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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시작은 학자들이나 사람에 따라서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또한 각 나라마다 현대세계로의 이행시기가 다를 수도 있지만, 대체로 1945년을 그 기점으로 잡는 것 같다. 1945년은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해이다. 이후 사람들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 오늘의 문명을 이끌어냈다. 그래서 영국의 저널리스트 이안 부루마는 1945년을 "0년"이라 칭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서기에 원래 '0년'이란 없다. 예수가 탄생했다는 2016년 전을 서기 1년이라 정하고, 그 이전을 기원전이라 칭할 뿐이다. 이 책 [0년]은 이처럼 2차 세계대전의 종결로 현대세계가 탄생한 1945년, 단 한 해의 역사만을 다루고 있다. 현대사회가 이루어낸 모든 공과가
전쟁이 끝난 후 이루어진 응징과 보복과 고통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어느
한 나라의 역사가 아니라 1945년에 일어난 전세계의 역사를 담고 있다.
1945년 5월 독일의 항복과 8월 일본의 항복은 전세계를 환호의 도가니에 쌓이게 만들었다. 식민지배를
받던 나라들은 독립의 꿈에 부풀었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들은 긴 어둠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각 도시에는 조명이 켜지기 시작하면서 마치 빛의 축제를 여는 것 같았다. 이러한 해방 뒤 몇 달간은 완전한 방종의 시기였다고 한다. 폭격으로
폐허가 된 각 도시는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로 가득 찼지만 암시장은 그야말로 흥청망청 이다. 여성들은
연합국병사들이 가지고 있던 물품을 얻기 위해 기꺼이 성을 팔았고, 승전국병사들은 거리낌없이 성폭행을
자행했다고 한다. 또한 패전국에 대한 가차없는 복수가 시작되기도 했다.
미처 자기나라로 돌아가지 못한 독일인과 일본인은 곳곳에서 보복을 당했고, 해방된 나라들에서는
나치에, 또는 군국주의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광풍의 숙청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도덕적 공황상태는 보수적 반동이 탄생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위험과 혼란과
궁핍의 세월이 지나자, 여성의 성적방종에 대한 두려움과 부르주아의 안정에 대한 희구는, 해방된 국가뿐만 아니라 패전국에서도 더 전통적인 삶의 질서로 되돌리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일시적인 전후 무질서는 긍정적인 결과도 가져왔는데, 그것은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전쟁은 끝났지만 죽음은 아직 끝이 나지 않았다. 전염병과 기아에 의해 죽은 사람들, 보복으로 생을 잃은 사람들 그리고 2차대전이 끝나면서 발생한 수천만명의 난민이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원했지만, 일부는 고향이 아닌 다른 어느 곳이든 가기를 원했고, 또 일부는 더 이상 돌아갈 집조차 없었다. 연합군 포로들도 귀향은
힘들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비겁을 감추기 위해 그들을 겁쟁이라 여겼고, 포로들 자신은 이방인이 된다는 두려움에 그들이 설 자리는 없어 보였다. 이런
난민들과 전쟁포로들은 결국 원치 않는 나라에 송환되어 몰살을 당하기도 했다. 연합국은 전쟁이 끝나면서
군국주의를 뿌리 뽑아야 할 독소로 생각했다. 그러나 미국의 어설픈 탈나치화는 나치의 과거 세탁을 부추겼고, 일본에 주둔한 미군정의 오류는 전범과 경제관료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프랑스의
드골은 전쟁전의 엘리트들에게 최소한의 타격만을 가하는 방식으로 전후 처리를 했고, 맥아더는 필리핀에서
일본부역자들에게 관용을 베풀고 그들을 중용했다. 전범재판은 유죄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인물, 그러나 죄가 훨씬 가벼운 사람들을 내세워 처단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은 보호하였고, 재판과정은 불완전하기 짝이 없었다고 한다. 한편 사회주의 성향의
각 나라에서는 인민법정이 세워지고 인민재판으로 부역자들을 처리했다. 1945년의 세계사는 모든 것이
당시 강대국이었던 미국, 소련의 정치편의에 따라 움직였다. 그
와중에서 신생국 한국은 좌우진영논리에 포박된 내전이라는 냉전의 참혹한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최악의 독일 강제수용소 중 하나였던 부헨발트
