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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구성원 중 어느 한 사람과 영원히 이별한다는 것은 남은 사람들의 가슴 한편에 허공을 만드는 일일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대체불가의 빈 공간, 그 허공으로 인해 가슴에는 이따금 스산한 바람이 불고 따뜻한 봄날이나 한여름 무더위에도 오소소 한기를 느끼기도 합니다. 세월이 약이라지만 세월보다 더 질긴 게 사랑이고 그리움인 듯합니다.
미국의 전직 코미디언이자 방송인이었던 리사 고이치의<엄마와 보내는 마지막 시간 14일>을 읽는 내내 재작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특별히 정이 깊었다거나 각별했던 부자간도 아니었건만 가족이라는 보이지 않는 끈이 문득문득 당신을 생각나게 합니다. 더구나 온 가족이 모이는 설과 같은 명절에는 그 감정이 격해지게 마련이지요. 아직도 저는 그날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슬비가 추적추적 내렸던 8월의 어느 날, 당신은 구급차에 실려 보라매 병원 응급실로 향했었지요. 에어콘 바람이 얼마나 차던지 얇은 병원 이불 한 장만 겨우 덮은 채 병상에 누운 당신은 밤새 떨었습니다. 보다 못한 누나가 두툼한 이불 한 채를 집에서 가져오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그렇게 뜬 눈으로 밤을 새운 다음날 아침, 주치의 면담 시간이 어찌나 길고 막막하던지요. 가망이 없다는 말보다 더 가혹한 것은 퇴원을 할 수 없다는 말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당신은 가족 누구도 원치 않았던 노인 요양병원으로 보내졌습니다. 그것이 마지막임을 당신도 직감했겠지요. 이번 설에도 가족들은 고해성사를 하듯 그때의 일을 되짚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죄책감과 함께 말이지요.
"나는 잠깐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상황을 파악하며 장례식장 직원들이 와서 엄마를 데려가 우리도 못 알아보게 만들어놓기 전에 엄마 얼굴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바라보았다. 그리고 앤지와 함께 방으로 돌아와 나지막이 흐느끼다 잠이 들었다. 생각했던 것처럼 나는 거리로 뛰쳐나가 대성통곡하며 달리지 않았다. 엄마 몸 위로 쓰러져 억지로 떼어낼 때까지 달라붙어 있지도 않았다. 엄마의 손을 놓지 않겠다고 떼를 쓰거나 엄마를 살려달라고 간청하지도 않앗다. 전혀." (p.262)
2011년 12월 작가는 부모님과 함께 긴 주말을 보내기 위해 고향을 찾았다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게 됩니다.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던 엄마가 더 이상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신장투석을 받지 않고 엄마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14일. 엄마는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결정한 셈입니다. 14살 위의 오빠는 적극적으로 반대했지만 작가는 엄마의 뜻을 존중하기로 작정했습니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집에서 엄마를 돌보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춥니다. 10살 위의 언니가 합류하여 작가와 교대로 엄마를 간호하게 됩니다. 가족들은 엄마의 평화로운 죽음을 위해 서류정리며 유품정리를 대행하고, 지인들과의 마지막 인사, 장례식 준비 등 이 세상과 결별하기 위한 모든 절차를 밟아나갑니다.
"나는 엄마의 결심을 백 번이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결심을 실토했을 때 엄마에게 평온함이 엿보였다. 어떤 기운 같은 것이 엄마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자주 빛의 기운. 치유의 빛. 실로 오랜만에 엄마가 진정으로 행복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손에서 뭔가를 놓았을 때 비로소 평화를 찾는 법이다. 그렇게 밀리 고이치 여사도 드디어 평화를 찾았다." (p.36)
퇴원할 당시 작가의 엄마는 몸무게 30Kg에 백내장과 심한 척추측만증, 신장 기능 이상으로 제대로 볼 수도, 걸을 수도, 앉을 수도 없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게다가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거실에서 딸들에게 자신의 용변마저 처리하도록 할 수밖에 없는 처지는 참으로 참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작가와 그의 가족들은 차분하게 대응한 듯 보였습니다.
