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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사전
가소롭다 우리 집 냉장고에서 꺼낸 소시지를 “먹을래?” 내게 건네는 상우를 볼 때
배신 내 점수 기껏 말해 줬는데 자기는 기억 안 난다며 상우가 딴소리하는 것
빡치다 좋아하는 애 상우한테만 말했는데 5분 안에 소문 쫘악 퍼졌을 때
어이상실 연진이 좋아하는 거 빤히 알면서 연진이 앞에서 누구 좋아하냐고 계속 물어보는 상우 녀석
억울하다 퇴근길에 치킨 사 온다고 자지 말라더니 술 취해 온 아빠가 왜 아직 안 자냐고 혼낼 때
울컥 치킨은 없고 풀어 헤친 넥타이만 있는 아빠 손을 보는 것
절망 같은 편인 줄 알았던 엄마가 넌 빨리 자라며 아빠를 부축해 안방으로 들어가는 것
좌절 싸우는 소리 날 줄 알았는데 웃음소리가 들리는 안방 문 앞에 서 있는 것
황당 다음 날 술 깬 아빠가 “그 집 치킨 맛있지?” 하며 내게 윙크하는 것
재미있다. 아이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시를 보면 아이 편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친한 동무라고 생각한 상우도 내 편이 아니고, 좋아하는 연진이도 아직 내 편이 아니며, 같은 편인 줄 알았던 엄마도 내 편이 아니고, 퇴근길에 치킨을 사 온다던 아빠도 술 취해 들어와 왜 안 자냐고 혼낼 뿐이다. 다음 날 술 깬 아빠가 “그 집 치킨 맛있지?” 하며 내게 윙크하는 것을 애교로 봐줄 수 없다. 아이 편은 아무도 없지만 “내가 만든 사전”은 계속 이어져 책 한 권 분량이 되어 독립해도 좋을 것 같다. “내가 잘못했는데 / 꼭 아빠를 끌어들이는 엄마의 잔소리”(「불똥」), 수학 백 점을 맞고 칭찬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것을 기대하며 달려간 아이에게 “너 말고 누가 또 백 점 맞았어?”(「반전」)하는 엄마의 말도 그 책에 포함되면 좋겠다. 그것을 읽는 아이들은 공감하며 참 통쾌해하겠다.
손가락의 힘
병실에 누워 열흘을 넘게 잠만 자던 할머니
꼼틀! 손가락이 움직였다
그 움직임이 벌떡 아빠를 일어나게 하고 들썩 우리 집을 깨어나게 하고 우리 마을을 우리나라를 번쩍번쩍 들어 올린다 손가락 하나가 “와와.” 함성보다 더 크게 세상을 흔들어 깨운다.
할머니가 깨어나기를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했을까. 할머니가 깨어나지 않아 얼마나 맘 졸이며 안타까워했을까. 꼼짝도 하지 않고 잠만 자는 할머니를 보며 아주 나쁜 상황도 생각했을 것이다. 도리질을 하며 그런 자신을 나무라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할머니 손가락이 꼼틀! 움직였으니 “벌떡 아빠를 일어나게 하고 / 들썩 우리 집을 깨어나게” 할 만하다. 그러나 할머니는 끝내 일어나지 못한다. “쓸고 닦고 / 만들고 나누고 / 심고 뽑고 / 가꾸고 키우고 / 안고 부비고 / 쓸어 주고 어루만지던 / 할머니의 손, // 그런 손을 떨구었”(「손」)으니 말이다. 열흘 넘게 잠만 자던 할머니가 손가락을 꼼틀! 움직인 뒤 떨군 손이라서 슬픔이 더 크게 다가온다. 세월호 참사 100일에 부쳐 희생자의 신발이 되어 나직하게 노래하고 있는 「내 신발에게」도 절절한 슬픔을 그리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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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125 《백수 삼촌을 부탁해요》 박혜선 글 이고은 그림 문학동네 2016.1.27. 어린이는 왜 학교를 다녀야 할까요? 어린이는 왜 어른이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할까요? 어린이는 왜 초등학교 졸업장에 이어 중·고등학교 졸업장을 바라보아야 할까요? 이런 졸업장이 없이 스스로 바라는 길을 가면 안 될까요? 시사상식을 알아야 사회란 데에서 살아갈 만할까요? 시사상식을 모르는 채 사회에 깃들지 않고서 고요히 숲터를 가꾸면서 손수 하루를 짓는 길을 가도 되지 않을까요? 자격증을 따야 집을 짓지 않아요. 특허가 있어야 장사를 할 만하지 않아요. 어떤 어버이도 자격증이나 특허를 내세워서 밥을 짓거나 옷을 추스르거나 살림을 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사랑스러운 손길 하나로 보금자리를 보듬습니다. 어린이가 배울 삶길이라면 바로 이 대목이요 이 눈길이며 이 마음이면 넉넉하리라 느껴요. 《백수 삼촌을 부탁해요》에 흐르는 사회·학교·아파트 이야기가 살짝 답답합니다. 틀림없이 요즘 어린이가 이런 터전에서 맴돌기는 할 테지만, 요즘 동시가 순 이런 줄거리만 다루니 하나같이 엇비슷하고 다툼질이나 투덜질에 맴돌기 일쑤입니다. 어린이하고 손을 잡고 새 앞길로 나아가도록 글감을 가다듬어도 안 나쁠 테지만, 글감보다는 살림감을 바라보면서 함께 짓고 새로 돌보며 환하게 빛내어 나누는 노래를 부르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주말농장에서 뜯어 온 상추 / 이웃에 나눠 주러 갔다가 / 된통 혼만 나고 돌아왔다 // 너지? 현관문 쾅쾅 닫는 애 / 너니? 발소리 요란한 애 / 너야? 화장실에서 노래 부르는 애 / 새벽에 변기 물 내리는 소리 정말 끔찍해 (이웃들/22쪽) 골목길 쓸던 빗자루 / 몽당빗자루 되어 / 벽에 기댄 채 / 꾸벅꾸벅 졸고 있다 (만월슈퍼 빗자루/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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