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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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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고전 문학작품은 <홍루몽>이라고 하며, 우리 나라에도 이제 여러 출판사에서 다양한 번역본이 나온 만큼 독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당대에는 대륙의 문화적 영향이 조선에 바로 닿던 시절이므로, 오늘날처럼이야 통신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다고 하나 지식 계층은 그 최신의 트렌드를 그리 늦지 않게 흡수하고 자신만의 내용으로 변형했습니다. 이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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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고전 문학작품은 <홍루몽>이라고 하며, 우리 나라에도 이제 여러 출판사에서 다양한 번역본이 나온 만큼 독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당대에는 대륙의 문화적 영향이 조선에 바로 닿던 시절이므로, 오늘날처럼이야 통신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다고 하나 지식 계층은 그 최신의 트렌드를 그리 늦지 않게 흡수하고 자신만의 내용으로 변형했습니다. 이른바 몽자류 소설이 조선에서도 본격 유행을 탄 건 숙종 연간이니 좀 늦은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 <구운몽>은 중국에 역수입되어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고 하니 우리 나름대로 문화적 성취를 이룬 좋은 경우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 <구운몽>은, 그 집필자 김만중이 홀로 되신 어머니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창작했다는, 그 효심의 모티브에 대해, 초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일부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김만중 자신이 (전통적인 한문학 소양 외에도) 대단한 창작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그 앞선 시대에 이처럼 근대적인 작품(그 내용이 아닌, "소설"이라는 형식 면에서)을 생산할 수 있었겠지만, 어머니께 들려 드리고 싶다는 한 가지 주된 동기로 이 정도 분량의 성취가 가능했다는 사실은 지금 봐도 놀랍습니다. 당시의 문화적 분위기로는, "이야기"를 지어낸다는 것, 그것도 구성과 문체, 주제 의식에 신경을 쓰면서 흥미만을 위한 픽션을 만든다는 게, 사회적 평판의 획득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시피한 노력이었을 테니까요. 말 그대로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시도였을 것 같습니다.

이른바 2처 6첩을 거느리고, 지상에서 호된 업보는커녕 사람으로 누릴 수 있는 영화는 모두 누리는 양소유의 사연을 보면, 같은 남자가 봐도 위화감을 넘어 황당함과 거부감이 느껴지는 게 보통입니다. 청소년기에 읽히기엔, 뭔가 그릇된 가치관이나 성적 판타지가 끼어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드는 게 사실이죠. 아무리 주제가, "그 모든 육욕과 물욕이 다 부질없는 것"임을 깨닫게 하는 데 있다고 해도 그렇습니다. 8선녀의 경우도, 이승에서의 업보를 다 치르고 개과천선 제 자리로 돌아갔다기보다, 여전히 시녀의 위치에서 성진을 보좌하는 듯(서술의 문언은 그렇지 않습니다만), 끝까지 정신적 종속성을 확실하게 탈피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논자에 따라서는, 불교의 공 사상 등은 그저 도덕적 외피일 뿐이고, 작품의 진수는 남녀 관계의 (당시로서 가능한) 최대한 이상화된 낙원적 묘사에 있다고 솔직한 평을 하기도 합니다.

제아무리 겉으로 청빈과 도덕적 완성을 주창하던 유교 사회였다고 해도, 양반이나 상민이나 결국은 본능의 넉넉한 충족이 삶의 제 일 이유였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 씁쓸한 구석마저 있습니다. 결말에서 다시 불교적 각성과 초월로 복귀하는 설정도, 현세에서 저지른 이기적 죄업을 명확한 반성 없이 얼버무리려는 의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일개 서생에서 거대한 국란을 평정하고, 말 그대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라 늙도록 영화를 누리는 모습은, 아마 유생들이 몽매에도 그리던 출세의 전형이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팔선녀와 함께 노년에 이르러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는 장면에는, 그저 젊었던 육신의 노쇠를 안타깝게 여기는 내적 동기 말고는 특별한 개인적 자각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주 불순한 눈으로 보면, "지금 이 순간의 쾌락을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고, 뷸교적 초월의 외피를 빌려 영원히 가져가려는 이기심이나 집착으로까지 보입니다. 관료의 소명이 그저 왕실 중심의 질서를 정착하는 데 있을 뿐, 일반 백성의 안위를 걱정하는 대목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도 특이합니다. 유교 이념은 최소한 명분으로나마 이를 짚고 있다는 걸 고려하면 더 씁쓸한 부분입니다.

이율배반적인 사실은, 이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남자로서 마음 한 구석에 떨칠 수 없는 일종의 guilty pleasure이기라도 한지, 어린 시절부터 이 책을 주변에서 멀리하지는 않게 되더라는 사실입니다. 제가 궁금한 건, 과연 서포의 자당께서도 이 작품을 흥미로 즐기셨다면, 과연 어떤 대목이 그리 마음에 드셨던 걸까요. 당대 여성들은, 혹 다소 부족하나마 자신만을 사랑해 줄 남성과 해로하기보다, 영웅적 자질을 가진 자의 측실로 사는 편이 후손의 생산과 양육 면에서도 더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일지. 아니면 본인이 진정 그 모든 아귀다툼, 쾌락의 부질없음을 깨닫고 흔쾌히 불교적 주제의식에 동의한(선도한?) 경지에 이른 분이셨을지. 정신적으로 더 퇴보한 세상에 사는 후대인으로서는 짐작이 어려울 뿐입니다.


v*****7 2016.07.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