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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의 극렬한 대립이 야기한 동족상잔의 비극은 분단의 고착화로 냉전 이데올로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흔한 나라에서 살아서인지 사상의 통제 아래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잇고 있는 이들의 아픔에 공감한다.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에서 정부의 주도 하에 살아온 시간에 익숙한 이들에게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는 중심을 잃고 부유하는 인생의 표적을 곳곳에 남기고 살아야 할 운명에 놓이게 했다. 국가를 우주로 여기며 국가를 위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친 이들에게 남은 회한이 짙게 드리워져 있어 그 시절에 대한 아련한 향수가 증오로 바뀌는 순간이 고착화되었다.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상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살았던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시장 경제로 전환된 세상에서 자유를 누릴 만한 상황이 아님을 절감하는 시간이 늘기만 하였다.
배급 쿠폰으로 생필품을 받아 사느라 냉전 시대의 사회주의가 와도 자본주의가 와도 평범한 사람들이 살기에는 별반 달라질 게 없다고 회고하는 민초의 푸념에 공감하며 숱한 희생자들을 떠나보낸 상처가 깊이 자리한 이들의 엄혹한 현실의 부조리함을 자명하게 드러냈다. 평범함 삶을 살았던 이들이 참혹한 전쟁을 경험한 뒤 달라진 세상에서 누리며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닌 상황에서 상대적인 박탈감은 컸지만 현재를 충실히 사는 방법은 딱히 보이지 않을 뿐이다. 첫사랑의 대상을 떠올리며 전쟁으로 맺어질 수 없는 인연을 생각하는 시간에는 전쟁에서 비껴나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리는 낭만성을 드러내기도 하였지만 전쟁으로 무고한 이들이 죽어가 혈육을 잃고 애끊는 형제애를 토로하는 대목에서는 전쟁의 가혹함이 여실히 드러났다.
1991년 옛 소련이 붕괴한 뒤 모두가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에 부풀었다가 무위로 돌아간 시간임을 절감한 이들의 냉전 체제 전후 별반 달라진 게 없는 일상을 돌아보는 시간은 그동안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반문케 한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토로이카 정책으로 철옹성 같은 공산 정권은 무너지고 민중들은 자유를 얻은 듯했지만 극심해진 빈부격차로 자산가 중심으로 재벌이 들어섰고 극빈자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질 뿐이었다. 이념의 장벽이 무너지고 난 뒤의 젊은이들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모른 채 마르크스·레닌 티셔츠를 입고, 스탈린을 추앙하는 정치가로 꼽는 당대의 풍속도에 객관적인 정보 제공으로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음을 넌지시 말하고 있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나눠준 쿠폰을 들고 국영상점에서 여러 생필품을 바꾸어 생활했던 국가 중심의 전체주의의 폐단을 개혁하기 위해 1985년 페레스토로이카는 시행되었다. 스탈린주의의 병폐를 극복하기 위해서였지만 이 정책은 사회주의의 붕괴를 촉발시킨 정책으로 평범한 이들이 살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여 대안을 찾지 못한 채 결핍으로 이어진 생활에 익숙하게 만들었다. 정책이 시행된 이후 어떻게든 살아보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고대 스파르타식 교육에 길들여진 이들이 달라진 체제에 순응하며 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스탈린을 닮았다는 이유로 체포된 운전수, 당원증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갖은 핍박에 시달려야 했던 이들이 부지기수였던 점만 들어도 미래를 사랑하며 살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공산주의 세상을 건설하여 이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이들에게 돌아온 허무감은 불행은 가장 좋은 스승이라는 말을 위안으로 지낼 뿐이었다. 러시아인들은 감옥소 생활과 전쟁으로 지우기 힘든 정신적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니 제국의 붕괴가 희생자들을 양산하였을 뿐이다.
