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를 시작할 때이니 벌써 40년에 가까워지는 옛날 이야기부토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당시 응급실 인턴을 가장 힘들게 하는 일은 자의퇴원환자를 집으로 모셔가는 일이었습니다. 자의퇴원이라 함은 병세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 환자가 죽음을 집에서 맞기 위하여 퇴원을 희망하는 경우입니다. 대개는 기관삽관을 하고 인공호흡을 하면서 집에까지 연명을 해서 가기 마련인데, 문제는 집에 도착하게 되면 기관삽관을 제거하고 인공호흡을 중단하고 병원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퇴원할 때와는 달리 인공호흡을 지속해달라고 부탁하는 경우에 거절하는 것이 참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거꾸로 집에서 지내다가 삶의 마지막 순간을 병원에서 보내기를 희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병원의 영안실에서 장례를 치루는 것이 여러 모로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병원 영안실은 아무래도 입원환자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보라매사건 이후로 자의퇴원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의료진과 시각차이를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술이 발전하면서 생명을 연장하는 기술도 같이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는 아무래도 다양한 의학적 처치를 받게 되고, 특히 중환자실에라도 들어가게 되면 보호자 면회도 어렵게 되고 임종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본 같은 나라에서는 집에서 죽음을 맞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시끄럽고 복잡한 병원보다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따듯한 작별을 맞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방문간호라는 서비스가 발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재택간호 서비스가 시작하고 있는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다>는 일본에서 방문간호를 전문으로 하는 간호사 오시카와 마키코씨가 재택간호를 받다가 임종을 맞는 환자들을 돌보는 과정에서 느낀 점들 진솔하게 기록하였습니다. 사실 환자를 돌본다는 것은 일단 치료를 최종 목표로 하는 의료행위를 말하기 마련인데, 재택사를 담당하는 일이야말로 죽음이 결정된 환자의 마지막 가는 길을 돌보는 경우라서 맡고 있는 업무에 대한 정신적 갈등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하루 동안 너댓명의 환자를 보내야 했던 날에는 정신적으로 심한 압박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과 죽음으로 작별하는 일은 누구라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죽음이 결정된 가족을 어떻게 돌보고 죽음에 대비해야 하는지 등에 관하여 경험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만 저자가 죽음으로 작별하는 환자들과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연동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우려감이 들었습니다. 사실 사고나 급성질환으로 갑자기 죽음을 맞게 되면 남아 있는 가족들이 더 충격을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차라리 암과 같은 만성질환으로 어느 정도는 삶을 예측할 수 있는 경우가 죽음을 미리 준비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미련을 가지면서 죽음을 철저하게 준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저자는 자신이 돌보아 드린 열 명의 특별한 죽음을 기록하였습니다. 어린 환자로부터 나이가 많은 환자, 그리고 사연도, 죽음의 원인도 제각각이지만 죽음은 피할 수 없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자의 아버지를 보내드리는 과정을 담담하게 적었습니다. 죽음을 맞는 사람이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읽는 과정에서 마음에 새기게 되는 것은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도 힘들지만 환자를 돌보는 가족 역시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나 환자 가족 모두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서로의 입장을 고려하는 결정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
' 2014년 3월 8일 ' 나에게는 잊혀지지 않을 하루라고 말할 수 있다. 아니 잊을래야 잊을수가 없다고 말을 하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왜냐하면 유방암을 선고 받은 뒤 수술대에 올라갔기 때문이다. '암'이라는 소리를 들었을때 가장 먼저 떠 오른 단어가 ' 죽음'이었고, 그 기분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내게 남겨진 식구는 어떻게 해야할지, 아니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머릿속이 그야말로 하얗게 되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정말 눈앞이 캄캄했고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 암'환자로서 지켜야 할 여러가지는 평생 짊어지고 갈 숙제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다> 이 책을 만나고 보니 저절로 아니 가슴 속 한 켠에 묻어 두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불쑥 솟아 오른다. 아직 완치 판정을 받지 못했기에 새로운 기분으로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 본다. 이 책은 일본에서 방문간호를 전문으로 하는 간호사 오시카와 마키코씨가 재택간호를 받다가 임종을 맞는 환자들을 돌보는 과정을 책으로 찾아 온 것이다.
