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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혹은 과학자들의 활동이 고상하다는 생각은 어쩌면 과학에 기대하는 바램 같은 것이다. 과학자들은 지극히 이성적이라는 것도 편견이다. 적어도 과학 활동에서만큼은 이성적이라 생각할 수 있다. 자신의 연구 성과를 제시하고, 그에 대한 보완이나 반대되는 의견에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그에 대해 재반박하거나 받아들이거나 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사는 이러한 과학과 과학자에 대한 생각이 별로 그럴 듯 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그렇게 이뤄지는 과학 활동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에, 정답은 과학 활동이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분야의 활동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그런 스펙트럼에 대해서는 심정적으로 쉽게 용납이 되지 않는 이유는 그게 ‘과학’이기 때문이다. 과학이라고 하는 활동의 본성은 진리라든가,
발전이라든가 하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으며, 그게 인류에게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를테면,
HIV에
관한 터무니없는 주장(HIV는 존재하지 않으며 서구의 음모라는 주장)이나 예방 주사에 대한 근거 부족한 공격 등에 대해, 흔히 있을 수 있는 과학상의 논란이라고 보지 못하고 우려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과학이라는 활동에 대해 불신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런 터무니 없는 주장이나 왜곡을 제외하고 나면 과학계의 논쟁은, 어쩌면 필요했던 것이고, 발전의 과정 중에 거쳐야만 하는 것이었다는 걸 인정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기존의 학설이 있으며, 일부의 증거에 바탕을 두고 그 학설을 부정하고 새로운 학설을 내세우는 경우, 당연히 충돌이 있을 수 밖에 없으며, 감정적인 다툼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결국엔 정리가 된다(예를 들어 베게너의 대륙이동설 같은 경우나 하비의 혈액 순환설 같은 경우들).
물론 과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정도로 다툼이 격화되는 경우도 있다. 과학적 증거에 바탕을 두지 않고 인신 공격을 이어지는 경우가 그런 경우인데, 이를테면, 코프와 마시의 공룡 뼈를 둘러싼 경쟁(『과학자들의 대결』에서는 전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이나 프로이트와 아들러, 융 사이에 다툼과 같은 경우다. 이런 경우는 과학자들도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뉴턴과 라이프니츠 사이의 미적분 발견의 선취권에 관한 다툼 역시 그런 부류에 속한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영국의 경우는 국가적으로 과학자들이 달려들어 뉴턴을 옹호하는 바람에 영국에서 과학 발달이 뒤쳐지게 되는(적어도 미적분의 활용에 있어서 만큼은) 폐해가 있었다(뉴턴과 대립각을 세웠던 이들이 많은데, 그건 뉴턴이 유명하기도 하거니와 뉴턴이라는 인물의 성격에도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과학자들의 대결』에서 소개하고 있는 것 중에는 여전히 지금도 이어지는 논쟁도 없지 않다. 리키 가문과 조핸슨에서 시작된 인류 기원 논쟁도 그렇고, 진화의 증거로 강력하게 내세워졌다가 어느 샌가 교과서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얼룩나방의 암화에 대한 논쟁, 공룡 멸종에 관한 논쟁, 인도네시아에서 발견된 호빗족의 화석에 관한 해석 등이 그렇다. 과학에서의 증거는 불완전한 경우가 많으며, 증거에 대한 해석도 달리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논쟁이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거기에 학계의 인정 등과 같은 다른 동기가 결합했을 때 쉽게 자신의 견해를 포기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것보다는 유명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들이다.
이러한 과학자들의 논쟁들을 다루고 있는 『과학자들의 대결』은 과학의 발달 과정 이면의 복잡한 역사를 다루고 있으며, 과학자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통해 그런 역사가 대단히 흥미로울 수 잇다는 것, 그리고 과학이 어떤 성격을 가지는지도 어느 정도는 보여주고 있다. 더욱 중요하게는 과학의 사적인 면을 많이 보여주고는 있지만, 한 꺼풀을 들춰보면 과학이 사회적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 역사와 사회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