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운형 만큼이나 평이 엇갈리는 인물도 없는 것 같다. 살아서는 민족의 독립을 위해 한 평생을 바쳤건만, 오늘날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끊임없이 불러내고 있다. 이념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잣대에 의해 여운형은 민족주의자도 되었다가 기회주의자도 된다. 난 그를 중도 좌파 정도로 분류하는 것이 가장 옳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의 본심이 무엇이었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중요한 것을 하나 놓치고 있다. 그가 했던 활동 하나하나가 지금의 우리를 가능케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망각하며 살아왔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떤 이념에 속하는가가 아닌 민족의 독립이었음을 나는 미쳐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에 대한 엇갈리는 평가는 우리가 남과 북으로 나뉘어있는 한 계속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책은 그의 둘째딸인 여연구가 썼다고 한다. 1946년 월북한 이후 북한 사회에서 고위직에 머물렀던 그녀의 관점은 지극히 스탈린주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자신이 속한 사회 속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평가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고 있는 한계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 책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일종의 변론과도 같은 느낌이 묻어난다. 박헌영에 대한 끊임없는 깎아내림, 김일성과 자신의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강조 속에서 나는 부자연스러움을 느낀다. 그와 같은 생각들이 나에게 익숙치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양의 것을 배우기 위해 기독교인이 되었을 뿐이라는 식의 이야기 역시 여운형이 직접 한 것인지 진위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지만, 몇 번에 걸쳐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부자연스러움에 대한 나의 생각은 점점 더 깊어져 갔다. 그것은 어쩌면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북한 체제에 대한 막연한 거부였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던 나로서는 그녀가 북한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이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작업이 책 읽는 내내 필요했다. 하지만 이 책은 여운형에 대한 많은 것들을 알게 해준다. 직접 대화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과장되게 묘사되어 있는 부분도 적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 때문에 나는 여운형의 사람됨, 그 호탕함에 대해 감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던 것 같다. 어느 누구를 만나도 주눅들지 아니하고, 강한 자 앞에서는 더욱 강한 모습을 보일 줄 알았던 그. 하지만 시대는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일제보다 더욱 그를 괴롭혔던 것은 어쩌면 함께 하는 이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변절해가는 동지들을 바라보며 그가 할 수 있었던 생각은 무엇이었을지… 또한 이 책은 일제 시대에서부터 시작하여 여운형이 사망할 때까지 우리의 역사에 대해 알 수 있게 해준다. 우리 사회에서 이야기되어지는 방향과는 조금 다르지만 그 긴박했던 순간 순간들을 되짚는 경험은 실로 값졌다. 시대는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고, 한 인간에게 주어진 무게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그 무게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한발 한발 걸어나갔던 그를 쓰러뜨린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 무조건적인 찬양 혹은 비난 속에서 그는 지금까지도 편히 잠들지 못하고 있을 듯 하다. 수유리에 여운형의 묘가 있다는 글을 읽으면서, 한 번 시간을 내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너무 빨리 그리고 너무도 쉽게 이 세상을 떠난 그를 만나러… |