병원에서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어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기도원으로 거처를 옮겼던 친정아버지께서 임종을 맞이하여 장례를 치르기 위하여 집으로 시신을 옮겼던 가슴 아픈 기억도 떠오른다. 물론 지금처럼 장례식장이 대중화 되어 있지 않은 까닭도 있지만 마지막 유언을 받들기 위하여 집으로 옮겼었는데 , 이 책 처럼 마지막을 병원보다는 가정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집에서 하는 요양은 치료의 목적을 이룰 수 없는 상황이기에 이 세상을 떠나기 앞서서 삶을 정리하기에 안성맞춤이 아닐까 생각한다.
딸아이와 비슷한 나이인 17살 소녀를 비롯하여, 대학생 때 암선고를 받은 젊은 여성, 노부부 중 남편, 17살 아들, 그리고 저자의 아버지까지, 마지막을 준비하는 과정을 읽고 있으려니, 가슴 한 켠이 아려오지만 우리 모두가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다 보며 나도 언젠가는 이 세상을 정리할 시간이 올 것이다. 내 평생을 지낸 나의 가정에서 마지막 정리를 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
한 사람의 일생은 출생에서 시작돼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의학기술과 병원 산업이 발달하면서 출생에서 죽음의 순간까지 의료 시스템의 손길을 거치며 집 밖에서 죽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가 된 지 수십 년이다. 이제 죽음으로 가는 길은 한 인간이 이생을 평화롭게 정리하며 가족과 친구들과 보내는 의미 있는 마지막 여행이 아니라, 의료 시스템에 의지해 각종 수술과 검사를 받으며 연명하다 생으로부터 뜯겨나가는 부자연스런 길이 되었다. 최근 웰빙 바람과 더불어 떠오른 웰다잉을 반기는 배경에는 이런 현실이 숨어있다.
이 책에는 일본의 방문 간호사 오시카와 마키코 씨가 자신의 아버지를 포함해 재택사를 맞이한 11명의 방문 간호를 한 경험담이 담겨있다. 일곱 살 때부터 백혈병과 싸우다 열일곱 살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난 소녀의 이야기에서부터, 한 가정의 든든한 가장으로서 집안의 기둥이었던 저자의 아버지가 암과 합병증으로 투병하다 1년 반만에 가족 곁을 떠나게 된 사연 등이 생생하게 녹아있다. 사례마다 방문 간호사로서 저자가 보여주는 임종을 앞둔 환자와 가족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헌신, 경험과 고충을 통해 한 생명이 죽음으로 가는 길목에서 방문 간호사가 든든한 반려자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방문 간호를 평생 직업으로 삼고 노력하는 저자는 '재택 요양이 반드시 최선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죽음을 앞둔 환자의 재택 요양도 몇 가지 적지 않은 부담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환자의 의사 존중과 가족 간의 따뜻한 애정이 없으면 집에서 죽음을 맞는 편안함의 장점을 누릴 수 없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서보다 편안한 집에서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죽음을 맞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이 지닌 부수적인 장점은, 죽음을 배려하는 일본의 사회적 인프라 제도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다. 고령사회에 접어든 우리나라도 일본의 요양보험 체계에서 배우고 우리 실정에 맞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죽음을 배려하는 문화는 역으로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문화가 아닐까 한다. 삶의 모습과 죽음의 모습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 같다. 웰다잉을 넘어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이 책의 가치는 그래서 더욱 빛난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웰빙에 이어 웰다잉까지 생각하는 시대이다. 그러나 다들 웰다잉으로 죽음을 맞이하는가? 연명 치료에 대한 의견은 여전히 분분하다.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연명 치료를 거부하고 마지막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증가했다. 그러나 그들이 가고자 하는 호스피스 병동은 턱없이 부족하다. 대형 병원에서 늘리고자 애를 쓴다고 하지만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에 대한 대안 중 하나로 재택 요양이 있다.『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다』의 저자는 방문 간호사로 지금까지 많은 '재택사(在宅死)',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이 책은 제가 만났던 많은 환자들 중에서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신 분'을 중심으로 만남에서부터 헤어짐까지를 방문 간호사로서 본 기록입니다. 다양한 죽음의 순간과 과정을 돌아보면서 새로이 저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는 고통스러운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환자와 환자를 돌보는 가족의 현실을 다시 보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p. 4 prologue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해 간다는 말처럼 이 책에 담긴 각각의 이야기도 결국 죽음으로 끝난다. 그러나 죽음을 문턱에 둔 사람들에게도 삶이 있었다. 삶을 이어 가고자 하는 의지도 있었다. 그리고 보호자이자 간병인인 가족이 있었다. 