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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들었던 생각은 모순이었다. 서울의 이름난 거리에서 벌어지는 젠트리피케이션 (도심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개발이 가속되고 임대료가 오르면서 원주민이 바깥으로 내몰리는 현상)을 보면 시장의 냉혹함과 이기주의가 피부에 와 닿는다. 그에 비해서 경제민주화와 같은 정책은 그 실체가 모호한 슬로건 같아 보이고, 철학은 더욱 멀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니체의 철학서적을 읽어보아도 요즘 같이 사회에 만연한 르상티망(권력의지에 의해 촉발된, 강자의 공격욕에 대한 약자의 복수감)을 치료할 수는 없을 것만 같았다. 이렇게 다르게 느껴지는 둘을 관통하는 해제와 목차가 상당히 흥미롭게 느껴졌다. 저자 또한 흥미로웠다. 처음에는 근래에 나라망신을 시키셨던 윤모씨와 이름이 비슷하고, 조선일보 칼럼니스트라는 직함이 주는 진한 색채 때문에 걱정을 했었다. 그러나 인터넷 검색을 해본 결과 엘리트 관료와 재벌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칼럼 또한 읽을 수 있었고, 경향신문에 조국 교수와 함께 한 대담을 보면 현 정부에 대한 우려도 잘 나타나 있었다. 조선일보라는 신문이 주는 약간의 선입견이 깨어지는 순간이었다. 도착한 책은 상당히 잘 만들어져 있었다. 종이의 재질도 훌륭하고, 근래에 본 책 중에서 가장 가독성이 우수했다. 재질뿐 아니라 내용도 흥미로워서 금방 책에 몰입할 수 있었다. 책은 왜 시장의 철학이 필요한가를 언급한 이후에, 통시적인 관점에서 한국과 국제 사회의 이슈를 하나씩 짝지어가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책의 내용은 사실 다소 어려운 편이다. 이야기 자체는 흥미로운 반면에 철학적 배경지식을 필요로 하고, 생소한 단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특히 시장 철학의 테제(논리를 전개하기 위한 최초의 명제)가 등장하는 3장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러나 현실에 많이 쓰이지만, 정확히 뜻을 모르고 그냥 지나치는 단어들이 많았기에 단어의 이해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진입장벽이 높은 책들은 책이 넘어갈수록 읽는 속도도 빨라지기 마련이다. 경제 및 철학에 도전하고 싶은 사람들이 입문서로 읽어도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책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나와 같이 자유시장과 정의가 양립할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들이 경쟁적 근본가치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하이에크(자본주의 하에서 민주주의가 존재)와 폴라니(현대 사회가 시장 경제를 왜곡)라는 두 학자의 의견을 소개하고, 변증법을 통해 자유시장이 민주주의의 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한 이것이 마르크스의 이론에 대한 안티테제임을 밝혔다. 책의 후반부에는 시장의 철학을 현실화 하기 위해서 어떠한 사회의 노력이 필요한가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있다. 대중은 어떤 태도를 지녀야하고 사회는 어떠한 문화를 가져야하는 지에 대한 언급이다. 저자는 그 가능성을 2008년 서울을 수놓았던 촛불 시위에서 찾고 있다. 저자가 촛불 사건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는 책에 수차례 언급된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비록 불완전하지만 저자가 추구하는 사실을 존중하고, 담론을 통한 검증이 활용되는 사회에 대한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후반부의 핵심은 관용의 원칙으로 정리된다. 그 귀결이 소통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현 정부의 불통이 더 가슴아프게 느껴졌다. 역사적으로 한국은 사농공상의 사회를 거쳐왔고 몸의 노동을 폄하하는 경향이 있어왔다. 어찌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식인들은 반시장적으로 편향된 것이다. 이 책은 그런 편향된 시선에 대한 도전이다. 그러면서 복지와 경제민주화, 담론을 통한 소통과 통합이 현대 사회에서 왜 중요한가를 역설하고 있다. 책에서도 소개된 바 있듯이, 한국인의 3/4는 '기억하는 유명한 철학자가 있느냐'는 질문에 모른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나마 대답한 사람들 중의 대다수는 지폐에 새겨져있는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를 답했다. 