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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접한 속 시원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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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랜만에 책다운 책을 접한 느낌이다. 비록 아마츄어 수준이긴 하나 지속적으로 역사에 관심을 갖고 이 분야의 책들을 많이 접해 보았지만 참으로 오랫만에 '명저'라고 이름 붙일 만 한 책을 읽은 느낌이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제기한 논의들 중 몇몇은 이미 다른 책들에서도 다루어진 적이 있었고, 또 저자의 주장에 모두 동의하는 바도 아니지만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펼쳐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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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랜만에 책다운 책을 접한 느낌이다. 비록 아마츄어 수준이긴 하나 지속적으로 역사에 관심을 갖고 이 분야의 책들을 많이 접해 보았지만 참으로 오랫만에 '명저'라고 이름 붙일 만 한 책을 읽은 느낌이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제기한 논의들 중 몇몇은 이미 다른 책들에서도 다루어진 적이 있었고, 또 저자의 주장에 모두 동의하는 바도 아니지만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펼쳐나가는 방식과 논리를 전개해 나가는 과정이 객관적 사실에 바탕을 둔 매우 설득력이 있는 것이란 점이 '공감'을 넘어 '감동'을 주기 충분했다. 비단 역사학 분야 뿐만이 아니라 모든 학문적인 글쓰기는 그것이 인문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모름지기 이러한 방법으로 씌여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특히 친일 청산의 문제와 내부 식민지 주의나 내부 식민지 사관에 관한 저자의 문제 제기는 요즈음의 답답한 현실과 맞물려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내가 아는 모들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할 참이다.

[인상깊은구절]
요컨대, 한국의 망국의 책임은 일본 군국주의의 참혹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 자신, 특히 당시의 지배 계급에 있다. 우리가 외세의 침략보다 더 경계할 것은 내부의 식민지 주의다. 이 대목과 관련하여, '한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보면, 반드시 그 나라 스스로가 멸망할 짓을 한 연후에 다른 나라가 그나라를 멸망시킨다'는 맹자에게로 돌아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m*****o 2002.01.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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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은 디를지라도 팩트는 신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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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께서는 일찍이 “책에 씌어 있는 것을 모두 믿는 것은 책을 없애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말씀하였다. 물론 이러한 성현의 가르침이 오늘날의 모든 학문 분야에 곧이곧대로 적용되어질 수는 없다. 하지만 역사학의 경우, 성현의 가르침은 상대적으로 폭 넓은 지지를 받는다. 『한국사 새로 보기』는 저자인 신복룡 교수가 몇 해 전 동아일보에 매주 한 편씩 연재한 글들을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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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께서는 일찍이 “책에 씌어 있는 것을 모두 믿는 것은 책을 없애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말씀하였다. 물론 이러한 성현의 가르침이 오늘날의 모든 학문 분야에 곧이곧대로 적용되어질 수는 없다. 하지만 역사학의 경우, 성현의 가르침은 상대적으로 폭 넓은 지지를 받는다. 『한국사 새로 보기』는 저자인 신복룡 교수가 몇 해 전 동아일보에 매주 한 편씩 연재한 글들을 모아 책으로 엮어낸 것으로, 당시 신문에는 차마 싣지 못했던 10여 편의 글이 추가로 수록되어 독자들을 더욱 기쁘게 하고 있다. 게다가 저자 특유의 감수성 짙은 문체가 예의 그 위력을 발휘하여, 독자들을 ‘책 읽는 즐거움의 바다’로 이끌어주는 점도 이 책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 우리나라의 제도권 역사교육은 시대적 상황이나 정치적 이유 등에 의해 수시로 그 진실을 왜곡시키거나 확대시키는 병폐를 보여 왔다. 이 책은 이러한 부당한 역사 인식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용기 있는 작품이다. 특히 저자가 서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다음의 문장은 이 책의 전반적인 성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나는 ‘역사의 패배자에 대한 연민’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역사가를 배출하지 못한 계급은 그 공적에 관계없이 역사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이 안타까운 현실을 나는 견딜 수 없었다. 그것이 묘청이든 신숙주든 김성일이든 원균이든, 아니면 힘없는 소작농이든 간에 역사의 패배자에 대한 변론을 해주는 것이 배운 값을 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저자는 과거 우리가 배워왔던 잘못된 역사에 대해 가차 없이 메스를 들이댄다. 