"어머니가 제게 보내준 사랑과 지속적인 격려, 무한한 신뢰가 없엇다면 전 아마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위" 어딘가에 있을 어머니, 이 종이 위에 적힌 모든 단어를 안내해주고, 또 평생동안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우리의 천국 소풍에서 다시 만나기로 해요." (p.275 '감사의 글'중에서)
저에게도, 당신에게도,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시간은 그 누구도 알 수 없겠지요. '죽음만큼 확실한 것도 없는데 사람들은 겨우살이는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고 톨스토이가 말했던가요. 산 자에게는 죽음보다도 겨우살이가 또는 하루의 먹거리가 더 다급한 것이겠지요. 우리는 그렇게 평생을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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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보내는 마지막 시간 14일 리사 고이치
사랑하는 엄마의 인생의 마지막을 지켜봐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의연해질 수 있을까. 나보다 몇 천배는 더 힘들 엄마 앞에서 내 걱정은 말라는 듯 웃어줄 수 있을까.
<엄마와 보내는 시간 14일>에서 나는 두 가지의 질문을 숙제로 받은 것 같았다. 내 인생에선 가급적이면 없었으면 싶은 질문이다. 나는 누군가와 이별을 해본 적이 없다. 가족이거나, 가족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 중 내 곁을 떠나간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더욱 아득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나는 아직 ‘탄생’에만 익숙한 사람이다.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나는 엄마가 아파서 회사에 병가를 내고 누워있던 순간을 떠올렸다. 끙끙 앓다가 잠든 엄마의 옆에서 두 동생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치만 보던 내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 장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목이 메인다. 그런데 저자는 나와 처한 상황부터 다르다. 먼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엄마가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한다. 딸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가슴 아파 눈물 흘리는 엄마의 슬픈 얼굴을 마주한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분주한 가족들 틈에 엄마는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어 눈물을 쏟는다.
시간이 흐르면 나는 엄마의 나이가, 엄마는 할머니의 나이가 될 것이다. 엄마는 으레 우리에게 할머니 나이가 되면 절대 딸들을 힘들게 하지 않겠노라고 말한다. 나는 그것을 ‘괴롭힘’이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생각은 이 책을 읽으며 좀 더 단단해졌다.
엄마에게 확실히 말해주어야겠다. 나 역시 책의 저자 '리사 고이치' 처럼 미래의 모든 일들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또 책 때문에 갑자기 든 생각이 아니라, 나는 언제나 늘 엄마를 사랑하고 있다고.
엄마의 생명은 이제 내 손에 달려 있었다. 옆으로 돌아눕는 아주 쉬운 일에서부터 변을 보고 뒤처리하는 좀 더 까다로운 일까지 엄마는 아무것도 혼자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일들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 되었다. 반드시 내가 해야 될 몫으로 할당된 것은 아니었다. 자연스레 내 일이 되었다. 두말없이. 사람은 자연이 요청하면 순응하기 마련이다. 내가 갓난아이였을 때 엄마도 분명 이런 감정이었을 것이다. (p.83)
언젠가 나도 엄마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던 것은 나의 엄마라는 훌륭한 롤 모델이 있어서였다. 엄마는 자식을 보살피는 일이 하나도 어렵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또 엄마는 아이인 것이 즐겁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엄마는 엄마들 중의 스티브 잡스였다. 내게도 엄마의 발자취를 따라갈 기회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p.234)
엄마의 인생에서 이 성스러운 시간에 엄마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지금껏 받은 선물 중 가장 귀하게 여겨졌다. 바로 우리, 엄마의 가족이 엄마를 천국 문으로 이끌어준 안내자들이었다. 엄마의 손을 잡고 이 세상에서 다음 세상으로 에스코트해준 이들. 그녀의 자식들이, 그녀의 남편이 마지막 숨이 육체에서 빠져나갈 때 엄마의 천사에게 손을 인도해준 것이다. 그것은 정말이지 종교적인 체험이다. 엄마의 마지막 숨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나의 최초의 숨도 엄마에게 영혼을 흔드는 전율을 가져다주었는지 궁금해졌다.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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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은 언제나 안으로만 굽는다. 