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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도정일교수와 최재천교수의 [대담]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을 읽고서 최재천교수의 다른 저작들을 찾아보다가 신간이 있어 덥석 지르고 본 책이다. 그런데 거품예찬이란다. 거품이라면 우리는 흔히 부동산거품이나 주식거품 등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런 거품은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준 용어이기에 일반적으로 부정적 의미가 강한데, 그것을 예찬한다니 과연
어떤 내용일까 하는 궁금증도 한몫 했다. 효율성과 합리성을 우선시하는 시장경제에서 거품이라면 낭비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취급 받지만, 최교수는 인간이든 자연이든 생태계에서의
거품은 기본이라고 말한다.
그가 자연과학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거품은
진화의 기본이다. 자연은 스스로 지극히 낭비적인 삶의 방식을 택하기 때문에, 지구라는 행성에 살고 있는 생물은 기본적으로 낭비를 선택하게 되어 있다고 말한다. 식물은 번식하기 위해 수많은 씨앗을 뿌리고, 동물 역시 무모하리만치
많은 알을 낳는다. 그러기에 그가 바라보는 거품은 자연스러운 것이 된다. 이처럼 그는 인간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자연의 눈으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 그렇게 볼 때, 인간의 삶 역시 흘러 넘쳐야 한다. 넘치지 않으면 고여 썩기 마련이고, 넘쳐야만 비로소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앞날을 아무리 예측하고 노력해도 그것이 잘 맞지 않는 이유는 아마 거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또 그것을 도외시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난
2012년부터 조선일보 칼럼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은 이 책은, 모두 다섯 꼭지로 되어있다. 진화의 과정에서 낭비를 선택한 자연, 인간은 물론 동물의 생명에
관한 글, 환경을 비롯한 생태학, 배움과 나눔을 포함한 행복, 그리고 우리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제반 문제에 대한 비판과 통찰이 그것이다.
자연과학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그것들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것은 물론, 이미 알고 있던 것
조차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만든다. 읽고 난 후에도 기억에 남는 것이 몇 가지 있다.
딸꾹질
딸꾹질은 무의식적으로 급작스레 숨을 들이마시면서
후두의 입구가 갑자기 수축하여 일어나는 생리현상이다. 임신8주차부터
시작되는 딸꾹질의 빈도는 이후 나이와 비례하지만, 태아는 숨쉬기 운동보다 더 빈번하게 하는 행동이라고
한다. 그 옛날 우리가 뭍으로 올라오기 전 올챙이로 살던 시절에 빠끔거리며 하던 아가미 호흡의 연장인
딸꾹질은, 육상동물로 진화한 지금에는 전혀 필요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하고 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본다면 이것 또한 거품이 아닐까 싶다.
개미와 인간의 시소놀이
지구상의 인간전체와 개미전체가 시소놀이를
한다면 인간은 끝내 발을 다시는 땅에 딛지 못한다고 한다. 70킬로그램 인간 72억 명과 5밀리그램 개미 1경
마리의 몸무게 차이는 개미가 정확히 10배 더 무겁기 때문이다. 이런
개미와 인간은 지구생태계를 양분하고 있는 두 지배자이기도 하다. 기계문명의 지배자는 인간이지만, 기계문명사회에서 한 발짝이라도 벗어나 자연으로 간다면 그곳의 지배자는 단연 곤충이고, 그 중에서도 가장 성공한 곤충인 개미라는 것이다. 인간과 개미는
진화의 역사에서 매우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농사를 짓고, 분업을 하고,
노예를 납치하여 부려먹는 것을 보면 똑같다고 한다. 저자는 이를 두고 누가 누구를 베꼈는지
묻는다.
행복의 수학공식
조디 피쿠가 그의 소설 [19분]에서 소개한 행복의 공식이 있다고 한다. "행복=현실/기대"가 그것인데, 행복을 크게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분자를 크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분모를 작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분자를 크게 하기 위해 현실을 개선하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만만치가 않다. 오히려 분모를 작게 한다면 어떨까? 법정스님이 말했던 무소유란 분모가
아예 "0"이 되어 행복은 무한대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우리의 기대를 조금만 낮추면 충분히 행복해 질 수 있음을 말하기도 한다.