정문에는 독일어로 '당할만한 이유가 있다'라는 주철글씨가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독일이 항복하면서 이 글씨는 '네버
어게인'이란 푯말로 도배되었다. '네버 어게인'은 역사상 최악의 고통을 겪었던 사람들이 모두 공유했던 감정으로, 그것은
유토피아적 이상이었고, 잿더미에서 다시 더 새롭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세계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계정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유럽인들은
유럽연합이 그 전초가 되리라 생각했다. 당연히 국제연맹보다 더 강하고 효과적인 국제연합이 탄생했지만
그것 역시 강대국들의 정치논리에 휩쓸리고 말았다. '0년' 12월말이
되자 사람들은 평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에 감사하면서도 빛나는 미래에 대한 환상은 없어지기 시작했다. 사는
게 힘들어 국제뉴스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고 이제 날씨와 스포츠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평화에 대한 인류의 염원이 담긴 상당수의 제도, 즉 유엔과 유럽의 복지국가, 일본의 평화헌법, 유럽연합 등이 전쟁 직후에 확립되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체험자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어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만이 아니라, 승전국인 미국과 소련은 물론 유럽각지, 동남아, 중국 등 각 나라의 민족이 겪은 '0년', 즉 1945년을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남긴 자료로 풀어나간다. 종전 뒤에 당연히 따라오는 해방 콤플렉스, 기아와 보복, 귀향, 숙청, 성폭행, 매국노처리, 야만의
문명화와 같은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는 승전국의 행패는 물론 패전국 국민이 겪었던 고난까지 세계인의
삶에 영향을 미친 '0년'의 여파를 세세하게 기록한다. 전쟁과 전후의 주역은 그 누구도 아닌 혹독하고 참담한 삶을 살아낸 동시대인 모두였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이안 부루마는 일본전문가라고 한다. 그는 이 책에서 2차세계대전 중 일어난 한국의 위안부문제를 "일본군 치하의 국가에서 납치한 위안부는 사실상 일본군 공창의 성노예"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일본은 정부책임은 고사하고 강제성마저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도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다는 위안부문제 합의는, 아직도 우리는 '0년'의 혼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내게 만든다. 파시즘과 군국주의 그리고 또 다른 전쟁을 획책하는 유령들이 배회할 때, 우리가 떠 올려야 하는 것은 1945년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말은 지금의 우리에게 가장 들어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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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년’, 즉 ‘Year Zero’는 1945년을 의미한다. 저자 이안 부루마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새로운 세계질서가 편성되기
시작한 그 해를 현대의 기원으로 잡고 ‘0년’으로 칭하고
있다. 1945년 한 해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일들이 벌어졌는지는 당연한 일이고, 그 해에 벌어졌던 일들이 그 후 70년도 더 지난 지금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이 현대의 기원이 되는 해, 1945년, 0년을 다루는 이 책은 흥미롭다.
옮긴이인 신보영은
옮긴이의 말에서 이 책의 각 장 제목들을 연결해서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웬만하면 옮긴이의 글을 잘 읽으려
하지 않고, 또 참조도 하지 않는 편인데, 이 두 문장만큼
이 책을 잘 요약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해방에 환호했지만, 기아와
보복이 성행했으며, 귀향 행렬 속에서 식민 잔재를 청산하는 숙청이 이어지는 혼돈이었다. 승전국은 그 와중에 전범 재판을 통해 법치를 재건하려고 노력했지만, 새로운
세계는 강대국 정치의 현실 속에서 탄생했다.”
