 결정적인 부분에서 여하튼 자신의 이론을 어떠한 권력자나 지배층이 좋아할 만하게 포장을 한 것이다. 누가 옳고 그른지는 아직까지도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고 본다. '판단' 할 수도 없는 문제고. 볼테르 등을 위시한 계몽주의와 그를 반박한 루소 중 어느 쪽이 더 '합당' 한지 딱 정할 수 없는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