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마음에 꼭 드는 책을 만난 듯한 느낌이다. 그것은 마음 속 깊이 아나키즘을 사모하는 마음이 넘쳐나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다. 지금껏 잘못 알고 있었던, 제대로 이해치 못했고 해결치 못했던 수학문제가 어느 순간 갑자기 아무 문제 없이 풀리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하면 정확할까? 아니, 그 보다도 더 붕뜬 듯한 기분이 든다. 어쩌면 우리 사회를 계속적으로 변혁, 유지시킬 수 있는 하나의 패러다임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한다. 영화 ‘아나키스트’와 함께 어느 순간 냄비 달아오르듯 입에 오르내리던 이름 ‘무정부주의’. 국가의 독립을 위해 적으로 간주되는 사람들에겐 폭탄을 던지고, 폭력시위, 살해까지 서슴지 않는, 어떻게 보면 너무도 처절하고 잔혹한 싸움. 무정부주의라는 용어는 아나키즘에 대한 또 하나의 왜곡이 아니었나 한다. 지난 날 사회주의 체제 시도는 완벽한 자본주의 진영의 승리로 끝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홀로 남은 자본주의는 이제 자신의 지속적 존재를 위해 내부의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복지정책도 해보고, 신자유주의 정책, 구조조정, 허울좋은 개혁과 세계화의 흐름들… 이런 상황속에서 아나키즘에 대해 논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자본주의를 제외한, 과거 존재했던 모든 체제변혁의 흐름은 이제 존재치 않는다. 그들은 죽었고, 흔적 조차 남김없이 썩었다. 남아있는 사회주의 체제는 계속적으로 자본, 상업화를 시도한다. 스스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그것은 자본주의의 완벽한 승리를 증명하는 또 다른 예에 불과하다고 사람들은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자본주의 자체에 대해서까지 비판하지 않아야 한다는건 아니지 않는가?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는 다르며, 자본주의가 절대적 자유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는 이제 고도로 세련된 방식의 탄압을 자행한다. 그 탄압은 너무도 정교해 자칫 잘못하면 그 단맛을 본질로 파악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시대는 어떠한가. 계속적으로 강요되는 경쟁과 생산성,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진정하고파 하는지 묻기보다는, 그저 누군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바라는 대로, 때로는 그 어떤 것도 아닌, 사회에서 나에게 주어주는, 선택이라고는 전혀 할 수 조차 없는 그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그게 우리에게 드리워진 자본주의의 그림자이다. 형식적 자유와 내재화된,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통제, 구속. 그 구속과 통제의 주체는 나이기에, 우리는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내가 하고픈 것을 하는 이 순간에도 우리는 행복할 수 없으며, 내가 왜 그것을 하고파하는지, 그 행위에는 어떠한 이유도 존재할 수 없는게 지금 우리 시대의 현실이 아니고 무엇일까. 이런 상황에서 나는 다시금 아나키즘이라는 단어를 접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권위와 억압에 대해서도 타협하지 않는 흐름… 과거 아나키스트들의 삶은 치열했으며, 그들의 사상은 같은 ‘아나키즘’이라는 단어게 기반하고 있을지라도 각기 달랐고, 무언가 확실한 그 무언가가 존재치 않았다. 사람들은 그것을 혼란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혼란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지속될 수 있으며, 한 단계 진보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 굳어진 그 어떤것도 존재치 않는 사회의 사람들은 늘 뜨거운 가슴을 지닐 것이며, 그 사회의 문제는 진정 모든 개개인 하나하나의 문제로 여겨질 것이다. 국가의 권위를 부정하고, 질 나쁜 사람들을 교화시킨다는 감옥의 존재를 부정하며, 무조건 좋은것으로 받아들이게끔 하는 민족주의와 애국심의 부질없음을 자각하고, 더 나아가 우리 시대의 모든 기득권이 유포하는 것들에 대한 의식적 거부, 저항… 그것은 희망의 흐름이다. 그로 인해 우리 사회는 계속적으로 진보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희망을 아나키즘으로부터 발견한다. 그리고, 엠마 골드만을 통해 그녀가 꿈꾸었던 사회, 그 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하나의 힘, 아나키즘에 대해 새로이 다가간다. |