‘어떻게 살았어? 그 모든 일을 겪고도 어떻게 살 수도 있어?’ 라는 공포를 수반하는 질문은 대학살이 자행되는 동안 목격한 참혹한 살상은 지울 수 없는 잔상을 남기고 가슴에 멍울을 남겼다. 선량한 사람들이 아르메니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어나갔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무참히 짓밟혔다. 어렸을 때부터 모든 게 정해진 대로 움직이며 따라야 했던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이들은 서둘러 러시아를 떠나갔다. 공산주의 체제에서 스러져 간 영령들의 혼을 애도하며 숱한 주검을 초래한 환경을 탓하며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이들의 비인간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유기체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궁극적으로는 개체의 질적인 향상을 도모하는 일로 귀결되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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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 변화의 모습을 말할 때면 나는 항상 허둥대게 된다. 이를테면 그것은 정지된 스틸사진처럼 누군가에게 딱부러지게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선악이나 호불호의 문제로 간주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개 시간의 이쪽 편에 서서 저쪽 과거를 바라보는 관계로, 또는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저들이 사는 그곳을 바라보는 관계로 객관성이라는 건 언제나 담보될 수 없는 어떤 하위 개념에 놓이게 된다.
가령 왕정 체제였던 조선시대의 사람들이 민주주의 체제인 대한민국의 사람들과 비교될 때 승자는 항상 대한민국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어찌보면 이런 근시안적인 사고는 너무도 당연한 것인데 과거의 사람들에 대한 변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사고는 언제나 우물 안에서 하늘을 보는 격일 뿐 우물 밖의 세상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최근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세컨드 핸드 타임>을 읽으면서 위에서 내가 언급한 사실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되었다.
작가는 1991년부터 2012년까지 무수히 많은 러시아인들을 만났고, 그들이 작가에게 들려주었던 그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증언을 이 책에 실었다. 1917년 러시아의 사회주의혁명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인간', 이를테면 '호모 소비에티쿠스'는 짜르시대부터 갖고 있던 그들의 경제적 토대나 정치체제만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마저 달라진 '새로운 인간', 소비에트 문명에 적합화 된 '소비에트적 인간'이었다. 그러나 1991년 자본주의 러시아의 탄생과 함께 70여년 동안 지속되던 사회주의 실험은 급하게 막을 내렸다. 사회주의 소비에트 이후의 시대를 흔히 포스트 소비에트라고 부른다. 그러나 작가는 이 시대를 세컨드 핸드, 곧 중고품 시대라고 부른다. 스탈린 시대부터 푸틴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곳의 사람들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난 처음에는 미처 녹음기를 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삶이, 그냥 삶이었던 것이 문학의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녹음기를 켰어야 했는데 말이다. 난 사적인 대화든 여러 명이 함께 하는 대화든 항상 그 순간을 놓칠세라 촉각을 곤두세우곤 한다. 하지만 가끔은 이처럼 경각심을 잃을 때가 있다. '문학의 작은 조각'은 어디에서나, 때때로 전혀 예기치 못한 곳에서 툭 하고 튀어나온다." (p.526)
사람들의 증언을 듣고, 그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편집하고, 기록하는 그 모든 것을 과연 문학이라 말할 수 있을까. 2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작가가 만났던 그 많은 사람들의 삶을 작가는 무슨 수로 되짚으려 했던 것일까. 공산주의 속에 살던 인간, 민주주의 속에 사는 인간, 전쟁터에서의 인간, 평화로운 삶 속에서의 인간 등 작가가 전하는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유형은 다양하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인간 개개인의 적나라한 모습에 섬뜩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때로는 어떤 체제나 환경에서도 변하지 않는 참인간의 모습을 만나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런 혼란은 내 의식의 한 쪽 끝을 길게 잡아당기는 것처럼 중심을 잃고 흔들리게 했다.