가족의 사랑과 헌신으로 이들은 조용히 숨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재택 요양이 최선이 아니고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한다. 저자 역시 재택 요양이 쉽지 않다는 것을 직접 겪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재택사(在宅死)'가 누구든지 선택해야 하는 가장 좋은 죽음의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더라도 살아온 삶의 과정을 잘 마무리하고자 한다면 재택사는 그리 나쁘지 않은 죽음의 방식이라고 말한다. 재택 요양을 보면서 치료보다 환자의 생각을 우선한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재택 요양을 했던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았던 것 같다. 물론 집이 가장 편안한 장소라는 이유가 제일 크겠지만 말이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점점 부모님의 죽음을 생각해야 되는 나이가 됐다. 어느 무엇보다 부모님의 생각을 우선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좀 더 따뜻한 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병원에서 일하면서 부모님 아픔에 너무 무심했다. 불효자는 운다고 저자 아버지의 이야기에 무척 울었다. 해설을 보면 이 이야기가 이 책의 수준을 몇 단계 높여 주고 있다고 하는데, 많이 눈물 나게 하는 것은 확실하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다.’
편안하지 않은 제목이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돌연사나 사고사가 아닌 한, 죽음은 병원에서 맞이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집에서의 죽음’이라는 말은 가족을 병원에 데리고 가지 않고 방치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뉴스 속 이야기의 이미지로 느껴졌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집에서 맞이하는 죽음은, 죽음이 멀지 않은 상황에서 재택요양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러한 일은 환자에게도 가족에게도 쉽지 않습니다. 이 책은 재택요양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그들이 겪는 죽음의 과정은 어떠한 것이고, 그리고 그들에게 집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기에 죽음을 맞이하는 장소로 생각하는 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방문 간호사인 저자 마키는 집을 ‘모든 것’, ‘가정’, ‘포근함’, ‘돌아갈 곳’으로 표현합니다. ‘마지막’, ‘이별’, ‘회상’, ‘돌아올 수 없는’ 것으로 표현한 ‘죽음’은 집과 상반된 이미지이지요. 그러한 의미에서 돌아올 수 없는 마지막 이별을 포근한 가정 안에서 맞이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경험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읽어내려 가다보면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음을 알게 됩니다. 그럼에도 저자는 직접 경험한 11가지 사례를 통하여 재택요양의 놓칠 수 없는 장점들에 대해서 소개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일’을 우리가 맞이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17살 소녀, 대학생 때 암선고를 받은 젊은 여성, 노부부 중 남편, 17살 아들, 그리고 저자의 아버지까지,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와 가족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모든 사례에서 볼 수 있는 재택요양의 공통된 장점은 죽음을 앞둔 환자가 앞으로의 일에 대해 결정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환자는 평생을 함께 한 소중한 가족들과 후회 없는 마지막을 보내고 삶을 마무리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사기와 산소호흡기를 끼고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까지 병상에서 죽음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사투를 벌이다 생을 마감하게 하는 병원에서는 얻지 못할 귀한 시간인 것입니다. 혹 누군가는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시간동안 재택요양을 하게 되면 ‘병원에 있지 못해서 병을 더 키우는 것은 아닐까?’ 라는 걱정으로 고민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재택요양은 치료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 페이지를 아름답게 장식하는 고통스럽지만 의미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몸은 조금 더 빨리 죽음과 가까워지지만, 그 찰나의 순간을 치료의 고통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과 익숙한 공간에서 함께 지내는 시간으로 채워주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입니다. 이를 통해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후회 없는 마지막 순간이 만들어 질 수 있음을 저자는 사례들을 통해 보여줍니다. 재택요양이 후회 없는 마지막시간이 되기 위해서는 가족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필수적입니다. 