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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애리얼리는 행동 경제학자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행동 경제학은 현실과 희망사항의 격차를 줄이는 학문이란다. 풀이는 시적이고 낭만적이나 나는 어쩐지 단어에서 동물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제목을 보고 착각했다.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봐버렸다. ‘돈의 심리학’인데 노동(가치)을 다룰 거라고 기대했다. 헛발질. 더빙은 불편했으나 어색함을 무찌를 정도로 짧고 유쾌한 강의였다. 오십대 이상의 시청자들만 더빙 원하지 않나요? 강연자 목소리 소중. 돈 얘기 하니까 돈거니 굥거니 생각나 온 파이어. ‘돈과 소비 습관’이라. 한때 엄마를 즐겁게(플리징) 해드리고 싶어 투잡을 뛴 적이 있지만 자기가 재밌어야 되는 사람이라 돈은 돌-보듯이 한다. 방송 시작부터 관심이 강의자의 얼굴에 쏠린다. 멍청한 나는 흉터나 장애를 수염으로 숨겼나 싶었다. 그는 화상 후유증으로 반만 털이 난다고 한다. 트라우마를 극복한 모습이 환하다. ‘오페라의 유령’을 빙자해 삼천포와 쥐포를 찍고, 마지막은 마포다. 마포하면 정창래 의원. 눈망울과 미소가 울 아빠라서 보면 찡하다. 나는 외모는 아빠랑 엄마 반반이고, 성격은 두 분의 좋은 점만 빼닮았다. 여동생은 외모는 아빠 쪽이고 성격은 엄마다. 남동생은 외모는 엄마고 성격은 두 분의 나쁜 점만 가졌다. 이렇게 쌍둥이 지키고 막둥이 보내 버림~
강의자가 말하는 것처럼 ‘할인’ 표시 앞에서 망설일 때가 많다. 모호하고 헷갈려서, 아니 거짓말 같아서 그런다. 여기에 판매원의 말까지 더해지면 피곤하다. 정가제가 편하다. 문방구에서 mz세대를 상대로 어설픈 상술을 부렸다간 ‘호구’로 만들었다며 조용히 별점 테러를 해서 문 닫게 만들지도 모른다. 특히, 요즘 청소년은 남의 것은 휴지조각도 안 건드린다. 말인즉 공짜로 받는 것도 불편해한다. 나는 간식을 살 때 방문 시 구매의사와 무관하게 원 플러스 원, 투 플러스 원, 5개 이상은 50프로 할인, 2개 이상은10프로 할인에 넘어간다. 마케팅에 자동 반사적으로 놀아나는 내가 싫어 먹고 싶은 것을 먹을 만큼만 사자고 주문을 걸지만 소용 없다. 그외 쇼핑은 하던 대로~ 빨리 대충 담아온다. 열쇠공의 일화는 웃프다. 적당히 시간을 끌어야 일한 줄 안다. 코로나 이전의 한국 회사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이고자’ 야근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한국인들이 유럽에서 듣는 업무 평가 중 하나가, 어렵게 가꿔온 근무시간과 워라밸 문화를 깨지 말라는 거다. 복지국가는 한사람이 오래 일하는 대신 여러 명이 나눠 일하며 고용을 늘리는 분위기다. 한국에서는 작업 물량 때문에 초과근무 수당 없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기도 한다. 정책 입안 결정자들이 과연 이런 복잡다단한 일터의 섭리를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대학 강사로 일하며 가장 답답했던 부분이 정해진 공휴일도 보강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었다. 강렬한 장면 하나가 폭설에 학교 측이 전체 휴강 공지를 9시에 냈는데 강의자들은 8시에 이미 출근한 상태였다. 그리고 매학기 임용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방침에 오래 일한 선생님들이 더 상처를 받았다. ‘두 번째 화살’ 맞기. ‘프리한 만큼’ 근무 조건이나 환경이 보호받지 못함을 받아들여야 했고, 추해지는 건 한순간이라 마지막까지 뒷모습을 신경 써야 했다.