| "더 이상 꿈꿀 것이 없음은 죽음을 의미한다." 1910년 뉴욕에서 출간된 이 책의 시작부분에 쓰인 골드만의 말이다. 처음 이 책을 접하고 받게된 강한 충격은 진정으로 인간에게 내재된 자유에의 갈망과, 피상적인 꿈인 아닌 구체적인 현실로서의 그것을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을까의 문제는 바로 깨어있는 의식으로 순간 순간의 삶에 충실해야한다는 평범한 깨달음 이었다. 뉴욕 타임즈는 그녀를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아나키스트요, 탁월한 반전 운동가라고 평했다. 아나키즘은 단순한 무정부주의가 아니라 "절대적 자유와 권력 없는 지배"라는 옮긴이의 말처럼 자유로운 개인의 잠재력을 발휘하여 결사가 이루어질 때 혼란스럽고 불평등한 이 세상에서 질서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의미한다. 특히 여성의 문제를 지적할 때도 그녀는 매우 진보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우리 여성들을 해방시키고 그들의 자유를 획득하는 방법은 법적 평등권 등과 같은 제도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여성 자신의 영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지적은 깊이 새겨야할 부분이다. 또한 아나키스트에 대한 엠마의 의견을 들어보면 "아나키스트들은 어떤 형태로든 반란의 정신에 민감한 사람이다. ....... 그리고 아나키스트들은 자아 중심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자유를 무척이나 사랑한다. 또 호기심이 강해 무엇이든 알고자하는 욕구가 강하다. 이런 특성들에다 타인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고도로 발달한 도덕적 감수성, 정의에 대한 예민한 감각, 그리고 사명의식에 불타는 열정이라는 특성이 더해진다." 라고 표현했다. 이 책에는 아나키즘 이외에도 소수 대 다수, 애국심(자유에의 위협), 청교도의 위선, 여성해방의 비극, 결혼과 사랑 등 다른 주제들도 심도 있게 다루며 전혀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여 일상적으로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주변의 여러 현상들에 대한 명쾌한 시각을 제공한다. 페이지마다 줄을 그으며 몇 번이고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끝으로 사회에서 가장 폭력적인 요소가 무지라는 그녀의 말이 가슴에 울린다. |
| 술자리에서 강권하는 술잔이 싫어 거부했다면 그대, 아나키스트다. 직장에서 죽어라 일하고도 쥐꼬리만한 월급받는 일로 상사에게 불만을 터트렸다면 그대, 아나키스트다. 치근덕거리는 남자에게 독하게 한마디 쏘아줬다면 그대, 아나키스트다. 올해는 운이 없다는 신년운세에 콧방귀 흥 뀌어버린다면 그대, 아나키스트다. tv드라마 보고 맘에 안들어 인터넷 게시판에 들어가 항의했다면 그대, 아나키스트다. 아나키즘은 우리를 속박하는 모든 권위에 도전한다. 그 권위는 국가일수도 있고, 종교나 미신일수도 있고, 남성(남성우월사회에서의)일수도 있고, 경제논리일수도 있고, 의식 무의식을 암암리에 지배하는 언론매체 일수도 있다. 심지어는 나 자신의 생각일 수도 있다. 권위는 이렇게 시대를 따라 변하고 그 모양을 달리한다. 그래서 노암 촘스키는 이렇게 말했나 보다. '아나키즘은 학설이 아니다. 사상과 행동의 역사적 경향이다. 이 경향은 계속해서 혁신되고 발전하는 수많은 길을 가지고 있으며, 내 생각에는 인류의 역사가 있는 한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라고. 또 그래서, 요즘 식자들이 아나키즘을 이해하지 않고는 오늘날의 디지털 문화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나 보다. 이론가들이 말하는 아나키즘의 자세한 내막이야 어떻든, 나는 오늘 아나키즘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아름다운 사람 엠마 골드만을 만났다. 유대계 러시아인으로 태어나서 독일문화를 접하며 크고,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투쟁하며 죽기까지 그녀의 정신과 육체는 한시도 쉬지 않았다. 그리고 끊임없이 이상을 실천했다.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국가는 그녀에게 누명을 씌웠고(이번에도 나 엠마 골드만에게 누명이 씌워졌다. 경찰은 나에게 무슨 마술같은 힘이라도 있는 것처럼 대했다. 나는 애버부치를 알지 못했다. 사실 그의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 내가 그 사람과 공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마 무슨 신비술을 쓰는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논리나 정의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경찰은 오로지 목표물을 추적했다.-본문중-), 여론은 그녀를 악마로 몰았으며(맥킨리 대통령 암살당시-책사진 참조-), 동료는 노선이 다르다는 이유로 등을 돌렸다. 하지만 아나키스트는 공공의 평가에는 관심이 없다. 