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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의 제4대 수상을 역임한 빌리 브란트의 연설문 작성자, 제7대 독일연방공화국 총리를 역임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정부의 대변인 등으로 활약했던 작가 우베 카르스텐의 ‘벤야민, 세기의 가문’(원작 출간 2014년)은 유대계 독일인 지식인 발터 벤야민(1892 - 1940)과 그의 동생 게오르크 벤야민(1895 - 1942), 여동생 도라 벤야민(1901 - 1946), 게오르크의 아내 힐데 벤야민(1902 - 1989. 동독 법무부 장관을 지낸), 그리고 아들 미하엘과 며느리 우르줄라, 그리고 그들의 장성한 자녀들의 연대기 속에 독일의 근현대사를 배치한 벤야민가의 전기이다.(벤야민의 아내도 도라라는 이름을 쓰는 도라 소피 폴락이다.) 저자는 통일 독일을 끊임없이 동과 서로 나누고 나치가 남긴 쓰레기라며 서로 손가락질함으로써 내적 분단으로 치닫게 된 메커니즘을 밝히고자 책을 썼음을 밝힌다. 벤야민 삼남매(발터 - 게오르크 - 도라)가 보낸 10대(代)는 세계 제1차 대전(1914 - 1·918) 시기와 겹친다. 발터는 유복하고 호화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발터의 아버지 에밀은 양탄자와 고미술품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어머니는 파울리네) 벤야민에게 영향을 끼친 친구가 있었다. 유대교 신학자이자 역사가인 게르숌 숄렘(1897 - 1982)이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너무 다른 부자간의 가치관은 관계의 해체를 초래했다. 저자는 ‘베를린의 유년 시절’에서 발터가 꿈 이야기를 통해 도라를 추억하는 유일한 장면을 소개한다. “하늘에 떠 있던 보름달이 갑자기 빠르게 커졌다. 달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면서 우리의 행성을 갈라놓았다... 그리고 발코니의 난간이 산산조각났다... 그 위에 우리 가족들은 마치 다게레오타입처럼 약간 경직된 모습으로 나를 빙 둘러싸고 있었다. 발코니를 가득 메우고 있던 육신들도 순식간에 사방팔방으로 찢겨 흩어졌다. 도라는 어디에 있지?”
기억하기로 ‘베를린의 유년 시절’에는 “달빛에 의해 잠이 깨면 나는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왜냐하면 그 방은 달빛 외에는 누구와도 자리를 같이하고 싶어 하는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란 서정적인 달 묘사 장면이 나온다. 저자는 게오르크 - 힐데 부부의 아들인 미하일 - 며느리 우르즐라 부부의 아들 (그리샤로 불리는) 게오르크와 자주 만나는 사이였다. 저자는 벤야민 삼남매와 힐데(게오르크의 아내), 미하일(게오르크와 힐데의 아들)이 세기 전환기에 태어나 출생신분과 훗날 얻은 신념으로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을 떠안으려 했다고 말한다.(47 페이지)
저자는 벤야민가(家)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피의 20세기에 발을 담그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벤야민 삼남매는 각각 암(도라)으로, 강제수용소의 전류 사고(게오르크)로, 자살(발터)로 각각 삶을 마친다. 과학적 사회주의자였던 힐데는 남편과 시아주버니, 존경하던 시사촌 게르트루트 콜마르를 빼앗아간 국가사회주의를 극복하고자 했다.(57 페이지) 1933년 발터 벤야민에게는 독일을 등질 수 있는 장소로 파리를 선택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국수주의(國粹主義)에 조금이라도 반감을 가진 사람에게는 언제든 보복하는 것이 그 시대의 논리였다.(87 페이지)
프랑스의 정치 상황이 해결되지 않은 탓에 많은 망명자들은 잠시나마 스페인으로 피신해야 했다.(89 페이지) 발터는 병고, 가난 등으로 고립된 생활을 했다. 발터 역시 아프고 궁핍한(고통스러운 류머티즘성 관절염의 일종이자 불치병인 베흐테레프병을 앓으며 힘든 가정부 일을 해야 했다.) 발터 역시 여동생(도라)에게 적은 돈이라도 빌려줄 수 있는지 물을 정도로 상황이 나빴다. 병으로 쇠약해진 나머지 파리 변두리의 3등급 호텔 계단도 올라갈 수 없을 정도의 발터였다. 발터는 언제든 글을 써서 고료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돈이 좀 생기면 대부분 책과 잡지를 사는 데 썼다. 그때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이 탄생했다.
나치의 파리 침공으로 안전을 담보할 수 없게 된 발터는 프랑스 - 스페인 국경을 넘어 스페인으로 갔다가 포르투갈을 거쳐 미국으로 갈 계획을 세운다. 체력이 고갈된 벤야민은 자신을 도와주는 일행과 떨어져 혼자 남겠다고 선언한다. 목숨보다 소중한 원고를 꼭 안은 채... 발터가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 시절’을 쓴 것은 파리 망명 시절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벤야민의 내면에서 절대로 어른이 되지 않으려 하는, 영원한 응석받이 어린아이를 보았다고 했다.(110 페이지) 한나 아렌트는 발터가 시인이 아니면서도 시적으로 생각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고백한 바 있다.