원래도 미니멀리스트이지만 조립이 흔해지면서 구입을 더 자제하고 포기하게 된다. 어렸을 때는 과학 발명품 만들기나 라디오 해체와 납땜질도 제법 했었다. 이상하게 안내문이나 설명서를 잘 안 보고 덤벙거린다. 숙지하고 따르면 그만인데 그게 재미없다. 삼각김밥도 김과 밥 따로 먹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하는 부분에서는 좀 다른데, 다음에 수월하게 처리하도록 익힌다, 習. 아주 드물지만 관심 있을 땐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 직접 조립하고 만드는 것에 애정을 갖기 마련인 “이케아 효과”를 설명한다. 이것도 케바케인 것이 나는 석사논문을 다시 꺼내보는데 오년이 걸렸고 박사논문은 지금까지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구멍이 숭숭 보여 낯이 뜨거워지는 까닭이다. 종이 접기에 자기애를 느끼고 수당을 요구할 수 있는 마인드가 부럽다. 조립하고 흐뭇해하기는커녕 두고두고 자책하거나 쓰레기통에 꽂아버릴지 모른다. 성격이 운명이라지. 그렇지만 예술가들이 자기 창작품을 안 팔거나 고가에 팔리길 원하는 마음은 알 것도 같다. 애정이 눈을 가리고 애정을 가졌던 결과물에 헌신한 결과로 풀이된다. 아마 자식을 향한 마음 같겠지.
어제 방송에서는 철학이 나랑 안 맞았고 오늘은 경제까지 풉. 덜 떨어진 사람 맞다. “지불의 고통”을 말할 때 살짝 찔렸다. 카드와 달리 현금을 지불하면 기분이 나쁘다고. 이유는 눈앞에서 ‘사라짐’이 보이는 탓이다. 이 대목에서 정신을 차리고자 등록금을 만원권으로 인출해 직접 냈다던 친구가 생각난다. 나는 언젠가 카드 청구서를 받고 카드 회사에 전화를 건 경험이 있다. 과다 청구는 있을 수 없고, 내 오른손이 한 일이라는 가르침을 얻었다. 현금/카드 결제와 마찬가지로, 개인 수표로 결제하면 자동이체할 때보다 가족들의 눈치와 잔소리 때문에 전기, 가스 요금 등을 덜 쓴다고 한다. 무인 계산대에 두 눈Eyes만 그려넣어도 양심적으로 자율 계산한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애리얼리는 매학기 수업에서 ‘피자 한 입’ 실험을 진행한단다. 한 입마다 요금을 물리면 입이 터지도록 베어 문다고. 경쟁인가, 보상 심리 작동인가. 솔직히 첫 입이 제일 맛있지 않나. 똑같은 금액 청구는 부당하다.^^ 남자 동기들이 보통 사이즈 씬 피자를 한판씩 구겨넣을 때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걔들은 먹는 것도 경쟁하듯 먹었다. 젊어서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외 흥청망청 먹방하는 윤두창을 보라.
