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아이 이지만 세계적 거장 앤디워홀을 책으로 접하게 되어 다방면으로 도움을 받습니다. 학원교재로 접했지만 읽고나서 관련 바탕지식을 함께 나누니 좋더라고요. 아이들도 예술계통의 이야기를 접해볼수 있어 좋은 기회였던것 같습니다. |
| 이름은 귀에 익은데, 고전적인 예술가가 아니라서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창의적인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다루는 미술수업을 좋아하는 10살 손녀와 함께 읽고 싶어서 골랐다. 미국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병약한 소년. 어려서부터 그림 영화 사진을 좋아했다고 한다. 미술교사를 꿈꾸다가 광고 이러스트레이터를 택했고, 상업적 디자인 분야에서 명성을 날렸다. 그 후 순수미술로 진출해 '농담같은 그림'을 그려 거장의 반열에 올랐고,팝 아트의 대가로 기록되었다. 이해하기 쉬운 작품으로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예술의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손녀와 함께 앤디 워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의 작품세계를 더 잘 이해하게 되길... |
|
여의도 더 현대에서 진행 중인 앤디 워홀 : 비기닝 서울을 보면서 그의 생을 알고 싶어 책을 읽게 되었다.
그 중에서 전시회와 연관되어 인상 깊은 부분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처음 그곳에 들어서자 본 작품은 실크스크린 기법을 이용한 그의 자화상이였다. 실크스크린이라는 기법과 초상화는 전시장에서 그리고 책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왔고 몸이 병약해 병원에서 지내기도 했다. 그 시절동안 그는 드로잉을 지속적으로 하고 사진과 영상을 만드는 것에도 관심을 가졌다. 이를 어머니는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었다.
유년기 시절을 드로잉과 창작으로 보낸 그는 카네기 공과 대학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을 선택했다. 그후 뉴욕으로 가서 장차 꿈을 펼친다.
산업디자인을 살려 상업미술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 자신의 드로잉을 포트폴리오로 만들어 여러 곳에 뿌린 후 대부분의 곳에서 선택을 못 받아가 패션잡지인 <글래머>에서 구두 드로잉을 원해 하루만에 50장을 그려 가져간다. 이를 계기로 1952년 6월 16일부터 7월 3일까지 뉴욕의 휴고 화랑에서<앤디 워홀 : 트루먼 커포터의 글에 기반을 둔 열다섯 개의 드로잉>전을 개최했다. 그의 첫 번째 전시회였다.
그 전시회 이후 상업미술로 이름을 날려 그는 바빠졌지만 자신의 속에 공허함이 느껴졌다. 그 감정은 순수미술에서 온 것이었다. 이를 천천히 풀어나가고 싶은 그는 카툰을 그려 갤러리에 가져 갔지만 그의 친구인 로이 리히텐슈타인과 몇몇의 화가들이 이미 시도하여 작품을 받아주지 않았다.
이에 대한 고민 끝에 우리가 주변에 볼 수 있는 것을 모티브로 그려냈으며 그 중 대표작으로 코카콜라와 통조림이 있다. 이에 대한 그의 미술테마가 확립되지 않은 시기였기에 이것또한 작품인지 논란이 많았다. 그 후 이러한 범주를 우리는 팝아트(pop art, 대중미술)라 칭했다.
이 작품을 통해 상업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가 모호해졌으며 우리 주변의 것들이 예술로 표현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영화, 잡지 그리고 방송으로 확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예술의 순수성만이 아닌 사업성으로 진취적이었다. 생계에 필수적인 요소가 '돈'이라는 것을 염두했으며 벌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천재성과 욕심을 본다면 돈은 그의 욕구를 실현시키기 위한 필수 요소였기에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의 일생을 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 앞으로의 미래가 그려졌다. 하나만이 아닌 둘 이상을 가지고 이전에 생각만 했거나 생각하지도 않은 창작물을 보여야 한다. 그곳엔 철학은 물론이며 다른 사람들이 납득하고 원해야 한다. 자신만의 작품이 아닌 만인의 작품으로 되어야 비로소 가치를 인정받는 시대인 것 같다. 만약 자신만의 작품이면 이 시대가 아닌 다른 시대에 빛을 발할 수 있겠지만(빛을 발한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현실은 참혹할 것이다.
그의 일생을 통해 전시회에서 보이지 않는 스토리까지 섬세하게 들여다 보는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