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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어떻게 진보하는가 자크 아탈리/양영란 책담/2016.1.25.
새로운 것을 향한 욕망을 모더니티라 하며 처음 나타난 것은 실존 지향적 모더니티다. 즉 지난날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생활하는 것을 말한다. 원시시대를 거쳐 기독교가 통치이념이 되면서 신앙적 모더니티가 생겨났다. 이어서 신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을 찾기 위한 신흥 부르주아의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가 중세에 새롭게 대두 되었다. 프랑스와 영국의 혁명을 거치면서 미국이 독립하게 되고 미국의 독립으로 생겨난 시장민주주의가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의 승리라 한다면 그의 반발로 나타난 것이 포스트모더니티 즉 허무주의 사조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때 구세력 유지를 위한 우파와 새로운 변혁을 꾀하는 세력의 좌파가 생겨나는 계기가 되었다.
이어서 1960년대 이후에 나타난 상업적 민주주의는 욕망을 부추기는 컨템퍼러리 즉 동시대적이라는 탈을 쓴 찰나적인 것을 추구하게 된다. 컨템퍼러리 모더니티는 의무라고는 없고 권리만 존재하는 세계를 창조한다. 우리 사회가 보이는 행태가 이에 속한다 할 수 있다. 이러한 유아적 모더니티에서 벗어나는 것이 현대화다. “‘현대적’이라는 것은 전 세계 보편적으로 노동하고 기업을 일구고, 먹고 마시고, 치료 받고 학습하고, 주거 생활을 영위하고 교육을 받고 청결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물질적 수단과 더불어 정치적 속박, 금기, 편견 등 남녀노소 구별 없이 모든 사람의 발전을 가로막는 전근대적인 규정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모든 정치적 수단을 누리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p.17)” 모던하게 살기, 즉 현대화란 그러므로 이성 지향적 미래 비전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모든 것, 즉 기술 진보, 혁신, 개인의 자유, 인권, 시장, 민주주의 등을 수용하는 것이다.
실존지향적 모더니티, 신앙지향적 모더니티,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 이렇게 세 가지 모더니티의 지배를 거치고 난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모더니티란 서구화와 동일시되고 있으며 그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러나 서구화는 무엇보다 도덕적, 종교적 원칙을 유린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파괴하며, 자연을 황폐화시키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회적 관계를 점진적으로 인공물로 변형시킴으로써 이를 ‘상품화’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인공 보철 기구가 모더니티를 평가하는 척도가 되는 단계인 ‘하이퍼 모더니티’로 이행하게 만든다.
이렇게 편리함만 추구하여 인간성이 황폐화되는 상황에서 저자는 “오직 한 가지, ‘이타적 모더니티’를 통해서만 인류는 정체성과 창의성, 자유를 동시에 유지해나가면서도 지속 가능한 미래를 구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 도달하기 위한 길은 매우 좁다. 그것도 치명적으로 좁다.(p.9)”고 주장한다.
미테랑 대통령 집권당시 10여 년간 특별보좌관직을 맡았으며, 1990년대에는 유럽부흥개발은행의 초대 총재를 지내기도 한 저자는 <미래의 물결>, <세계는 누가 지배 하는가> 등 미래 세계의 가능성을 전망하는 여러 권의 저서를 냈다. 이 책은 ‘모더니티’라는 개념의 역사를 이야기할 뿐 아니라 역사의 각 단계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장래를 생각하고 준비해왔는지를 이해하고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 사람들이 모더니티를 대하게 될 방식을 유추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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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과 같은 서평단 신청글을 올려서 뽑혔다. 근래 읽었던 책 중에 제일 의미있고도 재미있게 읽었다.
미래학 권위자인 석학 자크 아탈리는 책 내내 '모더니티'라는 개념을 즐겨 사용한다. 모더니티를 통해 당대 사람들이 약간 앞선 미래가 어떠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지 방향성을 읽을 수 있다. 자크 아탈리는 마치 대학교 1학년 교양 강의 시간에 세계사를 들려주듯 큼직하고도 일목요연하게 지금까지 세계를 주도해온 모더니티들을 정리해준다. 특히 시대마다 모더니티를 선도했던 그룹인 예술가, 패셔니스타들 선호를 드러내 보여주어 흥미로웠다. 미래학 권위자인 줄만 알았는데 예술에 조예가 있어보여 자크 아탈리를 다시 보게 되었다.