관계의 가치 파트에서는 데이트 ‘비용’을 다룬다. 오래 사귀고 결혼해 잘 사는 동기 중 하나는 둘이 만나면 회비를 걷고 남은 돈은 통장에 넣었었다. 애정하는 독서 모임도 계모임 형식으로 운영해 서로 부담도 없고 모인 돈으로 힙한 곳에서 갖고 싶은 것도 함께 쇼핑한다. 강의자는 사례금이 반드시 유용한 건 아니라고 지적한다. “관계에 돈이 끼어들면 도움의 즐거움이 사라진다.” 돈 좋지만 블로그 운영이 돈을 낀 ‘일’이었다면 지속하지 못했을 거다. 순수한 활동의 기쁨. 하지만 열정페이는 반대다. 세 달 수습 기간을 교묘히 몇 배의 장기간 인턴 제도로 둔갑시킨 신자유주의의 노동 착취. 물가상승은 고려하지 않는 기업 측 마인드와 동결이다. 한사람이 취직하기 전까지 붓는 교육비만 계산해도 아찔 어질. 유튜브 ‘멜봉 네덜란드’도 세랑이의 성장과 교육을 위해 떠나는 것 같다.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 헬조선 시즌2. 김영란법이 통과되었을 때 대학 내 스승과 제자 관계가 이상해졌다. 원래 금전과 뇌물을 주고받는 사이도 아니었지만, 학기말에 학생들이 가나초콜릿과 병 음료와 편지를 건넸다. 갸우뚱하자 친한 선생님이 “쟤들한테 천원은 큰 거야. 다 준거야” 이랬다^^*. 사례 소개에서처럼, 유치원 등원 지각에 벌금을 부여하자 벌금으로 퉁쳤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은 부모들의 줄 지각이 빚어졌다. 방침을 철회했으나 “한번 사라진 죄책감은 안 돌아온다.” 때가 때인 만큼 ‘사회규범’과 ‘시장규칙’을 분리해 보는 시선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시장규칙을 내세우며 사회규범을 와해하는 조작과 꼼수가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다음으로 돈이 안 되는 일이 갖는 ‘동기부여’의 가치를 논한다. 이 부분의 통번역이 매끄럽지 않다. 누가 봐도 개 힘들어보이는 마라톤을 왜 뛰는가, 는 실은 반어법이다. 돈이나 보너스가 다가 아니라는. 진짜 즐거움과 내면의 가치 추구를 강조한다. 나도 처음에 달리기 예찬론자인 무라카미 하루키 옹과 한판 붙어볼래요? 훈수 두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그럼 러너스 하이는 몬가요? 따질 뻔. 논지는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걷어내고 온전히 즐기면 ‘수행능력’도 상승한다는 거다. 즐기는 자를 이길 자 없다. 물론 돈 없이는 살 수 없다.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생계 지출이 있기 때문이다. 문득 조던 피더슨(잘 나가는 대중 강연자라지만 꼰대 기질 다분^^;)이 말한 가난한 자는 미래(자본과 에너지)를 당겨 써서 오래 살지 못한다는 분석이 떠오른다. 내 생각에 이것은 아이돌 스타에게도 적용된다. ㅜㅜ 아침마다 출근하고 싶은 회사도 있겠지. 직원의 ‘감정’은 동기부여가 되는 ‘주가’와 함께 널뛴다. 리더는 직원들이 새로운 실험과 시도를 의욕적으로 할 수 있게 돕는 사람이다. 자기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반면, 문책과 질책으로 남 탓만 하고 도리어 문제를 키우는 ‘관료주의’는 익히 보았듯 직무 태만과 유기로 사회적 비극과 참사를 초래한다. 반대로, 동기를 부여하고 장려하는 ‘공짜 에너지’ 넣기는 일하기 좋은(생산적) 장소를 만든다. 이때 “돈은 도움을 주지만 자주 상처를 준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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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소개할 방송은 며칠 동안 반 정도 보고 멈추길 계속 반복했다. 내가 산만하고 주제가 방대해 집중 못하는 거라 여겼다. 근데 아니다. 전부 리하르트 프레히트 잘못이다. ㅎㅎㅎ 독일은 예능프로가 없고 철학과 정치 관련 시사 방송 일색이라더니. 제법 방송 진행 경력이 있는 분이 너무하다. 독일 철학자의 트랩 ‘일상의 철학’에 걸려 36분 방송을 몇 시간 방송처럼 시청했다. 철학은 누군가 말끔히 정리한 아포리즘만 보는 걸로. 정신 건강을 해쳐서 안 되겠다. 첫 파트는 일하는 이유를 말한다. 독일은 20세기 초에 주60시간 일하고, 현재는 주38시간 일하고 심지어 실제 노동 시간은 더 짧다고 한다. 복지국가에서는 국가가 노동에 간섭하지 않는다는데 1호 영업사원 님이 노동자를 탄압하며 주69시간을 외치고 있다. 강의자의 말대로 조건 없는 기본소득 사회로 가도 시원찮을 판국에 퇴행하는 후진 정부다. 미국 시스템을 따르는 한국은 이미 실패한 정책도 복사하곤 한다. 풍요사회로 이동하며 계층 간의 갭(격차)이 더 벌어지고 있다. 재력과 막강한 자본을 지니면 도덕성을 문책하지 않고, 재화의 ‘분배’와 증세에 대해 인색하다. 대표적인 임금노동 사회로 일하지 않는 자를 ‘경멸’하고 ‘소외’한다.
