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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을 사랑하는 이는 미술을 증오해도 된다.' 라는 강력한 화두를 던지는 것으로 포문을 열었다.양적으로 풍부해진 미술이 질까지는 확보하지는 않는데, 그 원인과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5개 장으로 나누어 미술을 증오해야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 별개의 이야기가 아니라 미술계 전반에 걸쳐 있는 문제들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었다. 아무도 책임을 떠맡고 싶지 않기에 제대로 된 비평이 사라졌다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비평가가 취해야 할 도덕적 자세를 요구했다. 이런 분위기가 된 것은 비단 비평가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미술은 위계질서로 이루어진 시스템이기 때문에 미술을 증오한다' 는 3장의 내용을 보면,컬렉터이자 갤러리 대표인 사람이 경매에서 작품 가격이 올라가도록 유도하면서 미술가에게 재정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구조에서 대부분의 미술가의 작품 활동이 자유로울 수 있을 지도 의문이고,그런 재정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미술가는 평생 자신의 작품이 미술관에 전시가 되는 기회를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미술은 현재 확실한 투자처로 각광을 받고 있다. 친구 집에 놀러갔더니 못 보던 그림 한 점이 걸려 있었다. 웬 그림이냐 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그림의 작품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 사후에 가격이 오를 것을 생각해서 구입했다는 것이었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미술계에 존재한다는 사실들이 미술 증오의 이유가 되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위계질서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사람들은 잡지,언론매체에서 활동하는 전문 저널리스트,미술관 관련자,갤러리 대표,미술사학자 그리고 미술가 자신이라는 견해를 보여주었다.
"대중은 문학,음악,공연 예술 분야의 경우 결정에 참여하지만,미술,회화,조각 분야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미술 분야에서 대중은 이미 결정된 사실만,엄청나게 범위가 좁은 미술계 무리들이 간택한 사실만 접한다." (p-128)
일반 대중이 얼마나 소외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실제로 그럴까? 그녀는 미술 관련 기관은 관람객이 미술을 판단 할 수 있는 근거로 작용하는 지식이 있는 지 의심스러워하고,그렇기에 관람객과의 대화와 미술에 대한 담론은 시도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이 말들은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하지만,조금이라도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미술 관계자들이 있다면 일반적인 관람자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교양을 뽐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전시회 갔다왔다 ), 좀 더 적극적인 관람객의 자세를 가지는 것도 미술의 발전을 위해서 우리 개개인이 해야할 일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현 미술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그 감정들을 여러 가지 상황들을 예로 들면서 노골적으로 쏟아 놓았다. 하지만,그녀는 에필로그에서 그녀의 소망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미술 증오는 미술 분야에서도 사랑이 존재한다는 점을 기본 전제로 한다.이것이 바로 실망 때문에 시작한 이 책이 간절하게 바라는 소망이다. (p-196) 결국,증오한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마음이 있다는 말이기에 미술의 발전을 바라는 깊은 사랑에서 나온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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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제목을 보니 영화 제목 <미술관 옆 동물원>이 떠올랐다. 실제 그런 곳 있을까, 미술관과 동물원이 이웃한 곳 말이다. 책 제목에서 말하는 ‘동물원이 된 미술관’은 좋은 뜻은 아니다. 동물원에는 어렸을 때 가 본 것 같지만, 미술관에는 한번도 가 본 적 없다. 동물원에 간 것도 생각난다기보다 동물원에서 찍은 사진이 있어서 가 봤다는 걸 아는 거다. 동물원은 지금 사는 곳에는 없다. 지금 사는 곳에 오기 전에 살던 곳에는 있었는데. 여기에는 미술관도 없다. 미술관은 없지만 그림 전시회 같은 것을 하는 곳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곳에도 가 본 적 없다. 그렇다고 그림이나 여러 미술품을 한번도 못 본 건 아니다. 많이 본 것도 아니구나. 내가 간 곳은 미술관이 아니고 박물관 같은 곳이었을지도. 어쨌든 난 미술관과 참 멀다. 