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4)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50%
  • 리뷰 총점8 5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8.0
  • 50대 9.0
리뷰 총점 종이책
문학판의 우울한 뒷모습. 그리고 희망.
"문학판의 우울한 뒷모습. 그리고 희망." 내용보기
가만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소설이나 시집을 읽으며 책 겉장이나 뒷장에 나오는 평론은 책의 머리말이나 맺음말쯤으로 생각해 왔었던 것 같다. 내 느낌을 중요시하며 읽는 편이라서 책을 내용을 읽듯 자세히 읽어오지는 않았지만 그 글도 하나의 비평인데 어쩌면 그리도 찬사 일색인지 하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긴 하다.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와 ‘외딴방’을 좋아했던 나는 ‘깊
"문학판의 우울한 뒷모습. 그리고 희망." 내용보기
가만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소설이나 시집을 읽으며 책 겉장이나 뒷장에 나오는 평론은 책의 머리말이나 맺음말쯤으로 생각해 왔었던 것 같다. 내 느낌을 중요시하며 읽는 편이라서 책을 내용을 읽듯 자세히 읽어오지는 않았지만 그 글도 하나의 비평인데 어쩌면 그리도 찬사 일색인지 하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긴 하다.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와 ‘외딴방’을 좋아했던 나는 ‘깊은 슬픔’으로 조금 실망했다가 ‘바이올렛’에서는 속이 좀 상했고, ‘제이 이야기’를 읽고는 언짢았다. 마찬가지로 양귀자의 ‘희망(원제:잘가라 밤이여)을 읽고 엄청난 감동을 먹고 그의 작품을 기다리다가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천년의 사랑’, ‘모순’으로 이어지는 실망의 연속을 감수해야 했다. 물론 그들이 속 아파가며 쓴 글을 폄하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나 초기의 작품보다 더 좋다! 라고 느껴지는 작품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과 전보다 그들이 나태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건 사실이다. 그러나 문학지나 신문에서는 내가 실망한 책들에 대한 칭찬 일색이라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나로선 내가 이상한건가 하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게다가 팔리기도 엄청들 팔리니 내 생각이 이상한 거라는 게 좀더 확실해졌다. 우연히 접하게 된 이 책은 내 궁금증의 조금을 풀어주었고, 아울러 네가 이상한건 아냐라고 말해주는 듯 하여 조금 후련하다. 자신의 사고와 지식의 수준이 보통이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론과 전문가들에게 약하다. 힘있는 자들이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전문가와 언론을 동원해온거야 뭐 늘상 있어온 일이지만 그것이 문학판이란 사실이 서글프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그런식으로 권력에 이용당하고 권력을 이용한다는 것을 보면서 다시 그들의 글을 사심없이 읽을 수 있을까하는 마음에 더 그렇다. 소위 예술이라는 것을 하는 사람들이 ‘간교하다’는 둥, ‘야비하다는 둥’ 정치판의 용어를 들먹이고 서로를 ‘짓씹어’대는 모습을 보니 내 얼굴이 다 붉어진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객관성을 유지하자고 되뇌였다. 조선일보측이나 남진우씨 등의 의견도 찾기위해 예전 문학잡지와 인터넷을 뒤지며 쌍방의 의견을 들어보고자 애썼다. 누구의 의견이 옳고 누구의 의견은 그르다고 내가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비평이란 원래 ‘비판’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의 비평문화는 정말 열악하고 미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든다. 외국작가들의 비평에 대한 반응과 비교해보면 더욱 그러하다. 자신을 누군가 ‘비평’한다는 자체를 기분 나빠하며(찬사일 경우엔 다르지만) 마음 상하는 말 한마디에 쌍심지를 켜며 반격을 하려 하는 것을 보면 실소가 나온다. 김정란씨가 쓴 시인들과 몇몇 인기작가들에 대한 비평을 읽으며 나도 이 작가라면 좀 기분 상하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 글엔 비전문가인 내가 봐도 맞는 구석이 상당수 있었다. 어법에 있어서 지나치게 신랄한 면이 없진 않았지만… 이후 최영미씨가 본인의 책에 반격을 실은 것도 시쳇말로 ‘오바’가 아닌가 싶었다. 아이들에게 꾸중하며 귀에 쓴 소리는 약이니라~라고 말하면서 왜 그들은 그렇게 비판 자체를 금기시하며 성숙치 못한 모습을 보이는가. 강준만씨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평문화의 성숙과 문언유착 비판에 대해서는 적극 두손을 들어주고 싶다. 이 책을 보면 내가 비평문들을 읽으며 생각했던 점들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을 하고 있는데 무릎을 치게 타당한 얘기들이 많다. 아! 이래서 이랬던 거구나! 하는 것들. 그것이 무엇인지는 직접 읽어보시라. 이런 책이 보다 많이 나오고 많이 읽힘으로써 문학의 발전은 물론이요, 출판문화와 대중들도 보다 성숙해지지 않을까 싶다. 강준만씨는 비판과 함께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라고 믿고 싶다. 윗 분이 리뷰에 쓰신대로 우리의 문학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이 책을 강력추천하고 싶다. 책 상태도 만점을 준다.
YES마니아 : 로얄 h********n 2002.12.18.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문학이 권력이 되다
"문학이 권력이 되다" 내용보기
<문학권력>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서슬퍼런 검열이나 문학의 주제와 묘사에 대한 외압을 떠올린 사람이 비단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문학과 권력이라는 두 키워드가 합쳐진다면, 가장 무난한 상상이 그것일 테니까. 하지만 <문학권력>이 다루는 문학 세계의 권력은 그런 외부세력이 아니다. 엄연히 문학세계 내부에 있으며, 문학계 전체를 아우르고 호령하는 권력이다. 바로 기
"문학이 권력이 되다" 내용보기

