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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치열하게 살아내진 않았어도 때로 끝모를 슬픔이 밀려드는 때가 있다. 삶의 균열같은 게 느껴지는 순간 말이다. 보이기에 젊은 모습이었어도, 또는 우아한 자태를 지녔더라도 남이 알 수 없는 생의 상처 하나쯤은 짊어지고 쓸쓸한 뒷모습을 들켜버릴 때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는 생이 기대라는 것들을 모두 소진하고 잠시 지쳐있을 때, 삶이 삶에게 권태를 느낄 때, 돌풍같이 달려오고 난 뒤의 허탈함이 찾아왔을 때...
그런 때에 밀려드는 슬픔을 밀쳐내기 위해 자신을 진단하고, 주변을 돌아보고, 성큼 멀어져버린 관계들을 다시 챙겨도 보고. 그리고, 치료하는 방편 하나 - 체념. 그래 난 세컨드야.
딱 그런 마음으로 속 안이 번잡스러울 때, 내 속을 누군가 훔쳐본 것 같은 제목을 가진 시집. 그리고, 내 가슴 깊은 번민을 들켜버린 것 같은 시들. 시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게 되다니...
세상에 이렇게 슬프게도 시를 쓰는 사람이 있구나. 슬픔에 지쳐 생의 저편을 넘보는 이가 쓴 시가 있구나. 나 말고도 아침에 일어나면/ 늘/ 어떻게 하면 어제보다 좀 덜 슬플 수 있을까/ 생각해요....../ 하고 통화를 하는 이가 있구나.
설운 한 마디들이 슬픔 알갱이되어 흰 눈처럼 겨울 비어버린 나무 우듬지에 몰려있는 시편들이다. 님의 시는 단숨에 녹아버리는 솜사탕이 아니라, 오래오래 입 안에 굴리며 빨아먹는 추파춥스 사탕처럼 하루에 하나씩 혀끝으로 녹여 그 향을 음미하며 마음으로 삭여내야만 할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그래 다른 생은 잘 있던지 검정 양복의 연인처럼 그리운 밤 카페들과 눈물처럼 글썽이던 막차의 차창들은 철제 셔터 내려진 어두운 상점들은 붕대같이 하얗게 빈 도로는 정든 미치광이 친구들 무청 같은 새벽거리는 있기는 정말 있던지 아침마다 조용히 이불 밑 그대로이던 네 흰 발목의 검정 갈기는 정말 담을 넘었던 것인지 실밥처럼 흰눈 쏟아지는 밤거리를 달리기는 달렸던 것인지 달려 다른 곳 다른 시간이 정말 있기는 있던지 나 살았던 것 같기도 하고 살아보지 못한 것 같기도 한 다른 창 밖 다른 생이 - <그리운 심야>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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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소유에 익숙해있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은 자신조차 소유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섣부르게 남을 소유했다 믿는다. 가끔 내가 소유한 것이 신기루이거나 족쇄 혹은 감옥이 되는 경험도 한다. 그래도 소유라는 공허한 존재감을 포기하지 못한다. 내 집. 내 남편. 내 아이. 내 재산. 내 지위.
나를 구성하는 모든 것을 엄밀히 열거해보면 그 속에 진정한 내 것이 있는가. 임시로 임차했거나 우연히 동석했거나 지나가는 무엇이다. 슬픔도 기쁨도 세상에 영원한 것이 없듯이 모든 관계는 불안정하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있어 나는 세컨드이고 부가적 존재를 견뎌야한다. 단지 내 삶에 있어 나 자신은 당당한 조강지처이고 싶다. 진정 옹골지게 안방차지 해야 할 집은 바로 나 자신이다.
잘 당긴 현에서 안정된 고음이 나오듯 김경미의 비망록은 탄력있는 20대의 시였다. 그의 세 번째 시집에선 쓸쓸함이 사무쳐 선연한 상처가 되어버린 30대의 절창이 흘러나온다.(물론 작가는 59년 생이지만)
'넓고 따뜻한 식빵에게 안겨봤으면 좋겠어/(방명록)' '마음의 길들은 다 아프다/..... /그렇게 세상을 또 한번 건너가라고/ 신호등도 비로소 푸른 빛이다//(밤, 속옷가게에서)' ' 꿈의 배경이 또 어둡다. 먹지 씌워 베껴낸 저녁 어스름/ 삶의 한 마음은 언제나 거기에 가 있으니// 왜 행복이 두려웠는지를 생각해보면/ 거기 쓸쓸함이 없어서였음을/(저녁)' '나는 왜 극장처럼 어두워져서야/ 삶이 상영되는 느낌일까//(방명록2)
그녀를 살아버티게하는 힘은 외로움. 그러나 여전히 그리움의 흡반. 생의 뇌관을 움켜쥐고 있다. 그래서 아편쟁이처럼 쓸쓸함을 끊지못하는, 본색이 작가다. [인상깊은구절] 하루종일 사진 필름처럼 세상 어둡고 몸 몹시 아프다. 마음 아픈 것보다는 과분하지만... 빈 옷처럼 겨우 일어나 창 밖을 내다본다. 개나리, 진달래, 목련 온갖 꽃들이 다 제 몸을 뚫고 나와 눈부시다. 나무들은 그렇게 제 흉터로 꽃을 내지 제 이름을 만들지. 내 안의 무엇 꽃이 되고파 온 몸을 가득 이렇게 못질 해대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