엠마는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노동투쟁을 했으며, 징병제도를 반대하고, 언론의 자유, 여성의 권리 등을 외치며 신문을 발행하고, 선전활동을 하고, 집필을 했다. 말 그대로 그녀는 억압받는 자의 대변자였다. 그녀가 죽은 지 30년이 지난 후에야 그녀에 대한 평가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엠마 골드만은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아나키스트요, 탁월한 반전 운동가였다.(-뉴욕타임즈) 대중은 왜 이리도 무지한 건지, 너무나 늦게서야 진실을 깨닫는다. 엠마 골드만은 우리를 사랑한, 한 여성이었을 뿐인 것을! 고통받는 인류를 위한 깊은 동정과 연민,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직함 이런 것들이 엠마 골드만의 특징이다.(-엠마 골드만의 생애 중-) 엠마가 꿈꾸는 아나키 사회란 자유로운 인간들의 조직적 행동이 연대의식으로 충만한, 꽃처럼 조화로운 사회이다.(-해제 중-) 꽃처럼 조화로운 사회!! |
| 읽은지 한달도 더 된 이 책의 서평을 이제야 쓰게 된 이유를 먼저 말하고 싶다. 설연휴 기간동안 TV에서 방영한 '007골든아이'라는 영화를 보고 거기에 나오는 나쁜(?)악당이 무정부주의자로 표현되는 모습을 보고 분노를 금치 못해서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여서이기도 하고 그동안 그렇게 대중문화에 노출된 무정부주의에 대한 부정적 시각들이 나에게도 뼈속 깊이 박혀있었다는 두려움때문이다. 무정부주의에 대한 첫번째 기억. 고등학교 윤리시간에 부정적 국가관을 공부할때 3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였다. 그전에도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나의 뇌리에 처음으로 인식이 된 시기가 아마 이때였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암기과목이었으니까... 그때 나의 눈에 비친 무정부주의는 부정적 국가관에 어울리게 아주 염세적이었던 거 같다. 누가 나에게 가르쳐 주진 않았지만 공산주의가 싫었던 것 처럼 무정부주의도 누가 나에게 이건 나쁜 거야하고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리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무정부주의에 대한 두번째 기억. 얼마전 개봉한 '아나키스트'라는 영화이다. 부정적으로만 보이는 무정부주의라는 말이 '아나키즘'이라는 왠지 있어보이는 (나의 사대주의인가?) 말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무정부주의가 무엇일까 하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 관심과 호기심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고 쉽게 잊혀졌다. 무정부주의에 대한 세번째 기억. 팝송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는 언젠가 비틀즈를 알게 되었고 그리고 존레논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노래 'Imagine'을 아주 좋아하게 되었다. 첨엔 리듬을 담엔 가사가 그리고 그 가사내용이 무정부주의를 의미한다는 건 조금 나중에 알게 되었다. 또 다시 무정부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사람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 호기심은 또 쉽게 사라졌다. 이런 무정부주의에 대한 나의 기억들을 다시 떠올리며 이책을 사게 된 동기는 사실 좀 어처구니가 없는 이유에서이다. 좋아하는 선배가 언젠가 부터 아나키스트가 되고 싶다고 늘 말하기 시작했고 그 즈음 '저주받은 아나키스트'라는 책을 서점에서 우연히 보게되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느낌은 '나도 아나키스트가 되고 싶다'는 그 열망말고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한국 사회의 사회운동이 정부에 대한 집착이 너무 심하지 않나 하는 거만한(?)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저질러온 반정부적인 행동을 용서하기로 했다. 좋은 책을 알게 해준 동기가 된 그 선배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고 우리가 노출되어있는 헐리우드 액션물에서 세뇌되는 무정부주의자=테러리스트 라는 공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이-한글을 아는 모든 사람들- 이책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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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의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 처럼 그렇게 전통이 깊은 것은 아니다. 고작해야 2-3백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전에는 국가주의가 인간을 옥죄는 사슬이 되지는 않았었다.