<문학권력>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서슬퍼런 검열이나 문학의 주제와 묘사에 대한 외압을 떠올린 사람이 비단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문학과 권력이라는 두 키워드가 합쳐진다면, 가장 무난한 상상이 그것일 테니까. 하지만 <문학권력>이 다루는 문학 세계의 권력은 그런 외부세력이 아니다. 엄연히 문학세계 내부에 있으며, 문학계 전체를 아우르고 호령하는 권력이다. 바로 기존 문학인의 권력인 것이다. 문학에의 권력이 아니라 문학의 권력, 문학에서의 권력이다.

 

얼마 전 신춘문예는 OECD국가 중 오직 한국에만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고 꽤 충격을 받았더랬다. 너무나 일상적으로 보아왔던 것이기에 세계 문학계에서도 일상적인 것이리라 지레짐작했는데,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외국에는 따로 등단제도가 없다. 책을 쓰는 사람이 작가고 첫 원고를 탈고해 첫 책을 낸 사람이 신인작가다. 인기 없을 것 같아 출판을 거절하는 경우는 있지만, 정식 작가가 아니니 출판을 해줄 수 없다고 거절하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아무리 많은 책을 쓰고 책이 아무리 인기가 많아도  정식 등단하지 않은 이상 문학계에서는 인기 있는 아마추어 이상의 대우를 받지 못한다. 한국에서 판타지 소설 분야를 무시할 때 어떤 레퍼토리가 나오는지 보라. 정식 등단하지 않은 작가가 집필했다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현실적인 가장 큰 원인이 질보다 양을 추구하는 세태라는 지적은 빠뜨려도, 저 레퍼토리가 빠지는 일은 없다.

 

<문학권력>이 제기하는 문학 권력의 문제는 문학계를 '그들만의 리그'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미 리그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자기 기준에 흡족한 신진을 리그 안에 받아들인다면, 인원이 새로 보충된다 해도 본질은 고인 물이 되어버리기 쉽다. 게다가 무명 문학지에서 많은 신인을 대거 등단시킨 뒤, 등단작이 게재된 문학지를 의무적으로 수십 권 이상씩 구매하게 하는 관행은 또 어떤가. 이런 상황을 두고 작가가 많아져 좋은 일이라는 사람은 없으리라. 첫째로는 등단 장사에 다름아니고, 둘쨰로는 등단자 중에서도 등단 매체에 따라 차등을 두는 사태를 빚게 될 것이다. 등단이란 결국 자격증인데, 글로 평가받는 작가에게 굳이 작가들이 자격을 인정해주는 제도가 필요한 것일까? 독자에게 평가받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말이다.