"인생은 개 같아요! 내가 얘기를 해주죠. 인생은 선물을 선사하지 않아요. 난 내 인생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을 본 적이 없어요. 기억에도 없어요. 아무리 떠올리게 해도 생각이 나질 않아요! 난 독도 마셔보고 목도 매달아봤어요. 한 세 번 정도 자살을 시도했었어요. 지금은 손목을 그은 상태고요." (p.561)
나는 이 책에 등장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증언을 차마 옮기지 못하겠다. 권력을 인민에게 돌려주고 새로운 문명을 구축하려고 했던 사회주의 혁명도,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자본주의 체제도 결국 러시아인의 삶을 조금도 나아지게 하지 못했다. 심지어 최근에는 러시아의 대중 사이에서 소련에 대한 동경이 나타나는가 하면 강제수용소 체험이 관광상품으로 등장하기까지 했단다.
시간의 흐름을 진보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현재는 언제나 좋은 것, 선하고 아름다운 것일 테고 그에 비해 과거는 언제나 나쁜 것, 미개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일 테지만 그것이 꼭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것만은 아닐 터였다. 구소련을 동경하는 많은 사람들과 박정희 시대를 동경하는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할 때 자신의 삶에 대한 인간의 가치 판단은 외부환경의 객관적 기준에 기인한다기보다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 환경에 익숙했었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예컨대 광주 민주화 운동이 있었던 1980년의 어느 날 그 소식을 알지 못했던 대다수의 국민들은 전보다 나아진 환경에 만족해 하고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중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사람들은 '그런 일이 있었구나'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2016년의 지금 시점에도 '그때가 좋았지' 회상하는 인간들이 더러 있다.
이 책은 한 편의 잘 짜여진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작가가 추구하거나 지향하는 바는 명확해 보인다. 어떤 체제나 환경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인간 군상의 적나라한 모습을 조명함으로써 사라져가는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데 있는 듯하다. 어쩌면 이십일 세기 인류가 직면한 공통의 문제는 지구 온난화나, 테러나, 종교 문제처럼 지엽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성 상실'이라는 보편적인 문제가 더 시급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한 번쯤 되물을 것이다.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고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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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쪽 우리가 직접 가마에서 일일이 벽돌을 꺼냈어요 말도 못하게 뜨거웠죠 한 교대당 4,000-6,000 장의 벽돌을 꺼내야했죠 무게가 20톤 가량 되었죠 그런데 거의 여자들과 소녀들이 그 일을 했어요 지금으로부터 겨우 6,70년전 한국도 그러했지만, 소련의 여성인권도 형편없었다. 그러나 희망이 있었고 미래가 있었다 왜냐하면 소비에트니까... 그런데.... 같은 119쪽 우리는 그렇게 시베리아로 동원되었어요. 공산주의를 건설하기 위해서! (침묵한다) 그런데 지금은 ... 어휴! 어쨌든 어쨌든......, 다 부질없는 짓이었어요. 여성성을 내려놓고 아니 인생을 내려놓고 바쳐온 이념이 무너지는 것을 보는 삶의 슬픔이란 ㅜㅜㅜㅜㅜㅜ 215쪽 모두가 만족했어요 우리만의 의식도 있었지요. 우리만이 알아볼 수 있는 표식도 있었어요. 우리만의 패션이 우리만의 유머가 있었어요. 이미 오래 전에 비밀스러웠던 부엌 공동체는 지금 사라졌지요. 우리가 영원한 우정이라고 물렀던 그 우정도 이젠 없어요. 그 땐 그랬죠. 영원을 지향했었죠. 우정보다 상위에 있는 것은 없었어요. 바로 그 우정이란 강력한 접착제로 모든 것이 지탱되고 있었어요. 남북한이 대치한 한국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향수라는 단어는 어이가 없겠지만, 세컨드핸드 타임의 알렉시예비치는 공산주의에 대한 향수, 소비에트에 대한 향수라는 아무도 선뜻 동의하지 않고 생각해보지도 않은 영역을 소개한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공산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상주의에 대한 이야기로 들린다. ---------------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소련이 붕괴되고 난 후 20년 후 붉은 인간이라고 명명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2013년 프랑스 에세이 부분 메디치 상 수상. 