다음은 사랑을 논한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고, 그리 오래되지 않은 개념이라는 설명이다. 사랑의 유형을 세 가지로 나누어 말하는 부분이 유익하다. 육체적 끌림의 에로스. 정신적 애정과 헌신의 아가페. 베풂과 배려의 카리타스caritas. 마지막은 선행, 자선을 뜻하는 듯하다. 강의자는 사랑의 기원을 ‘생물학적’ 유용성으로 본다. 진화 과정에서 발생한 ‘우연’이라고 첨언한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 생겨남을 말하는 것 같다. 반대로 ‘낭만적 사랑’의 등장은 이러한 생물학적 임무와 질서를 방해하는 ‘심리적’ 현상으로 구분 짓는다. 통번역 과정에서 중역된 것인지 확 와 닿지 않는 요소들이 많다. 크로스 체킹이 안 되는 관계로 전달하는 내용이 뚝뚝 끊겨 좀 아쉽다. 강의자는 사랑을 고차원적 인간 행위로 접근하는 것 같다. 사랑은 감정도 느낌도 아니며, 배고픔이나 갈증이나 분노와 달리 ‘지속’된다고 강조한다. “감정은 오락가락하지만 사랑은 의식적인 상태에 가깝습니다.” 상황에 따른 감정에 종속되지 않는다고. 내 주변인들은 대부분 이 어려운 걸 평생에 걸쳐 해낸다. 존경. 두 번째 사랑 파트에서 ‘사랑의 상태’를 육체적 헌신, 사랑에 빠진 망상, 끈끈한 유대로 분류한다. 있어 보이는 표현들이지만 표피적인 설명은 겉돌며 흩어진다. 그래도 사랑에 빠진 유포리아 상태(‘클라우드 나인’)는 흥분과 안식을 동시에 느낀다는 해석이 흥미롭다. 뇌의 신경전달물질들은 촉진과 이완의 반대 기능을 한다. 폴링 포(~를 사랑)하는 상태는 도파민과 세로토닌이 동시에 분비돼 바보 같은 황홀경으로 이끈다. 안정감과 흥분 사이를 적당히 오가며. ‘Love is a story’라는 책에서는 어울림을 “동일한 허구적 상상을 하는 커플”이라고 정의한다. 비슷한 취향과 취미와 기대를 지닌 관계로 말이다. 단순한 듯 말하지만 티키타카 케미를 기본으로 한다. “성향은 다르더라도 ‘삶에 대한 기대’가 많이 겹친다.” 연인 관계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적 끌림이나 사랑의 감정이 약해지고 식는 건 당연하다고 토닥인다.
다음은 왜 착하게 살아야 하는지를 다룬다. 윤석열 정부 덕분에 ‘선한 행동’은 영어 표기가 good deeds가 맞고, 반대는 비정함이라는 걸 국민이 알게 되었다. 다른 주장은 대체로 멀게 느껴진 반면에 칸트를 거점으로 한 “우리가 ‘선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기 위함”이라는 부분이 참 좋다. 무엇보다 내 안의 양심을 ‘자기존중감’으로 연결하는 점이 좋다. 나 역시 선한 행동에 대한 의무감을 장착하려는 이유가, 나의 양심을 지키고 내 자신에게 떳떳하고 싶어서다. 그래야 살아지니까. 강의자는 뼛속까지 악인은 없다지만, 통번역의 오류라 믿고 싶다. 한국은 실시간으로 인두겁을 쓴 악마 편을 전체관람 중이다. 이중잣대로 잘못을 사과하지 않고 뭉개는 윤로남불의 터널 안에 있다. 이어 ‘양심의 가책’을 피하는 세 가지 방법을 말한다. 나를 지적하는 사람을 깎아내리기. 자신을 다른 사람에 비해 덜 나쁜 사람으로 ‘위’에 두기. 외면하기가 해당한다. 칸트의 정언명령은 들어봤어도 ‘정언비교’는 처음이다. 선한 사람으로 평가받고자 비교를 통해 자존심을 지키고 기만을 한다는 풀이다. 김건희 여사의 정신 상태가 이상해 ‘대체 왜 저럴까’ 의구심이 치솟던 중 갈피를 잡았다. 자신의 도덕성을 ‘미화’하고 이중잣대로 과거를 ‘교정’ 혹은 편집 혹은 세탁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깔려 있다. 부족한 나는 그를 거울삼아 내가 선한 인간이 되는 도덕적 노력과 열망을 놓지 않기를 기도할 뿐.
