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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그만두고 딱히 해야 할 일이 없어진 후, 하염없이 주어지는 여유로운 일상에 순간순간 당황스러워진다. 이렇게 한가해도 되나, 이렇게 여유로워도 되나, 이렇게 아무 걱정 없이 놀고 있어도 되나, 이래도 되나...... 자꾸만 마음 한 곳에서 불안감도 솟고, 뭔가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조바심도 들고, 나이 드는 일도 연습이 필요한 건가 싶고. 나는 지금 아주 낯선 방황기에 접어든 건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이런 내 마음을 달랠 수단으로 선택한 책이다. 먼저 나이 들어 본 사람의 이야기, 이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내 미래를 체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더러 비슷한 주제의 책들을 읽었는데, 이 책은 조금 다르다. 내가 살아 보니 이렇게 이런 식으로 나이 들어 가는 게 좋겠다고 하는 어떤 방향이나 길을 제시해 주는 책이 아니다. 나, 이렇게 살아 왔다, 잘 살아 온 시간도 있고 그렇지 못한 시간도 있는데 그게 다 내 인생이더라, 삶에는 잘했다는 것도 못했다는 것도 없이 각각 고유한 인생의 가치가 있는 것이더라, 그저 그렇더라, 그리고 끝. 이거 뭐지? 하는 당혹감이 설핏 일어나기도 했는데. 책의 흐름에 따라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보았다. 차례에 따라 작가가 한 일을 나도 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가, 너무도 솔직한 고백에 아,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구나 했다가, 자신의 삶을 통째로 드러내는 일은 여간한 용기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구나 하는 깨달음까지 얻기에 이르렀다. 어쩌면 나이 들어 자신의 삶을 털어 놓는 데에는 솔직함보다 가식이 더 큰 힝을 발휘하는 게 아닐지, 그래서 그 많은 유명인들의 회고록들이 읽을 가치가 없는 글들이 되고 말았던 게 아닌지, 나는 온통 부정적인 예시에 해당하는 글들만 떠올리고 만다. 솔직하지도 않고, 자기 자랑만 늘어 놓고, 그조차도 꾸며 놓고, 반성도 없고, 늙어서 끝내 꼴불견인 상태가 되고 마는 무수한 사람들의 형편없는 책들, 도서실에 넣고 싶지 않은 책들. 이 책의 작가에게 내가 느끼는 이 마음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호감은 아닌 것 같고, 존경심이 드는 것 같기는 한데 뭔가 배우고 싶다거나 따르고 싶다거나 하는 부분은 없고, 솔직한 성격은 존경을 너머 부담스럽기까지 하고,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이 책을 내가 나이가 더 든 후에 꼭 한 번은 더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든다는 것. 90 즈음의 작가가 쓴 책이라 아직 내게는 멀어 보였던 것일까. 죽음이라는 게 꼭 나이의 숫자에 맞춰 맞아들이는 건 아닐 텐데.
이 책을 읽고 뭔가 얻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이 기분, 참 낯설다. 책을 읽고 나면 대체로 뭔가를 얻었다(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해도, 심지어 이런 책은 읽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까지도)는 성취감이나 만족감에 흐뭇했는데 이 책은 모르겠다. 나를 온통 뒤섞어 놓기만 하고 슬그머니 물러서 있는 것 같다. 도대체 어떻게 늙으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