1. 실존 지향적 모더니티: ~4세기 통상 우리가 고대라고 부르는 시기에는 생존이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다. 삶에 관한 토대가 불안정하고 앞날에 대한 예측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그 기반이 변하지 않고 안정적일 수록 좋았다. 다시 말해 변화를 지향하지 않았다. 사실상 고대 이전에는 '모더니티'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웠다. 앞날을 내다보고 삶을 더 좋게 바꾸겠다는 생각보다는 예전에 하던대로 사는 방식을 유지해야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사실상 이 책을 읽으면서 이미 독서 초반에 가장 재미있었던 지점을 발견했다. 인류가 항상 변화와 새로움을 좋아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고대에는 히브리(유대) 문화/ 그리스 문화 이 둘이 위와 같은 관행을 깨고 새로운 모더니티를 가지고 인류를 견인하기 시작했다. '실존'(개인)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라는 신을 믿으면서 내세와 구원이라는 미래를 그렸다. 그리스 민족은 이성과 학문을 통해 철학을 바탕으로 세계와 인간을 이해하면서 자유를 누리고자 했다. 이 두 문화권이 새로운 모더니티를 기억하고 물려주고 퍼뜨릴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은 '기록'했다는 점이다.
2. 신앙 지향적 모더니티: 4세기~14세기(과도기 15~17세기) 로마를 거치면서 중세에는 히브리 문화를 제국주의 공동체 문화로 변용, 재해석했다. 교황과 교회는 왕보다 큰 힘을 가지고 있었다. 구원은 개인 문제를 넘어서서 공동체 문제였고, 개인은 죄를 교회에 고하고 용서를 받아야 했다(고해성사 등). 민중은 글을 읽기 힘들었고 성경에 대한 접근이 어려웠기 때문에 말씀은 교회를 통해 해석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인간은 어떤 공동체에 속해서 살 수밖에 없고, 곧 신앙을 가져야만 했다. 개인에 대한 가장 과도한 제약은 신앙을 거스르는 모든 학문을 금지 당했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이런 시기가 유지된 후 반동으로 과도기에는 학문을 통해 개인과 자유를 부활 시키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3.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 18~19세기(이후 포스트모더니티, 컨템퍼러리) 종교개혁이나 과학혁명, 법치 국가 탄생 같은 움직임들은 이성을 기반으로 했다. 후기 푸코가 연구했던 정치철학, 국가의 의미와 역할, 통치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아래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아래와 같은 새로운 아이디어들은 억압 받던 중세를 넘어서기 위한 획기적이고 그야말로 '핫한' 시도였을 테다. 기존 기득권과 싸워야만 하기 때문에 다소 위험했지만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자 혁신을 선도하는 유행이었겠다. 근대가 지나갔다고 보는 지금에 와서는 낡아보이고 약점과 위험한 점이 눈에 띈다고 하더라도, 진보를 위해 그때 이러한 과정은 필요했고 거쳤어야 했던 과정이었을 듯하다.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지점은 합리성이 종교를 이기고 새로운 신처럼 부상했던 시기를 지난 후 결말은 전체주의였다는 점이었다. 지금은 신자유주의가 극대화 되어가는 시기라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매력이 더 많이 엿보이지만,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처럼 좋은 방향성을 지향하자고 제안하는 체제가 극단으로 향할 때 개인 자유나 인권을 억압하는 독재로 갈 위험이 있음을 항상 성찰해야 사회주의가 지향하는 좋은 점을 지킬 수 있을 테다. 또한 근대에 '합리성'에 대한 과도한 믿음, 다시 말해 인간이 기본적으로 합리성을 바탕으로 정치적 좋음이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리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만든 제도들(이를테면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선거법)이 잘못 작동하면 나치즘,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를 불러올 수도 있음을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 이후 양심 있는 경제학자들과 경제 전문가들은 더이상 개인이나 경제 체제가 합리성을 바탕으로 움직이지만은 않으며 과정과 결과를 예측하기 매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근대에 부활한 개인 자유가 신, 가치, 추상, 관념, 이론, 거대 담론을 잃어버리자 포스트 모더니즘을 불러왔다. 윤리학에서 말하는 '가치 상대주의'와 같은 흐름이 생겨났다.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면서 개인주의가 심해져간다고들 하는데, 니체는 그에 대한 원인을 이미 오래 전에 명쾌하게 내다보았다. 특히 권력을 가지고 통치한다는 자들에 대해 니체가 했던 비판(위 사진 참조)이 속시원하다. 당장 자기 보신과 안전 만을 추구한다면 가까운 미래에 어떤 재앙이 닥칠지 추측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옆자리 기간제 선생님이 막 '사용' 당하고, 타당하고 납득 가능한 이유 적은 상황에서 실직에 내몰린다면 그러한 현실은 조만간 나에게도 올 수 있다. 권리를 추구하는 만큼 시민으로서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 행동하고 있는가(저자가 책 내내 진보, 민주주의, 인권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점이 좋았다).