이어 왜 삶이 고통스러운가를 묻는다. 끊임없는 자문자답이 철학(하는 자세)일 테다. ‘안정감’을 잃고 지지대와 강제 분리될 때 고통과 슬픔을 느끼게 되어 있다고. 인간은 어린 시절처럼(대부분 이라는 가정 넣어야^^;) 있는 그대로 수용 받고, 공감 얻기와 무조건적인 인정을 갈구한다. 강의자는 영아사망률이 높고 50세까지 살면 천수를 누렸던 호랑이 담배 물던 시절 이야기를 꺼내며 나아짐(전진 역사)을 말한다. 독일어 Gluck에는 happy와 lucky가 모두 포함된다고 한다. 반할만한 단어이지 않은가. 강의자는 철~ 없다지만 행복하려는 노력에 탄산이 빠지지 않게 운이 따라주면 좋겠다. 요즘 나는 딱 거니만큼 행복 추구권을 누리고자 한다. 그러니 행복을 영국인에 국한시키는 니체 님은 물렀거라~ㅎ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으나 행복해지기 위해 여기 있는 건 분명 아니라는 비트겐슈타인 님도 비켰거라~ㅎ 오락에 연연하지 않을 때 행복할 거라는 거 나도 안다. 하지만 그런 경지는 성직자에게나 요구~. 이것이 철학 전공자들의 말꼬리 잡기와 뒤끝 놀이인가. 무엇을 믿고 바랄 건지,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인간이란 무엇인지 묻기를 멈추지 않는다.. 철학은 해변가 정도 가끔 거닐고 발 담그지 않으리. 물론 자기 행복보다는 선한 사람이 되라는 칸트의 말은, 공공선이 허물어지는 현대 사회에 적합한 처방이다.
그래그래, 마음의 평온serenity을 누구보다 무엇보다 갈망한다. 강의자가 말하는 행복의 공식들. 인생의 파트너 찾기, 이상적인 일을 하기, 아름다운 자녀를 낳기. 그는 소박하고 작은 행복을 귀하게 여기라면서 인생의 빅 이벤트들만 골라 풀어놓는다, 나빠. 여담이지만 나는 조국 장관 가족을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단단하고 성숙한 가족-체다. 시기질투를 받을 만한 사랑으로 똘똘 뭉친 그들은 아름답고 강하다. 철학은 좋은 삶을 영위하도록 기술과 훈련과정으로 안내한다. 인간이 빅 퀘스천을 가슴으로 끌어안기를 원한다. ‘무엇을 할 수 있나, 무엇을 해야 하나, 무엇을 희망하나...의 늪’ 속 “지혜의 가르침(사랑 아닌가?)”을 얻으라 한다. 어쩌면 실용과 효용을 기대하는 자기계발과 달리, 철학은 렛비Let Be인지도 모르겠다. 물 흐르듯 일상이 자문자답의 연속 과정. 골 아프다 골골.. 강의자는 ‘지적 소통’을 돕는 철학이 내적 성장과 심리적 욕구를 충족한다고 강조한다. 이어지는 말들은 따갑다. : 언어는 진실을 표현하는 ‘수단’이니 언어에 종속되진 말라. 객관적 주장에는 주관적 한계가 그림자처럼 붙는다. 과학적 사실이나 진실은 세상과 완벽히 일치하지 않는다. 진실은 타인에 의해서만 정당화된다.... 폭포처럼 철학하는 마음을 쏟아내며 간증 설파한다. 철학(자) 안 맞으..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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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기운? 딴짓? 아니면 몸이 조금씩 예전 습관을 되찾는 건가. 한 번씩 훌쩍 떠나던 지방 여행 생각이 굴뚝같다. ‘오페라의 유령’ ost 들으며 슝! 달리는 기차 창밖으로 스치는 장면들을 흘러가게 둔다…. 우연히 시청한 ebs [위대한 수업] 방송들이 개괄적이면서도 더 알아보도록 자극한다. 세 편을 뒤죽박죽 보았고 하나씩 무작위로 소개해보겠다. 요즘 멍~ 줄곧 이곳에 있었는데 우주에 있다가 지구로 간신히 돌아온 듯, 뭉텅 시간이 끊기고 갑자기 깨어난 것 같은. 누적된 피로와 어지럼 때문일지도.