 

'문학권력'이란 예술 하나만을 바라보며 배굶는 사람들의 마지막 심리적 보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문학의 진입장벽을 터무니없이 높이고 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그 성벽이 단순히 높기만 한 것이 아니라, 통과 기준이 자의적이라는 점까지 더해져서 말이다.

 

개인적으로 대중문화의 예술성이 뒤떨어진다는 통념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문화의 역사성을 무시하기 때문이 아니라, 역사성을 유난히 의식하기 때문에 그렇다. 당대에는 깊이 없고 얄팍한 인기영합주의쯤으로 매도당했지만, 시대가 지난 후 당대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한 작품이 얼마나 많던가. 중세 시대의 식자들은 아서왕 이야기를 허무맹랑한 엉터리 거짓부렁으로 여겼지만, 오늘날 아서왕은 중세 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아서왕 이야기를 제외하고, 중세 저작물 중 오늘날 대중적으로 유명한 것이 과연 무엇이 있는가? 아무리 인기가 있어도 시대를 뛰어넘지 못할 작품은 어차피 시대가 흐르면 도태되기 마련이다. 그걸 당대 기준의 예술성의 잣대로 평가할 필요나 당위가 과연 있을까? 당대 기준에서의 예술성을 고집하다 보면, 대중문화와는 필연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고 고답적인 분위기로 흐르기 십상이다. 이때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변함없을 이야기다.

p*******1 2012.01.2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문학권력 비판
"문학권력 비판" 내용보기
글을 쓰고 싶어하는 아이가 있다. 원고지가 필요했다. 원고지를 사러 갔다. 문방구 집 주인은 돈을 내란다. 아이는 돈이 없었다. 주인은 자기가 쓰라는 대로 쓰라고 했다. 그러면 원고지를 준댄다. 아이는 시키는대로 했다. 아이가 불쌍하다. . . . . . . 왠 헛소리인가. 그렇다. 이말은 분명 헛소리인데, 문제는 이것이 한낱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란 것. 우리 사회의 글쟁
"문학권력 비판" 내용보기
글을 쓰고 싶어하는 아이가 있다. 원고지가 필요했다. 원고지를 사러 갔다. 문방구 집 주인은 돈을 내란다. 아이는 돈이 없었다. 주인은 자기가 쓰라는 대로 쓰라고 했다. 그러면 원고지를 준댄다. 아이는 시키는대로 했다. 아이가 불쌍하다. . . . . . . 왠 헛소리인가. 그렇다. 이말은 분명 헛소리인데, 문제는 이것이 한낱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란 것. 우리 사회의 글쟁이들은 모두 원고지에 몸과 맘을 저당 잡혀 있는 것이다. 권력에 저항하고 그것을 해체해야 비로소 문학과 예술의 자유를 얻을 수 있는데, 문인들마저도 문학권력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 "수백만 부를 찍는 출판 중심의 문화 전문 주간지 발간 (…) (기자들은 두세 명이면 족하다. 이러한 인건비 부담으로부터의 자유가 이 주간지의 최대 경쟁력이다. 물론 내용의 과감한 대중화는 '필요악'이다.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다. 초기 자본은 더도 말고 10억이면 된다." (116∼117쪽) 멋진 방법 같다. 하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매체는 중요하다. 세상의 돋보기가 되기도 하고 정신의 알맹이를 담는 틀이 되기도 하므로.