4. 2030년 즈음 모더니티: 대안적(이타적) 모더니티가 되어야 '한다' 저자는 2016년 현 시점에서 가까운 미래인 2030년 즈음 모더니티를 7가지로 예측해본다. 사실 하이퍼 모더니티와 이타적 모더니티 사이에 있는 5가지 모더니티는 곁가지이다. 역사에서 보았던 모더니티로 회귀하거나, 현실적으로 오래 가기 어려운 방향성들이다. 이 지점에서 독자는 당대 모더니티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다(현실= 하이퍼 모더니티)',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당위= 대안적, 이타적 모더니티)'를 구분해야 한다. 반박할 여지 없이 당대에는 과학 정보 기술, 생명 공학 발전을 기반으로 한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고 있다. 신기술과 정보를 바탕으로 인간 몸과 마음을 관리, 감시,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저자가 '생산성 향상'이라고 부르고 있는 신자유주의 효율성을 위해서라면 '경쟁'처럼 어떤 수단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마침 지금은 옳고 그름을 판단할 기준을 잃어버린 시대이다. 효율성이 좋고 나쁨을 판단할 기준이 되었다. 아래 내용에서 밑줄친 부분을 곱씹어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평생 자유롭게 움직이며 살 모나드들이 만들어갈 당대와 가까운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사실상 저자가 역사 속에서 다음 시대 사조를 이끌었던 모더니티를 찾아내어 길게 나열했던 이유는 바로 아래 내용을 주장하기 위해서였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테다. 분량은 짧지만 저자가 당대 인류에게 꼭 주장하고 싶은 내용이어 보인다. 지구 생명체가 멸종하지 않고 지속가능하게 상생하기 위해서 이미 다른 윤리학, 미래학 서적들 일부분에서 제안하고 있기도 한 생활 방식이다. 이타성이 실제로 나에게 눈에 보이는 도움을 직접 주든, 혹은 지구 전체를 건강하고 안전하게 유지시켜주며 돌아 돌아 그 영향이 나에게 오든 그러한 방향성을 추구하는 삶이 지속 가능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특히 지금 같은 저성장 고령화 사회에서 세대 갈등을 볼 때마다 기득권을 많이 쥐고 있는 어른 세대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여기에 명쾌하게 써 있다. 신자유주의적 효율성을 신뢰하는 어른들도 납득할 만한 주장이다. 직접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도' 이타적 모더니티를 추구하자는 저자 주장에서 지속가능한 지구촌 생존에 대한 절박함마저 느껴졌다.
책 모든 부분이 알차 강력 추천한다. 구심점 없이 가속화되고 혼란스러운(한병철 저작들 참조) '컨템퍼러리'를 분주하고도 피로하게 살고 있는 당대 사람들이 꼭 한 번 읽음직하다. 프랑스어를 한국어로 번역하기 어려웠을 텐데 역자 자신이 내용을 잘 이해하고 번역한 듯, 읽는 이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명쾌한 문체를 구사하고 있어서 가독성이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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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아탈리는 전작 [미래의 물결]에서 서구 중심의 시장경제체제가 건재하고 신유목민(하이퍼 노마드)의 삶을 사는 미래를 예견하며, 앞으로 다가올 위험요소들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그가 찾은 미래의 희망은 '이타성'이었다. [미래의 물결] 이후 약 10년만에 발표한 자크 아탈리의 미래 관련 저서 [인류는 어떻게 진보하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아무래도 [미래의 물결]과 비교를 하게 되었다. 실제로 두 책은 주제는 조금 다르더라도 서술방식이나 미래에 대해 예측한 내용 등이 많이 닮았기에 두 권의 책을 모두 본 것이 도움이 되었다. 무엇이 모던한 것인가? [미래의 물결]이 경제를 주로 이야기했다면, 이 책은 조금 더 범위를 넓혀 사회 전반을 서술하고 있다. [모더니티의 역사]라는 원제에 맞게, '이 시대에 모던한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담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 말을 달리 한다면 시대가 요구한 미래의 청사진이라고 해도 될 듯 하다. 자크 아탈리는 실존 지향적 모더니티(그리스, 로마 문명기), 신앙 지향적 모더니티(중세), 신앙과 이성의 투쟁(르네상스시대),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18세기 이후~) 라는 큰 흐름으로 모더니티의 역사를 나누어 설명한다. 역시나 그리스 로마 문명과 기독교를 빼놓고 서양의 역사를 논하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다.