왜 사랑은 아프고 불안하며 결국 끝이 나는 걸까? 사랑에 대한 모든 것!
문화사회학자 에바 일루즈의 사랑(감정)의 사회학 강의. 사적 영역으로 간주하던 감정을 공적 영역으로 끌어낸 사랑학이다. 사랑은 보편적이지도 영원하지도 않은 감정이다. 그것에는 개인의 내면과 삶뿐 아니라 사회, 경제적 힘이 교차한다. 낭만적 사랑은 이미지와 지식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개념으로 상황적 각성arousal 상태를 동반한다. 단순히 개인의 심리 영역이 아니라 사회 문화적인 현상으로 진단한다. 소비 자본주의와 함께 이전의 낭만적 관행이 깨지고 “로맨스 자본주의”가 생겨난다. 사랑과 돈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 거래trading는 비교 대상들을 오가며, 시장 원리인 ‘수익’ 구조를 따른다. 반면 에로틱한 관계는 자발성과 공감 능력을 토대로, 유일무이하고 값을 매길 수 없어 대체 불가능하다. 에바 일루즈는 영화 ‘프리티 우먼’이 이러한 상품 교환성을 초월했다고 해석한다. 사랑과 결혼은 다르다. 과거에는 상속을 받고 경제적 수준과 지위를 유지하고자 혼인을 했다. 유럽에서 결혼은 부모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자 반항이었고, 사회적 재생산과 경제적 전략을 다시 짜는 의례였다. 한국에 이를 그대로 대입하기에는 아직도 무리다. 한국은 효와 가족주의라는 유교 문화가 잔재한다. 강연자는 역설적이게도 자본주의가 더 이상 유산에 의존하지 않게 사랑을 해방liberating시켰다고 평한다. 귀족 집안의 장남이나 장자 상속으로 유산을 받고, 차남들은 군인이나 목사가 되어 경제적 독립을 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후 사생활과 개인주의와 핵가족을 비롯해 가족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형성된다. 데이트(대 추 썰렁 개그) 문화는 레저 상품과 피크닉이나 지역사회 활동은 물론이거니와 향수와 같은 ‘상품의 낭만화’를 가져온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여자의 ‘집’을 방문해 ‘가족’ 앞에서 구애하는 방식인 “콜링”을 따랐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영화화한 영상물에 해당 장면(gentleman caller 방문)을 볼 수 있다. 단둘이 집밖으로 나가는 데이트는 1차 대전 이후에, 자동차가 널리 보급되며 1930-40년에 본격화된다(내 생각에는 전쟁 상흔이 공간 구분 심화). 사생활과 집 공간을 벗어난 여가 오락 산업이 뜬다. 부르주아 중산층에 한정되던 것이, 부모의 통제와 종교적 윤리 의식에 묶이지 않고, 노동자 계층으로 번져나가며 오락시설이 확충된다.