| 해방 이후, 국민적 신망과 명망성이 가장 높았던 인물은 누구였을까? 아마도 일반인들은 이승만이나 백범김구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자료에 의하면 이들은 2인자나 3인자에 지나지 않았다. 가장 두각을 나타냈던 인물은 놀랍게도 중도좌익계의 지도자 여운형 선생이었다. 그러나 좌익계의 지도자에게 필수적인 조직력 면에서 선생은 취약점을 노출했고, 급기야는 암살에 이어 남한의 역사 속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왜 남한의 역사에서 선생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을까? 그것은 한국전쟁이 야기한 이데올로기적 대립속에서 좌익계가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비극적 운명을 반영하고 있다. 누구보다도 선생은 47년 7월 서거하기 전까지 남북의 통일을 위해 삼팔선을 넘나들며, 좌우익의 지도자들과 폭넓은 교류를 가졌지만 실패로 돌아갔고, 그러한 전력이 남한정권의 반공적 견지에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냉전체제가 와해되고 남북의 화해무드가 일면서 기존의 사관을 극복하고자하는 움직임이 모색되었고, 이 책 역시 그러한 시대적 소명아래 등장하였다. 즉 역사속에서 잊혀졌던 위대한 민족 지도자의 삶을 재조명함으로서 반쪽만의 남한역사를 완전히 복원하고자하는 여망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여운형선생의 자제분에 의해 서술되었다. 선생의 1남 2녀는 일찌기 김일성에게 의탁되어 소련의 유학길에 올랐으며, 70년대에 김일성에 의해 중용된 바 있다. 김일성과 깊은 친분이 있었던 여운형선생의 이러한 전력 역시 남한의 정권에 달갑게 비칠리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선생은 당시 북한의 최고 실력자였던 김일성과의 협상이 남북통일의 중요한 관건이라 판단하셨고, 이러한 신념을 끝까지 굽히지 않으셨다. 역사속에서 잊혀진 인물,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 여운형선생은 이 책을 통해서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오실 것이다. |
| 여운형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이 책만 읽어서는 대체 판단이 불가능합니다. 딸이 바라본 여운형의 모습은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지만, 그외에 그가 한 노선이라던지 걸어온 길 같은 경우는 과연 딸 여연구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읽어본 결과로 보아도 그렇지 못함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여운형에 관심이 있는 분은 우선 이기형씨의 여운형 평전을 먼저 읽어본 후 이 책을 읽어보는게 그 순서라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정병준씨의 책이 여운형에 관한 책 중에서는 제일 뛰어나다고 할 수 있지만 다분히 학술적인 부분이 많아서 쉽게 읽기에는 약간 거리감이 있습니다. |
| '나의 아버지 여운형' 이 책은 그야말로 북한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을 지낸 그의 둘째딸 여연구의 수필 형식의 전기다. 아래 쓰인 평이 하도 가혹한것 같아 몇자 적는다. 책을 읽는 방법, 목적, 글을 읽고 난 느낌은 독자마다 다를 것이다. 크게 보자면 방법은 책의 종류에 따라 분석적이든 감상적이든 그 접근방식이 다를 것이다. 목적은 때로 동기가 될 수 있는데 나의 경우를 보자면 신간안내 코너에서 우연히 눈에 꽂혀 집어들었다. 이천이년 새해를 한 위인과 맞이하고픈 충동이 일순 일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을 처음 접했던건 2년 여전 언론사에 관심이 있은후 일제 강점기때 '조선중앙일보' 사장이란 직함으로 였다. 글을 읽다보면 딸에 대한 아버지의 애뜻한 사랑을 절실히 느낄수 있다. 그러니 당연히 미화된 부분도 있으리라. 다분히 소설적 측면도 있고, 역시나 거슬리는 것은 김일성부자에 대한 평가가 무비판조로 찬양 일색이라는 점이다. 더욱이 여운형씨의 말을 살리면서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그들을 높여 불러 어조가 약간은 맞지 않아 그에 대한 평가의 시각을 왜곡할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글을 평가하는 데 악재라면 악재랄수 있는 부분에 본인이 크게 관여하지 않는 것은 제목 그대로다. 그의 딸이 썼다는 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면 더 가혹한 것일까. 엮은이도 미리 양해를 구했듯이 남쪽 독자를 위해 원문 일부를 삭제하거나 수정했다는 점이 도리어 의문스럽다. 이게 독자를 기만하는 처사인지 아니면 아직도 이땅에 금서가 있을수 있어서 인지는 모르겠다. 끝으로 그의 대한 느낌은 부록으로 붙여진 전문가의 말을 빌리고자 한다. '그는 진보적 민주주의자였다' 사상이나 이념, 어떠한 이데올로기도 아닌 통일을 향한 실천주의자... 사족: 책상태는 양장본이라 뭐라 말할것 없지만 요즘 책값이 왜이리도 비싼지. 김영사가 100원 돌려준다는 취지로 10,900원 이다 8,900원 이다 하는지 모르지만, 왠지 900원을 더 붙이는 것 같아 적잖이 실망스럽다. |
| 우연히 도서관에서 본 책..... 나의 가슴을 울리게 하였습니다...... 여운형....그의 민족 통합..... 사실적으로 여운형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우리가 아는 바는 정말 단순하다. 김구는 대한민국 국민이면 다 알고 있지만 여운형의 업적과 생애는 마치 `빛을 보지 못한 그림`과 비슷 하다고 표현하고 싶다. 지금부터 내가 진정 말하고 싶은 것은 여운형의 세세한 업적이 아닌 `인간 여운형` 그리고 김구를 예를 들면서 여운형의 사상에 대해 서술 하려고 한다. 그는 절대 한쪽으로 치우치는 법이 없다. 광복이 된 후 우리나라의 정세는 그야말로 대혼란의 시기이고 누구나 대한민국정부 건설을 희망 하였다. 그 희망은 좌/우로 나누어 지면서 한쪽은 자주 정부 건설을 소리쳤고, 다른 한쪽은 외세의 잔재들로서 좌파들의 활동을 억누르면서 외세에 의한 정부 건설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대립속에 여운형은 분리된 정당들을 하나로 만들고 모든 대중이 일어나 자주적 정부 건설에 동참하도록 노력하였다. 