우리 인간들의 세계를 자연생태계처럼 관찰하고 있는 그는, 궁극적으로 그가 주장해온 공생에 자연과 인간의 삶이 직결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혹시 어딘지에 끼여 있는 거품이 못마땅하더라도 결국은 넘쳐야 흐를 수 있음을 생각하라고 하는 것 같다. 나 중심,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주변을 한번 둘러보면 우리가 살아가야 할 길이 보일지도 모른다. 결국은 공생과 공존의 길이 되겠지만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신기했던 것은 하나의 소제목에 대한 글이 결코 두 쪽을 넘지 않는다. 책을 쓰기 위해서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일단은 분량이 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나로서는 거품이 없어 마냥 좋다. 그러고도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것이 신기하다. 더불어 나의 고정관념에 끼어있던 거품도 무너져 내린다. 어~ 이러면 거품예찬이 안 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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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거품 예찬‘을 읽게 된 이유는 책 읽기 또는 공부와 관련한 습성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어느 시기까지는 이런 저런 분야의 책을 남독(濫讀)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시기를 지나면 자연스럽게 그 습관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런데 나는 그런 습관에서 좀체 벗어나기 어려워서 문제이다. 한편으로는 읽기가 헤프고 비효율적이라 생각을 하고 한편으로는 혜자(惠子)에 대한 장자(莊子)의 일침(一針)을 생각하며 헤프고 넓게 읽는 습관을 정당화하는 습관의 반복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 나이다.
장자는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발을 딛고 서 있는 넓이 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발바닥 밑면만을 남겨두고 주위의 땅을 파버린다면 어떤 결과가 오겠는가.‘라는 말로 ’자네의 이론은 현실적으로 아무 소용이 없‘다는 혜자를 머쓱하게 했다. 장자의 일침은 촌철살인의 지혜라 할 수 있다. 서문(序文)에서 저자는 맡은 바 소임에 그저 알맞은 정도의 사람을 앉히면 허덕허덕 겨우 해낼 뿐이지만 능력이 넘치는 사람이 일을 맡아야 여유롭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도 말했듯 이런 사고 방식은 자연주의적 오류 차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자연에서 관찰되는 현상을 자연스러운 것 즉 좋은 것으로 보고 그로부터 당위를 이끌어내어 사회에 적용하는 오류이다. “인간을 탐구하는 과학이 자연과학에서의 실험실 상황을 흉내냈을 때 그것은 인간적 삶의 현실을 결정적으로 왜곡하게 된다.”(이정우 지음 ’인간의 얼굴‘ 285 페이지) 같은 말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지구라는 행성의 생물은 낭비를 기본 조건으로 선택했다는 말을 한다. 저자는 자연이 낭비를 선택했듯 자본주의도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언제나 출렁이게 마련이라는 말을 하는데 자연주의적 오류를 의식해서인지 따뜻한 자본주의라는 대안을 고민하는 현실을 언급한다. 핵심 챕터인 ’자연은 낭비를 선택했다’(1부)를 포함한 다섯 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거품 예찬‘은 자연과 인간, 사회에 대한 짧은 이야기들을 두루 담아낸 책이다. 거품 예찬을 뒷받침하는 말은 ’넘쳐야 흐른다‘는 말이다. “무모하리만치 많이 태어나고 그중에서 특별히 탁월한 개체들만이 살아남아 번식에 이르는 과정에서 바로 자연선택의 힘이 발휘된다. 그 결과로 적응 진화도 일어나는 것이다.”(39 페이지) ’나눔과 베풂‘이란 글에서 저자는 경쟁자가 거의 다 제거되었을 때 다양성을 잃어 천재지변이나 병원균 등 외부의 침입에 취약해지는 생태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연생태계에서 지나친 독점이 파멸을 부르듯 인간 세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은 자연과 사회를 연결짓는 저자의 주지(主旨)를 다시 접하게 하는 부분이다. 스티븐 제이 굴드가 얼핏 생각난다. 굴드는 생물 진화에는 목적성이나 방향성이 없다는 말을 했다. 낭비라는 개념으로 진화를 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정해진 길, 정해진 목적이 없기에 무분별하고 비효율적인 것 즉 낭비가 아닌가 싶은 것이다. “자연은 먼 옛날 벌어진 진화의 결과에 따라 각본대로 움직이는 곳이 아니다.”(86 페이지) 저자는 흥미로운 말을 들려준다. 행동생태학의 불모지인 이 땅에 들어와 학생들의 다양한 학업 욕구를 무시한 채 자신만의 연구 주제를 고집하기 매우 어려웠다는 저자는 그래서 일찌감치 자신을 버리고 학생들과 함께 실로 다양한 동물의 행동과 생태를 연구해 왔기에 자신의 연구 논문 목록이 그야말로 산지사방(散之四方: 사방으로 흩어짐), 중구난방(衆口難防: 여러 사람의 입은 막기가 어렵다는 뜻으로, 일일이 막아 내기 어렵게 사방에서 마구 지껄여 댐을 이르는 말)이란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자에게 일관된 키워드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사회‘이다. 