국가간의 싸움도 통치자나 귀족간의 싸움이었을 뿐 민중들은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다. 왕이나 귀족들은 국민병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용병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용병은 자기나라 국민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돈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을 사서 총을 들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 나폴레옹이 활약하던 시기만 하더라도 프랑스군은 프랑스국민들로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러시아 사람이 프랑스 용병이 되어 러시아군과 싸우는 식의 풍경이 비일비재했다.
프랑스혁명 이후 근대국가가 건설되면서 국민병제도가 생겨났고, 국가간의 전쟁은 권력자나 지배계층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이제는 전면전이 된 것이다. 국가의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다. 한마디로 국가의 노예가 된 것이다.
근대국가는 한편으로는 인간을 해방시켜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을 더욱 노예로 만들었다. 근대국가의 주도면밀한 행정체계는 모든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간섭하고 통제한다. 이 책은 국가는 무죄인가를 묻고 있는 것 같다. 세계는 국가를 단위로 이루어져있다는 점에서 엠마 골드만의 문제의식은 어느 문제의식보다 본질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아나키스트들의 바이양이나 페러같은 아나키스트들의 투쟁상을 읽을 때는 심장이 저릿저릿해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 아나키스트 존 레논의 노래 |
| 존 레논이 아름다운 노래 Imagine에서 상상한 세상과 아나키즘의 대표적 이론가 엠마 골드만이 바라는 세상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보세요......나라가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누구도 죽일 필요가 없고 조국을 위해 죽을 필요도 없고..... 소유재산이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욕심을 내거나 굶주릴 필요가 없죠. 형제애만 있을 뿐이죠. 모두가 함께 산다고 상상해 보세요...... 엠마 골드만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종교이고, 인간의 욕망을 지배한는 것은 물질적 소유욕이며,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국가이다." 종교는 공포로서 인간의 나약한 마음을 지배하고 소유욕은 부가 곧 권력이라는 힘에 대한 매력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그리고 국가는 법을 통해 인간의 행동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국가와 제도들이 없다고 상상한다면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을 어쩔 수 없다. 국가와 종교 그리고 제도들이 인간을 행복하게 할 것이라는 믿음속에는 자연상태속에서의 인간본성에 대한 두려움이 숨어있다. 자연상태속에서의 인간의 본성은 나약해서 끊임없는 공포감, 비명횡사의 가능성, 외롭고, 초라하고 야비하고 짐승스러우며 짧은 것이 된다고 본 홉스의 정치이론이 리바이어던이라는 존재를 필요로 했던 것처럼 인간은 법 제도 국가를 통해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질서라는 것은 각 개인을 희생시키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엠마 골드만의 생각이다. 아나키즘의 목표는 개인의 잠재된 모든 능력들을 최대한 자유롭게 발현하는 것인데, 이 질서라는 것이 그런 개인능력을 억압하는 바탕위에 존재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도 그것이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시키지 못하고 억압한다면 그것은 질서가 아니다. 그런 질서는 평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전쟁, 엄혹한 법집행, 기계적인 노동, 정치모리배들이 판치는 정치권, 이런 것들을 질서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낸다. 문제는 과연 이런 법 제도 국가가 없이 각 개인과 사회와의 조화를 이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아까 말한 홉스의 정치이론과 다른 전제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인간의 본성은 나약하고 서로 믿지 못하고 서로 투쟁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은 선하고, 서로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라는 전제가 필요한 것이다. 