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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의 이모 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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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은 두루미가 천년을 살면 청학(靑鶴)이 되고 다시 천년을 살면 현학(玄鶴)이 된다고 믿었다. 1742년 우화등선, 웅연계람의 주인공 청천(靑泉) 신유한의 청천은 어머니 꿈에 나타난 푸른 학과, 메말랐다가 다시 솟아오른 샘을 합쳐 만든 말이다. 청학동(靑鶴洞)의 청학도 푸른 두루미를 의미한다. 청학동은 푸른 학이 사는 이상향을 말하는 것으로 요즈음 기준으로는 지속가능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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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은 두루미가 천년을 살면 청학(靑鶴)이 되고 다시 천년을 살면 현학(玄鶴)이 된다고 믿었다. 1742년 우화등선, 웅연계람의 주인공 청천(靑泉) 신유한의 청천은 어머니 꿈에 나타난 푸른 학과, 메말랐다가 다시 솟아오른 샘을 합쳐 만든 말이다. 청학동(靑鶴洞)의 청학도 푸른 두루미를 의미한다. 청학동은 푸른 학이 사는 이상향을 말하는 것으로 요즈음 기준으로는 지속가능한 사회 정도의 의미가 될 것이다.

 

60 가지 이상의 소리와 몸짓 언어를 내는 두루미는 인간 외의 척추 동물 중 가장 복잡한 행동을 하는 동물 종이다. 대부분의 두루미는 철따라 이동한다. 봄부터 가을까지 습지에서 번식하는 두루미는 포식자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도록 얕은 물 위에 둥지를 만든다. 물론 물이 불면 둥지를 높여 침수되지 않게 하는 것이 급선무다.

 

알을 한, 두 개만 낳는 등 번식력이 낮은 두루미에게 주요 서식지인 습지가 급속히 사라지는 것은 슬픈 현실이다.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두루미와 함께 살아왔다. 두루미는 몸집이 커 방향 전환을 쉽게 하지 못하는 데다가 전선(電線)이 눈에 잘 보이지 않아 부딪혀 속이 빈 뼈가 골절되는 등 치명적 피해를 입기 쉽다.

 

두루미는 교란에 민감한 새다.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에서 볼 수 없었던 두루미를 1970년대 철원 민통선 지역에서 발견한 이가 세계적 두루미 전문가 캐나다인 조지 아치볼드 박사다. 1990년대 후반 북한에 심각한 기근이 들어 탈북자 행렬이 이어질 때 두루미들도 북한을 떠났다. 북한 안변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230마리 이상의 두루미가 겨울을 나던 주요 활동지였지만 그 이후 식량 부족 때문에 북한 주민들이 논의 낙곡(落穀)까지 모두 취하고 오리, 거위, 염소 등 가축들을 풀어 모두 주워 먹게 한 탓에 두루미들이 먹을 것이 없자 안변을 떠나 철원을 찾은 것이다.

 

대형 조류이고 습지의 상위 포식자인 두루미가 살려면 습지가 보전되어야 한다. 농사는 아주 불안정한 생계수단이다. 수입이, 투자한 비용을 간신히 메울 정도이기에 들판에 먹이를 찾아 날아드는 수천 마리의 새들은 가계에 추가적 부담이 된다. 그러니 농민들이 자기 소유의 농지에서 새들을 쫓는 것이 놀랄 일은 아니다. 반면 놀랍게도 두루미를 잃지 않기 위해 이익의 일부를 기꺼이 포기하려는 농민들이 점점 늘고 있다.

 

국제 두루미재단의 설립자 조지 아치볼드 박사는 80년대 들어 한국의 동료들이 공동경비구역과 한강 하구에서 월동하던 두루미 개체수가 감소하고 임진강 유역의 연천에서 월동하는 두루미가 발견되었으며 철원 지역의 두루미 개체수가 약 350 마리로 증가했다고 알려왔다고 말한다. 만일 북한과의 관계가 개선되어 철원 지역의 개발 계획이 진행된다면 그 지역의 두루미 서식지와 두루미의 안위에는 또 다른 위협이 될 것이다.