같은 조건이라면 평소 가깝게 지낸 사람, 나와 무어라도 하나 공통점을 지닌 사람에게 뭐라도 하나 더 주고픈 마음이 들 때가 많다. 하물며 한 때 한 몸이었던 존재에 대한 느낌은 특별할 수밖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로 많은 이들이 손꼽고는 하는 “엄마”는 그런 존재다.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에서 등장인물은 엄마가 언제 가장 보고 싶냐는 질문에 “엄마는 항상 보고 싶다”고 답했다. 같이 있음에도 그리운 존재, 엄마. 그런 엄마를 영영 볼 수 없게 되는 순간이 오면 과연 견딜 수 있을지, 생각을 할 적마다 나는 침울함에 빠져든다. 순간 세상이 갑자기 어두침침해지고 삶을 향한 자신감을 상실한다. 그 때가 오면 어찌 행동할지 모르나 아직은 그렇다. 죽음에는 종류가 많다. 저자는 죽음의 종류를 셋으로 구분한다. “그 사람 골프 치다가 갑자기 죽었다”처럼 한 순간에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방식의 죽음, “살 날이 일 년도 안 남았습니다” 식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는 것, 마지막은 돌연사와 시한부 중간에 끼인 죽음이다. 온몸의 피를 밖으로 빼내 인공적으로 정화해 다시 몸 안에 주입하는 투석은 상상만으로도 나에게 피로를 선사한다. 여든이 훌쩍 넘은 고령의 연령대에 투석을 시작한 저자의 엄마는 그 과정이 끔찍했던지 한 달 만에 더는 투석을 않겠다는 선언을 하고야 말았다. 연령대만을 놓고 보았을 땐 이르다고 할 수 없지만 그 죽음이 내 엄마의 것이라면 쉬이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신장의 기능이 완전히 멈추기까지는 길어야 14일. 죽음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기에는 짧아도 너무 짧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에겐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오빠와 언니가 있었다. 든든하게 의지할 수 있는 형제가 둘이나 있기에 전적으로 그녀가 모든 것을 짊어질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혼란까지 피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분명히 슬프고 인정하기가 싫었을 텐데도, 살아 있는 사람을 죽어가는 사람으로 대하지 않기 위해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 죄책감이 든 적도 분명 있었을 거다. 이를 테면 어머니는 죽어 가는데 예약해 놓은 공연에 갈 수 있을지 여부를 고민한다거나 크리스마스에 대한 생각이 잠기는 순간이 그랬다. 결국 산 자는 제 몫의 삶을 꾸려가야만 하는 게 세상의 이치인데, 자연스레 그것들이 순응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이 세상에 몇이나 존재하겠는가. 지금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것들이 엄마에겐 다시는 겪을 수 없는 무언가,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붙여야만 하는 무언가라는 걸 저자는 순간순간 깨달았다. 아, 육신의 고통은 나눌 수 없지만 정신은 달랐다.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프면 집안이 무너진다는 식의 말이 무얼 뜻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엄마가 자살을 하려는 게 아닐까란 고민도 살짝 등장은 한다. 치료를 않으면 죽는다는 사실이 명백한 상황에서 치료를 거부하는 건 곧 자살과 동일한 결과를 낳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저자가 처한 환경은 우리의 일반적인 환경과는 많이 달라 보였다. 일단 환자 스스로가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는 자살이 아니라 무의미한 치료를 거부함으로써 제 삶의 존엄함을 지켜낸 것이었다. 엄마의 선택은 존중 받았다. 심지어 그녀는 지역에 존재하는 수많은 자원들로부터 도움을 얻었다. 고통을 줄여주는 호스피스가, 그녀 자신과 가족들의 혼란과 상심을 달래줄 사회복지사가 죽음의 과정에 함께 했다. 이 모든 것을 이상적으로 그려내고자 하는 건 아니다. 그래봤자 미국이다. 자유가 너무도 중시된 나머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건강보험조차도 도입이 못 되고 있는 곳이 바로 미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이 함께 만들어 간 14일의 시간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그렇게 생은 완성됐다. 멋들어진 문장의 마지막에 마침표를 그려 넣듯이, 가족들은 엄마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함께 했다. 한 해에 죽는 사람은 아마 수도 없이 많을 거다. 대개가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고, 끝까지 살아보고자 노력했지만 그와 같은 시도들이 성공을 거두지 못해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게 자신의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잖은 이들이 제 의지를 반한 생을 택하고, 그 결과 오랜 기간 괴로움으로 앓다가 세상을 떠난다. 인간이 하나의 ‘환자’로 전락하는 그 과정으로부터 ‘인간다움’을 발견키가 쉽지 않음이 서글프다. 내 부모의 죽음은 과연 인간다울까, 나는? 죽음에도 준비가 필요하다는 말이 오늘따라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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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의 소풍, 그 마지막 14일