어떻든 나는 산지사방, 중구난방이란 저자의 말에서 넓어 헤프고 비효율적인 내 관심의 스펙트럼을 본다. 관련하에 유의미하게 읽히는 글 가운데 ’피카소처럼 살자‘를 빼놓을 수 없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이라는, 아무나 칠 수 있는 홈런이 아닌 ’최고의 홈런‘을 친 야구 선수에 비유된다면 피카소는 좋은 공, 나쁜 공 가리지 않고 열심히 방망이를 휘두르며 높은 출루율을 자랑한 야구 선수에 비유된다고 말하는 이 글의 요지는 섬광처럼 빛나는 천재성보다 성실함과 약간의 무모함이 때로 더 큰 빛을 낸다는 것이다. 거품 예찬의 진의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글이다. 실제 야구에서 이 공 저 공 다 휘두르며 높은 출루율을 기록하는 것은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 이는 볼넷을 많이 얻어내는 타자가 출루율이 높다는 사실을 통해 드러난다. 볼넷을 얻어낸다는 말은 나쁜 볼을 골라냈다는 의미이다. 이 공 저 공 다 휘두르면 안타수는 많아진다. 야구는 안타를 치려는 타자의 시도를 정해진 룰 안에서 방해하는 상대팀 투수라는 장애물이 있지만 피카소의 경우 매너리즘이나 슬럼프에 빠지는 자신이 유일한 난제였으리라. 거품 예찬이란 말보다 피카소처럼 살자란 제목을 지었으면 어땠을까 싶은 마음이 없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거품, 천재성보다 성실함과 약간의 무모함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는 사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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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의 매력에 빠져 든 이후 많은 책을 읽었다. 그만큼 익숙해진 내용이 많아졌지만 이 컬럼들과 같이 신선하게 느껴지는 글 또한 아직 많은 것 같다. 최재천과 스티븐 핑커의 글에서는 무언가 보수적인 색깔이 느껴진다. 이 책에선 박근혜 대통령이 몇번이나 거명되고 있다. 다소 건조하게 말이다. 생태에 대한 감정이입이 사람이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그것 보다 못미치는 것이 아닐까? 성공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머물고 있는 느낌이다. 물론 이 자체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존경할 만한 인물이다. 인간의 행동은 인식, 생각, 실행, 회고의 네 단계를 거친다. 우리는 실행 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대개 생각의 부족에 책임을 묻지만 실제로는 어설픈 인식이 주범인 경우가 더 많다. (돈키호테) -- 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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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라는 메세지를 던지는 최재천 생태학자는 통일이 되더라도 DMZ를 생태공원으로 보존하기 위해 고가도로,철도를 설치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그다지 넓지 않은 비무장지대를 남북을 잇기 위해 몇 개의 도로와 철도를 놓는다면 생태는 결국 파괴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임을 알기 때문이다. 2012년 인간,환경,동물를 아우를 수 있도록 서울시에 동물보호과를 신설한 점을 언급하고 있으며 우리가 마시는 생수가 병 속에 갇힌 채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온 물을 선호하고 취수원과 청결함, 영양가, 안정성 문제를 꼼꼼히 따지지 않은 체 생수만 고집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다시 환기시키고 있다. '흐르지 않는 물은 죽은 물이다'
며칠 전 지인 가족과 함께 강릉시에 위치한 대관령 옛길 담정-대관령민속박물관 구간을 걸어 내려 온 적이 있다. 2시간 소요되는 거리였지만 걷는 내내 숲이 제공하는 그늘 때문에 불볕 더위였던 그 시간대에 나름 시원하게 내려 왔었다. 그리고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호사도 누렸다. 최재천 박사는 "자연휴양림은 피톤치드 같은 화학물질만 내뿜는 게 아니라 그 엄청난 구조적 다양함으로 우리의 뇌를 긍정적으로 자극한다"라고 자연생태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알려주고 있다.
원래 추운 지방에서 자라는 나무인 자작나무는 남한에는 자연 상태에 자라는 자작나무 숲이 없었는데 산림청에서 강원도 인제에 138헥타르에 달하는 자작나무 숲을 조림해 관광명소로 만들었다고 하니 한 번 쯤 다녀오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최재천 박사는 경계를 넘어 폭넓게 독서하는 생태학자로 유명하다. 그는 런던정치경제대학교 교수인 폴 돌런의 행복해 지는 한 방법을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집의 모든 방에 책을 둔다. 인터넷 홈페이지 초기 화면을 서평 웹사이트로 설정한다. 친구와 도서전에 갈 약속을 잡는다. 책을 읽고 비평하는 그룹에 가입한다." 본인은 한 가지를 추가해서 '서점 관망하기'를 행복 만드는 비법으로 알려준다. 그의 통섭의 비밀은 독서임을 알게 된다.