책의 내용은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예컨대, 전봉준이 동학교도가 아니었다는 점, 김구의 그 유명한 “남북 각각의 단독 정부가 수립되면 38선을 베고 죽겠다”는 발언의 저의 -물론 김구가 최고의 독립투사이자 애국자였다는 사실은 절대로 의심할 수 없다-, 원균은 분명 이순신 만한 그릇이 못되지만, 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치졸한 모리배는 아니었다는 사실, 그리고 신라 삼국통일의 허구와 ‘김일성 가짜설’은 가짜라는 주장까지…, 책의 내용은 그간 우리가 배워왔던 역사적 지식을 순식간에 무너뜨려, 가히 아득한 혼돈의 상태로 몰아간다. 저자는 이 책에 수록된 몇 편의 글로 인해 연구실이 점령당하고, 심지어 “신복룡은 할복하라!”는 등의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복룡 교수의 글에 대한 이들의 반응은 문명사회의 야만에 다름 아니다. 그들의 무지막지한 처사가 오늘날 한국의 여지없음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 같아 가슴 아프다. 요컨대, 그들은 전적으로 틀렸다. 만일 그들이 저자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면, 이는 근거와 논리로서 상대했어야 하는 것이 옳다. 더구나 저자의 글은 충분한 근거와 사료에 의지하고 있는 바, 이러한 그들의 극단적 행동은 더욱 어리석은 경거망동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역사가의 붓놀림이 외부의 물리력에 의해 머뭇거려지는 순간, 그곳에 희망은 없다. ‘과거의 사건’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전제할 때, 적어도 밝혀진 역사는 해석학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특정의 주장이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든 그것이 정당한 사료에 근거한 것이라면, 충분히 존중받아야한다. 위대한 역사학자 ‘E. H. 카’의 주장처럼 “해석은 다를지라도, 사실은 신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갈등은 진보의 원천이며, 세상은 다양성의 틀 위에서 공존해야한다. 따라서『한국사 새로 보기』독자들에게 역사, 더 나아가 사회 전반에 걸친 또 다른 시각을 제공해준다는 측면에서 평가 받을 만하다. 물론, 이 책이 담고 있는 전부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배워온 주류 역사학 또한 모두가 진리는 아니다. 오른쪽과 왼쪽 눈 모두로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 그것이 정답인 것이다.
h********k 2004.02.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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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히 돌아보는 새로운 문제제기
"차분히 돌아보는 새로운 문제제기" 내용보기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던 역사의 진실'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좋은 말이다. 하지만 역사의 진실과 새로운 관점의 문제 제기는 구별될 일이다. 문제는 얼마나 합당한 문제 제기를 하느냐다. 저자 자신이 인정하듯 어차피 역사는 해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도 역사에 관심을 갖고 온 사람들이라면 사실 이 책에 나와 있는 많은 문제 제기들을 두고 '아무도 의심
"차분히 돌아보는 새로운 문제제기" 내용보기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던 역사의 진실'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좋은 말이다. 하지만 역사의 진실과 새로운 관점의 문제 제기는 구별될 일이다. 문제는 얼마나 합당한 문제 제기를 하느냐다. 저자 자신이 인정하듯 어차피 역사는 해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도 역사에 관심을 갖고 온 사람들이라면 사실 이 책에 나와 있는 많은 문제 제기들을 두고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던'이라는 수식어를 달기에 주저할 듯 하다. 모두 30편의 짧은 글이 모인 이 책에서 대부분은 이미 여러 곳에서, 여러 차례 다뤄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선한 문제 제기도 몇몇 눈에 띈다. 화랑이 모계 사회의 궁남, 즉 여왕의 성적 상대자였다는 주장이 일단 눈길을 끈다. 애초에 여성으로 시작된 화랑이 남성으로 변화된 후에도 상무정신으로 표상되는 남성 문화의 상징적 존재는 아니었으며, 아울러 세속오계로 널리 알려진 계율은 화랑과 직접 관계된 것이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좀더 논의가 필요한 문제로 보인다. 실제로 역사, 적어도 전투에서 이름을 떨친 화랑의 존재를 설명하기에는 주장의 근거가 다소 부족해 보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의자왕의 3천 궁녀가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었다지만, 실제 당시 인구 구성이나 도시 규모상 궁녀 3천을 운영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이런 속설은 신라 중심 사관에서 악의적으로 생겼다는 분석. 결론이야 뻔하지만, 논의 전개가 논리적이다. 전봉준이 동학교도가 아니었다는 점은 사실 내게도 흥미로운 발견이었다. 전봉준이 서당 훈장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는데, 왜 난 전봉준이 동학교도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은 한번도 의심해 보지 않았나 하는 자책이 잠깐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다소 다른 측면이지만 이승만과 김구의 관계를 냉정하게 돌아본 글은 그닥 새로울 건 없지만, 상식의 틀을 깨는 것이기에 한번 돌이켜 보게 한다. 정치적 노회함이나 국가 경영 능력이에서 이승만을 따르지 못했던 김구가 설령 천수를 누렸다 해도 우리의 민주주의 발전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지적. 여기에는 김구가 본질적으로 테러리스트라는, 모두들 알고 있으면서도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는 대목에 대한 직시가 숨어 있다. 신문에 기고했던 글을 모아낸 책이라면 모두 갖는 장단점을 이 책도 갖고 있다. 술술 읽히지만 깊이는 없다.