자신 혹은 가족에게 삶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온다면 그 느낌이 어떨까? 일반적인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떠올리거나 깊이 있게 고민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있겠거니와 당장 살아 있는 모습에서 정 반대의 상황을 떠올린다는 것 자체가 현실성이 떨어지며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은 외면하며 살아가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실제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시작할 때 항상 결과를 염두하고 그 일에 착수하곤 한다. 새해를 다짐하는 모든 이들의 의지가 그러할 것이고, 계획과 목표 아래 시작된 행동 또한 그에 따른 몸짓이자 습관일 것이다. 이렇듯 모든 시작과 과정에는 항상 결과에 대한 고려가 수반된다. 생의 마지막 순간도 마찬가지다. 인생 항로의 결과를 생각하고 진지하게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 이것은 우리의 삶을 보다 가치 있게 만들뿐만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힘, 일상에 대한 감사를 느끼게 한다. 더불어 관계에 대한 소중함과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가치를 발견하게도 한다. 유대인 랍비들이 죽음을 ‘인생의 아름다운 준비’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별과 죽음에 대해 사유하는 시간은 우리가 바라보는 인생의 순간순간을 보다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프레임으로 장식해줄 것이다. <엄마와 보내는 마지막 시간 14일>은 이렇듯 죽음을 바라보는 가족 구성원의 입장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막내딸이 어머니를 보내며 기록한 14일간의 일기장이자, 그의 어머니가 사랑받는 존재임을 일깨워준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감사의 편지다.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인 인생에 대해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하곤 한다. “지상에서의 소풍” 그녀의 어머니 밀리 고이치는 생전(生前)의 소풍을 마감하며 가족들과 함께 14일이라는 시간을 소중히 보낸다. 모든 스토리가 기승전결을 가지고 흐르듯 리사의 어머니 밀리가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의 흐름은 슬픔과 공허함이 감사와 기쁨으로 승화되는 결말을 가진다. 추운 겨울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작품의 내용은 그녀의 어머니를 통해 느끼는 가치와 시간들이 산타가 주는 성탄절 선물과도 같으며, 눈 내리는 추위 속에서도 따뜻함을 전하는 여정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족 구성원들이 느끼는 순간순간의 감정과 상태는 독자들이 ‘죽음’에 대해 함께 공유하고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엄마가 먼저 일어나야 가족 전체가 기상하는 게 우리 집의 보이지 않는 규칙이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를 안내해줄 엄마가 없어 우리 모두는 길을 잃고 말았다. - 책의 내용 중 133쪽
어머니의 빈자리로 인해 드러나는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역할과 소중함. 그 역할의 부재로 나타나는 허전함과 공허함은 모든 집단과 구성원이 그렇듯 아쉬움과 슬픔으로 주변인들의 가슴을 메운다. 사람들은 때로 이러한 상황 속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물질적 욕구와 헛된 욕망을 갖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채움들은 잠시 동안의 만족만 줄 뿐 결국 또 다른 공허함을 낳는다. 한층 멀리 내다본다면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 큰 안정과 여유를 주는 것이다. 작품에서 밀리가 보이는 비움의 자세는 독자들로 하여금 내려놓는 것의 가치를 일깨우도록 돕는다. 그리고 우리를 보다 편안하고 부담 없는 관계로 인도한다. 그녀(밀리)는 어쩌면 ‘비움’이라는 가치를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죽기 직전까지 자신의 소유를 정리하고 비워나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노라면 가족들에게 최대한 부담을 주지 않으려 마지막까지 노력하고 헌신하는 우리네 어머니들 모습이 잘 비춰진다. 그는 늘 그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기를 좋아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렇다보니 아주 깜짝 놀랄 만큼 전혀 뜻밖의 호의가 아닌데도, 눈물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책의 내용 중 139쪽 엄마는 눈물을 터트렸다. 아버지도 눈에서 눈물을 훔쳤다. 나는 엄마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사랑받는 사람인지 말해주었다. 우리 셋은 잠시 앉은 채로 우리가 인생에서 누린 축복과 친구들에 대해 새삼 고마움을 떠올렸다. - 책의 내용 중 143쪽 우리가 베풀 수 있는 사소한 호의들이 그 누군가에겐 크나큰 의미이자 구원의 동아줄이 될 수도 있다. 슬픔에 빠져있거나 절망적인 순간, 절박한 상황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라. 