이성이 너를 자유케 하리라 이런 역사는 결국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귀결되었다. 신이 아닌 인간이 승리하였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유가 주어졌다. 얼마전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무명의 수장 연향과 삼봉 정도전은 토지의 국유화 문제로 논쟁을 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비슷한 논리를 펼친 연향. 그리고 사회주의 사상에 가까운 삼봉의 정전제. 결과적으로 보자면 현재 세계는 시장경제체제와 자본주의가 주도하고 있다. 이는 결국 인간은 '자유'를 더 원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시장민주주의의 확대라는 역사적 흐름 외에도 문화와 예술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문화가 어떻게 사회를 반영하며, 또 어떻게 사회에 다시 영향을 끼쳐왔는지도 이야기한다. 그는 책의 후반부에서 예술의 역할을 강조한다. 하이퍼 모더니티, 그리고 그 한계 하지만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의 승리로 주어진 자유와 풍요로움은 모두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빈곤과 과중한 노동에 시달렸다. 19세기말과 20세기 전반에 걸쳐 사회주의 혁명, 세계대전과 대공황 등 숱한 위기를 겪었지만 여전히 이성지향적 모더니티는 강건하게 살아남았다. 자크 아탈리는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가 더 극단적인 형태의 하이퍼 모더니티로 발전할 것을 예견하며 다른 많은 모더니티들이 등장할 것을 말하면서도 그것들이 금새 소멸될 것이라 보았다. 그가 예견한 하이퍼 모더니티의 사회는 [미래의 물결]에서 이야기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유는 확대되지만 오히려 감시는 극심한 사회(한병철의 투명사회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기술의 발전과 인공적 요소의 확대, 유니섹스의 시대... 여기에 대항하여 비모더니티(히피문화와 비슷한...), 복고 지향적 모더니티(전통과 안정의 추구), 민족지향적 모더니티, 신정정치 지향적 모더니티, 생태지향적 모더니티 등이 등장해도 결국 '잘 먹고 잘 살게 해주지' 않거나 개인에게 '이래라 저래라'한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버릴 것이라는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 대안적(이타적) 모더니티 하지만 분명 우리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한계를 지금 느끼고 있다. 빈부의 격차, 환경의 파괴, 인간 소외 현상 등... 그리하여 자크 아탈리는 하이퍼 모더니티의 대안을 책의 말미에 제시한다. 그가 내다보는 미래는 마치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보는 것 같다. 합리적 이타주의라고도 말하는 이 새로운 형태의 이타적인 모더니티는 결국 '남이 잘 살아야 나도 잘 산다.'는 사심이 담긴 이타주의이다. 하지만 그는 사심 없는 이타주의도 있을 것이라 이야기하면서 미래의 희망을 이타성에서 찾는다. 곰곰이 이타주의를 생각해본다. 나는 늘 아이들에게 '더불어 함께'를 이야기한다. 함께 나눌 줄 알고 남이 어려울 때 공감하고 도와줄 줄 아는 사람으로 아이들이 성장하길 원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아이들이 약자가 되어 상처 입고 세상에 대한 불신을 갖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모두가 이런 이타적 모더니티를 가진다면 내 이상도 조금은 실현될 수 있지는 않을까? 승자와 패자가 있더라도 패자가 비참해지지 않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이 리뷰는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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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것을 향한 욕망을 모더니티라 하며 처음 나타난 것은 실존 지향적 모더니티다. 즉 지난날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생활하는 것을 말한다. 원시시대를 거쳐 기독교가 통치이념이 되면서 신앙적 모더니티가 생겨났다. 이어서 신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을 찾기 위한 신흥 부르주아의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가 중세에 새롭게 대두 되었다. 프랑스와 영국의 혁명을 거치면서 미국이 독립하게 되고 미국의 독립으로 생겨난 시장민주주의가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의 승리라 한다면 그의 반발로 나타난 것이 포스트모더니티 즉 허무주의 사조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때 구세력 유지를 위한 우파와 새로운 변혁을 꾀하는 세력의 좌파가 생겨나는 계기가 되었다. 이어서 1960년대 이후에 나타난 상업적 민주주의는 욕망을 부추기는 컨템퍼러리 즉 동시대적이라는 탈을 쓴 찰나적인 것을 추구하게 된다. 컨템퍼러리 모더니티는 의무라고는 없고 권리만 존재하는 세계를 창조한다. 우리 사회가 보이는 행태가 이에 속한다 할 수 있다. 이러한 유아적 모더니티에서 벗어나는 것이 현대화다. “‘현대적’이라는 것은 전 세계 보편적으로 노동하고 기업을 일구고, 먹고 마시고, 치료 받고 학습하고, 주거 생활을 영위하고 교육을 받고 청결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물질적 수단과 더불어 정치적 속박, 금기, 편견 등 남녀노소 구별 없이 모든 사람의 발전을 가로막는 전근대적인 규정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모든 정치적 수단을 누리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p.17)” 모던하게 살기, 즉 현대화란 그러므로 이성 지향적 미래 비전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모든 것, 즉 기술 진보, 혁신, 개인의 자유, 인권, 시장, 민주주의 등을 수용하는 것이다. 