이안 부루마는 전쟁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명확하게 묻지 않는다. 그 전쟁이 마감되기 직전과 그 후의 상황에 대해서 현미경과
망원경을 번갈아가며 들이대고 있을 뿐이다. 그 현미경과 망원경으로 들여다본 1945년의 세상은, 그야말로 요지경이었다. 전쟁은 그야말로 지옥과 같았고, 물질적인 파괴는 물론, 정신마저 파괴해버렸다. 패자 측의 비참함은 물론 승자 측도 전쟁의
참화를 벗어나기가 힘들었을 뿐 아니라, 그 승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허둥댔다. 개인적인 차원은 물론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도덕의 가치가 불분명해지고, 정치는
승전국의 이해 관계에 따라서, 또 해당 국가의 상황에 따라서 급변했다.
새로운 세계 질서를 잡아가는 과정은 상당히 부조리했고, 희망만을 얘기하기엔 너무도 반목이
심했고, 이해 관계가 첨예했다. 그 결과가 바로 냉전이었고, 현대였다.
이 『0년』이라는 책이 인상 깊은 이유를 몇 가지로 정리해 본다. 우선 영국, 미국, 독일, 소련, 프랑스, 일본 등 전쟁의 당사국들만 다루고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연히 이들 국가와 더불어 폴란드와 같은, 많이 다루어지는 국가에
대해서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는 있지만,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만주, 그리고
한국과 같은 아시아 피식민지 국가들의 상황에 대해서도 비교적 소상하게 서술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를
비롯한 해당 국가들의 상황은 따로 다룬 책이 필요하겠지만, 이 국가들이 전세계적 질서 속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런 세계 질서에 어떤 영향을 받아서 이후의 정치 상황이 전개되었는지를 이해하기에는
충분하고, 의미가 깊다. 한국에 대한 서술은 그리 길지 않고, 약간 의아한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나름 정확히 판단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서 식민 질서에 대한 분명한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게 그 이후의 국가적 모순으로 남았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은 인상이 깊다. 물론 그러한 과거에 대한 부적절하고, 완전하지 못한 청산은 독일이나
프랑스, 일본도 마찬가지였음은 당연하다.
두 번째는 바로 그
완전하지 못한 과거 청산에 대한 얘기다.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 상당히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나치나 일본 전범, 프랑스 등의 국가에서 독일 부역자에 대한 처리
등이 어느 정도까지 이루어졌어야 되는지에 대해서는 저자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완전한 청산이 가져오는
사회의 붕괴를 염려했고, 그렇다고 그들을 처리하지 않을 수는 없는 곤란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자주 얘기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득세하게 되는 것은 기회주의자였음을 분명하게, 여러
차례 지적하고 있다. 본질적인 부분을 정리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도 역시 지적하고 있다.
세 번째는, 다소 불만스러운 부분이다. 저자는 일본이 전전(前戰)과 전쟁 중에 내세웠던 ‘아시아적
가치’에 대해서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아시아
국가들에 다소 먹혔다는 것이다. 그게 반식민투쟁에서도 그 성격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일본의 영향이라는
식의 얘기를 하고 있는데, 과연 일본이 내세운 ‘아시아적
가치’가 ‘아시아’를
위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비판하고 있지 않다. 그들의 ‘아시아’는 일본이라는 국가에 복종하는, 도움이 되는 한에서만 의미 있는 아시아였을
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분명 아시아 전문가이기는 하지만, 아시아
속의 전문가가 아니라 아시아 밖의 전문가라는 한계는 갖는다.
이렇게 세계사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해는 그렇게 많지 않다. 1945년 이후에는 1989년
정도가 있을까? 그만큼 1945년이라는 해는 새로운 세계가
열린 해이다. 환호의 해이기도 했으며, 역겨운 해이기도 했다. 희망을 볼 수 있는 해이기도 했지만, 불행의 싹을 틔운 해이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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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에서 책을 구경하던 중 제목이 눈에 들어와 읽게 된 ‘0년’은 제목부터 어떤 내용이 다뤄질지 알면서 읽었음에도 꽤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1945년이라는 한 해를 대상으로 세계사를 써내려간 독특한 역사서이자 논픽션 다큐멘터리가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다. 이안 부루마의 <0년>(원제 Year Zero)이 그것이다. '현대세계를 이해하는 데 창문' 격인 이 책은 "전후 1945년에 대한 매우 인간적인 역사"로, 현대의 많은 성취와 상처가 응징-보복-고통-치유로 이어진 '0년(1945년)'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을 다면적이고도 흥미롭게 풀어낸다.”