즉 ‘비움’이라는 것은 ‘나눔’과 연결되는 통로임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도움을 주는 이에게는 기쁨과 보람, 베풀 수 있는 상황에 대한 감사함을 줄 것이고, 받는 이에게는 그런 감사와 감동, 자신의 존재 가치를 다시금 느끼는 축복을 줄 것이다. 자신이 주위 관계들로부터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지를 알게 만드는 그런 것이리라 생각된다. 리사의 어머니 밀리 또한 자신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보며 그런 감동을 느끼고 감사하고 있다. 책의 곳곳에는 그런 감사의 문장과 흔적들이 고스란히 등장한다. 눈 내린 하얀 설원, 의도하지 않아도 자신을 증명하듯 자연스레 찍히는 발자국처럼 말이다. 우리에게는 엄마와 함께 지내는 짧은 마지막 날들이 선물이니까. 지난 49년 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그 선물. - 책의 내용 중 178쪽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인생의 선물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린왕자>에 나오는 한 구절처럼 정말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리라. 작금의 자극적이고 물질적인 것들로 가득한 세상은 보이는 것만이 진리이고, 그것이 전부라고 착각케 만든다. 눈을 돌려 진정으로 소중한 것들을 발견하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 그 선한 마음을 지키는 힘이 필요한 시기이다. 그 힘은 우리가 처하는 어둡고 힘든 상황을 대처하고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견뎌내며 자신만의 가치를 만들어 갈 것이다. 인생에서 무언가를 견뎌낸다는 것. 이것은 삶에 대한 용기의 표본이자 적극적인 삶을 살고자하는 인간적 성숙의 과정이 아닐까.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하염없이 엄마를 바라보았다. 맞은편에서 엄마의 손을 잡고 이야기하며 울고 있는 아버지를 보며 인생에서 뭔가를 견뎌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 책의 내용 중 190쪽 64년을 함께한 부인을 먼저 떠나보내야 하는 남편이자 동반자로서의 아픔,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며 가장으로서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이 시대 우리 부모님들 어깨에 놓인 삶의 무게와 크기를 조금이나마 가늠토록 만든다. 신은 우리를 보다 성숙한 부모이자 성인으로 만들고, 그 사명을 감당케 하기 위해 오늘도 인내와 시련의 시간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와 보내는 마지막 시간 14일>은 이렇듯 인생과 죽음의 관계를 세밀하게 묘사하며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가치와 물음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어진 14일을 단순한 죽음의 과정이 아닌 그 안에 존재하는 숨은 가치와 선물들을 발견하는 시간으로 채워나간다. 때론 눈시울이 붉어지고, 때론 기쁨의 웃음을 선사하는 이 작품은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의지를 북돋는 책이며 가족 및 자신을 둘러싼 존재들에 대한 감사를 느끼게 하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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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것은 내 코앞에 있다가 무릎 위로 털썩 주저앉더라도 냉큼 이해할 수 없는 특별한 무엇이니까." 죽음에 관해 많이 읽고, 또한 누구보다고 자주 접하게 되는 직업임에도 역시 죽음은 냉큼 이해할 수가 없다. 지난번 읽었던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아주 편안한 죽음>과 마찬가지로 어머니의 죽는 과정을 지켜보는 딸의 시선이다. 그러나 이번엔 미국식이다. 프랑스적으로 깊이 세세히 파고들지 않는,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사변적인 느낌이 아니다. 좀더 캐주얼하고 가볍다. 그러면서도 일상에, 실제에 더 가깝게 느껴져 언젠가는 나도 겪게 될 일이라는 것이 더욱 명확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역시 나는 한국인이라서 그런지 그들의 죽음 앞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초연한 태도가 약간은 거리감 있게 느껴지기도 했다. 책장을 덮는 마지막까지 눈물은 나지 않았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80대 노인에 체중도 30kg대로 아주 노쇠한 상태이다. 그러므로 투석을 견디기가 힘들어 더이상 투석을 받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그 선언에 아들과 딸들이 벌이는 논쟁에 누가 옳다고 편을 들 수 없었다. 너무나 어려운 결정이기에. 힘겨운 투석으로 삶을 이어가는 것이 옳으냐, 인간으로의 존엄성을 지키며 마지막 생을 즐기며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옳으냐... 참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어쨌든 책에서는 어머니의 의사를 존중하여 투석을 받지 않고 집에서 호스피스 케어를 받기로 한다. 투석을 하지 않고 버틸 수 없는 생은 약 14일 정도. 그 시간의 기록들이 이 책이다. 책의 저자가 말하듯 죽음에는 아무런 준비없이 어느날 갑자기 맞이하게 되는 돌연사가 있고, 암 등의 질병에 걸려 6개월이면 6개월, 1년이면 1년이라는 시한부 인생이 있다. 나역시 돌연사보다는 죽음을 준비하고 주변을 정리할 시간을 갖는 시한부 인생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머니와 함께하는 마지막 시간 14일이라는 시간은 어떠할까. 