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영혼은 자기 자신으로 퇴각하지 않는다 … 인간성이 죽어가고 있는데 어떻게 자기 자신으로 퇴각할 수 있단 말인가? … 그 누구도 자기 자신의 자아 안에 잔존해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해 인간의 인간성, 주체성은 타자에 대한 책임, 그러니까 극도의 상처 입을 수 있음이다"(엠마누엘 레비나스) 서구 중심의 세계화가 온갖 잡음에도 불구하고 그 막강한 위세를 떨치고 있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세계화 예찬론자들의 낙관적 설교(?)와는 달리, 타인에 대한 존경과 이해에 기초한 조화와 균형이 아니라 서구의 소비 지향적 삶의 구조에 따른 일방적 구조 조정이 추진되고 있는 실정이다. 서구, 특히 미국 중심의 세계관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파급력으로 특히 약소국들의 정치, 경제, 문화에 간섭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공격적인 흐름의 저 근원에서 타자에 대한 망각, 나와 다른 무엇에 대한 무지, 타자성을 결여한 자아의 맹목성을 읽게 된다. 하이덱거는 기존의 서구 철학의 역사를 "존재 망각의 역사"라고 일갈했다. 그러나 하이덱거 사상의 세례를 받은 프랑스의 철학자 엠마누엘 레비나스는 관심의 초점을 "타자"에게 둔다. 물론 여기에는 유대인이었던 레비나스가 나치의 잔인한 행각을 체험하면서 처절하게 고민했던 내용이 스며들어 있다. 주체적 자아에 매몰된 서구 철학의 역사에 "타자"에 대한 관심을 상기시킨 레비나스의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는 책이 바로 『엠마누엘 레비나스: 타자를 향한 욕망』이다. 과거의 철학은 거의 맹목적이다 싶을 정도로 자아의 문제에 천착해왔다. 그러나 레비나스는 타자성(otherness) 을 철학적 사유의 한복판에 세워 놓았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타자는 나의 이해를 초월해 있으며, 단순히 나 자신의 거울 이미지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사상은 철학의 방향을 윤리 쪽으로 선회하도록 하는 효과를 낸다. 윤리 없는 철학의 공허함, 위험성, 그리고 자폐성이 인간을 끝없이 고립시키고 있는 이 시대에 레비나스의 철학적 윤리는 사유의 새로운 영역을 지목해 준다. 여기서 "윤리란 타인(남)의 얼굴로 나아가는 것"이다. 레비나스의 윤리는 윤리적인 것의 본질에 대한 연구로서 타자를 존경하고 응답할 수 있는 만남의 가능성을 분석하고 그것을 이어가고자 한다. 이런 맥락에서 레비나스의 윤리는 인간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를 찾아내려는 탐색이다. 저자인 콜린 데이비스는 난해하기로 소문난 레비나스의 사상을 현상학, 동일자와 타자, 윤리적 언어, 종교, 레비나스의 독자들이라는 다섯 개의 범주를 통해 정리하고 있다. 이로써 독자들은 레비나스 철학의 공시성과 통시성을 파악할 수 있게 되며, 나아가 그의 철학이 오늘 우리의 삶에 주는 의미를 가늠하게 된다. 레비나스의 철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미래가 결국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합리적인 주체를 넘어서서, 다른 존재에게 귀기울이며 그 타자를 향한 책임을 다하는 인간의 모습! 진정한 자기 발견은 자기에게만 집중하는 한 결단코 발견될 수 없다. 타인을 통해서 영향을 받고, 심지어 상처를 입고 새로운 관계 맺음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인간의 주체로서, 인간성의 담지자로서 역사를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