전문적인 간호사가 교대로 돌봐 주어야 할 일들이 소수의 비전문가 가족들에게 생활로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요양제도는 가정에서 환자를 위한 시설을 갖출 수 있도록 집을 개조하는 비용과 치료용구의 임대나 구입비용을 지급해주는 항목도 있다고 합니다. 웰다잉을 준비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지원해주고 있으므로 적어도 일본에서는 결코 가족의 책임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은 아닌 셈입니다.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일이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고,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되며, 안심할 수 있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라면 우리들은 쉽게 그러한 죽음을 고르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볼 때 항상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때가 왔다고 해서 기존의 선택지와 다른 낯선 ‘부족하지만 편안한 삶’을 고르리라 생각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웰다잉은 어쩌면 살아갈 때 웰리빙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1월, 우리나라 국회에서도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웰다잉법이 통과되었다고 합니다. 아직 시행까지 2년의 유예기간이 남았기에, 웰다잉법에 대한 찬반논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법률적 찬반 논란과 별개로 우리도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정도의 존엄한 죽음과 그러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존엄한 삶에 대한 인식에 대한 논의가 먼저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7월의 마지막 날, H 선생님의 왕진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식욕이 전혀 없고 메스꺼움도 느끼고 있어 괴로운 듯한 얼굴이었습니다. 수혈은 저녁 일곱 시를 지나서야 겨우 끝났습니다. 열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유카리는 “디즈니랜드에 불꽃놀이 보러 가고 싶어요. 오늘 안 가면 다시 못 갈 거예요.” 라고 H선생님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녀의 말에 부모님의 가슴은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유카리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말하는 것은 드문 일이어서 들어주고 싶었지만 지금 몸 상태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다. H선생님도 조금 더 상태가 나아지면 그 때 가도록 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유카리는 이번에는 양보하지 않습니다. “오늘로 불꽃놀이가 끝나요. 저도 몸이 좋아지길 기다렸지만 이제는 오늘뿐이에요 오늘밖에 없어요.” 그 누구도 내년이 있다고는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녀는 진지했습니다. 짧은 침묵이 흐른 뒤였습니다. “좋아. 가도록 하지. 늘 열심히 치료에 협조해 주고 있으니까 말이야. 디즈니 랜드는 여기서 가깝기도 하고.” H 선생님의 시원한 대답에 그녀는 금방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황급히 외출 준비를 마쳤고, 곧바로 출발했습니다. 불과 15분 정도. 꼭 보고 싶어 했던 불꽃놀이입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는 토하고 힘들어 하던 유카리였는데 디즈니랜드에 도착하자마자 거짓말처럼 생기 넘치는 밝은 얼굴로 변했습니다. 가만히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생각없이 불꽃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에 취한 듯 보였습니다. 유카리가 만약 입원해 있었다면 지금의 몸상태로는 외출은 고사하고 병실에서 나오는 것조차 무리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원하던 디즈니랜드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말 그대로 재택 요양만이 줄 수 있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이성적으로, 현실적으로 판단해봐도 안 되는 것이 당연한데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현실이 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것 때문에 재택 요양을 계속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6-38p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다’라는 제목을 읽고 노년에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법의 이야기를 담은 책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리나 방문 전문간호사로 시한부 선고를 받고 집에서 죽음을 택한 , 재택사를 지켜본 이야기들이었다. 첫 사연부터 17세 여성이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따라가는데 이 책을 다 읽으면서는 지하철 안에서 서서 읽고 있었음에도 울어버리고 말았다. 존엄하게 죽기 위해 연명 치료를 거부하는 것, 그것을 넘어서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기로 결심한 재택사. 재택사의 모습을 방문 간호사 입장에서 같이 따라가는 것도 상당히 안타깝고 힘든 경험이었는데 마지막에 자신의 아버지를 보내는 글을 읽으면서는 도저히 눈물이 멎지를 않았다.