어머니는 결코 죽음에 기죽지 않고 그 시간을 즐긴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병문안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마지막으로 사진을 함께 찍어 남기고, 어떤 유품을 누구에게 남겨줄지에 대해 고민한다. 장례식에서는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하며 츄리닝을 맞추기도 한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앞에서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 것은 진정한 인간의 존엄성 표현의 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나역시 언젠가 죽음을 맞이할 때 그러고 싶다. 어머니가 아무리 씩씩하게 버텨준다고 하여도 가족들은 이러저러한 일들로 힘들게 마련이다. 대소변 처리라든지, 문득문득 찾아오는 슬픔을 감당해야 하는 일, 갑자기 어머니가 세상을 버릴까 걱정하며 새우잠을 자야 하는 것 등등. 14일의 시간은 가족이 더 지쳐 피폐해지지 않으면서도 어머니와 추억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닥칠 장례식에서 입을 드레스와 악세서리 등을 조합해보는 등에 필요한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죽음을 맞을 수 있었던 어머니와 가족들 모두에게 어쩌면 참 행복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한 시간없이 어머니를 떠나보냈다면 떠나는 사람도 남겨지는 사람도 얼마나 회환에 쌓여 괴로웠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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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의 어머니께서 신장 투석 치료를 거부하고 안락사? 를 선택하고 난 후 14일 뒤 돌아가시기까지의 수기입니다. 스스로 치료를 거부하고 돌아가시기까지 14일간의 기록을 14일로 나누어 기록해놓았네요. 안락사 허용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는 요즘, 이 책을 읽고 안락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네요. 환자 본인은 너무 고통스러워 스스로 치료를 거부하고 죽기를 원하는데, 허용이 안 되는...정말 어려운 문제 같아요. 부모님 건강하실때 효도를 하는게 가장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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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잊혀지지 않는 그 이름은 바로 엄마다. 엄마는 원래 거기에 그렇게 있는 존재라고 우리는 믿고 살아왔는데 어느 날 엄마가 없어진다고 한다. 엄마는 치료를 거부하고 인간답게 살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 남은 길을 가족들이 함께 했다.
나에게도 엄마가 있다. 나이 들면 들수록 약해지고 아픈 곳이 많아지는 엄마. 내 엄마가 어느 날 없어지면 어떻게 하지? 주인공도 엄마가 돌아가시고 그 다음 날을 엄마가 이 세상에 없는 첫날이라고 적었다.
엄마가 이 세상에서 고통받는 것은 싫지만 엄마가 사라지는 것도 싫다. 밀리 그 나라에서 행복하세요. 여기에서 행복했던 것 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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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내손 안에 들어온 책 한권.. "만약 엄마와 함게 할 시간이 14일밖에 남지 않았다면 당신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글쎄.. 나에게 그런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떠나보내지는 않았을텐데.. 그 14일은 적어도 엄마에게 온전히 바쳤을텐데..엄마와 함께 했을텐데.. 내겐 그런 시간이 주어질 틈도 없이 넘 갑작스러운 이별이었음을.. 더이상의 연명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엄마.. 가족들은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논의끝에 엄마의 결정을 존중하기로 한다. 더이상 신장 투석없이 엄마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은 14일... 이 책은 엄마의 소식을 굼금해하는 지인들에게 하루에 한두 번씩 페이스북에 포스팅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출간되었다. 30㎏ 남짓한 몸무게로 백내장과 심한 척추측만증, 신장 기능 이상으로 제대로 볼 수도, 걸을 수도, 앉을 수도 없는 상태인 엄마를 곁에서 지켜보는 가족들의 마음은 어땠을까...하지만 처음 생각했던 것만큼 슬픔과 우울함으로 채워진 책은 아니었다. 병원의 손길보다 더욱 따뜻한 진정한 평온함을 찾게 된 엄마의 모습과 엄마를 간호하는 가족들의 모습, 지인들과의 마지막 인사, 유품 정리 등을 저자는 딸의 시각에서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풀어내어 독자들이 울고 웃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가족은 엄마가 만든 폴렌타도, 팔라친카도, 스트루들도, 달걀 토스트도 먹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생각에 배 속이 퍽 하고 뭔가에 맞은 듯한 느낌이 들면서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울음을 삼켰다. 