 

남북한 모두 사용하는 학(鶴)은 두루미를 뜻하는 단어다. 조지 아치볼드 박사는 두루미와 가까이 있는 주민들을 돕지 않고는 두루미를 도울 수 없으며 두루미와 주민들의 운명이 서로 이어져 있음을 항상 느낀다고 말했다. 1990년대 초 홍수, 가뭄, 비료 수입 감소 등으로 북한의 토지생산성은 떨어졌다. 사람이 먹을 것이 줄자 두루미들의 주요 먹이 자원인 벼 낙곡도 감소했다. 다행히 북한 당국이 두루미를 엄격히 보호한 데다가 군인들만이 총기를 소지할 수 있어서 두루미들이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두루미들을 안변으로 돌아오도록 한 프로젝트가 안변 프로젝트다. 우연하게도 안변 프로젝트가 시작된 2008년에 북한 당국은 유기농법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라는 내용의 시행령을 내렸다. 이로 인해 토양은 비옥해졌고 토양 산성도는 낮아졌고 식량 안보는 개선되었다. 콤바인으로 벼를 수확하면 벼알의 3~5%가 논에 떨어진다. 민통선과 새들의 잠자리인 비무장지대, 한탄강 등에는 인적이 드물어 사람들의 간섭이 없다.

 

전영국 교수는 흑두루미를 현학(玄鶴)으로 네이밍한 자신이 사는 순천에 대해 이야기한다. 석문 호흡에서 말하는 진기를 타고 추는 춤인 현무(玄舞)도 언급된 이 글에서 필자는 흑두루미 춤을 추면서, 아이들과 흑두루미와 관련한 창의 체험 활동을 해나가면서 순천만의 흑두루미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필자는 흑두루미와 관련된 문화예술활동은 창의적 활동이기도 하지만 생태와 환경에 대한 좋은 학습 매체임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순천만 주변에는 학산리, 선학리, 송학리, 학동, 황새골 등 새(bird)가 이름에 들어간 마을이 많다. 송학은 황새를 일컫는다. 순천만에 오래 산 노인들에 의하면 흑두루미는 강산 두루미라 불렸다. 강산이 한 번 바뀔 때마다 돌아오기 때문이다. 두루미는 뚜루루 ? 뚜루루 하는 울음소리에서 이름이 유래한, 순수한 우리말 새다. 두루미의 라틴어 속명인 그루스(grus)도 그루루 하는 울음 소리에서 유래했다. 일본어 쯔루도 소리에서 기원한 것이다.

 

재두루미는 한강과 임진강 하구, 연천, 철원평야 등에서 겨울을 보내다가 본격 추위가 찾아오면 남쪽으로 이동하는 습성이 있다. 재두루미는 흑두루미보다 훨씬 크다. 두루미는 우리나라에 찾아오는 두루미들 가운데 몸집이 가장 크다. 두루미는 보통 자기 영역을 지키며 가족 단위로 일정한 지역에 머무는 습성이 있다.

 

두루미가 번식지와 월동지 사이의 하늘길을 찾아가는 능력은 부모 두루미들이 이끌어주고 연장자로부터 배우기에 해가 갈수록 늘어난다. 순천만을 찾아오는 두루미들이 천 마리를 넘어서면서 순천을 천학의 도시라 부른다. 천학은 천년학의 줄임말 같다. 물론 두루미는 천년을 살지 못한다. 하지만 두루미들이 대를 이어 살아간다면 천년을 사는 것이 맞다. 하지만 두루미들은 대부분 멸종위기종이다. 두루미들과 인간, 그리고 생태계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길이 모색되어야 한다.

이달의 사락 m******1 2023.02.1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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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그리고 두루미와 함께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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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중순에 민통선 안에서 두루미와 재두루미를 봤다. 민통선 자연은 살아 있었다. 2시간 남짓 둘러보았는데 논에 있는 두루미 2마리, 재두루미 2마리, 율무 밭에서 날아가는 두루미 6마리, 날아가는 두루미 3마리, 논에 있는 두루미 2마리, 재두루미 3마리, 합해서 두루미 13마리와 재두루미 5마리를 보았다. 1월 하순에는 강화도에서 두루미를 봤다. 초지벌판과 동검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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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중순에 민통선 안에서 두루미와 재두루미를 봤다. 민통선 자연은 살아 있었다. 2시간 남짓 둘러보았는데 논에 있는 두루미 2마리, 재두루미 2마리, 율무 밭에서 날아가는 두루미 6마리, 날아가는 두루미 3마리, 논에 있는 두루미 2마리, 재두루미 3마리, 합해서 두루미 13마리와 재두루미 5마리를 보았다. 1월 하순에는 강화도에서 두루미를 봤다. 초지벌판과 동검도에서 주로 봤는데, 세 마리 네 마리 식구끼리 움직이는 두루미 여러 식구를 봐서 27마리까지 셌다. 두루미는 주로 논과 밭에서 생활하는데 유일하게 강화도에서는 갯벌에서 지낸다고 한다. 식구끼리 게와 갯지렁이를 잡아먹으며 성큼성큼 걷는, 그리고 하늘을 우아하게 나는 모습을 보니, 마음도 춤을 추고, 연하장에 두루미가 나오는 까닭을 알겠다.