눈물을 흘리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신파를 보여주려는 책은 절대 아니다. 그보다는 재택사를 통해서 환자 본인과 가족들이 얻을 수 있는 행복감과 함께 재택사를 택했을 때 어떤 어려움들을 마주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재택 요양을 시작하고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때, 할아버지는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습닌다. 워낙 인내심이 강한 분이었기에 그동안 상당히 강한 통증이 계속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즉시 N선생님과 상의하여 정기적으로 진통제를 드시도록 조치하였습니다. 약의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습니다. 그러자 통증을 호소하는 일이 없어지고 상태는 차차 안정되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가족, 특히 할머니가 간병으로 인한 피로를 호소하게 되었습니다. 진통제를 사용하기 전 2-3일 간은 할아버지가 밤에 통증과 나른함으로 가만히 있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할머니가 침대에서 일으키거나 눕히거나 쓰다듬어 주어야 했기에 체력적으로도 한계에 이르러 녹초가 된 듯 보였습니다. 통증 문제가 해결된 후에 두 번째 수혈 때입니다. “더 이상 할아버지가 나빠진다면 집에서 간병을 계속하는 것에 대해 자신이 없어. 앞으로도 계속 같은 상태라면 정말 모르겠어. 도대체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건지...” 끝이 보이지 않는 간병입니다. 그렇게 하소연하는 할머니에게 예측할 수 없는 불안이나 스트레스가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방문을 처음 시작할 때의 할머니는 말씀도 많이 하시고 활동량도 많아서 곁에만 있어도 삶의 의욕과 열정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게 되니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는 때가 많아지고 허리가 아프면서도 병원에 갈 기력조차 없어지는 등 본인의 하소연이 더 많아졌습니다. “저도 앞으로 어느 정도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네요.” 재택 요양을 시작하고 2개월 정도 할아버지의 상태를 보고 있자니 얼마나 오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지는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대화가 오가는 줄 모르는 할아버지는 가족의 기분을 염려해서인지 “견딜 만해. 집은 정말 좋아. 대접도 좋고, 식사도 맛있고...”라고 집에 있는 것이 최고라는 것과 가족이 잘 해줘서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을 애써 나타내려고 하는 듯 보였습니다. 재택 요양을 시작하면 준비된 환자의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환자와 함께 보내는 가족들입니다. 재택 요양은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보내는 가족들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잘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 저도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방문 횟수를 늘려 할머니와 장남 부부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위로하면서 할아버지에게 있어서 ‘집에 있을 수 있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임을 가족과 확인해나갔습니다. 53-55p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가족으로서 상당히 힘든 일입니다.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다못해 링거라도...” 하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죽음이 바로 옆에 와 있는 자신의 가족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지켜보는 것,’ 이것은 어지간한 각오로는 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그래도 시게조 할아버지네 가족은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고 그를 조용히 지켜보는 것을 잘해냈습니다. 130p