엄마는 두 번 다시 나를 위해 요리를 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스스로 해야 한다. 세상에, 이제 더 이상 엄마가 여기에 없구나 하는 현실이 와 닿자 불현듯 고아가 되어 길을 잃은 기분에 빠졌다. 지난 한 주 동안 함께 지내며 웃고 음식을 먹고 기념하면서 우리는 그 사실을 감추고 있었다. 이 떠들썩하고 유쾌한 시간의 결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그 결말이 무엇인지 진정으로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바로 지금까지도. 맙소사! 엄마가 죽는구나. 엄마 없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164쪽 저자의 마음에 감정이입이 된..글귀이다.. 얼마전 한 교수님의 강연에서 "여기까지 잘 왔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는 말을 해 주라는 얘기를 들었더랬는데, 이 책을 덮으며 내 자신에게 이 말을 꼭 해 주고 싶다. '엄마가 떠나간 이후,,그 빈자리 때문에 힘든 시간이 많았지만 여기까지 잘 왔다...'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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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보내는 마지막 시간>은 작년에 읽었던 몇권의 죽음에 관련된 책에서 느꼈던 아쉬운 점을 충족시켜준 책이었습니다. 작년에 읽었던 죽음에 관련된 책중에서, 어느날 갑자기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슬픔을 제대로 표현할 기회도 없이 (아니, 슬픔을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종교적 형식에 떠밀려 장례를 치르고나서야 어렴풋이 아버지와의 영원한 이별을 느꼈던 <가족의 죽음>이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무리 건강에 유의하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없이 지낸 노인들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죽음에 대해 본인이나 그 가족이 죽음에 대해 나름대로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읽으면서 죽음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지만, 어떤 식의 준비가 필요할 지는 무척 모호하였습니다. 그러던 차 작년말 시몬 드 보부아르의 <아주 편안한 죽음>을 읽을 기회가 생겼을 때 세계적인 지식인의 이야기를 보면 이에 관해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였습니다. 하지만, 시몬 드 보부아르와 그녀의 어머니는 죽음 앞에서도 자신들의 자존심을 너무 내세우면서 서로 솔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서 무척 실망하였습니다. 하지만 <엄마와 보낸 마지막 시간 14일>은 가족들과 돌아가신 분이 돌아가시기 전 14일 동안 함께 지내면서 삶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삶을 정리하는 지혜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지은 리사 고이치는 전직 코미디언이자 방송인입니다. 루 게릭병을 앓았던 교수와 보낸 내용을 적은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의 저자인 미치 앨봄과 함께 방송을 한 경력도 있어 그에게서 도움을 받기도 하였는데, 이 책은 그녀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14일 간의 심정을 페이스북에 남겨서 많은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은 내용을 출간된한것입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신장 투석의 경과가 좋지않자 치료를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갈란다. 그냥 가게 해다오."라는 말을 남기는데 가족들이 그녀의 뜻을 받아들이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치료를 포기하면서 종교(카톨릭>에서 이러한 죽음을 자살로 여기게 될 까봐 가족들이 걱정하는 모습이 이야기의 초반에 나오는 데, 카톨릭 신부께서 믿음은 죽음을 그런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돌아가신 저자의 어머니는 무척 마음이 따뜻하신 분이었는데 병원에서 치료받는 동안 병원도우미에게서 주먹인사하는 법을 배운 후, 마지막 14일간 집에서 지내는 동안 찾아오는 사람들과 주먹인사를 나누고, 작별인사를 담은 비디오를 촬영하고, 자신을 도와줄 호스피스 간호사에게 따뜻한 인생의 격려하는 모습을 보고 무척 감동받았습니다. 자신이 세상을 떠난다는 두려움이나 공포보다는, 자신을 찾아오고 도와주는 주위사람들에게 오히려 사랑을 표현하는 모습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아마도 제가 그동안 죽음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찾으려고 했던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키는 저자의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에게 의지할 때 비로소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는다는 말과 함께 어머니가 용변을 보는 것을 도와주고 물티슈를 이용하여 뒤처리해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저자의 어린시절에 저자의 어머니가 저자에게 한 이야기와 현재의 모습이 대비되는데, 무척 감동적입니다. - 엄마가 언젠가 "하여튼 내가 죽을 때까지는 난 널 걱정하고 챙길 거니까 그러려니 해!"하고 말했던 것처럼. 그리고 엄마는 진짜 그렇게 했다. 