라이프지 선정 2013년 최고의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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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가 전쟁에 참가한 여성들의 잊힐 뻔했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라면, <세컨드핸드 타임>은 전쟁이 끝나고 이어진 냉전 이후 공산주의의 붕괴와 자본주의의 확산을 동시에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오랫동안 철저한 '호모 소비에티쿠스'였다. 호모 소비에티쿠스란 소비에트 시대의 발상, 사고방식, 행동 등이 뿌리 깊이 체화된 소비에트 시대의 인간을 일컫는다. 저자의 아버지는 공산주의를 신봉하다시피 했고, 저자는 어릴 때부터 '옥차브랴타(만7~9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당 교육, 인성 교육 등을 지도하던 단체)' 단원으로 활동했다. 차세대 공산주의자가 되기 위한 수순을 착착 밟아가던 그가 '진실'을 알게 된 건 페레스트로이카가 시행된 직후다. 기록보관소가 개방되고, '소비에트 러시아에 거주하는 1억 명 중 9,000만 명은 데려가야 한다. 나머지 1,000만 명과는 대화할 필요가 없다. 모두 죽여야 한다.', '사로잡은 부농과 부자들 중 적어도 1,000여 명은 교살해야 한다. ... 주변 수백여 킬로미터 내에 거주하는 인민들이 꼭 그 장면을 목격하게 해서 두려움에 몸서리치도록 해야 한다.' 같은 무시무시한 말들이 레닌, 트로츠키 등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저자는 더 이상 호모 소비에티쿠스로 살 수 없음을 직감했다. 페레스트로이카가 시행된 이후 저자처럼 소비에트 체제의 진실을 깨닫고 실망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자와 달리 소비에트 체제를 여전히 지지하며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삶을 추구한 사람도 있다. 이들 중에는 소비에트 체제가 무너진 이후 급물살을 타고 들어온 자본주의에 실망한 사람도 적지 않다. 자본주의는 자유를 주었지만, 주어진 자유를 누리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다. 그것도 아주 많은 돈이. 책을 읽고 연극을 보고 인생을 논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돈 버는 법, 돈 모으는 법, 돈 쓰는 법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다. 소비에트 체제하에선 줄곧 모욕을 당해왔던 '속물근성'이 환영받고 장려되기 시작했다. 소비에트 체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공포이자 지옥이었다. 사람들은 베르사체와 알마니가 만들어낸 그 헝겊 조각들이 우리에게 필요한 전부라며 저를 설득시키려고 해요. 사람은 그것만 있으면 충분하다고요. 삶은 돈과 어음으로 쌓아올린 피라미드일 뿐이고, 자유가 곧 돈이고 돈이 곧 자유라는 말들을 하지요. ... 아무튼 전 제 어린 손주들이 불쌍해요. 가여워요.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을 텔레비전을 통해 매일매일 세뇌당하고 있으니까요. 전 이 모든 것에 동의하지 않아요. 저는 공산주의자였고 앞으로도 공산주의자로 남을 겁니다. (69쪽) 비슷한 일이 지구상에 남은 사실상 유일한 공산국가인 북한에서 벌어질지도 모른다. 오랜 세월 공산주의 이외의 사회 체제를 학습하지도, 경험하지도 못한 북한 사람들이, 갑자기 자본주의가 유입되고 거대 자본의 횡포를 맞닥뜨렸을 때 과연 잘 버틸 수 있을까. '소련이란 나라는 여성용 부츠와 휴지가 부족해서, 오렌지가 없었기 때문에 무너졌지만, 소련이 무너진 자리에 들어선 러시아는 베르사체와 알마니가 만들어낸 헝겊 조각이 없으면 불행하다는 생각을 퍼뜨린다고, 이런 세상이 전보다 더 나아진 건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던 유리예브나의 말이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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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광고와 작가 수상 내역때문에 끌려서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전에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책도 재밌게 읽었고,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뉴스를 보고 바로 구매했네요. 