당시에 김구는 민족공조를 앞세워 우리나라 많은 좌파들을 이끌었지만 진정 그는 좌/우익 통합을 이룩하지 못하였고 결국 좌파들도 분리 되는 상황까지 가버렸지만, 여운형은 좌/우익 통합을 이룩하자는 즉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립을 지켜가며 진정한 자주 정부 수립에 열망하였다. 이러한 그의 노력의 결실은 사람들의 의식 하나 하나를 변화시켜 갔으며 자주 정부 수립 직전 까지도 갔었다. 하지만 미국/소련 이라는 거대한 악령들이 몰려 오면서 우리나라 모든 운동 단체들은 힘이 위축 되어 버렸고 나라가 분리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에 그는 북쪽의 김일성을 여러 차례 방문하여 `대한민국`자체 정부 수립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그는 한지근에 의해 암살되면서 꿈을 이룩하지 못한 체 우리 곁을 떠나간다. 짧은 그의 노력을 보면서 나뿐만 아니라 여운형이라는 존재를 아는 사람들에게 한가지 아쉬움이 남아있다. 그것은 `나라의 여러 정당을 통합하려 애를 쓴 여운형은 왜 김구와는 통합하지 않았는가?` `두 인물의 사상적 개념이 다르다 하였더라도 위기의 순간에는 협력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의문들을 생각해보면 여운형과 김구가 협력 했다면 민족통일을 이룩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나의 독해 능력이 달려서인지 아무리 책을 읽어 봐도 그 두 인물이 왜 협력하지 않았는가는 찾지 못했다. 아시는 분 메일 좀 nbakobebae@hanmail.net)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이 글을 마무리 지어야 하겠다. 짧은 글속에 여운형이라는 우리 근/현대사의 중요한 인물을 살쳐보았다. 비록 그의 세세한 업적에 대해 깊숙이 조사해 기술하지 못하였지만 그의 진정한 사상에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어 희열을 느꼈다. 끝으로 우리는 이와 같은 인물을 살펴보면서 민족통일의 해결책을 살펴보고, 더 나아가 자주적 통일에 크나큰 힘이 되도록 우리 스스로 노력하자!! "지금 우리 혁명 노력이 하나로 결집되고 전 민족의 통일과 독립의 완성을 위해 서로 믿고 도와 타협과 양보로써 하루라도 빨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야만 합니다. 만약 자기의 공명만을 고집하고 자기의 주장만을 고집하여 독선 배타적으로 한다면, 민족 통일은 절대 불가능 하여 이 기회를 놓치는 것은 천추의 한을 우리 역사 위에 남기는 김이 되며 이점을 절대 유념해야 합니다." -여운형.. 출처 : 여운형 추모 사업회 사이트 |
| 최근들어 우리 나라의 독서 경향의 중요한 경향 가운데 하나가 평전을 읽는 것이다. 체 게바라 평전, 모택동 평전..등등..그러나 이러한 책들에서도 분명히 좋은 책과 나쁜 책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나의 아버지 여운형에 대해 내가 느낀 것은 분명 좋은 책에는 들어가지 못할 것라는 조금은 악평에 가까운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마디로 이 책이 갖는 의미는 북한의 최고위급 정치인으로 있던 여연구가 쓴 책이 한국에서도 드디어 발간될 수 있다는 의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아직은 한국현대사는 공부하고 있는 학생으로서 이러한 평가가 다소 주제에 넘치고, 성급하거나고 혹은 수준 이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이 책이 가지고 있는 오류를 몇 가지 지적한다면... 첫째, 지난친 각색의 문제이다. 저자인 여연구가 아버지와 20살까지 같이 있었다는 점을 유념하더라고 이 책의 가진 지나친 내용의 각색은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운형이 단독으로 비밀회담 등을 가진 사실에 대해 이 책에서 보여지는 여연구의 표현은 꼭 자신이 옆에 있었다는 느낌을 주어 회고록이기 보다는 수필집이라는 느낌을 준다. 최소 여운형에 대한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이 이 책의 주안점이 되었어야 했다. 둘째, 지나친 속지주의적 경향(북한 찬양의 경향) 여연구가 북한의 최고위급 인사였기 때문에 가질 수 밖에 없는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에 대한 지나친 미화 등은 이 책이 가질 수 있었던 의미를 대폭 감축시켰다. 특히 김정일의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는 황장엽의 책에서 이미 거론된바 있어 이 책의 진실성 내지는 이 책을 낸 동기조차도 불순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셋째,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 오늘날 한국현대사에 대한 학계의 노력으로 여러 분명히 밝혀진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여전히 김일성, 이승만, 박헌영, 김구 등의 평가에 대해 공정치 못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특히 문맥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김일성, 김정일을 의식한 듯한 표현은 이 책이 과연 회고록으로 가치를 가질 수 있겠는가하는 회의마저도 들게한다. 결국 여운형의 자녀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쓴 수필집으로서는 훌륭한 글이 될 수 있겠지만, 이 것이 학계에 현대사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줄 만한 글은 못된다고 할 수 있다..지나친 생각일는지는 모르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