실존지향적 모더니티, 신앙지향적 모더니티,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 이렇게 세 가지 모더니티의 지배를 거치고 난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모더니티란 서구화와 동일시되고 있으며 그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러나 서구화는 무엇보다 도덕적, 종교적 원칙을 유린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파괴하며, 자연을 황폐화시키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회적 관계를 점진적으로 인공물로 변형시킴으로써 이를 ‘상품화’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인공 보철 기구가 모더니티를 평가하는 척도가 되는 단계인 ‘하이퍼 모더니티’로 이행하게 만든다. 이렇게 편리함만 추구하여 인간성이 황폐화되는 상황에서 저자는 “오직 한 가지, ‘이타적 모더니티’를 통해서만 인류는 정체성과 창의성, 자유를 동시에 유지해나가면서도 지속 가능한 미래를 구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 도달하기 위한 길은 매우 좁다. 그것도 치명적으로 좁다.(p.9)”고 주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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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자크 아탈리는 미래학자다. 이 책에서 그는 모더니티라는 개념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모더니티 속에 한 사회가 미래에 대해 품고 있는 개념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목적은 모더니티 개념의 역사와 더불어 인류 역사의 각 단계를 살펴보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미래를 생각하고 준비해왔는지 이해함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시대의 모더니티를 유추하고자 하는 데 있다. 그러기 위해 저자는 미래는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에 따라 만들어진다고 전제한다.
저자는 모더니티라는 개념에 입각해 인류의 역사적 발달 단계를 실존 지향적 모더니티, 신앙 지향적 모더니티,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로 나눈다. 불의 발견과 도구의 변화, 정착생활과 농경문화를 이룩한 인간이 영원회귀적인 집단에서 빠져나와 개개인이 소중한 존재로 인식되던 4세기까지의 시대를 실존 지향적 모더니티라고 부른다. 그 후 기독교 신앙이 보편화되면서 개개인의 구원이 중요해지고, 사랑이 유일한 가치로 등장하며, 청빈한 삶을 모던한 것으로 여기던 신앙 지향적 모더니티가 14세기까지 지배한다. 과학과 기술, 상업의 발달에 힘입어 이성과 자유가 중요하게 대두되면서 15세기에서 17세기 사이에 신앙과 이성의 투쟁이 정점을 찍고, 18세기에 이르러 미국의 독립혁명과 프랑스 혁명을 기치로 이성이 신앙을 대신하는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가 구축되었다. 마침내 19세기에 이르러 시장 민주주의가 지배하는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가 삶의 전반을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다.
하지만 시장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는 소수의 부르주아들의 배를 불리는 대신 대다수 프롤레타리아와 식민지 이주자들을 몰락시켰다. 더 이상 이성은 인류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19세기 말에 이르러 1960년대까지 니체의 허무주의를 비롯하여 포스트 모더니티가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장 민주주의는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와 포스트 모더니티가 혼재하면서 컨템퍼러리라는 이름으로 '모던'을 대체하고 있다. 개개인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소비자로 전락했고,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생산성 증대는 그 자체가 미래 비전인 양 떠오른다. 매 순간 새로운 것을 소비하는 가운데 미래에 대한 비전과 희망은 없고 오직 순간만이 삶의 의미를 대신하는 현상이 오늘의 컨템퍼러리 시대다.
저자는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가 가져온 시장 민주주의가 불평등을 강화하고 국가를 약화시키며 좌절감만 키우고 오직 순간에만 관심을 갖게 한다는 점에 통감한다. 그러면서 이 시대를 극복할 비전으로 미래에 가능한 7가지 모더니티를 제시한다. 하이퍼 모더니티, 비非 모더니티, 복고 지향적 모더니티, 민족 지향적 모더니티, 생태 지향적 모더니티, 신정 정치 지향적 모더니티, 대안적 모더니티가 그것들이다.
자자는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의 정점으로 파악되는 하이퍼 모더니티를 비롯하여 다섯 가지 모더니티의 실현 가능성을 예측하고 있다. 다섯 가지 모더니티는 저마다 장단점을 지니는데 가장 큰 공통된 단점은 개인의 자유와 생산성의 증대를 제약해 결국 하이퍼 모더니티에 굴복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본다. 따라서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이타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대안적 모더니티만이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결론짓는다.