아내 도라 소피는 발터가 다양한 본성을 보인 것을 그가 변한 것이 아니라 존재의 어떤 측면이 한없이 확대된 것으로 표현했다.(113 페이지) 저자는 발터의 부끄러운 행적들도 빼놓지 않고 전한다. 저자는 2011년 여름 어느 날 마우트하우젠 집단학살 수용소를 방문했던 경험을 들려준다. 그곳은 저자의 말대로 인간이 만든 지옥이었다.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모두 비인간적이고 비열하며 파괴적이다.”(167 페이지) 마우트하우젠은 게오르크 벤야민의 마지막 정거장이었다. 게오르크의 최후는 “유대인 게오르크 벤야민이 1942년 8월 26일에 사망했다. 사망 원인은 고압 송전선 접촉을 통한 자살이었다.”는 말로 처리되었다.
힐데는 유대인이라는 유일한 죄를 지은 남편을 지지했다.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졌다. 그 이후 동서독 간 국경선에 대한 감시가 심해졌고 허가 없이 국경선을 넘는 사람은 무차별 발포 지역에서 생명을 빼앗길 위험마저 있었다.(249 페이지) 히틀러 국가의 범죄를 밝히기를 꺼렸던 서독 사법기관의 태도는 희생자의 유가족들만 절망으로 몰아넣은 것이 아니었다. 이에 비해 동독에서 1945 ~ 1949년은 반파시즘적이고 민주적인 변혁의 시기였다. 동독의 한 통계 자료를 보면 1945년에서 1965년 사이에 총 1,208명의 나치 전범이 유죄 판결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255 페이지)
1951년 독일에서 실시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0퍼센트가 나치 정부를 긍정적으로 보았고 1960년대까지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히틀러를 중요한 정치인으로 여겼다. 이런 시각에 기여한 인물이 바로 아데나워였다.(256 페이지) 한국이 부일(附日) 반역(反逆) 문제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듯 독일도 나치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나치 시절 천하를 호령하던 무시무시한 법률가들이 그대로 판사나 검사로 남게 되면서 그들이 내리는 판결은 이른바 가치 뿐만 아니라 권력을 지향하는 성향을 뚜렷이 띠었다.”(258 페이지)
히틀러 시대 그리고 히틀러의 패망 이후 힐데 벤야민은 민주주의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이성적이고 인생 경험이 풍부한 인민재판관과 반파시스트에게 희망을 걸었지만 그런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262 페이지) 내게는 한스 요하임 마즈가 쓴 ‘사이코의 섬’을 읽은 기억이 선명하다. 구 동독 출신의 정신과 의사인 마즈는 이 책에서 주로 동독에서 벌어진 정신진단에 대한 반발과 무지 등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기독교에 두루 비판적 시각을 보여주었다.
마즈에 의하면 실재하는 사회주의는 우리에게 공산주의 낙원을 약속했었고 실재하는 시장경제는 더욱더 많은, 번번이 새로운, 더욱더 나은 상품을 통해 우리에게 만족을 약속해주고 있으며 실재하는 기독교는 요구에 상응하는 순종을 할 때 더 나은 저 세상 삶을 약속해준다.(‘사이코의 섬’ 234 페이지) 자신의 시각이 동독 시민으로서 동독 사람들에 대해 가진 것을 전제하며 마즈는 ”베드로가 바울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은 바울에 대해서보다 베드로에 대해서 더 많이 말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걸어온 직업의 길은 자신에 대한 치유 시도라는 결론을 제시한다.(288, 289 페이지)
마즈는 서독 뉴스만 신뢰하며 동독 뉴스는 사활이 걸린 중대한 보도이거나 일기예보가 문제될 때에만 수용한 동독은 반사회주의적인 게토였다고 표현한다. ‘벤야민, 세기의 가문’의 저자는 정신분석가이자 의사인 마르가레테 미처리히와 알렉산더 리처리히 부부가 분단 국가 서독에 대한 정신분석을 시도해 그들이 애도하는 데 무능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사실을 전한다.(314 페이지) 저자는 발터 벤야민의 영향이 우리 시대에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한다. 저자는 제국 뒤에 수립된 바이마르 공화국을 제1의 독일로, 히틀러의 제3 제국을 제2의 독일로, 동독을 제3의 독일로, 서독을 제4의 독일로, 통일 독일을 제5의 독일로 정의한다.(336 페이지)
저자는 자본주의의 위기가 자본주의 극복을 위한 사고를 요구한다고 말하며 카를 마르크스의 책이 다시 읽히고 있는 현실을 환기시킨다.(343 페이지) 저자는 힐데의 손자 세대의 근황을 소개한다. “라우라는 법학을, 야콥은 건축학을 전공했다.”(352 페이지) 그리샤는 “우리는 발터 벤야민이 독일적인 것을 이해한 방식에 대해 이해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명성 없이 명예롭게, 화려함 없이 위대하게, 아무런 대가 없이 품위를 지키며.”라는 말을 했다.(357 페이지) 이 말은 ‘추수에 대한 희망 없이 선의 씨앗을 뿌리는 법을, 보상에 대한 기대 없이 세계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한 철학자의 말(‘호모 에티쿠스’ 참고)을 연상하게 한다.
저자는 발터 벤야민의 저서를 소화하기 힘들어도 그를 추억하고 그와의 만남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은 과거 속을 산책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텍스트나 격언들을 현재에 적용하려는 사람이라 말한다.(374 페이지) ‘발터 벤야민, 세기의 가문’은 저자가 벤야민 가문이 걸은 길을 되짚어 내려가 쓴 추도사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의 극대화한 모순 등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은 깊은 고뇌와 모색, 바른 성찰을 요구한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의 책은 큰 무게감으로 여겨진다. 마르크스주의 등을 비롯해 현실을 바로 알기 위해 프레드릭 제임슨, 테리 이글턴 등 지식인들의 책을 차근차근 정독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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