불과 몇 년전에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히트를 친 것과는 상반된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참 많은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타자의 삶을 동경하며 르상티망이 넘쳐나는 요즘 같은 시기에 이런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특히 6장과 7장) 삶의 중심이 잡히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누군가 나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윤평중씨의 이름을 말해주고 싶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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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평중 교수의 ‘시장의 철학’이 말하는 시장은 전통적 의미의 시장(생존과 생활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장 마당), 시장경제, 자본주의(근대 이후의 시장 경제)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시장의 철학이란 확대 심화된 경세제민(經世濟民)으로서의 경제 개념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목차를 통해 알 수 있듯 ‘시장의 철학’은 시장의 정치철학, 시장비판론에 대한 반비판, 르상티망과 울혈(鬱血)의 시회라는 글이 포함된 정의론과 법치주의, 담론은 권력과 지식의 결합체이다란 글이 포함된 사실과 숙의(熟議)의 문화 등 주목할 장으로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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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민주질서와 시장질서의 변증법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변증법은 법치주의와 사회적 신뢰, 과학 정신과 합리성, 공론장과 비판적 시민교육, 정의와 공정성 등의 주제가 시장 개념을 중심으로 한 경제 현상에 대한 인식론적, 존재론적 탐구와 분리 불가능한 복합체를 형성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이는 한국과 세계에서 공시적, 통시적으로 활용 가능한 구체적 보편성의 개념 창출에 이르려는 작은 실험적 시도라고 할 수 있다. (...) 시장에는 본질적 문제점과 수많은 약점들이 엄존한다. 하지만 자유시장 없이는 바람직한 ‘현대적 삶’(현대성, 모더니티)도 불가능하다. 세계사적 차원에서 뿐만이 아니라 현대 한국 사회에서 이 명제가 가진 의의는 참으로 깊고도 넓다. 결국 이 책은 시장의 문제 설정을 다각적으로 조명함으로써 현대 문명과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우리 스스로를 성찰하며, 성숙하고 자율적인 현대적 삶의 가능성을 숙고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출발해 보편적 추상 수준에 도달한 뒤 그 보편성을 다시 ‘지금, 이곳’의 구체적 생활세계와 매개시키는 구체적 보편성의 철학은 내 오랜 꿈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책이 경제철학을 넘어 한국 사회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미래의 보편적 한국 정치철학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기를 바란다. 21-22p
철학자가 바라보는 시장, 합리적 보수주의자가 바라본 시장. 위에 적었듯이 허생전부터 마르크스까지 다양한 곳에서 시장의 철학적 의미를 찾아 간다. 그 과정을 따라가다보니 내가 가지고 있던 시장의 개념이 상당히 바뀌었다. 시장에 담겨있는 철학을 찾아내면서 또 시장에 철학을 담아내면서 그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잡아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쉬운 부분은 상당히 읽기 어렵다는 것. 내용이 어려운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읽기 어려운 건 아쉬울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끼리만 알자는 내용이 아니라 그 분야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전달하기 위해서는 조금은 재미있게 썼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리고 내 생활과 가까운 사례가 별로 없다보니 이 책의 내용이 나의 머릿속에서 오래 남지 않을 것 같아서도 걱정이 된다. 친구들과 만날 때면 최근에 읽은 책 이야기를 하는데 그건 보통 책에 나왔던 구체적인 사례들에서부터 시작이 되거든. 이런 이런 이야기가 있는데 그 이야기에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하면서 말이다. 안에 담긴 핵심이 별로라면 딱히 신경 쓰지도 않았을 텐데 이 책의 내용은 그래도 사람들이 좀 읽으면서 생각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서 주저리 주저리 말이 많았다. 아, 그리고 어쩌면 내가 철학책을 별로 안 읽어서 더 어렵게 느꼈을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