재택 요양 초기부터 아버지를 위해서 마련해 놓은 호출용 벨이 빈번하게 울리면 어머니는 초조해 하셨습니다. 입원 중에는 24시간 교대로 간호사가 담당했던 일들도 재택 요양이 되면서는 모두 가족의 몫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족이하는 간병은 업무가 아니었으며 퇴근이라는 것도 없었습니다. 간변능력이 있어도, 환자에 대한 애정과 동정이 어지간히 없다면 재택 요양은 유지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저는 자주 강의에서 간병능력과 간병력은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말 그대로 이것을 뼈저리게 느낀 나날들이었습니다. ‘병들기 전까지는 그렇게 열심히 살던 사람이었는데, 살고자 하는 마음이 왜 사라졌을까. 하다못해 감사의 마음이라도 표현해 준다면....’ 하는 생각에 어머니는 서운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에 대해 저는 방문 간호사로서, 간병을 홀로 감당하며 거의 완벽하게 해내고 있는 어머니에게 공감하면서, ‘당신은 잘하고 계신 거예요’라고 마음을 읽어드려야 했겠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렇게나 약해진 아버지를 왜 무조건적으로 따뜻하게 대해줄 수 없는 걸까. 대수술을 받은 아버지가 그렇게 간단히 회복될 리가 없는데, 이런 때일수록 가족의 보살핌이 더 필요한 것 아닐까?’ 이런 생각은 어머니와 자주 출돌하게 만들었습니다. 제 속에는 딸로서의 입장과 방문 간호사로서의 생각이 뒤범벅 되어 있었던 겁니다. 만약 지금까지 건강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병에 걸려, 수술을 받아야만 했고 이후 회복되라라고 기대했으나 전혀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최악의 상황임을 알게 되었다면 가족은 혼란스러운 게 당연합니다. 아버지의 경우도 그런 것이겠죠. 갑자기 일어나지도 못하는 아버지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을까요? 가족 조정을 할 때에는 가족이 지금까지 살아온 역사와, 가족일지라도 분명히 다른 윤리관, 인생관, 생사관을 충분히 이해한 후 접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까지도 돌보는 것이 되어야 진정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는 가족 누군가 희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비다. 집에서 애쓰고 있는 환자와 가족. 가족은 적어도 환자를 이해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환자는 가족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 가족을 돌보는 핵심인 것 같습니다. 133-134p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기를 결심했을 때 환자 만큼이나 가족들도 지치고 힘들게 된다. 통증을 느끼건 불편을 느끼건 병원으로 가겠다고 결심하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켜봐야한다. 병원에서는 ‘어떻게 좀 해주세요!’라고 하소연할 곳이라도 있지만 집에서는 그럴 사람이 없다. 그리고 또 정말 힘든 것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 재택사를 결심하고 몇 달안에 서서히 보내드리는 경우도 있지만, 2년 이상 집에서 요양을 한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그 과정에서 가족들은 지쳐갈 수밖에 없다. 언제 끝날지 모르고, 돈을 받고 하는 일도 아니고, 사람에 따라 혹은 질환의 진행에 따라 고마워하기 보다는 오히려 짜증과 분노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일을 2년간 견디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 것이다. 그럴 때 위에 적은 것처럼 환자도 가족도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친할머니와 큰엄마를 종종 떠올렸다. 친할머니께서 연세가 많으셔서 질환은 딱히 없지만 초기 치매의 모습을 보이신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그런 건지 내가 병원에서 본 치매의 모습에서도 그렇고, 친할머니도 그렇고 며느리 - 특히 가장 열심히 돌봐준 며느리 - 에 대한 원망과 질책이 엄청나다. 우리에게 큰엄마가 하나도 안 챙겨준다고 하시고, 맨날 누워만 있는다, 맨날 놀러다닌다고 하시면서. 우리 집에서도 중간중간 1-2주 씩 모시고 계셔서 아는 것이 식사를 혼자서 하실 수 있지만 챙겨드려야 하고, 설거지를 하려고 하시지만 할머니께서 설거지 하신 것은 다시 한 번 씻어야 한다. 그런데도 큰엄마께서 아무것도 안 하신다고 우리에게 계속 이야기하신다. 원래도 남편과 아들들이 같은 집에 없는 상황에서 큰엄마께서 정말 고생하신다고 느꼈다. 그리고 이 책을 보면서는 질환이 있으신 것은 아니지만, 언제까지 보살핌이 필요할 지 모르고 - 어쩌면 질환이 없으셔서 그 기간이 더 길수도 있어서 - 고마워하기 보다는 불평을 하시는 할머니를 돌보는 큰엄마께서 얼마나 힘드실지 더 구체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아산병원에서 일할 때도 이런 식으로 가족들이 지쳐가는 모습은 워낙 많이 봤다. 사실 건강한 상태에서도 한 사람과 내내 같이 있는다는 것은 상당히 힘들다. 여행을 다니면서 싸우는 이유가 여행 스트레스나 피로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 사람과 내내 함께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건강하지도 않은 사람과 내내 함께 있는다는 것은 정말 사랑만으로 견뎌내기 힘들다. 그래서 가족을 위해서도 환자를 위해서도 간병인을 써야한다. 자기자신만의 시간이 있어야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면서 짜증과 분노가 쌓이지 않을 수 있다. 가끔 보면 간병인을 쓰는 것을 불효나 사랑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는데 사랑이 있고, 없어지기를 바라지 않는 마음에서 간병인을 쓰는 거다.