구소련이 붕괴되는 시기에 대한 내용을 잘 서술했습니다. 물질적인 면, 정신적인 면, 정치적인 면 등 여러 방면에서 다뤄 다방면으로 생각해볼 거리를 많이 주네요. 꼭 한번씩 읽어볼만한 책이고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재밌게 읽으신 분들은 특히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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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핸드 타임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최후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 김하은 역)
1917년의 혁명 직전 알렉산드르 그린은 '왠지 미래는 자기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을 그만둔 것 같다'라는 글을 썼다. 100년이 지난 오늘, 미래는 또다시 있어야 할 자리에 없다. 바야흐로 세컨드핸드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소비에트 연방시대를 살았던 '호모 소비에티쿠스'들의 증언을 토대로 [세컨드핸드 타임]을 집필했다. 집필기간도 상당했을 뿐 아니라 '소련'의 삶이 어떤 삶이었는지 알지못했던 이들에게 이보다 더 생생하게 그리고 사실적으로 당대의 사람들과 사회를 마주할 수 있는 책이 흔하지 않다는 점에서 역자후기를 포함 600여페이지 그 이상의 내용을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는 '소련'으로 더 익숙한 소비에트 연방 시대. 그리고 그 이후 고르바초프와 옐친으로 이어지는 공산주의도 민주주의도 아닌 그 어중간한 시기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자유'가 '돈'의 다른말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정작 1991년도에는 모두 혁명을 하기 위해 바리케이드 앞에 서 있었어요. 사람들은 자유를 원했지만 결국 뭘 얻었나요? 옐친의 혁명, 약탈적 혁명을 얻었어요. 소비에트 연방시대가 끝나고 고르바초프가 양쪽 진영의 눈치를 살피는 동안 대다수 사람들이 공산주의를 반대하고 민주주의가 다가오길 기대했다기 보다는 지금과는 다른 세상, 스탈린과 레닌과는 다른 방식의 '사상'과 '통제'를 원했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다시말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 처럼 공산주의의 좋은 점과 민주주의의 좋은 점만을 모은 그런 사회말이다. 하지만 막상 옐친이 집권한 이후 '돈'이 사회에 중심이 되고 과거의 사기꾼들이 이제는 '신흥부자'가 되어 자신들의 지배하는 모습을 볼 때 '당원'이었던 사람과 가족들에게 민주주의가 과연 좋게 느껴졌을까? 자신들의 힘으로 피켓을 만들고 선거를 통해 리더를 뽑았을 때 믿고 있던 그 희망들이 사라져버린 것을 어떻게 납득할 수 있을까. 나라를 위해 혹은 국가를 위해 왜 싸워야하는지도 모르고 전쟁에 직접 목숨을 걸고 싸웠던 사람들이 그나마도 더이상 영웅은 커녕 제대로된 보상조차 받을 수 없이 '소보크'라는 무능한 존재가 되어버린 약자들의 세계는 사상과 상관없이 늘 똑같았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서로 상반되는 증언을 써내려가도 혼란스럽다기 보다는 그저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소비에트 시절 작전에 침투했다가 적군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한 남자는 죽지 않고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이유로 포로교환 이후 집이 아닌 수용소로 끌려가야했다. 그 안에서 다양한 문인들과 지식인들을 만나며 '시의 힘'을 알게된 사람은 결국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마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끊임없이 꿈을 이야기하고 위트를 간직하며 희망을 잃지 않았던 사람들이 더 많이 생존했다던 생존자의 이야기를 다른 책에서 그대로 옮겨놓은 듯 했다. 중간에 이 이야기를 굳이 언급하는 것은 희망없는 시대, 세컨드핸드의 시대라 할지라도 그안에서 자포자기 하고 노예인 삶에 만족할 게 아니라 우리는 꿈꾸고 웃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모스크바 부엌에서 도청을 의심하고 우려하면서도 저녁이면 식탁에 모여앉아 누군가를 헐뜯고 정부를 비난하면서도 껄껄 웃었던 것 처럼. 전 한번도 영웅이고 싶었던 적이 없습니다. 전 영웅들이 싫어요! 영웅은 사람들을 많이 죽이거나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 둘 중에 하나를 해야 하니까요. 초반에는 소비에트 시대에 대해서, 호모 소비에티쿠스들의 삶에 대해서 알아가고 검색하느라 책을 읽는데 시간이 한참 걸렸다. 