[인상깊은구절]
"수백만 부를 찍는 출판 중심의 문화 전문 주간지 발간 (…) (기자들은 두세 명이면 족하다. 이러한 인건비 부담으로부터의 자유가 이 주간지의 최대 경쟁력이다. 물론 내용의 과감한 대중화는 '필요악'이다.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다. 초기 자본은 더도 말고 10억이면 된다."
n****w 2003.11.0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소설'과 '시'를 사랑하고 한국문학의 진정한 발전을 염원하는 분들께 권해드리고 싶은 책
"'소설'과 '시'를 사랑하고 한국문학의 진정한 발전을 염원하는 분들께 권해드리고 싶은 책" 내용보기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강준만교수. 지금까지 100여권이 넘는 책을 낸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논객이자, '세계적인 석학' 이라고해도 과히 손색이 없는 이 시대 최고의 지식인이다. >(개마고원,2001). 이 책은 강준만교수가 지난 2001년 12월달에 발행한 책인데, 나는 이 책을 '뒤늦게' 읽게 되었다. '뒤늦게' 라는 단어에 홑따옴표를 붙인 이유는, 강준만교수의 경우 거의 한 달에 한
"'소설'과 '시'를 사랑하고 한국문학의 진정한 발전을 염원하는 분들께 권해드리고 싶은 책" 내용보기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강준만교수. 지금까지 100여권이 넘는 책을 낸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논객이자, '세계적인 석학' 이라고해도 과히 손색이 없는 이 시대 최고의 지식인이다. <<문학권력>>(개마고원,2001). 이 책은 강준만교수가 지난 2001년 12월달에 발행한 책인데, 나는 이 책을 '뒤늦게' 읽게 되었다. '뒤늦게' 라는 단어에 홑따옴표를 붙인 이유는, 강준만교수의 경우 거의 한 달에 한 권 이상의 책을 내기 때문에 비록 책이 발행된 시기가 한 달 조금 지났지만 '뒤늦게' 이 책을 읽은 것일 수 밖에 없다는 뜻에서 "뒤늦게" 라는 표현을 쓰게 된 것이다. 나는 소설과 시를 무척 좋아하는 편이다. 한때 영문학을 전공하고 싶어했던 나로서는 문학관련 서적을 즐겨 읽는 편인데, 솔직히 강준만교수의 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문학을 단지 '문학 텍스트 그 자체' 로만 이해를 하는 버릇이 있었다. 즉,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한국 문학계가 처해 있는 여러가지 실상과 문제점들을 인식을 하면서 문학서적을 읽지는 않았던 것이다. 단적인 예를 들면, 과거에 읽었던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라는 신경숙의 소설을 읽으면서도 단지 문학 텍스트 그 자체만을 이해하면서 책을 읽었던 것이다. 하지만 강준만교수의 <<문학권력>> 이라는 책을 통해 소설가 신경숙과 그녀를 둘러싼 출판 자본주의와의 관계를 포함해 한국 문학계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창작과비평사와 문학과지성사 그 외 민음사와 문학동네 등등 한국문학계 일각에 최근 일고 있는 '문학권력' 개념과 관련해 그 문제점을 뒤늦게나마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책을 대한민국 문학계를 사랑하고 소설과 시를 즐겨 읽는 모든 분들께 권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문학계의 진정한 발전을 기원하며 할리우드식 '스타시스템' 과 거대 문학권력의 힘을 빌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측면이 다분한 문학작품이 아닌, 문학적으로 의미있고 가치가 있는 작품들을 보다 더 많이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이 책의 '머리말' 에서 강준만교수는, "나는 전공에 관계없이 모든 대학생들이 소설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슨 고상한 뜻에서가 아니다. 소설 읽기가 글쓰기와 사고능력을 키우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문학권력>>(개마고원,2001),19쪽] 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나는 강준만교수의 이 말을 읽으면서, 갓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들을 비롯해 모든 대학생들이 앞으로 소설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졸업 후, 취업문제를 생각하면 실용적인 학문서적에 관심과 애정(?)이 더 가겠지만, 문학서적이 갖는 가치는 비록 나의 전공이 신문방송학이지만 '글쓰기' 와 '사고능력' 의 신장을 돕는데 이들 책은 분명히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나 또한 깊은 공감을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를 비롯해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이 소설과 문학서적들을 많이 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놀면 뭐하겠는가? 이럴때일수록 소설책이라도 한 권 더 읽자.
h*****n 2002.02.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