미술관에서 보는 그림은 더 멋지게 보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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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가까워질 수 있었던 건 미술에 대한 해박한(?)지식이 없었기에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 한다.그 덕분인지 특별히 좋아하는 화가의 전시만 찾아 다니는 것이 아니라 낯선 화가의 전시도 망설임 없이 찾아 다닌다.그런데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도 모르게 전시를 보다가 불편한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예를들면 전시 자체 보다 아트샵이 더 부각 된다거나 전시 자체의 내용보다 스타 화가를 유독 부각시키는 등의 마케팅과 같은 것에 대해.그러니까 <동물원이 된 미술관>과 같은 책이 나오길 나는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동물원'이란 단어를 통해 이미 책의 방향성은 충분히(?)보여 주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그럼에도불구하고 생각 했던 것 보다 훨씬 거칠고 직설적인 표현들을 마주 하면서 밀려든 당혹스러움이란.차가운 비판이 아닌 감정적인 날 것의 '증오'의 감정처럼 읽혀 처음에는 혼란스러웠다.분명 미술관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지적하는 것이 맞고 고개가 끄덕여질 수 밖에 없는 , 공감가는 내용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그래서 잠시 숨고르기를 했다 저자의 서문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으면서 일종의 주문을 걸었다고 해야 할까? 여기서의 '증오'는 감정으로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그야말로 애증의 감정에서 시작되었다는 것.미술전반에 만연한 문제점들을 지적하지만 동시에 개선될 수 있는 지향점을 찾을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그 두 마음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주지하며 찬찬히 읽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렇게 마음을 먹고(?)난 덕분인지 흥미로운 내용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술에 대해 저자가 풀어 놓은 비판의 지점과 지향되어야 하는 지점들이 마치 숨은 그림을 찾아 내는 것 같은 희열로 바뀌게 되었다는 거다.미로의 문을 찾아 내듯이 그렇게 문을 따라 가는 과정은 저자가 만들어 놓은 다섯개의 카테고리 속에서 내 눈에 크게 보이는 두 개의 카테고리로 편집되었다(상식이 되어버린 돈과 미술의 알레고리즘 같은 것 말고 전시장을 찾아 나서며 피부로 느꼈던 생각과 일치되는 지점을 중심으로).그리고 미술관이 아름다워도 되는가? 라는 질문은 서로 다른 의견이었지만,옳고 그름이 아니라 이런 견해의 충돌이 끝임없이 있어야 미술이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책을 읽어 가는 여정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흥분되는 경험이었던 것 같다. 마음 같아선 비판의 텍스트와 지향되어야 하는 텍스트를 모두 옮겨 적어 보고 싶었지만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어쩌면 시간이 될 때마다 적어 넣을지도 모르겠다^^)
-미술 관련 기간은 우리와 우리의 감각을 깨우는 대신 우리가 미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규정해 버린다/30
-전시회에서 연출되는 내용은 이벤트 아니면 피곤하고 지루한 절제다.정성 어리고 세심하게 구성된 전시회를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그 자체로 완결되는 보는 이로 하여금 흥분과 재미를 불러 일으키는 전시회는 거의 없다./31
-전시회에서는 전시회나 전시 작품 이면에 있는 역사를 볼 수 없다.바로 이 컬렉션을 새롭게 전시한 의도를 말이다/43
-오늘날 전시회는 관람객이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겨냥한다.보고 놀라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않는 태도 말이다./45
증오(애증이라고 말하고 싶다^^) 의 관점으로 바라 보게 된 텍스트는 대략 스무 가지정도 였고 지향점으로 언급된 텍스트는 10개 정도가 보였다.(우선적으로 보인 것들이 그렇다.) 거친 표현들에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정리를 해 가며 읽다 보니 어떤 문제들를 중심에 두고 싶어하는지 알것 같았다.(공격을 위한 공격이 아니었던 거다) 그저 미술계의 문제는 오로지 미술에 몸담고 있는 이들의 문제이고 책임인 줄로만 알았는데, 전시를 찾아 다니는 관객들의 자세에도 노력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전문가가 아니라서 할 수 있는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나친 상술이 보이는 아트샵의 물건들은 냉정하게 바라 볼 필요도 있을 테고,전시를 통해 느껴지는 불편함이 있다면 개선이 되는 안되든 일단은 미술관 측에 반복적으로 건의를 하는 노력을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다소 거친방식의 표현들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수 있는 책일수도 있겠다.