 

2015년 2월 초에는 철원 논에서 성큼성큼 걷는 재두루미를 봤다. 도로에서 100여 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에서 춤을 추듯 성큼성큼 걸으며 먹이를 찾는 재두루미는 황홀할 만큼 멋졌다. 2015년 3월에는 천수만에서 흑두루미를 봤다. 새벽에 찾은 천수만의 해미천 하류 담수호 모래톱에는 뚜루 뚜루 걸찍한 소리로 울어대는 흑두루미가 기러기 수천 마리가 달빛을 받으며 날아간 뒤에 한동안 아무 소리 없더니 떼로 날기 시작했다. 거대한 군무에 참여한 흑두루미는 전남대 대학원생에 따르면 554마리였다.

 

두루미를 본 뒤로 두루미는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지난겨울에는 재두루미를 보는 재미로 지냈다. 파주에서 서울에 나갈 때 거치는 일산대교 전 한강 둔치에 재두루미가 있었다. 두 마리 한 쌍, 네 마리 한 식구 또는 어쩌다가 열두 마리 세 식구까지 모여 우아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1미터가 넘는 키에 기다란 다리로 걸을 때면 숨이 턱 막히는 감동을 느꼈다. 그리하여 거의 날마다 재두루미를 보러 갔다. 그렇게 두루미는 내 가슴 속에서 살아 새와 자연을 사랑하게 이끄는 한 동력이다.

 

나보다 먼저 두루미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조홍섭 〈한겨레〉환경전문기자, 세르게이 스미렌스키 러시아 무라비오카 국립공원 의장, 조지 아치볼드 국제두루미재단 공동 설립자, 홀 힐리 국재두루미재단 이사회 전 의장, 진익태 철원두루미학교 교장, 김신환 동물병원 원장, 전영국 순천대학교 컴퓨터교육과 교수, 김인철 한국물새네트워크 이사가 그들이다. 두루미와 사랑에 빠져 그들과 함께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그이들의 이야기는 새겨들을 만하다. 특히 컴퓨터교육과 교수가 순천만 흑두루미에 관심을 갖고 점차 자신의 삶으로 끌어들이는 이야기는 잔잔한 감동이다.

 

정다운 친구가 찾아올 때면 순천만이나 순천만정원에 들러서 산책도 하고 흥이 나면 춤을 추기도 한다. 순천만정원의 인공호수 다리를 건너 길을 따라 올라가면 조그만 휴식처가 나온다. 나는 10월쯤 찾아온 벗을 그곳으로 안내했다. 미리 준비해 간 흰 옷을 입고 따스한 가을 햇살을 받으며 춤을 추었다. 음악을 따로 준비하지도 않았다. 내 벗이 노래를 부르고 나는 춤을 추었는데 햇살이 따사로워 가을 정취를 만끽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늘 아래에 앉아 쉬고 있던 관람객들도 우리의 작은 공연을 즐겼다. (전영국, 「흑두루미 춤을 추는 남자」, 149 - 150쪽)

 

흑두루미에 빠져 해마다 천수만에서 먹이를 뿌려주는 김신환 원장이나 1974년에 두루미를 보러 우리나라에 온 뒤로 가끔씩 찾아오는 조지 아치볼드 박사, 그리고 시베리아흰두루미와 실제로 춤을 춘 러시아의 생태전문가 세르게이 박사 또한 감동을 만드는 주인공들이다. 조지 아치볼드 박사는 아메리카흰두루미의 구애 의식 상대가 되어 인공 수정을 하게 만드는 장본인이 되기도 한다. 이들의 두루미 사랑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아무쪼록 우리들 가슴 속에 잠재되어 있는 두루미 사랑이 이들의 두루미 이야기 덕분에 조금씩이라도 살아나면 좋겠다. 두루미 15종 가운데 11종이 생존의 위협이나 멸종 위기에 처해 있고, 한반도에서 우리 민족과 오랫동안 함께 살아 온 두루미, 재두루미, 흑두루미는 멸종위기 조류 1급과 2급의 새들이니 말이다.

YES마니아 : 골드 g*******g 2016.11.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