인간본성은 악하다는 전제위에 모든 문제들을 제도라는 채찍을 통해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인간본성은 선하다는 전제위에서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각 개인들이 창의력과 아름다움을 발휘하여 타인과의 이타적인 관계를 만들어나가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자신의 삶이 편안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서 세계1차 대전중 생겨난 초현실주의 선언에서 트리스탄 짜라가 외친데로 자신의 잠재된 능력을 깨닫고 이렇게 외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나는 나 자신이 마음에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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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 유지 곤란에서 비롯된 강도, 절도, 살인, 자살 등의 기사가 부쩍 늘었다. 나이 드신 어른들은 세상이 점점 더 살기 어려워지고 사람들 마음은 황폐해져간다고 말씀하신다. 다들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지만, 뭔가 바뀌어야한다는 데에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 우리 생활이 이렇게 되어버린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개 사람들은 갑갑한 마음에서, 일단 보이는 게 그거다보니 정치판을 향해 손가락질을 한다. 물론 그곳은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정경유착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고위층의 비리는, 이제 웬만한 액수로는 관심거리조차 되지 않는 식상한 뉴스다. 천하를 호령하던 인물이 하루아침에 죄수복을 입고 나타나는 장면이 아무리 반복되도, 똑같은 일이 또 벌어진다. 결국 국민들은, 누구나 다 똑같다고, 누구라도 상관 없다는 지친 환멸감을 안고 정치에서 멀어진다. 그런데 자포자기 상태에서 내뱉은 이 한마디에 진실이 있지 않을까? 누구라도 상관 없다는 것, 그 바닥에 들어가면 누구나 그렇게 된다는 것, 다시 말해, 중요한 건 그 자리에 누구를 앉히느냐가 아니라, 체제 자체라는 것.
아나키즘은 바로 이, 시스템에 대해 회의를 품는 순간에 시작된다. 청년실업이 심각하다. 학교와 언론에서는 철저한 자기 관리로 몸값을 높여서 취업의 벽을 넘으라고 권고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 벽을 넘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이고, 힘들게 그 벽을 넘은 사람들은 내가 겨우 이런 일 하자고 그 고생을 했던가 하고 한숨을 쉰다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 예전엔 상고만 나오면 할 수 있었던 은행업무가 이제 대학에서 4년씩이나 공부한 사람에게도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 대해 엠마 골드만은 말한다. "일을 달라고 하시오. 당신에게 일을 주지 않으면 빵을 달라고 하시오. 당신에게 일도 빵도 주지 않으면 그 땐 빵을 뺏으시오."
엠마 골드만 자신이 높은 수준의 제도권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다보니 -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일단 제도 안으로 들어가서 상석을 점해야한다는 식의 합리화를 그녀는 거부했다. - 이 책은 아나키즘에 대해 잘 정리된, 읽고 나면 머리가 묵직해지는 지식을 전달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몸소 무정부주의적인 삶을 산 사람의 목소리는 우리가 잃어버린 중요한 어떤 것, 즉 분노를 일깨우는 데엔 충분할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수천명을 살해한 후에도 질서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질서유지와 조화의 능력이 정부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법이 인간을 정의롭게 만들지 못한다. 법은 정부를 존중하게 만드는 수단일 뿐이다. 어릴 때부터 보통의 여자들은 결혼이 여자의 궁극적 목표라는 소리를 듣고 자란다. 이런 교육과 훈육을 통해 여성은 그런 방향으로 나아간다. 도살하기 위해 살을 찌우는 말 못하는 짐승처럼 여성은 결혼을 위해 준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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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아나키즘에 대한 책이 아니다. 그저 한 인간 엠마골드먼에 관한 단상들.. 전기라고도 할수 없는..을 엮은 에세이정도의 수준이랄까... 그래서 책을 평가하는데 이론서나 평전의 개념으로보다는 에세이정도로 보는것이 좋을듯 하다. 쓰잘데기 없는 잡소리가 후반부를 잠식하지만 않았어도 좋은 에세이가 됐을텐데.. 정도의 감상이다. 엠마가 생각했던 아나키즘은.. 글쎄 뭔가 조금 동떨어진 이미지인것 같은 느낌을 준다. 자율을 중시하는 온화한 평등사회는 어불성설이다. 무력이 없는 사회는 결코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세계를 구축할수 없다. 아나키즘이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그 은밀한 기반은 강제에 대한 강제가 아닐까 싶다. 투쟁해야할 대상들에 대한 투쟁에 대한 이미지를 반감시키는 글이었다. [인상깊은구절] 더 이상 꿈꿀것이 없음은 죽음을 의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