강연자는 매칭 프로그램인 데이트 앱으로 만나는 “테크노 이모디티”(감정 제공 기술)를 언급한다. 이전의 로맨스의 관행이 분열(disruption 경제 용어)되며 ‘빠르게’ 만남의 구조와 주기가 바뀐다. 이때 특징이 평판이나 성품보다는 “시각성”visuality에 의존하고 따른다. 온라인상의 사진과 함께 적은 양의 정보만 제공되고, 포토샵 가공 처리된 성적 자아 이미지가 찰나로 떠돈다. 인스턴트. 스냅. 즉각적이고 빠른 평가가 이루어진다. 윤건희 정부의 잔상이 어른거려, 강연자의 “현대에서 자유는 법률, 소비문화, 정치, 시장에서 제도화되어 있죠.”라는 말이 씁쓸하게 들렸다. 검찰독재정권이 국민의 눈과 귀를 마비하는 거짓말을 늘어놓고 조직깡패처럼 협박한다. 주가조작 피의자 김건희는 국내외 가리지 않고 나대며 사진전을 여는데, 전정권과 야당 관련자들은 빛의 속도로 피의자 신분이 되고 구속 영장이 발부되고 감옥행이다. 특히, 김건희 여사는 “미디어와 패션 산업이 규정하는 이미지”를 괴상하게 악용하며 국민을 괴롭힌다. 알고 싶지 않은 (더)러브스토리로 초법 흑마술을 부린다. 짝을 찾는 방식이 ‘시각성’에 의지해 즉각적으로 평가될 뿐 아니라, 호감(attractive) or 비호감(unattrative) 식의 이분법적 감정 논리와 사고를 굳히며 사회적 생태계를 위협한다. 원래 관능성sensuality이던 것이 이제는 섹슈얼리티로 자리 잡았다. 자유freedom를 시도 때도 없이 외치는 윤석열 대통령 때문에 ‘자유’ 가치가 양날의 검일 수 있음을 국민이 지각하게 되었다. 제 식구 감싸기 용으로 자유를 독식하기 때문이다. 사실 섹슈얼리티의 등극 이래 ‘인간관계’는 변하였다. 사생활 보호가 강조되고, 남성의 몸을 모방한 열등한 것으로 여겨졌던 여성의 몸이 성과학의 등장으로 독립한다. 섹슈얼리티가 자연스러운 성적, 생물학적 충동drive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쾌락pleasure을 추구하는 소비 레저가 본격화된다. 번식에 매이던 것이 오락과 즐거움으로 방향을 틀고, 자아 탐색의 다양한 소비 양상과 장소가 생긴다.
성문화가 이렇게 흐르다보니 쿨한 척 눈치를 보게 된다. 흥미로운 점이 강연자는 의도를 모르겠는, 불확실하고 모호한fuzzy 관계를 “부정적인 관계”라고 규정한다. 성관계 이후에도 연인 관계인지 앞으로 알 수 없는 경우가 해당한다. 전념하거나 진지한 관계를 묻거나 말하지 못하게 하며, 과연 질투의 자격이 있는지조차 모호해진다. 본인의 자율성은 철저히 강요하는데 비해 상대에게 안정감을 주지 않고 심리적 불안에 빠뜨린다. “심리학자와 사회학자에 따르면 우리는 확실성을 중심으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관계의 내용, 목적, 규칙을 명확히~ 이제 인구 증가와 자식 중심의 가족 문화는 먹히지 않는다. 사회구성원이면 윤리적,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며 ‘동등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좋은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그럴 때 사디즘이나 마조히즘도 사라진다. 성혁명이 이끌어진다지만 안정적이거나 규범적인 관계가 무색해지면서 성관계는 오히려 줄기도 하고 사회적 재생산능력(인구)의 상실이 가속화된다. 노령 인구의 부양과 연금 기금의 고갈, 이민자 대략 유입 등을 고려해야 할 때다. 규범적인 관계도 아이를 낳는 것도 꺼리는 현상을 가리켜, 낸시 프레이저는 “자본주의의 돌봄 위기”라고 정의한다. 끝으로, “사랑은 가장 위대한 윤리적, 정치적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적절하게 거듭난 사랑은 핵심 자원이 될 수 있어요. 이때 사랑은 더 완전한more fully 인간의 전제 조건이 될 겁니다. 즉, 사랑은 우리 존재와 우리 사회(좋은 시민과 공동체)의 기반입니다.” |