날 더 이상 돌볼 수 없을 때까지. 서로의 입장이 별안간 뒤바뀔 때까지. 역할이 뒤바뀌는 날이 오면 사람은 누구나 낯설고 생소해 한다. 그것은 사랑과 책임감으로 추는 서툰 춤과 같아서 상대방에 대한 어떤 존경의 선을 넘지 않으려 노력한다. 날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내게 진짜 생명을 준 그 사람을 예우하고. 마치 신생아처럼 연약한 몸을 내 손으로 보듬어주며, 필요한 모든 것을 돌보아준다.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옷차림이나 건강식 같은 주제에 대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다가도 그런 대화가 얼마후에는 의미가 없을 것인 저자가 깨달으면서 슬픔과 아쉬움을 느끼는 장면에서 많은 공감을 느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면서 재미있는 장면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어머니, 저한테 뭔가 남기고 싶은 의미있는 말 좀 생각해보셨어요? 살면서 명심했으면 하는 말이나 어머니를 떠올릴 수 있는 메시지 같은 거요. 제가 늘 기억하고 있었으면 하는 지혜의 말이요. 여기 손목에 메시지를 문신해놓게요. 영원히 간직할 수 있도록. 뭔가 심오한 말로." 엄마가 코를 찡그리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더니 진분홍색 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하며 일말의 주저도 없이 내뱉었다. "문신하지 마라. 간염 걸린다."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책의 저자도 예전 자신의 어머니의 차를 몰래 타고 외출하였다가 사고난 사실을 고백하려다가 덮어두는 모습도 보이기는 하지만, 남아있는 가족들이 아쉬운 마음이 거의 들지 않을 정도로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는 모습과 죽음을 맞이하기 바로 전 이지만 가족간의 평화롭고 행복한 모습을 계속해서 볼 수 있었다는 것이 정말로 인상적인 책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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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엄마와함께 할 시간이 14일밖에 남지 않았다면 당신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아빠가 돌아가신지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난 여전히 아빠가 그립다. 가끔 아빠 생각을 떠올릴때면 눈물이 먼저 흐르는걸 보면 무뚝뚝한 아빠를 참 많이 사랑했었나보다. 「엄마와 보내는 마지막 시간 14일」이책을 받고 읽기전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난 아빠가 돌아가실때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더욱 그리운걸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기 전인데도 제목만으로도 가슴이 너무 아프다. 엄마 스스로 선택한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가족들에게 남은시간은 단 14일.. 14일은 긴 시간이 아니다. 더군다나 죽음을 기다리는 14일이라면 일상을 보내는 14일보다 짧게 느껴질 것이다. 7일째가 된 시점에서야 엄마가 죽는다는걸 인지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는 작가를 보면 더욱 실감이 난다. 동영상을 남기고, 사진을 찍고, 장례식때 입을 옷을 고르고 편지를 쓴다.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평범한 하루들을 보낸다. 가족들의 마음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는데... 정작 죽음을 기다리는 노모의 마음은 도저히 모르겠다. 가족들은 작은일에 예민해서 다투기도 하고 의견이 맞지 않아 힘든데 정작 웃고있는 엄마 밀리 고이치 그녀의 마음이 너무 궁금했다. 아마 이책을 다 읽은 지금도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걸 보면.. 내가 이상황이 되어 이런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오기 전까진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듯 하다. 14일간 온가족이 모여 오직 그녀만을 위한 생활을 하는 모습.. 현실적으로 격게될 고통들.. 나라면..??? 내가 이 상황의 리사 고이치라면? 이렇게 덤덤하고 평온하게 엄마의 선택에 동의해 줄 수 있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고민했는데.. 난 여전히 결론을 내리진 못했다. 이런 상황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눈물이 난다. 책을 읽으며 많은 질문을 나 자신에게 해봤다. 결론은 난 아직 겁쟁이다. 갑이다 을이다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했다. 막연히 이런 상황들을 겪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소설책이 아니다. 리사 고이치의 실화이다. http://14daysamemoir.com/ 책에 적혀있는 사이트에 들어가봤다. 이 순간만큼 내가 영어를 못한다는게 답답한 순간이 없었다. 같은 사진들이 책에 실려있었다. 그런데 느낌이 너무 다르다. 사이트를 통해 알수 없는 영어들을 간간히 읽으며 간신히 내용을 이해하고있는데도 그감동이 더 진했다. 책을 읽은 후 꼭 한번 접속해보면 더 진한 감동을 받을 수 있을 듯 하다. -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된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