그런데 저자의 목소리 들으려 하기 보다(증오와 흥분된 듯한 표현들^^) 본질적인 질문이 무엇이었는지에 촛점을 두고 읽다 보면 공감가는 지점이 생각 했던 것 보다 훨씬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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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을 가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여러가지 답변이 나올 수 있겠지만 이런저런 이유를 종합하여 결론지으면 결국 '예술천재로 부터 얻을 수 있는 영감'이라고 생각한다. 똑같이 대하고 마주하는 사물과 시스템도 '그들'의 시선에서는 다르게 보인다고 믿기 때문이다. [동물원이 된 미술관]은 과연 미술관이 그런 역할을 지금 제대로 해주고 있느냐하고 묻는다. 그 책임이 작품을 창작하는 작가 뿐 아니라 큐레이터, 미술관 그리고 관람객에게도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차라리 증오하라고! 어떻게 미술을 사랑한다면서 미술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할 때, 혹은 모든 작품이 어떻게 모두에게 완벽하게 좋을 수 있느냐고,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게 '증오'가 아니냐면서 말이다.
미술 증오는 미술 분야에서도 사랑이 존재한다는 점을 기본 전제로 한다. 이것이 바로 실망 때문에 시작한 이 책이 간절하게 바라는 소망이다. - 에필로그 중에서-
저자는 특정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을 두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물론 애초에 해당 작품과 해당전시 자체를 비판하기 위한 것은 결코 아니었고, 글을 쓰고 있는 장소가 하필 그 미술관, 작품앞에서였다고 말한다. 미술관에 갔을 때 정말 새로운 전시, 놀라운 큐레이팅이라고 감동했던 때가 언제였는지 고민해본다. 개인적으로는 최근에 백남준아트센터 다중시간 전시가 맘에 들었는데 '지나치게 많은 해석'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작품 자체에 대한 어떤 감상보다 미술관내에 상주하는 혹은 그렇지 않다면 별도의 안내서를 통해 마치 관람자가 그렇게 느껴야만 하는 것처럼 요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함부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의 큐레이터 겸 관장이 '오이겐 블루메 박사'와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속이 후련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1960년대에 플럭서스, 랜드아트, 미니멀 아트, 개념미술 등이 새로운 개념 아래에서 새로운 운동 형태로 도입됩니다. 바로 이 시기에 오늘날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 창작되었습니다. -본문 중에서-
침묵이 가장 멋진 음악이라고 말할 뿐 아니라 애초에 우리가 결코 '음악'이라고 말하지 않았던 '소음'자체도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던 유럽에서 시작된 플럭서스나 작가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지나치게 강요하듯 담기보다는 최소화하여 표현했던 미니멀 아트 등의 용어를 지나치게 남발하는 작품만을 접할 뿐 어떤 사조의 시작이나 대표성을 가진 전시회를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술이 좋게 되려면 용기를 내야 한다. 미술은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도록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감행해야 한다. 미술은 분명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미술이 잘못될 수 있을까? - 본문 중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인터뷰와 관려 분야에서 활동하며 쌓은 정보와 지식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상당히 단순하고 명료하다. 제대로된 미술전시를 기획 해 달라는 것이고, 관람자들 또한 그런 요구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보수적이다 못해 '존경'해 마지 않는 대상처럼 제대로 된 '비평'조차 머뭇거리며 얌전을 떨다보면 미술관이 오히려 동물원보다 못한 장소가 될거라는 이유있는 투정이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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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술관을 찾을 때면 경건한 마음을 갖는다. 동물원이나 놀이동산처럼 도시락 싸가서 아이들과 뛰어놀면서 즐길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 쯤은 잘 안다. 다만 미술관에 가서 처음 본 그림이지만 유명한 작품이다 생각되면 몰라도 아는척하는 것이 관례화 되어 있다. 동물원에 가서는 모르는 동물이 있다고 해서 부끄러운 것은 전혀 없지만 명화를 보고 처음보는 것처럼 놀라거나 하면 무식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피카소나 고흐처럼 이름있는 화가의 작품은 졸작은 전혀 없고 무조건 위대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처음 보는 작가의 작품이라도 고가에 거래된 적이 있다면 색다른 눈으로 작품을 보게 된다 예술가들이 이렇게 만들었을까 아니면 관람객들이 이렇게 한 것일까? 