2차 대전이 마무리 된 직후의 혼란과 재건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를 잘 살펴보고 있고, 승전국과 패전국 그리고 전쟁을 겪은 수많은 이들이 어떤 처지였고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를 다각도로 바라보고 있다.
“<0년>의 저자는 1945년이 '0년(원년)'이라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로 현대세계가 탄생했기에 그렇다. '0년=1945년'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인류 문명을 새로 재건하기 시작한 기념비적인 해로, 글로벌 차원의 세계체제 전환이 일어난 때이기도 하다.”
탁월하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겠으나 어느 정도의 균형을 잡고 있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종전 뒤에 따라온 해방 콤플렉스, 기아와 보복의 만연, 성적 해방, 귀향, 매국노 처벌, 인민재판식 숙청, 전범 재판의 불완전한 정의, 평화와 인권에 대한 희망, 야만의 문명화 등과 같은 결정적 주제들을 비범하게 다뤄나간다. 히틀러 제3제국의 인종말살 정책과 일본 천황제 파시즘의 태평양전쟁, 그리고 미국의 승전으로 이어지는 거대 서사에만 머물지 않는다. 승전국의 행패와 패전국 국민이 겪었던 고난까지, 세계인의 삶의 다양한 층위에 영향을 미친 ‘1945년의 여파’를 세세하게 묘사한다. 전쟁과 전후의 주역은 히틀러도 처칠도 루스벨트도 스탈린도 김일성도 이승만도 히로히토도 아니고 바로 혹독하고 참담한 꼴을 당한 동시대인 모두였다는 사실을, 이것이 과연 인간인가라는 질문을 응시하는 용기로 역사의 보편성과 개별성을 겸비한 ‘전후’의 기억을 되살려낸다.”
2차 대전 이후로도 수많은 전쟁이 있었으며 더 잔혹한 경우도 참혹도 있었으나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인지 이 책이 다루는 어떤 끝맺음 직후의 모습들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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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시대별로 구분하기 좋아하는 그것이 편의를 위해서든 아니면 학문의 범위를 정해서든 한 시대를 정하고 또 다른 시대를 구분하는데에는 당연히 분란이 일수 밖에 없다. 확실한 기준이라는 것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니 저마다 자신의 기준과 학설을 토대로 시대를 구분짓고는 한다. 이번에 이안 부루마의 0년은 현대의 시작을 다루고있다. 저자의 현대의 시발점은 2차세계대전의 종료를 본다. 얼마나 탄탄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정한 기준을 한번즘은 검토해볼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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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책 모임을 나가고 있는데 유럽사 책이 끝나고 쉬어 가는 책으로 투표를 통해 결정 된 책이다. 분명히 말한다! 난 이 책에 투표하지 않았다. 다수결의 원칙이란 정말 부당한 거외다! 난 왜 이다지도 설득의 기술이 떨어지는 가 말이다! 통탄할 일이다. 내가 추천 한 책은 겨우 2표를 받았다. 정말 멋지고 또 멋지구리한 책인데 말이다. 책은 양장에 크고 값도 비싼데 결론은 돈 값 못하는 책이라는 거다.
