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나면서부터 이산가족이다’ 라는 시인의 말을 한참 읊조렸다. 離散은 여기와 저기를, 지금과 나중을 사선으로 가른다. 엄밀하게, 직선으로 잘라내는 대신 우물쭈물 사선으로 가른다. 그렇지만 나는 그 사선을 더욱 예리한 것으로 느낀다. 사선을 뛰어 넘다보면 울먹임이 고인 웅덩이에 빠진다. 발걸음을 떼는 순간 젖은 발목이 웅덩이에 남아 있고, 그것을 되돌아보는 순간 눈물은 그대로 굳어버리고 만다.
푸른 셈법
장가 못 간 후진 씨가 도지를 짓는 단호박들이 우리 집 경계를 넘어와 암은행나무를 자꾸 건드린다
건너 밭의 고구마줄기도 비탈면을 내려와 순실이네 땅에 순을 뻗는다 지난봄 순실이 아버지가 지게로 져 나른 거름을 먹어치운 잎들은 등등하다
적동댁 문패 앞에 붙은 호두나무는 언순네로, 언순네 포도는 적동댁 수돗가로 넘어가서 소유권이 불분명하다
넘어온 고구마순을 쳐내는 순실이 아버지의 입이 부어 있다
낫을 들어 담장을 넘어온 호박순을 치려다 그만둔다
머위나 돌나무 미역취에서 방풍까지 푸른 것들은 자기 땅이 없다
뿌리나 가지를 뻗은 곳이 그들의 필지다 열매나 꽃을 피우는 모든 곳이 그들의 소유다
경계면을 녹녹(錄錄)으로 훑으며 마당으로 들어서는 어린 돼지감자 떼의 종종걸음
시인의 셈법이 아니 문법이 고와서 읽으면 정서가 소박해진다, 그러면서 유려해진다. 오래 되었어도 아직 삭지 않은 감정이, 짙은 색 독에 가라앉아 있던 진정성이 불시에 떠오른다. 움막의 거적을 들추고 밖으로 나설 마음이 생긴다. 자연은 피로하지 않으니 오래 맛보아도 산책자의 마음에 허물 남기지 않는다. 짜증 부리던 날들이 저절로 저물어서 우주 안으로 기울어가는 걸 바라볼 여유가 생긴다.
“쉰을 넘는다는 건 / 허공으로 난 사다리를 오르는 일 // 지상의 낯익은 온기들과 멀어져 / 바람과 구름의 낯선 사원을 지나 / 자기만의 별자리를 찾아 1인극 하듯 가는 것 / 진짜 우는 배우처럼 그 역(役)을 사는 것” - <감나무사다리> 중
모니터를 마주하는 내내 비가 내리는 중이다. 비를 피해 숨어들었던 우산 속에서 전설은 시작되고, 전설을 피해 밖으로 나서면 길은 우묵우묵할 것이다. 털 곤두세우고 꼬리 부풀린 고양이 한 마리 웅덩이 피해 달아난다. 사랑이 끓어오른 또 다른 고양이 한 마리 방금 그 고양이가 피한 웅덩이를 껑충 뛰어넘는다. 고양이 그림자를 위로 옆으로 품은 웅덩이에 사랑이 일으킨 파문이 남는다.
뽑히지 않는 사랑
독에 메주가 가라앉듯
푹 삭아 떠오르지 않는 것
다리가 무거운 것이 아니라 심장이 무거운 것
밤이 낮으로 다시 밤낮으로 자꾸만 바뀌는 지구의 난폭한 자전축
모든 물방울들 전깃줄에 매달려
터지기 직전의 노래를 입에 틀어막고 있는 것
속이 빈
눈밭의 무처럼
파랗게 견디는 것
너를 한 번 더 견뎌보는 것
살아가는 한파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고양이와 웅덩이가 내통하여 길이 생긴다. 길을 벗어나고 싶지 않은 안정적인 사랑이라고 위태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길 위의 사랑과 길 밖의 사랑이, 웅덩이 위의 사랑과 웅덩이 옆의 사랑이 한 소쿠리에 담겨 있다. 우주가 우리에게 내민 소쿠리에서 그저 제게 맞는 사랑 하나 골라내다보면 지난해보이는 우리의 삶도 훌쩍 지나가고 만다. 목덜미 휘감던 사랑의 기척은 이번 삶의 후렴처럼 남을 뿐이다.
“말에 잡내를 없애기 위해 // 늘 자신을 문책했던 사람 // 삶을 단 한 문장만으로 남기고 싶지만 // 그 뼛가루마저도 덧없어서 강물에 흩어지길 원하는 사람” - <그 남자> 중
자신의 말에서 끊이지 않는 잡내를 견뎌내는 일은 모두에게 쉽지 않고, 그 잡내 없애려는 노력은 잠시의 소홀에도 좌절되고 말 것이다. ‘말에 잡내를 없애기 위해’ 애쓰는 ‘그 남자’ 시인의 말에 휘감길 수 있었던 시간은 그래서 소중하다. 말의 잡내 없앨 수 있는 나만의 레시피 같은 것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자칫 균형감각 잃은 정체불명의 요리 내놓게 될 지라도...
박승민 / 슬픔을 말리다 / 실천문학사 / 139쪽 / 2016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