둘다 되는 없다고 본다. 다만 우리 사회가 자연과학보다 인문학을 숭상하다 보니 물리학에 나오는 상대성이론이나 만류인력 따위는 몰라도 명화에 대해 모르면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 취급하다보니 작가와 작품의 이름 등에 대해서는 상식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명화의 이름만 줄줄 꿰고 있다고 미술을 사랑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런 점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을 한다. 미술을 OO한 이유로 증오해야 한다고 말을 하지만 증오라는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증오가 아니라 관심을 갖고 진심어린 비평을 해라는 것으로 들린다. 예술이란 우리가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존경해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경매시장에서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는 이유만으로 작품의 가치가 높아진다고 생각하고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도 비싼 가격에 거래되면 유명세를 타고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에 내어놓으면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독일 혹은 다른 나라에서도 상황은 유사한가보다.
미술관에 가면 정해진 동선을 따라서 차례차례 관람을 해야하며 한 작품 앞에서 지나치게 오래 있거나 사진을 찍는 행위는 절대 금지다. 저자가 말한대로 제복을 입은 경호원들이 굳은 표정으로 작품을 지키고 있다가 사진을 찍거나 작품에 손을 대는 사람은 바로 제지를 당한다. 수년전에 사설 미술관을 방문하였는데 기획 전시관이 아니기에 일반인들의 작품이나 박물관을 방불케하는 도자기나 과거 유물들에 대해 많이 전시 되어 있었고 가이드가 작품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사군자에 왜 소나무가 포함되지 않고 대나무가 포함되었는지, 옛날에는 가구에 장식을 어떻게 했는지 등등에 대해. 이렇듯 설명을 듣고 작품을 감상하니 무심코 지나쳤던 이름없는 공방들의 작품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없은 작품이지만 명화 못지 않게 당시의 모습이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데 모자람이 없다. 유명 작가의 몇 안되는 작품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수많은 무명작가들의 작품에도 관심을 가져야 미술이 살고 우리는 보다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당신이 예술을 사랑하고 관심을 가지는 것은 누구도 말리지 않는다. 하지만 진정으로 미술을 사랑한다면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닌 제대로된 평가를 할 줄 아는 안목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당신의 맹목적인 사랑이나 존경은 미술을 더 망치는 길이라는 것을 왜 모르는가라고 저자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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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이 된 미술관, 제목부터 파격적이다. 그에 상응하듯 내용도 그렇다. 대부분 미술관에 갔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냥 보면 막연해서 오디오 가이드나 도슨트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그도 아니면 안내 책자를 유심히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작품을 조금은 이해했다는 마음으로 미술관을 나설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자는 미술을 모르고 막연한 게 당연하다며 위축되지 말라고 한다.(오디오 가이드나 도슨트, 안내 책자의 도움에 연연하지 말라는 뜻) 오히려 관람객들이 알아야 할 것은 미술관과 관람객 간의 위계질서라고 한다.
관람객은 미술관과 관람객 간의 위계질서라는 전제 조건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관람객 어느 누구도 미술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누구도 알 능력이 없다. -p. 151~ 152
더 재밌는 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술 전문가들도 미술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저 위계질서, 가장 꼭대기에 있는 돈에 의해 움직일 뿐이다. 이제 조금 미술에 대한 증오심이 생기는가? 저자는 다섯 가지 이유로 미술을 증오한다. 1. 미술로 돈벌이를 해왔기 때문에, 미술을 증오한다. 2.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하지 않기 때문에, 미술을 증오한다. 3. 미술은 위계질서로 이루어진 시스템이기 때문에, 미술을 증오한다. 4. 미술은 천재와 광기를 믿기 때문에, 미술을 증오한다. 5. 미술은 금기이기 때문에, 미술을 증오한다.