오늘날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세계적으로 부익부 빈익빈, 만성적인 청년실업, 생태계의 파괴와 환경오염, 테러를 비롯한 반인륜적 범죄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산되고 있다. 특히 부의 양극화 문제는 심각해서 무한 경쟁만이 살 길인 듯 사회 전반을 비인간적으로 몰아간다. 정부도 정치지도자들도 교계와 학계에서도 미래에 대한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제 살 길만 찾는 듯하다. 우리 사회를 비롯하여 인류에게 희망도 대안도 없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한 시대다. 삶의 의미를 잃고 순간의 쾌락과 소비에서 무언가를 찾으려 하는 이때에 나를 넘어서는 이타주의만이 인류가 살 길이라고 제시하는 저자의 통찰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저자도 지적하고 있듯이 그 길이 매우 좁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단 이타주의라는 좁은 길을 선택할 용기가 있다면 분명히 희망은 있을 것이다.
- 이 리뷰는 책담으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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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이라는 것은 전 세계 보편적으로 노동하고 기업을 일구고 먹고 마시고 치료 받고 학습하고 주거 생활을 영위하고 교육을 받고 청결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물질적 수단과 더불어 정치적 속박, 금기, 편견 등 남녀노소 구별 없이 모든 사람의 발전을 가로막는 전근대적인 규정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모든 정치적 수단을 누리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모던하게 살기, 즉 현대화란 그러므로 이성 지향적 미래 비전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모든 것, 즉 기술 진보, 혁신, 개인의 자유, 인권, 시장, 민주주의 등을 수용하는 것이다. p.17 유사이래 인류는 더 이상 반복적인 세계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두 손에 꽉 움켜쥔 채 이를 개척해나가기로 결심했다. 이타적 모더니티는 그 이후 인류가 빠져든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출구다. 이타적 모더니티는 가능하긴 하나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는 개연성은 매우 낮다. 예술은 이타적 모더니티가 도래하느냐 실패하느냐의 문제에 있어서 매우 비중 있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2030년의 세계가 어떤 양상으로 나타날지는 이제부터 살펴볼 모더니티에 대한 다양한 견해와 그 견해를 지지하는 세력이 벌이는 각축전에 달려 있다. 이 시기에 인류가 2060년을 어떻게 생각하고 준비하느냐에 따라 생산하고 투쟁을 벌이는 방식이 좌우된다는 말이다. p.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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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아탈리 저자 : 자크 아탈리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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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모더니티란 용어에 대한 그의 언급부터 정리하자. 아탈리는 우리가 흔히 근대성으로 알고 있는 이 개념이 실은 인류 역사 전체를 일람하는데도 유용한 일반명사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용어 자체는 19세기 초 발자크에 의해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개념이지만 말이다.
모든 시대에 있어서 모더니티란 한 사회가 미래에 대해 품고 있는 개념, 그 사회가 미래에 대해 상상하고 소망하고 거부하는 것 등을 암묵적으로 뭉뚱그려 지칭하기 때문이다. (7쪽, 서문에서)
즉 어떤 시대건 미래에 대한 비전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런 관념들의 총합을 모더니티로 이해한 것이다. 그러니 고대사회인들도 모더니티를 상정하고 사회 변동의 지향점을 그쪽으로 몰아갔을 것이다. 이런 인식에서 아탈리는 4세기 이전의 실존 지향적 모더니티에서 시작하여 중세의 신앙 지향적 모더니티, 시민혁명기의 이성 지향적 모터니티를 거쳐 현대의 컨템퍼러리와 포스트모더니티로 이어지는 모더니티 개념의 역사적 변용 과정을 정리하고 있다. 이를 이어서 미래의 특정 시점인 2030년에는 더 미래인 시점 즉, 2060년 쯤의 사회를 어떻게 상상하고 사회 변동을 준비할까 하는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미래의 미래인 2060년의 사회상에 대해 2030년 쯤 지닐 법한 모더니티로 자크 아탈리는 일곱 가지 유형을 들고 있다. 그가 상정한 모더니티는 하이퍼 모더니티, 비 모더니티, 복고 지향적 모더니티, 민족 지향적 모더니티, 생태 지향적 모더니티, 신정정치 지향적 모더니티 및 대안적 모더니티 이렇게 일곱 가지 세력에 대응하는 계획 안이다.
그는 서구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 진행형 비전을 하이퍼 모더니티로 보고 이에 대한 반기를 드는 이들에 의해 다양한 모더니티가 제안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 중 대안적 모더니티는 아탈리의 독창적인 모더니티로 이타적 모더니티에 해당한다. 그런데 하이퍼 모더니티와 대안적(이타적) 모더니티를 제외한 다섯 가지 모더니티는 개인의 자유와 양립이 불가능한 개념이다. 그러므로 근대 이후 전지구적으로 확산된 개인의 권리의식으로 미뤄볼 때 이런 모더니티는 제척될 것으로 그는 판단했다. 그러면 남는 것은 현재 진행형 방식인 하이퍼 모더니티와 이타적 모더니티만 남게 되는데 그간 진행되어 온 하이퍼 모더니티로 인한 한계 상황으로 미뤄 대안적 모더니티가 채택 가능한 유일한 모더니티라고 여겼다. 그런데 아탈리는 이 개념이 실현 가능성이 무척 낮다고 안타까워한다.
