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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 세습제 폐지...이건 정말 혁신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분제가 정말 오래 유지되었는데, 그게 깨진거잖아요. 근대화로 가는 중요한 과정 중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금강산 육로 관광 50년 만에 재개된 날이라고 하네요. 해방직후 이념의 대립이 없었다면 지금 한반도 전체를 자유롭게 여행다닐수 있었을텐데, 안타깝죠. 그 외에 태종의 과전법 개정 등등 몇가지 사건이 더 있었다고 합니다. 궁금하면 책을 사서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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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역사 2월 5일
역사는 매일 흐른다.~~~ 각각 소제목에 한두장 분량으로 되어 있어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특히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2월 5일 역사적으로 노비 세습제가 폐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노비 세습제가 폐지 되어도 1900년대에는 차별이 여전히 있었다고 합니다.
한국 천문 연구원에서 세계 최초 두개의 태양을 확인 하였다고 합니다. 와우. 이 이북을 읽고 역사 뿐 아니라 과학, 사상, 철학 등 다양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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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구매해서 읽고 있지만 오늘은 어떤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도서입니다. 오늘은
공기 타이어 발명가 던롭이 출생하였네요.딱딱한 고무대신 고무 튜브에 공기를 넣는 타이어로서 오늘날 빠
른 속도로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는 자동차 바퀴의 역사가 시작되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지요. 영국 사상가
토머스 칼라일이 사망한 날이군요. 이분은 혁명이란 지배 계급이 정치를 못하였기에 하늘이 내린 벌이라고
생각하셨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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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노비 세습제를 폐지한 날이네요..임금이 백성을 볼대는 귀천이 없고 남녀 구별없이 하나같이 적자다
하여 승정원에 명을 내려 노비문서를 모아 돈화문 밖에서 불태우도록 했다고하네요. 이것은 신분제를 바탕
으로 성립되었던 중세 봉건 사회의 해체를 의미한다고 볼수있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태종이 과전법을 개정
하여 전제의 안정과 조세 수취원의 확보를 위해 종래까지 조세가 없던 사원,공신전을 유세지로 편입했다고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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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는 그날의 역사 2월 5일>에는 '노비 세습제를 폐지하다', '태종, 과전법 개정', '숙종, 북한산성 축성 결정', '영국 함대, 거문도에서 철수', '금강산 육로 관광 50년 만에 재개', '중학교 무시험 입학 추첨 실시', '이인직, 모란봉 연재', '한국 천문 연구원, 세계 최초 두개의 태양 확인' 등 8개의 한국사와 세계사 2개가 실려있다. 생각보다 노비 세습제가 폐지된 것이 오래된 일이 아닌 것이 놀라웠다. 1886년이면 겨우 100년이 조금 더 지났을 뿐인데.. 갑오개혁을 단행하면서 노비제 자체가 완전히 폐지되었으니 중세 봉건 사회가 해체되었음을 의미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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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는 그날의 역사 2월 5일'편에서는 한국 및 세계의 역사를 디테일하게 살펴볼 수 있었는데, 분량은 약 45페이지 정도 되는 책이었습니다. 내용으로 들어가보면, '노비 세습제의 폐지' 등 총 8건에 대한 이야기가 한국사 파트에서 설명되어 있었고, 다음으로 세계사 파트 이야기가 나오는데, '타이어발명가 던롭 출생' 등 총 2건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각 사건별로 짧막하게 구분 설명이 되어 있어서, 쉬는 시간에 틈틈이 읽어보기에 적당한 책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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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제라는 것은 늘 정당성의 문제를 불러 일으킨다. 예전의 노비 세습제도 그렇다. 같은 사람인데도 가축 취급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고, 당하는 사람 역시도 그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가 이런 불합리성에 대해 강한 지적을 하고 이슈화되면, 이제야 처음 알았다는 듯이 많은 사람의 반응을 지켜보다가 자신의 여론이 불리해질 수도 있는 시점에서야, 세습제를 폐지했던 것이 역사이다. 물론, 현재는 노예 세습제는 공식적으로는 폐지되었지만, 소수의 자본 기득권의 지위는 공고히 세습되고 있어, 나머지가 모조리 노예가 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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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 중에 가장 인상깊은 것은 노비 세습제가 폐지되어 노비문서를 돈화문 밖에서 불태웠다는 점이다. 꽤나 인원이 많던데, 이 책을 통해 그 동안 노비에 대해 몰랐던 것을 많이 알게되었다. 드라마 속에서 노비를 아무렇지 않게 팔아버리고 죽이는 양반들이 많이 나왔던 기억이 나는데, 실제로 주인은 사노비일 경우 죽여도 관청에 보고만 할 뿐 어떤 형벌도 없었고(일종의 호적정리용이었나?), 노비는 모반이 아닌 이상 주인고발할 수 없으며 고발하면 윤리 어지럽힌다 하여 교살되었다 한다. 사람취급을 받지 못했다 생각하는데 이것이 고려시대때부터 세습이라 하여 놀랐다. 그렇다면 그 이전시대에는 노비가 없었나? 아님 노비가 있었는데 세습제가 아니었나? 생각해보면 고려 이전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노비가 비중있게 또는 사건의 중심으로 등장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