k****9 2002.01.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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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자질구레하게 길고 비판의 여지가 많다.
"너무 자질구레하게 길고 비판의 여지가 많다." 내용보기
나는 역사학을 전공하는 이제 풋내기 1학년생이다. 그동안 많은 역사책을 봐왔고 지금도 보고 있다. 이 책에 대한 느낌.... 처음엔 매우 괜찮았다. 디자인도 괜찮았고, 책의 재질도 깨끗하고, 주제도 맘에 들고, 하지만 이 책의 내용에는 비판의 여지가 너무나도 많고 자기 주장의 모순성을 보이기도 하며 또 저자가 역사학을 전공하신 분이 아니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너무 자질구레하게
"너무 자질구레하게 길고 비판의 여지가 많다." 내용보기
나는 역사학을 전공하는 이제 풋내기 1학년생이다. 그동안 많은 역사책을 봐왔고 지금도 보고 있다. 이 책에 대한 느낌.... 처음엔 매우 괜찮았다. 디자인도 괜찮았고, 책의 재질도 깨끗하고, 주제도 맘에 들고, 하지만 이 책의 내용에는 비판의 여지가 너무나도 많고 자기 주장의 모순성을 보이기도 하며 또 저자가 역사학을 전공하신 분이 아니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너무 자질구레하게 길게 서술되어있다. 예를 들면 '한국인은 단일혈통이 아니다'라는 쳅터에서 신석기인들과 청동기인들의 주거지역 및 유물들의 비교분석등 고고학적 접근을 통해서 같은 혈통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지적할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저자는 남방계, 북방계등 자질구레하게 많이 설명해 놓았다. 그리고 이왕에 남방계, 북방계에 대해서 밝히려면 그 자세한 시원지(始原地)와 이동 루트등을 밝혔어야 독자의 이해를 도울 수 있지 않을까? 둘째로 이 책의 자기 모순적 주장을 본다면 '서낭당은 고대 석전시대의 병참기지다'라는 챕터에서 저자는 분명히 '제단이라면 인적이 드물고 높은 고지에 위치해야 마땅하다'라고 서술하여 놓고서는 '첨성대는 천문대가 아니다'라는 쳅터에서 '첨성대의 모양과 평지에 위치함으로 보아서 아마 제단이 아닐듯 싶다'라고 하고 있다. 이는 자기 주장의 모순성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중 하나이다. 이 외에 이 책이 많은 부분에서 허점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이 책에서 높이 평가 할 만한 부분도 역시 존재한다. '역사의 패배자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역사를 접근하는 태도와 '비교인물사의 패단'등을 비판하는 부분등은 높이 살만하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 부분을 가지고는 부정적 부분을 채우기에는 너무나도 양이 부족하다고 할까? 전공인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다. 물론 일반인에게도 그리 권하고 싶지는 않지만 한 번 읽어봄도 나쁘지는 않을것 같다. 단, 비판적인 눈으로 이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요컨대, 한국의 망국의 책임은 일본 군국주의의 참혹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 자신, 특히 당시의 지배 계급에 있다. 우리가 외세의 침략보다 더 경계할 것은 내부의 식민지주의이다. 이 대목과 관련하여, '한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보면, 반드시 그 나라 스스로가 멸망 할 짓을 한 연후에 다른 나라가 그 나라를 멸망시킨다'(國必自伐然後人伐之)는 맹자에게로 돌아가 다시 샹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c*****l 2002.03.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