그렇다면 그렇게나 힘든 재택사를 왜 택하는 것일까.
병원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때에는 거의 모든 환자에게 심장의 움직임을 보는 모니터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환자의 곁에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처치를 하기 위한 병원 측의 기기들이거나 의료진들이었습니다. 가족들은 그다음 순서였습니다. 가족이 바로 곁에 가는 때는 환자가 사망한 때로, 그전까지는 의료진의 한 발 뒤에서 눈물을 흘리며 망연히 지켜보고 있거나, 긴급한 경우에는 병실 밖에서 불안히 대기하고 있는 정도일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의 입장입니다. 모니터 장치도 아무것도 없고 약이나 링거 등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은 묵묵히 곁을 지키는 것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방관하고 있는 것은 의료인으로써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저는 아쉬울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이것이 인간이 본래의 죽는 방법이 아닐까?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재택사의 좋은 점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간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며 첫 재택사의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 저를 휘감았습니다. 간호하는 저에게도 가족의 감정이 전해져 눈앞의 죽음에 마음이 많이 흔들렸습니다. 할아버지는 괴로워하지 않고 눈을 감기 30분 전까지 모두의 소리에 반응하며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말 조용히, 조용히 촛불의 불이 꺼지듯이 영원히 잠들었습니다. 60-61p
결국 재택사를 택하는 이유는 인간답게 죽기 위해서, 죽음에 가까워질 때 병원에서 주사 꽂이로 남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남기 위해서다. 병원에서는 위급한 상황일수록 가족들은 내보내고 의료진들이 환자를 둘러쌀 수 밖에 없다. 생활 속의 소리가 아니라 의료기기들의 뚜뚜 거리는 소리에 둘러쌓여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 죽음의 모습들을 보다가 이 책에서 가족들과 함께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조용히 가는 모습들을 보니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이런 죽음의 모습도 있다니. 존엄사라고 했을 때 삶을 포기하는 느낌이 종종 들었는데 그게 아니라 삶을 마지막까지 담뿍 느끼다가 떠나는 느낌이었다. 작가가 쓴 것처럼 그 것이 본래 죽는 방법이 아닐까 싶기도. 예전에 포스팅 했듯이 언니를 제외한 우리 가족들은 [사전의료의향서 / 존엄한 죽음을 위한 선언서(생전 유서)]를 이미 적어놨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되돌릴 수 없는 순간들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봤지만 이 책에 나온 것처럼 그 구체적인 모습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사람은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 하지만 가장 행복한 죽음은 역시 내가 살아온 집에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자다가 죽는 것도 죽는 사람은 괜찮지만 그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한 사람들은 너무나도 놀라고 마음이 아플 것 같다. 집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맞이하는 죽음, 게다가 질병이라는 폭탄을 안고 집에서 맞이하는 죽음인 재택사의 진짜 모습을 알게 해준 책이다. 내가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런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다. 솔직히 지금은 자신이 없다. 아픈 사람을 집에 모니터기 하나도 없이 보고 있을 자신이 일단 없으니까. 의사로 배워온 지식들을 다 잊어버리고 그냥 지켜본다는 것을 견딜 수가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 삶에 앞으로 어떤 일들이 닥쳐올지 모르니까 꾸준히 고민해야겠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죽음에 대한 글을 오랜만에 읽게 되었다. 어린 시절 자살을 시도했던 ‘나’였다. 아직도 내 팔에는 그 흔적이 있다. 하지만 이런 자살에 대해서는 지금은 안 좋게 생각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이다. 이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다』 라는 저서를 읽으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존엄성에 대해 조금 더 깊은 사고를 하게 되었다. 이런 점이 이 책을 읽기 전과 달라진 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는 아니지만 죽음과 밀접한 환경에 처한 저자의 글이라 조금 더 가슴 속으로‘팍!’ 하고 와 닿아서 좋았다. 우선 이 책의 저자에 대해 소개한다. 일본인이다. 이름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오시카와 마키코 성누가국제병원(聖路加 際病院)방문간호과 Nurse manager. 성누가간호대학졸업. 이타바시(板橋)보건소, 일본대학의과부 부속 이타바시병원 순환기내과를 거쳐 1989년부터 성누가국제병원 공중위생간호부에 근무. 1992년, 성누가국제병원 방문간호과 설립맴버. 방문간호사로서 지금까지 많은 ‘재택사’를 지켜보았다. 근저로『집에서 맞이하는 행복한 마지막』(문예춘추刊) 가 있다. 나중에 찾아서 읽기로 하고 번역자에 대해 짧게 소개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1980년 부산출생이다. 이 분도 ‘응답하라 1988’을 보면 감회에 젖을 것 같다. 아, 이야기가 새는 것 같다. 부산 고신대학 의료경영학 전공했으며, 재학 시절 자매관계 일본 현지 선교회가 운영하는 특별양호 노인 홈에서 봉사활동. 현재는 일본 거주 중. 일본에 거주하다보면 힘들지 않을까 걱정이 되지만 이 쯤에서 번역자 소개는 끝내기로 한다. 흠.