아탈리의 견해를 따라가다 보니 인류사 전체를 톺아본 느낌이다. 그리고 역시 발랄한 상상력이 느껴진다. 그는 어떻게 미래의 미래에 대한 관념을 떠올렸을까? 마지막 대목에서 인류가 선택 가능한 유일한 대안인 이타적 모더니티가 지배적 모더니티로 자리잡을 개연성이 매우 낮다고 언급하는 대목엔 논리적으로 공감하면서도 의지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면도 있었다. 수준 높은 사회학, 미래학 견해를 접한 좋은 기회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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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현재의
집합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현재(들)의 집합은 미래라는 아직 발생하지 않은 시간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되기도 하겠다. 세계적 석학 자크 아탈리는 이 책 <인류는 어떻게 진보하는가>를 통해 인류가 진보해온
과정을 모더니티의 관점을 통해 해석해 보고 그 과정을 거울삼아 우리가 맞이할 미래의 방향성을 모색해 보자고 말하는 듯 하다.
저자가 언급하는 모더니티는 사전적 의미의 ‘현재성’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듯하다.
저자는 모더니티에 대해 모든 시대에 있어서 한 사회가 미래에 품고 있는 개념, 그 사회가
미래에 대해 상상하고 소망하고 거부하는 것 등을 암묵적으로 뭉뚱그려 지칭한다고 했다. 즉 모더니티는
인류에게 있어 미래를 상상하고 준비하는 방법이나 방식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과거의 모더니티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더니티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 이 책의 큰 틀이라 할 수 있겠다.
과거 모더니티의 역사를 살펴보고 분류해 보자면 크게 ‘실존 지향적’, ‘신앙 지향적’ 그리고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로 분류할 수 있다. 이 3가지 큰 모더니티의 프레임 안에서 인류가 발전하고 진보해 왔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실존 지향적 모더니티는 4세기 이전까지
인류의 모더니티로서 생존 지향적 모더니티라고 다르게 표현될 수 있겠다. 인류의 최대관심사는 생존, 안정이었으며 이를 위해 집단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이상적이라 상정했던 것이다. 생존 자체가 인류의 최대 목표였던 시기를 지나 각종 기술의 발달로 부를 축적하게 되면서 인류에게는 보다 진보한
모더니티가 필요하게 되었고 이후 1500년동안이나 세상을 지배하게될 신앙 지향적 모더니티가 생겨났다. 모더니티의 전환은 아주 빠르게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서서히 변화를 겪어가면서 이전의 모더니티는 부정되고 기독교적
가치관과 세계관이 세상의 중심이 되었다. 하지만 절대로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신앙 지향적 모더니티도 18세기 계몽시대에 접어들어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혁명을 거치면서 권력이 이양되어 붕괴되었다. 이후 등장한 것이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 로서 이성과 합리성이 지배하는 세상이 도래하게 되었다.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는 시장과 민주주의시대와 어우러져 근대에 가장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모더니티로 여겨지게 되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
들어 시장과 민주주의의 맹점 즉 모든 사람들에게 이상적이지는 않다는 점들이 드러나면서 ‘허무주의’가 이상주의 모더니티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이후 등장한 개념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예술에 의한 사회변혁을 비롯하여 마르크스주의 등 기존 이성과 시장의 모더니즘을 완전히 거부하는 움직임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다시, 1950년대에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가
더 많은 자유를 원하는 사람들의 갈망 속에서 돌아오게 된다. 이 때는 기존의 모더니티와는 다른 개념이
적용되는데, 사람들은 더 많은 자유, 작금의 자유를 갈망하게
되고 그와 더불어 쾌락을 요구하게 되는 ‘컨템포러리’의 시대로 탈바꿈한 것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예측이 없는
작금의 순간순간만이 가장 소중한 시대가 그것이다. 이는 미래가 없다는 말과 다름이 아니다.
자크 아탈리는 ‘컨템포러리’ 시대에서 다음 세대(2030년)의
모더니티로 ‘하이퍼 모더니티’, ‘비 모더니티’, ‘복고 지향적 모더니티’, ‘민족 지향적 모더니티’, ‘신정정치 지향적 모더니티’ 그리고 ‘생태
지향적 모더니티’를 상상했다. 하지만 그는 미래 인류의
존속을 위해서는 가장 가능성이 적은 대안 모더니티로 ‘이타적 모더니티’를 제시했다.
