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비령을 읽다보면 한없이 몽상적이게 변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인연과 인연이 닿는 우연적인 끈과 그걸 이을려고 애쓰는 집착에 대한 한없는 생각을 떠올리며 시간이 순회하는 세상에서 그저 하나의 점에 불과한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재에 대해 끝없는 물음을 내뱉는다. 사람이 살아야하는 시간이 한정되어있다는 것이 통탄스러우면서도 그게 지루하고 낭만없는 짓이라는 생각에 참으로 다행스럽기도 하다. 그 몇갑절의 시간후에 나는 지금처럼 또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망상에 잠길 순간이 존재할수도 있다는 덧없는 생각에 한없이 조심스러워지기도 한다. 이 책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리움에 대한 사람들의 단상을 영상처럼 너무나 아름답게 표현해 놓은 책이다. 책에서 내뱉고 있는 강원도 사투리와 눈물 찔끔 흘리며 돌아서는 중년의 단면이 아직 중년에 접어들지 못한 나에게는 한없이 낯설면서도 한없이 나를 동화시키고 있다. 작가는 정말 한없는 동화주의자이자 몽상가가 아닐까. 아니면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버리는 비범한 감상주의자가 아닐까. 그의 웃는 얼굴의 주름이 한없이 부드럽게 느껴진다. |
| 나는 이순원의 책을 열심히 읽는다. 한번 손에 잡으면 좀처럼 놓지 못하게 하는 힘도 그렇지만, 그의 책을 읽으면 사는 일이 새삼 아름답고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가를 두고 삶의 자질구레한 일을 쫓아 다니는 작가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그의 작품이 드라마로 만들어지거나 장사가 잘 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좀 섭섭하다. 사람들이 한 번 보고 지나가는 이야기꾼으로 폄하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순원의 대표 단편들을 차분하게 모아놓은 것이다. 그간 여러권의 작품집과 장편소설을 발표하면서 이제는 어엿한 우리 문단의 중견작가로 자리를 잡은 그의 이 책은 대표작품집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장사가 좀 된다고 하면 선물세트 비슷하게 출판하는 상술이 밉상스럽게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 우리 문단에서 이 책은 어떻든 흩어져 있던 그의 좋은 작품들을 하나로 엮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반짝이는 보배다. <은비령>의 아련하고 쓸쓸한 사랑과 그 사랑이 혜성처럼 왔다가 멀리 떠나가는 모습은 좀처럼 만나볼 수 없는 사람과 사랑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엿볼 수 있다. 또 <말을 찾아서="">에서는 탄탄한 구조를 통해 소설의 참맛을 느끼게도 한다. <그 여름의="" 꽃게="">나 <첫사랑2> 같은 작품은 소품이지만 독자의 마음을 작품 속에 잡아끄는 그의 뛰어난 소설가로서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한 경우가 될 것이다. 이순원이라는 작가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지 못한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서 그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소설가 이순원씨에게 내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이제 이순원의 작품이 1950~60년대의 강원도 강릉에서 벗어나 좀 더 다양하고 진지한 삶을 탐구하는 모습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덧붙이고 싶다. 그의 작품은 지금까지 충분히 아름다왔다. 더 반짝이려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미 충분하며, 과하면 모자른 만 못하다.첫사랑2>그>말을>은비령> |
| 은비령을 접한 건 드라마라를 통해서다. 너무나도 강하게 이미지가 남아서 자막이 올라갈때까지 보았다. 보고있는데 원작에 대한 글귀가 보였다. 그 다음날로 서점에 가서 은비령을 찾아 헤메였다. 97년도 현대문학상이던가? 그책제목에 은비령이 적혀있었다. 아무런 갈등없이 책을 손에 들고 들뜬 마음으로 집으로 와서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드라마와는 또 다르게 마음에 와닿았다. 인연..남녀간의 인연..시간 등에 대해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이걸 읽어보기를...아마도 마음이 훈훈해지면서 지금 나와의 인연이 닿는 모든 이들에 대해 다른 생각으로 대하게 될 것이다. 아직도 가끔 은비령을 다시 보곤 한다. |
| 살면서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일들은 얼마나 많은가. 대학 3학년 때였을 것이다. 어찌하다보니 총학생회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이런 저런 일들로, 내 뾰족한 성격탓으로 나름대로 갈등과 상처가 스스로 많이 만들어 갈 때였다. 학생회관 뒤 쪽으로 모퉁이 길을 따라 가면 미술관이 나왔고, 미술과 마당에는 몇 개의 부조와 조각상들이 놓여 있었다. 지금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분명 푸른 잔디와 붉은 벽돌 건물과 어울리게 서 있었다. 그런 조각들을 지나 미술관 안으로들어가면 로비가 나오고 현관 정면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계단 아래에는 철근과 시멘트(?)로 얼거진, 그리고 중간중간이 바스라져 있는 한 아름 정도의 설치물이 있었다. 아마도 그 설치물도 언젠가는 미술관 앞 양지바른 잔디에 설치되어 있었을 것인데, 지금은 계단 아래 그늘로 밀렸던 것이리라. 나는 그 모습을, 지금에서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피닉스라고 이름을 붙였었다. 아마도 수명이 다 된 설치물에 대한, 아니 영원성을 담아내야할 예술 작품이 바스러지고 그렇게 밀려나 계단에 웅크린 것이 안타까워서였는지 나는 피닉스라는 어름도 없는 이름을 붙였고, 혼자 가서 빤히 들여다보곤 했다. 은비령을 읽으면서 지나간 시간에 대한 선택과 미련을 떠올렸다. 눈 속을 뚫고 피어난 바람꽃이든, 맹독을 품은 바람꽃이든 지나간 시간 속의 낱낱의 기억들이 바람꽃이려니 생각했다. 현재에 그 바람꽃이 피어날 때 2,500만 년 후의 재회를 기약하든 못 하든 상관 없이, 동 시간을 지내온 사람들에게는 그 정지됨이 있지 않을까. 나의 정지된 청춘이 한 장면 속에 깊은 인상으로서가 아닌 자잘한 일상으로서 피닉스를 떠올린 소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