책 내용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내 이야기부터 짧게. 나 또한 재택사를 경험했다. 나의 아버지의 죽음, 내 방에서 있다가 어머니의 부름을 받고 아버지의 방으로 뛰어갔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119에 신고를 하고 경찰에 신고를 하고 그리고 경찰서에 가서 조서를 쓰고 병원에 가서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조금 더 많이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었어야 했는데 이 때는 그러지 못했다. 그게 아직도 아쉽기만 하다. 같은 공간에, 같은 시간을 보냈는데 말이다. 이 책의 생명줄은? : 환자가 앞으로의 일에 대해 결정하도록 도해 준다는 말이다. 병원도, 의사도, 간호하는 가족들도 모두 환자가 의식이 있는 한 그의 의사를 따른다. 생각해 보면 이것이 후회 없는 삶의 마무리이리 않을까 싶다. 의료장비에 파묻혀 손도 잡아보기 어려운 환경에서 보내는 것보다는 훨씬 따뜻하고 인간적인 이별이 아닌가! - 그렇습니다.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없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언젠가 살아 있는 이들과 이별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별하는 것이 좋은지 생각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생명줄에 딱 맞는 문장 : - 꼭 가고 싶었던 디즈니랜드 유카리 이야기 중에서. 부모님은 "본인이 바라는 대로......"라고 했고, 유카리는 "집이 좋아요. 집에서 할래요."라고 해서 집에서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딸의 기분이나 마음 상태를 배려해 주고 싶어요. 불안이나 치료로 인한 고통이 없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길게 가져가고 싶네요." 부모님은 재택 치료를 받겠다고 결정하신 것 같았습니다. 유카리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아마 유카리가 처한 상황과 같은 상황이라면 유카리와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전문적인 작가가 아니었지만 문장 하나하나가 보석처럼 빛이 났다. 아마도 그건 인간의 절 실한 생명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
어느샌가 부고를 많이 듣게 되면서 나도 언젠가의 안녕을 생각하게 되었다. 저자는 방문 간호의 전문가로 많은 재택사를 지켜보았는데 자신의 아버지의 이야기와 함께 부모님, 배우자, 자녀를 먼저 보낸 열한 명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책을 덮은 지금 모든 이야기가 다 머릿속에 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처음 읽었던 '꼭 가고 싶었던 디즈니랜드'다. 일곱살 때부터 백혈병을 앓았던 소녀. 저자가 만났을 당시에는 무려 27번째 입원하던 무렵이라고 한다. 재발, 수술, 골수이식 또 재발. 어떻게 어린 나이에 이런 고통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안쓰러웠던 이야기였다.
어쩌면 위급한 상황에 바로 대처할 수 있는 병원이 자신을 위해서도 곁을 지킬 가족을 위해서도 좋을지 모르지만, 내 몸 상태를 알고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그 과정도 꼭 슬프지만은 않으리라 생각된다. 충분히 자신의 상황을 알 수 있고 또 앞으로를 선택할 수 있으니! 나도 언젠가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있었던 장소에서 편안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