대학생들에게 기획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우리 모두에게 범위를 넓혀 적용해 본다면 대학 교육에만 온전히 기대지 말고 여러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두루 기획하여 읽을 것을 주문한다. 독서 문화가 실종된 채 선진국이 된 나라는 본 적이 없다. 지도자란 우리를 보다 밝은 미래로 이끌어주는 사람이다. "리더는 책을 많이 읽고, 깊이 생각하여,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최재천 박사는 이야기한다.
생태학자이면서 생태계를 떠날 수 없는 인간을 연구하는 최재천 박사가 우리 사회 전반을 향해 조언하는 내용들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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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교수님 과학자의 서재를 처음 읽으면서 교수님이 쓰신 책을 보게 됐다. 읽을 때마다 참 책이 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꼭 옆에서 얘기 해 주시는 것 같은 느낌 책을 읽는게 아니고 옆 사람하고 대화하는 느낌이 든다
1.자연은 낭비를 선택했다. 2.자연 본색,인간 본색 3.알면 사랑한다 4.좋은 담은 좋은 이웃을 만든다 5.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이다.
서문에서 썼듯에 사소한 노력들이 모여 사회를 바꾼다는 신념으로 오늘도 자연과 인간을 관찰한다.처럼 일상에서 느낀 것들을 자연과 연관지어 하나 하나 쓴 것 중에서 내가 읽으면서 좋아하는 것들을 적어 보려고 한다.
피카소처런 살자-아이슈타인과 피카소 아이슈타인은 야구선수로 치면 장타를 달린 ,타율에 신경을 쓰지 않고 홈런을 달린 선수란다. 피카소는 좋은 공,나쁜 공 가리지 않고 열심히 뛴 선수이고 , 그러니 엄청 많이 쳤으니 그중에는 평범한 것도 있고 졸작도 있을 거고, 명작도 있을 거란다. 우리사회에서는 "인생 한방" 에 뜨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 거 같은데 그저 성실히 열심히 살다보면 언젠간 천재의 등을 보는 날도 있을 거라는데 ..... 우리사회는 노력과 성실함을 너무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단기속성코스 ,인생역전 이런 말을 봐도 열심히 노력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몰라주는 것 같다. 삶이란 한방도 단기속성코스도 없는 거 같은데 .한발 한발 그저 걷다보면 어느 덧 목적지까지 와 있지 않을까? 교수님생각도 이런걸 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시작과 반 - 시작이 힘든 거 같기도 하다. "가장 훌륭한 논문은 일단 끝난 논문" 이라는 미시건 대학교수님 말씀처럼 우선 시작하고 그리고 일단 저질렀으면 어떻게든 끝을 보도록 해야한다. 고민과 걱정 보다는 어떻게 하면 일을 완성할 수 있을 까 ?그 생각을 하는 게 좋은 거 같다. 등산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산에 오르기 시작하면 너무 힘들고 언제 정상이지 하지만 가다보면 정상에 와 있을 때가 있다. 그러니 우선 시작이라고 해 보는게 중요한거 같다.
이기적 성공 - 마이클 조던이 " 성공하려면 이기적이어여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다.최고 수준에 오르면 그때부터 이타적으로 행동하가.다른 사람과 가까이 교루하며 지내라.고립되지 마라" 이런 말을 했다. 실패한 걸 아쉬워할게 아니라 도전하지 않을 걸 통탄할지어다. 훌륭한 사람들은 조언도 현실적으로 마음에 와 닿게 하는 거 같다. 어릴 적에는 위인전을 읽으며 정말 위인들은 탁월한 재능과 초인적으로 노력해서 위인이 된 줄 알았다. 지금에 와서 아이와 함께 읽으며 느낀 위인전은 '위인들은 이기적이었구나!" 내 할일을 하고자 하는 열정과 몰입으로 주변 사람들을 신경써주지도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내 일만 하는 그런 점들이 보였다. 그러니 그렇게 훌륭한 일을 했겠지 ......
조금은 비겁하게- "나보다 더 훌륭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언제든 주변에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나는 비겁해지로 결정했다. 일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종합하고 은근슬쩍 거기에 내 생각을 조금 버무려 내 것인 양 꺼내놓으며 우리는 비겁한 전략을 쓰며 서로 뭉칠 수 도 있는데" 겸손한 표현이다. 내 의견을 주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청만큼 중요한 것도 없는데 , 지금 이 사회에 필요한 것은 내 주장이 아닌 경청일 지도 모른다.
"알면 사랑한다." 최재천 교수님 강의 듣고 싸인 받을 때 써 주신 글귀다. 인간과 자연 을 관찰하는게 가장 좋고 가르치고 배우는게 행복하신 교수님 항상 그런 마음으로 세상에 대한 책을 써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