그러다 페이지가 넘어갈 수록 그들의 삶을 통해 보여지는 것이 바로 지금 우리의 삶이었다. 레닌과 스탈린 시대에는 종교도 필요없고 이웃집의 누가 차를 샀는지 집을 샀는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던 시절이 어쩌면 과거의 그들에게는 훨씬 더 만족스러울런지 모른다. 너도 나도 다를게 없는데 '돈'이 많다는 이유로 사람을 노예삼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는 사회가 과연 좋은 사회일까? 반대로 한 사람 한사람의 인격이 아닌 집단의 '구성원'으로만 존재해야 평화로울 수 있는 사회도 우리가 희망하는 사회는 아닐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의미의 '평화로운 세상'이 그냥 오지는 않을것이다. 타인에 의해, 누가 정해놓은 신이 나서주기를 기다린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세컨드핸드 타임'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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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이라는 명칭이 낯선 세대도 있을 줄 안다. 1992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소련은 해체 되었다. 미국과 서로간 견제국이었던 거대 소비에트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은 당시 어린 나이의 내게도 적잖은 충격을 안겨줄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사망소식 자체가 충격적이었던 북한 김일성의 죽음이나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던 공산국가 소련의 해체는 그 벽이 무너져 통일이 된 동독과 서독의 통합보다 더 큰 놀라움일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전세계 누구라도 그 붕괴를 보며 경악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환호든 실망이든.
1990년 공산준의의 패배라고까지 불려진 그 날이 지나고 20년동안 러시아의 사람들은 어떻게 변화되어져 왔을까.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소설 코러스'라는 새로운 장르를 통해 인터뷰이들의 지난 세월을 현장감 생생하게 전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세컨드 핸드 타임>은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나 정작 러시아 사람들에게는 그리 환호받지 못하는 작품으로 남고 말았다. 그들 입장에서는 불편한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어 버린 셈이니 심기가 불편해질 밖에-.
우리에게 있어 구 소련은 그저 공산주의 국가 였을지도 모른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기껏해야 날씨가 추운 나라, 문학국가, 보드카의 나라, 발레국가 정도의 인식이 있지 않았을까. 아, 또 하나가 보태어졌구나! 김연아의 메달색을 바꾼 올림픽 주최국. 그 정도 외에는 깊게 관심두지 않았던 나라 소련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유가 주어지면 모두가 행복할 줄 알았건만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책은 이념이 아닌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고 읽게 되었다. <국제 시장>이나 <쉰들러 리스트>처럼.
사실 많이 불편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소설의 형태가 아닌 방대한 양의 다수인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의 형태이다보니 익숙치 않아 한 사람의 사연이 끝나는 시점에서 끊어 읽기를 하였기 때문에 읽는 속도도 더디고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만 했다. 하지만 끔찍하다고 해서 비켜가면 안되는 일이기도 했다. 함께 안타까워해야할 사람의 역사였고 귀기울여야 할 누군가의 사연들이었으며 알고 지나가야할 1990년대였기 때문이다. 결코 아름다운 시절이 아니었다고 그들은 회상하고 있다. 두 개의 다른 이념이 서로 충돌하면서 오랫동안 서로 이웃으로 지내왔던 작은 마을 내에서 서로를 죽이는 무기로 변질되기도 했고 탐하던 남의 아내를 갈취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으며 그 변화를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정신줄을 놓은 사람들에게는 독으로 남기도 했다고 전한다. 익숙했던 세상이 뒤집혔다.
P400 우린 그때 가증스러울 정도로 순진했어요..옐친의 1990년대.. 그 시절이 행복한 시절이었는지, 광란의 10년이었는지...