4주에 걸쳐 대강대강 읽기로 한 책인데 너무 재미가 없어 단 숨에 그냥 읽어 버렸다. 도대체 이 책이 왜 그렇게 인기가 많고, 재판을 거듭하고 있으며, 뉴욕 타임즈가 찬사를 보냈다는게 당최 믿기지가 않을 뿐이다. 하긴 언제는 내가 미쿡 신문들의 극찬, 베스트셀러 광고 문구에 동의를 보냈던 적이 있었던가 싶지만 말이다. 0년은 이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를 세상의 리셋 상태로 보고 2차 세계대전 이 후 의 세상을 새로운 시작 카운트 다운 0에서의 다시 시작 혹은 0으로의 추락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적고보니, 그렇다! 이 책은 제목만 기똥찼던 것이다.그렇구나! 깊은 빡침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내가 역사책을 고를때 중시 여기는 것 중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저자의 역사관이다. 책 한권을 통과하는 저자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 그것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를 추론해 보고 현실과 비교해보는 것 그것이 바로 역사책 읽기의 즐거움 일 진데. 본 책은 도통 아무리 열심히 읽어 봐도 저자의 역사관 따위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책은 과거의 스캔들, 에피소드 나열하기 식의 짜집기 책으로 밖에 내겐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게다가 저 이유 때문인지 책의 내용 자체도 두서 없이 나열된 느낌이 짙어 정신 사납게 읽었다는 느낌밖에 남지 않았다. 게다가 글의 성격을 무엇으로 규정 지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어정쩡 하다고 밖에 말 할 수 없는 포지셔닝을 본 책은 취하고 있다. 이게 역사 이론서라고 하기엔 한없이 가벼우며, 보이스 문학 혹은 르포르 타주 라고 하기에도 빈약하며, 소설 이라고 할 수는 더더욱 없는 포지션이란 말이다. 파견기자의 칼럼을 위한 기자수첩내 메모들을 대충 쭈욱 엮어 쓴 글 정도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게다가 소개된 에피소드들도 이미 한 때, 전쟁 문학에 심취해있던 내겐 더더더더더~~~ 드라마틱하게 절묘하게 책 속의 에피소들을 엮어낸 주옥같은 소설과 수필들을 줄줄 읊어 댈 수 있을 정도로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음이 더욱 실망 스러울 따름 이었다. 아... 3주나 더 이 책으로 토론을 할 텐데. 가기가 싫고나. 그래서 이번 주는 자발적 결석을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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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제목보고 구매했습니다. 신문에서 광고한 영향도 있고요 작가가 1945년을 기준으로 잡고 설명을 하는데 현대 역사에 대해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잘 설명해줘서 재미도 있었고요. 얼마전에 보니 2016년에 읽어볼만한 책으로 선정되었던데 그만한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역사에 관심 많으신 분들 꼭 읽어보시길 권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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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종전을 0년으로 제목붙인 책. 2차 대전 이후 세계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기록 그 기록들을 통해 다시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이 아닌가 한다. 물론, 2차 대전 이후에도 지구에는 크고 작은 전쟁들이 끊이지 않았지만... 2차대전은 끝난 것 같아도 우리에게는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생각도 해 본다. 유럽에서는 잘 알려진대로 전쟁 이후 독일에 대한 단죄가 계속되었고, 독일 스스로도 반성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 모습이 이 책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진정성 있는 반성을 하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도 예를 들어 베트남전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것도 원인일 수 있겠지만... 2차 대전에 대한 반성과 단죄가 없으니 여전히 친일 세력이 득세한다. 친일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다카키 마사오의 딸 미스박은 도무지 앉아서는 안 되는 자리에 앉아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은 외면하였고 몸매 좋다는 소리에나 헤헤거린다. 기가 막힌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며 친일 세력의 잘못에 대한 처벌이 제때 이루어지지 못한 아쉬운 마음이 다시 한 번 들었다. 