증오라고 하면 말맛부터 부정적인 느낌이 들지만, '미술 증오'의 진정한 목적은 이보다 긍정적일 수 없다.
"'미술 증오'의 진정한 목적은 죽은 이들을 깨우고 눈이 먼 자들이 볼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미술을 증오해야 합니다. 이와 반대로 미술을 증오하는 이가 미술을 사랑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자아라는 전제 정치의 영혼을 해방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유희 정신을 잊지 말아야 미술은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적어도 스티븐 로우는 그렇게 생각한다. -p. 192
증오에 대한 저자의 정의도 그러하다.
증오는 감정과 관련한 주제다. 그리고 증오는 불안을 수반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수반된다. 그래서 결국 이론가, 음악가, 작가, 예술가, 시인 모두와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미술가, 비평가, 미술 기관과는 관련이 없다. 이들에게는 오로지 미술만이 중요하다. -p. 193
그래서 저자는 마지막까지 미술을 사랑하고 증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술이 반대 세력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이제 관람객이 미술계에 대한 반대 세력으로 등장해야 한다. 미술 증오는 미적 감각에 이끌려 나왔다. 더욱이 미술 증오는 훌륭한 미적 감각이다. 사랑에는 솔직함이 필요하다. 솔직하지 않은 사랑은 깊이가 결여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당신이 최근에 본 것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혁신적이었나요? 라는 질문을 받으면 무엇이라고 대답할 거리를 찾을 수 없으니, 다음과 같이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p. 199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니, 이 책에 대해 솔직하게 말해야겠다. 원작의 문제인지 번역의 문제인지 잘 읽히지 않았다. 앞뒤의 문장이 매끄럽지 않은 경우가 초반에 종종 있었다. 저자는 전문가가 아닌 광범위한 독자층을 위해 썼다고 했지만, 광범위한 독자층이 선뜻 이해하기에는 미술관도 미술가도 미술 경영자도 다 생소했다. 덕분에 피터 도이그, 우르스 피셔, 대쉬 스노우, 빌리 차일디시 등 검색하고 또 검색해야만 했다. 저자가 비판한 코펜하겐 인근 훔레백에 위치한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은 사진만 봐도 정말 아름다워서 키치(사실 이 단어도 검색했다.)와 비슷하다고 해도 꼭 가 보고 싶다. 미술을 많이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증오하면서도 사랑하는 저자를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 솔직한 사랑과 증오로 미술에 다가가야겠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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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구입했던 때가 아마도 조영남의 대작논란으로 시끌벅적했던 시기가 막 지났을 때였던 것 같다. 미술계의 시스템을 직설적이고 과감하게 비판한다는 카피에 끌려 책을 구입했지만 막상 읽어보니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내용이라 반도 못 읽고 덮어놓았다. 다시 읽어봐도 그다지 몰입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완독을 하기는 했다. 책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것은 독자인 나의 탓도 있으리라. 전시회와 관련된 내용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데 나는 그런 문화에 대해서 잘 아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지리적인 영향이 크려나... 저자의 탓을 하자면 그가 쓴 서문이 너무 간결했다. 책을 읽기 위해 필요한사전 정보를 서문에 담았어야 했다. 그러라고 서문이 있는 것이 아닌가. 아무튼 현대 미술의 민낯이 담겨 있다고 하는데,, 장황하고 다소 추상적인 표현 때문에 도대체 미술계가 뭐 어떻다는 것인지 쉽게 확 와닿지는 않는다. 근본적으로 문제인식 자체가 흐리멍텅하면 본론은 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법이다. 그럼에도 어렴풋이 저자가 바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경직된 전시회의 풍경 속에서 미술을 증오하기까지 하는 저자의 분노는 무지한 독자인 나에게도 전달되었다. 직접적으로 제대로 전시회를 관람해본 적이 없는 입장에서 이 책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따라서 이 서평은 못 본걸로 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