어린 아이인 채로 그 시기를 지나친 사람들은, 1991년과 1993년 사태의 공포보다는, 왜 자신의 부모가 남들처럼 부자가 되지 못했는지에 더 원망의 마음을 품고 살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른으로 그 시기를 지나친 사람들에게는 상처를 남긴 시절이었다. 다름아닌 이웃들이 악마로 변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P13 모두가 자유에 흠뻑 취해 있었지만 정작 자유를 얻을 준비는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방대한 양을 읽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러시아를 소련을 잘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차라리 글보다는 영상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영상에 대한 목마름을 갈구하며 읽어낸 책이 바로 <세컨드 핸드 타임>이었다. 똑같지는 않지만 우리에게도 광복 이후 이런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을 살진 않았지만 또한 그 시기부터 지금까지에 대한 근대역사는 교과 과정에서 자세히 배우지 못해 잘 알지 못하지만 분명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혼돈의 시기가 있었으며 정의로운 사회와 먼 거리의 시절을 살아낸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러시아 인들이 느끼는 것과 대한민국 국민이 국가를 두고 느끼는 마음 가운데 공통의 감정도 있지 않을까 감히 상상해 본다. 이념적 공감이 아니라 희망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공감에 관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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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일로 여러차례 러시아를 방문하고 그 나라 사람들과 지내고 100일 넘는 기간동안 체류도 해 보았지만 저에게는 아직도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입니다.
일이 진행이 안되어 답답함을 느낄때 그들로 부터 들었던 한마디, "It's Russia" 는 그동안 이성적으로만 접근하려 했던 저의 태도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 주었습니다.
소설이지만 소설같지 않은 논법과 이야기 전개, 그리고 어제까지 옆에서 같이 비즈니스를 하던 러시아 친구가 내면의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는 듯한 형식은 참으로 마음에 깊게 와 닿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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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한 사람의 목소리가, 열 편의 글을 대신한다.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의 육성기록을 담은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이 그랬다.
학생들은 3박 4일의 수학여행을 마치고 금요일에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배에 갇힌 일반인 승객들과 더불어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남겨진 가족들이 가닿을 수 없는 수백개의 금요일은 유가족의 생생한 인터뷰로 남아 하나의 기록이 되었다. 읽어내기 쉬운 책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완독해낸 건 목소리가 주는 힘 덕분이었고, 이 책을 기억하는 것 또한 목소리 덕분이라 생각한다.
2015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세컨드핸드 타임》 또한 목소리로 이루어진 책이다. 아니, 목소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목소리 소설’이라는 독창적인 장르를 개척한 책이다. 책의 두께에 지레 겁먹은 나는, 이 책의 장르가 낯설다는 것을 핑계 삼아 책장에 꽂아두고 한참을 멀리했다. 뒤늦게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깨달았다. 장르가 아니라 이 책의 배경이 된 1990년대를 낯설어했음을. 동시에, 부끄러웠다. 얼마 전, 영화 <사울의 아들>을 봤을 때처럼. 나는 극히 일부를 알고 있었고, 어쩌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 책을 다시 설명하자면 이렇다. 우리가 응답할 추억을 쌓아가던 1990년대. 정확히는 1991년, 공산주의 체제 붕괴 이후 20년 동안 소비에트 사회의 변화와 사람들의 상실감,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 등의 정신적인 변화를 담아내고 있는 책. 나는 이 주제가 다소 어려워서, 이 책을 이렇게 읽기로 했다. ‘무엇에 대한’ 책이라고.
독재의 아름다움과 시멘트에 박힌 나비의 비밀에 대해, 살인을 하는 사람들이 신을 위해 일한다고 믿고 있는 시대에 대해, 행복과 매우 닮은 외로움에 대해, 모두를 죽이고 싶다는 마음과 그 마음을 품었다는 생각만으로도 몸서리치는 사람들에 대해, 용감한 행동과 그 결과에 대해.