| 다들 페이퍼 백이 엄청 안좋다고 생각하시는데 저는 별로 그렇다고 생각치 않습니다. 물론 아주 전에 정말 낡은 페이퍼 백을 봤었기에 저도 굉장히 걱정했는데 생각 외로 깨끗하고 괜찮습니다. 국내 서적과 비교하면 확실히 질이 떨어지지만 그에 비해 가격도 저렴하고 가벼우며 크기도 핸드북이라서 코트 주머니에도 쏙 들어가는 편리함도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처럼 괜히 양장판만 만들어서 비싸게 파는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만... 각설하고, 감상으로 들어가자면 확실히 이번에 나온 프랑스어 완역판 오페라의 유령을 생각하면 실망한다는 겁니다. 밑에 분이 이야기 하셨듯이 군데 군데 빠져있는 듯한 느낌이 드네요. 하지만 영어 공부 한다고 읽으시면 흥미있게 읽을수 있으실듯하네요. 지금까지 영어 사전 산게 돈이 아까울 정도였는데 지금 본전 뽑고 있습니다. |
| 오리지날이라.. 원래 The Phantom of the Opera는 프랑스작품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베스트셀러에 있는 The Phantom of the Opera는 프랑스번역판이고 다른 작품은 영어로 한번 번역한 것을 재번역한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영어판은 프랑스어판에 비해 묘사부분이 빈약합니다. 내용이 전체적으로 적은 느낌을 주죠. 오리지날이라고 하기에는 어패가 있군요. 이것도 번역판에 불과하니깐요. 오페라를 보고 이 책을 봐서 그런지 긴장감은 조금 떨어지는 군요. 그래도 원작은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작을 구해서 보세여. 영어로 번역한 것을 보실바에. 그냥 프랑스어판 번역판을 사보시는 것이 좋겠군요. |
| 어린이 영어책 읽기와 함께 병행하고 있는 성인용 영어책 읽기. 쉽지 않다. 일단 어휘도 어휘려니와 무엇보다 문장이 복잡하다. 단문이거나 대화체 중심인 어린이책에 비해 복문에 중문이 한없이(?) 이어질 때는 중간에 반드시 길을 잃는다. 그저 의미만이라도 간신히 쫒아가면 다행일 때도 있다. 힘겹게 듣고 힘겹게 읽었다. 우선 스토리가 뮤지컬이나 영화에 비해 복잡했다. 3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단순한 재미 구조의 공연물에 비해서 원작은 1인칭에서 3인칭으로 다시 1인칭으로 화자가 바뀌기도 하고 인물들의 관계나 전체적인 구성이 복잡하다. 게다가 책을 읽어주는 성우의 목소리가 너무 평면적이었다. 보통 연극배우가 읽은 오디오북의 경우, 인물 목소리에 차이를 주거나 극의 흐름에 적절히 편승한 드라마틱한 책읽기를 하는데 비해 이 사람은 시종일관 차분하고 밋밋하게 읽어간다. 누가 크리스틴인지, 라울인지, 팬텀인지 구분할 수 없다. 지문이든 대화든 차별이 없으니 읽으면서 맥이 빠진다. 졸지 않으면 다행일 때가 많았으니... <해리포터>나 <다빈치코드>의 재미난 목소리에 길든 내 귀가 적응하는데 꽤 오래 걸렸고 겨우 후반부에 가서야 소리에 몰입할 수 있었다. 내용적으로도 팬텀과 크리스틴과 라울의 3각관계라는 전체적인 맥락과 기둥 줄거리를 빼놓고는 뮤지컬은 ''앤드류 로이드 웨버''에 의해 새롭게 재탄생된 멜로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때는 하는 수 없다. 번역서를 읽어야한다. 그리고 다시 도전해 보겠다. 내가 무엇을 놓치고 무엇을 오해했는지 그때가서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다빈치코드>해리포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