‘나’ 중심의 이기적 모더니티에서 ‘남’중심의
이타적 모더니티로의 전환이 인류를 지속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대안으로 보인다. 미래학자인 그가 던지는
이러한 화두는 소실된 ‘우리’의 개념을 다시금 일깨우고 지금
세계 곳곳에서 미미하게 움직이고 꿈틀대고 있을 이타성의 씨앗에 싹의 틔울 수 있는 단비가 될 수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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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탄생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각 시대별로 지향하는 미래의 대한 구체적인 모습이 존재했으며, 앞으로도 그런 미래에 대한 방향성은 여전히 중요하게 여겨질 것이다. 이런 인류가 가지고 있는 미래에 대한 개념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자면 '모더니티'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최고의 지성이라고 불리우는 자크 아탈리의 신간 [인류는 어떻게 진보하는가]는 그동안 인류의 역사 속에서 존재했던 모더니티들을 소개하며, 앞으로 우리가 어떤 모더니티를 갖게 될 지를 전망하고 있다. 이 책에서 중요한 핵심어로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는 모더니티는 흔히 근대성이나 근대화를 지칭하는 모더니즘과는 다른 개념이다. 인류에게 있어서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는 각각 매우 중요한 가치와 존재성을 가진 것이었으며, 시기마다 그것을 지칭하는 단어나 표현이 달랐을 뿐이지 모더니티를 향한 연구와 고민은 계속되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4세기 이전 인류 최초의 모더니티는 유대 민족과 그리스에서부터 탄생되었다고 책에서 말하고 있다. 각각 이집트와 트로인들과의 갈등과 전쟁으로부터 생겨난 이 실존의 모더니티는 종교라는 힘이 강력해진 이후에 오랫동안 신앙 지향적 모더니티로 바뀐다. 물론 이런 종교를 중심으로 한 모더니티의 위력은 서양에서 훨씬 더 강했다는 점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생각과 사고의 중심이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여 변하는 것처럼 이런 종교를 바탕으로 한 모더니티는 여러 가지 갈등을 겪으며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로 넘어가게 된다.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의 전주곡이 되어준 것은 바로 미국의 독립혁명과 프랑스 혁명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는 포스트모더니티, 컨템퍼러리를 거쳐서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특정 모더니티의 지배가 강했던 시기는 각각 달랐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개념이 곧 그 시대의 인류가 가졌던 정치, 사회, 문화 등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집단에서 개인으로, 개인에서 집단으로 발현되었던 이런 모더니티의 영향력에서 인류는 삶을 이어나갔다. 과거 인류사에서 존재했던 각가의 모더니티의 탄생과 과정, 그리고 어떠한 영향을 인류에게 주었는지를 살펴 보았다면, 자연스럽게 앞으로 우리의 미래에 등장할 모더니티는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즘이 생길 것이다. 자크 아탈리가 제안하는 미래의 모더니티는 크게 하이퍼, 비非, 복고 지향적, 민족 지향적, 신정정치 지향적, 생태 지향적, 대안적 모더니티였다. 유사 이래 인류는 더 이상 반복적인 세계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두 손에 움켜쥔 채 이를 개척해나가기로 결심했다. 이타적 모더니티는 그 이후 인류가 빠져든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출구다. 이타적 모더니티는 가능하긴 하나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는 개연성은 매우 낮다. 예술은 이타적 모더니티가 도래하느냐 실패하느냐의 문제에 있어서 매우 비중있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 [인류는 어떻게 진보하는가] 중에서 p.20 조금 어려운 개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일곱 가지의 모더니티들 중에서 대안적 모더니티를 제외하고는 과거 존재했던 모더니티의 변형이나 수정 혹은 확장의 개념 선상에 있는 것들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예를 들어서, 이성 지향적인 모더니티가 최고조에 이른다면 하이퍼 모더니티가 도래할 것이고, 컨템포러리가 확장된다면 비 모더니티가 나타날 것이다. 신정정치 지향적 모더니티와 생태 지향적 모더니티는 과거 신앙지향적 모더니티와 연관이 있다고 책에서 말하고 있다. 선택지가 많아서 좋아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들을 상품화하는 하이퍼 모더니티와 그것에 반기를 다른 모더니티들이 가진 한계를 생각해본다면 결국 이타적인 모더니티로 나아가야 한다고 저자는 생각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상에서는 여러 내전과 테러 등이 일어나고 있다. 냉전 시대는 오래 전 끝났지만 여전히 이해관계를 통한 각 나라들간의 갈등이 벌어지고 있으며 물질만능주의 역시 심화되어가고 있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우리가 과연 이타적인 모더니티를 향해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현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 자크 아탈리는 너무나도 어려운 그 길을 인류가 가야하는 명백한 명분을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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