그들이 말하는 ‘무엇에 대한’ 이야기는 곧 그들의 일상이었고, 삶이었다. 1990년대에 그곳을 살아낸 평범한 사람들.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작가는 무려 1,0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을 인터뷰했다고 한다. 인터뷰 끝에, 작가에게 남은 목소리 하나하나. 그것을 그저 활자로 녹여낸 책이었다면 이 책은, 일부에서 평하는 것처럼 르포일 뿐이며 소설이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결과론이지만,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답게 알렉시예비치는 목소리를 그냥 옮기지 않았다. 소설가라는 자신의 본분을 최대한 살려, ‘목소리 소설’을 구현해낸 것이다.
앞서, 때로 한 명의 목소리가 열 편의 글을 대신한다고 썼다. 이때 ‘한 명의 목소리’는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다. 그렇지만 누군가의 말을 받아 적고 그것을 정리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정성어린 손길로 다듬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렉시예비치는 묵묵히 그 길을 걸어왔고, 그 길은 앞으로도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그 끝엔 옛 소련도, 사회주의도, 희생도 아닌 ‘사람’이 있으니까.
영화 <사울의 아들> 리뷰에 이런 글을 썼다. ‘기억은 한 사람을 기억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이 책 《세컨드핸드 타임》에서는 크세니야-다니야 자매의 엄마를 기억하고 싶다. 2004년 2월 6일, 모스크바 지하철 자모스크보레츠카야 선, 아프토자보드스카야 역과 파벨레츠카야 역 사이에서 테러가 자행되었던 그날, 그 악몽 같은 곳에 있었던 한 사람.
“제 인생의 소원은 그 어떤 것 하나 이뤄진 것이 없어요.” (p.498)
“전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제게 신앙이 있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다만 누군가와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한번은 신부님이 설교를 하셨는데, 인간은 큰 고통을 만나게 되면 신에게 가까워지든지 아니면 오히려 멀어지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고 하셨어요. 인간이 만약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걸 선택한다 할지라도 그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그건 슬픔과 아픔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요. 그건 저에 대한 얘기였어요.” (p.503)
“예전에 저는 제 안에 있는 것과 좀처럼 대화를 나누지 않았었죠. 그런데 전 지금 광산에서 사는 것처럼 살아요. 걱정하고 고민하고 늘 새로운 잡생각으로 저 자신을 괴롭히죠. ”엄마, 마음을 좀 감춰요!“ 아니, 사랑하는 내 딸들아, 난 말이지, 내 감정들이 내 눈물들이 그냥 이렇게 사라지는 건 원하지 않는단다. 흔적도 없이, 표시도 없이……. 전 그게 제일 큰 걱정거리예요. 제가 겪은 모든 일을 내 아이들에게만 남기고 싶지 않아요. 다른 사람에게도 이것을 전해서 이 일들이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으면 좋겠고, 그래서 원하는 사람들이 가져갈 수 있게끔 하고 싶어요.” (p504)
이 책이 내 품에 들어온 순간 알았다. 신간평가단 활동이 아니면, 읽을 엄두도 못 냈을 책이라고. 읽어내기 쉽지 않고, 글 쓰는 건 더 어려워서 결국 마감일을 넘겨서야 온전히 책장을 덮는다. 이 글을 쓰는 내내, 몇 번이고 인상 깊었던 목소리를 다시 찾아 읽었다.
“보통 사람은 역사를 위해 살지 않아요. 그보다는 훨씬 단순하게 살아요.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집을 지으며 살아요.”
“슬픔을 겪다 보니 좋은 일들을 잊고 살았어요. 우리도 젊었을 때는 사랑이란 걸 했는데 말이에요.”
그들을 기억하는 동시에, 내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역사를 위해 살지 않는 보통 사람인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슬픔을 겪다 보니 좋은 일들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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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문구처럼 '사람의 마음 안에서 모든 것이 벌어진다'고 했는데. 정말이지 제각기 놓인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충격적인 건 이 책에 쓰여있는 이야기들이 실제 구소련 사람들의 인터뷰라는 거다. 읽다보면 '사실이 아닐거야' , '작가가 지어낸 얘기겠지' 라고 간절히 바라게 되는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만큼 괴롭고, 아프고, 잔혹하고, 또 순수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어찌보니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