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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쓰이지 못한 책에 관한 책이다. 푸코는 1967년 마네에 관한 저서를 계약했고 '검정과 색채'라는 가제까지 붙였지만, 그 책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죽기 직전 원고를 스스로 파기했다는 소문만 남았다. 우리가 지금 읽는 것은 그 대신 살아남은 것, 1971년 튀니스에서 행한 강연의 녹취록이다. 미완의 사유가 강연이라는 형식으로 우연히 화석처럼 굳어 전해진 셈이다. 그 덕에 오히려 푸코가 그림 앞에서 실시간으로 생각하는 육성을 듣게 된다. 푸코의 테제는 단순하고 도발적이다. 마네는 '인상주의의 선구자'가 아니라 '현대 회화 자체를 연 화가'다. 그 근거는 마네가 회화사상 처음으로 캔버스의 물질적 속성을 그림 안에서 드러냈다는 데 있다. 초기 르네상스 이래 회화는 자신이 2차원 평면임을 온갖 기법으로 숨겨왔다. 그림이 실제 대상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목표였으니까. 마네는 이 은폐를 그만둔다. 재현을 파괴하는 게 아니라, 재현이 성립하는 조건 자체를 화폭 위에 노출시킨다. 푸코는 마네의 그림 열세 점을 세 주제로 나눠 이를 논증한다. 첫째 '캔버스의 공간'. 마네는 입체감을 일부러 지우고, 수직선과 수평선으로 캔버스의 네 테두리를 그림 안에서 되풀이하며, 앞뒤를 동시에 바라보는 인물을 배치해 평면이 앞면과 뒷면을 가진 사물임을 드러낸다. 둘째 '조명'. 마네 이전 회화가 그림 '안'에 빛을 그려 넣었다면, 마네는 그림 '밖' 감상자의 자리에서 오는 빛을 전제한다. 푸코의 가장 날카로운 통찰이 여기서 나온다. 〈올랭피아〉가 그토록 외설적으로 느껴진 것은 누드여서가 아니라, 그녀를 비추는 빛과 그녀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같은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 감상자가 곧 그녀를 벗기는 조명이 된다. 셋째 '감상자의 자리'. 마지막 걸작 〈폴리-베르제르의 바〉에서 인물과 거울상은 모순을 일으키고, 감상자는 중앙이면서 동시에 오른쪽에, 위이면서 동시에 아래에 있어야 하는 불가능한 위치로 내몰린다. 그림을 볼 안정된 자리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앞서 읽은 바타유가 마네에게서 '주제와 의미의 소멸'을 읽었고, 푸코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가 이미지와 언어의 균열을 팠다면, 이 책은 같은 문제를 회화의 물질적 조건이라는 각도에서 밀고 나간다. 세 텍스트를 나란히 놓으면 '마네는 무엇을 끝내고 무엇을 열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20세기 프랑스 사유의 서로 다른 대답이 겹쳐 보인다. 특히 2부에 실린 여덟 편의 연구는 그 대화를 직접 무대에 올린다. 탈롱-위공은 바타유·푸코·마이클 프리드가 어떻게 같은 결론에 이르렀는지 짚고, 티에리 드 뒤브는 〈폴리-베르제르의 바〉에 대한 푸코의 결론이 실은 실수라고 반박한다. 푸코를 읽고 곧바로 그 반론까지 읽는 구성이 이 책의 미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