다시 0년이 만들어지지 않기 위해, 평화와 공존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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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정치 사회상의 혼란을 보며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냐”며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유럽,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세계, 그리고 한국전쟁 시기의 한반도를 떠올리곤 합니다. 지옥 같던 그 시절을 견뎌내고 다시 일어선 인류는 현재의 혼란쯤은 또 한 번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안 부루마의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 시기 그 혼란의 중심으로 들어가 그 때의 현장과 그 시절을 살아간 사람들의 말과 생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입니다.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굵직 굵직한 사건과 결정들에 관한 책이 아니다 보니 경우에 따라 읽기가 어려울 수도 있는데, 이걸 가중시키는 요인이 저자의 화법 때문인지 번역자가 하나 하나의 문장과 사항, 그리고 맥락들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책을 번역해서인지 살짝 모호합니다. 평범한 독자인 저에게도 눈에 띄는 아래 예와 같은 너무 노골적인 실수들을 보면, 전문 번역가도 역사 전공자도 아닌 역자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겠죠. 역사서를 많이내는 출판사인 글항아리의 편집부에도 아쉬움을 품게 되고요. p217 이런 방식을 통해 독일을 증오하는 국가와 민족들은 21세기 초반 10년간 인종적 순수성과 국민주의를 내세우면서 집권했던 히틀러의 프로젝트를 완성한 셈이었다. > 일단 20세기 얘기를 하는 중이니 20세기를 21세기로 잘못 써 놓은 걸테고, 히틀러는 21세기 초반 10년에 집권한게 아니니 뭔가 문장이 이상합니다. In this way Hitler’s project, based on ideas going back to the first decades of the twentieth century, or even well before, of ethnic purity and nationhood, was completed by people who hated Germany. ‘20세기 첫 10년, 혹은 그보다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민족적 순수성과 nationhood라는 사상에 기반을 둔 히틀러의 프로젝트’라는 의미겠네요. 민족주의의 태동과 부흥의 시기를 언급한 것이니. p332 로테르담은 시내 중심이 폭탄으로 파괴된 첫 번째 서유럽 도시였다. 1939년 9월 로테르담은 앞선 8개월간 폭격을 받은 바르샤바만큼 막대한 패해를 입진 않았지만 도심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다. > 1939년 9월은 로테르담이 아니라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이 시작된 때이고, 바르샤바는 8개월간 폭격을 받지도 않았죠. 나치의 로테르담 폭격은 1940년 5월입니다. 즉, “로테르담은 8개월 전인 1939년 9월 폭격을 받은 바르샤바만큼 막대한 피해를…”식으로 번역해야 할 내용일겁니다. 원문도 그렇네요. Rotterdam was the first city in western Europe to have its heart ripped out by bombs. The damage was not as vast as in Warsaw, bombed eight months before Rotterdam in September 1939, but the center of the city was pretty much obliterated. p370 독일인에게 미국은 모방해야 할 모델이긴 했지만, 빙 크로스비의 뮤지컬에서 ‘러키 스트라이크Lucky Strikes’(재즈 음반 이름-옮긴이)까지, 스윙 음악에서 껌에 이르는 미국 문화에 대해 독일인들은 다소 양면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 Lucky Strike는 너무나도 유명한 담배 브랜드이고, 한국 전쟁 후 이 땅에도 그랬듯 담배나 껌 같은 상품들이 미국의 풍요의 상징으로 암시장에서 거래되곤 하는 건 워낙 전형적인데, 뜬금없이 재즈 음반이라고 적어뒀네요. 뮤지컬-담배, 스윙-껌, 딱 대칭되게 글을 써놓은건데.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알만한 재즈 음반도 아니거니와, Lucky Strikes라는 제목의 재즈 음반은 1964년 Lucky Thompson이 발매한 음반이 있는데, 년도도 이 책에서 언급하는 시기 이후인데 당혹스럽네요. p399 영국이 참전하기 전인 1940년 미국에서 기독교회 연합협의회라는 단체가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평화’를 연구하는 위원회를 발족했다. > 영국은 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 침공하자마자, 9월3일 선전포고하고 참전했는데, ‘영국이 참전하기 전’인 1940년이라니 이상합니다. 더군다나 미국의 움직임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인데… 원문 찾아보니 미국이 참전하기전인데 영국이라 잘못썼네요. In 1940, before the U.S. had even joined the war, an outfit called the Federal Council of the Churches of Christ in America set up a commission to work on a “Just and Durable Peac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