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솔직히 경제학에 대해서 잘 모른다. 숫자와 그것을 이용한 계산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사람으로서 바라보는 경제학은 따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같은 사회과학일지라도 말로 풀어서 논하는 것을 선호하는 다른 전공들과는 달리, 차라리 그래프 하나 제대로 그리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경제학은 왠지 모르게 달라보였다. 수많은 경제학자들의 이론이 존재하고, 어쩌면 그것들은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가 얼마나 정당한지에 대해 증명하는 일종의 논리로 활용되어 오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은 그러한 논리를 시원스레 깨어부수고 있었다. 그렇다 하여 이 책이 경제학의 공인된 영역에 속하지 않는 맑스주의적 경제학의 입장을 빌어 서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에게 파는 것은 노동력이 아닌 인적자본, 그 중에서도 부를 창출해낼 수 있는 서비스를 특정기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라고 주장한다. 이는 맑스가 이야기한 주장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얇은 이 책 안에 주된 내용은 신고전주의 이론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소개에 그치지 아니하고, 더 나아가 그 안에 고여있는 모순들을 발견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자신이 지닌 모순에 의해 스스로 무너지는 신고전주의. 남의 불행에 즐거워하는 게 그다지 옳진 않겠지만, 그래서 더더욱 시원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오늘날 정부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경향성은 우리 정부만이 지닌 게 아니다. 세계화라는 명목하에 결국엔 소수의 부국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에 제대로 부합하기 위해 우리는 그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되어있지도 않은 사회복지의 혜택을 점점 줄여나가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실업자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오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할 일 없이 방황하고, 오히려 대학에 머무는게 더 낫다며 휴학과 졸업을 미루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이러한 흐름은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이 프랑스인에 의해서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유효하다 말할 수 있음은 분명하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그러한 흐름의 가장 앞 부분에 서 있다. 혹자는 이러한 경제학을 일컬어, 사람들을 얼마나 잘, 많이 착취할 수 있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러하기에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이 그렇게 많이도 포함되어 있는 걸지도 모른다. 어느 시대에나 소수의 사람이 다수를 지배해왔고, 그러한 소수를 위한 학문이 다수에게 익숙해지는 것은 그다지 달갑지만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경제학은 그렇게 쉽거나 어렵지만은 않은 학문인듯 싶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풍자적인 컷들, 지루할지도 모르는 신고전주의 이론의 이해를 돕기 위한 풍부한 예들. 연습장 하나 꺼내놓고 어색하지만 몇몇 가지 그래프를 그리다 느낀다. 무작정 어렵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경제를 살린다며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된다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에게, 국가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애국심을 펼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
| 경제학이란 말만 들어도 골치가 아프고 답답해 온다면, 그건 경제학을 대하는 사람의 문제일까, 경제학이란 학문의 문제일까? 다른 책들보다 두꺼운 분량의 책이 주는 위압감과는 별도로 평균적 생활인이 이해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내용 전개와 끝까지 읽고 이해한 사람이 많지 않을 만큼 극히 전문적인 서술 방식 등등 기존 경제학 교과서에 대해 떠올리는 일반적인 인상은 자연스럽지 않다. 수치와 논리에 약한, 그래서 그것들에 의해 뒷받침되는 학문에 대해서는 의심을 품지 않는 일반적인 경향을 염두에 두면, 경제학은 앞으로도 수많은 수치와 앞을 읽으면 뒤가 이해되지 않고 뒤를 읽다보면 앞을 다시 들춰보아야 하는 난해한 학문으로 발전할 공산이 크다. 과연 경제학은 그렇게 어려워야 할 학문인가? 잊혀졌던 의문을 새롭게 던지는 글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 제목조차 결코 경제 현상을 다루는 책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멋지게 위장한 『거지를 동정하지 마라?』이다. 이 책은 방대한 경제학의 전 분과를 다루지는 않는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교묘히 강제하고 있는 실업 이론에 주목하고 있을 뿐이다. 분량도 크지 않다(고작 144쪽). 실업 이론만을 다루는 경제학 교과서의 두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외관상 눈길을 잡아 두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경제학 전공자들에겐 가벼워 보이고 일반인들에겐 「경제학의 실업이론 비판」이란 부제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양쪽 모두에게 외면당하기 쉽다. 과연 그럴까? 신자유주의의 특징 중 하나인 노동의 유연화(또는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예로 들어보자. 이는 복지정책의 축소를 선행요소로 한다. 그동안 의료보험 혜택, 실업수당 등 광범한 사회주의적 정책에 의해 최저 생활을 보장받고 있던 잠재적 노동자들은 그런 정책들의 폐기 또는 축소에 떠밀려 경쟁이 격화된 노동시장으로 유입된다. 기업은 이전과 달리 수없이 많은 노동력을 취사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다. 임금 및 노동 조건 협상에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시장에는 비정규직이든 일용직이든 시간제든 상관없이, 생계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어떤 노동 형태도 감수하고자 하는 노동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대등하지 않은 노동자-기업주 관계는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장래를 보장받지 못하는 대다수 노동자와 그 가족을 필연코 사회의 주변부로 내몰게 된다. 그러나 제도 경제학은 이런 사실을 은폐한다. 노동 경쟁의 격화야말로 최종적으로 노동자들의 이익을 보장해 준다고 역설한다. 그것도 두 눈을 부릅뜨고 장시간 매달려야 이해가 가능한 수많은 경제학적 수치와 수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논리적 정당성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한다. 일반인들은 처음과 끝이 일치하니 과학적이지 않느냐라는 비이성적 강제와 온갖 수치를 나열하여 순환 논리를 감추는 의도된 수사에, 경제학에 왠 수치가 그리도 많은지 설혹 의문을 품는다해도 그나마 수 십 년을 수학에 치인 터라 고명한 학자들의 주장 앞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밖에.... 모든 것을 회의한 데카르트는 근대 철학의 거두로 인정받는다. 왜 그런가. 새로운 사실의 발견 속에 이미 의문부호의 연속적 과정이 집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회의야말로 은폐된 진실을 광장으로 이끌어 낼 수 있다. 데카르트적 사고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신자유주의의 세계적 무한 경쟁과 중심부와 주변부의 급속한 원심화 및 구심화 경향이 지배하는 시대-에 이 책은 인간이 중심이 되는 경제학적 사고의 인식적 지평을 시원스럽게 열어준다. 시중에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비인간화를 고발하고 있는 책이 많이 나와 있지만 이 책처럼 이야기하듯 쉬운 문체로 풀어 낸 책을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적은 분량에 이야기체로 풀어간 이 책이 장마로 눅눅해진 몸과 마음에 시원한 개안을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땀 흘린 뒤 강한 물줄기 속의 샤워란 실로 청량감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것이 인식에 적용된다면 더더욱...... |
| 신자유주의자들이 너무나 당연하다며 강요하는 경제 이론 중에는 힘없는 백성의 입장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 있다.(불행한 자를 도와주면 모두가 불행해진다. 보이지 않는 손에는 너무나 밝은 눈이 있어 이 세상의 행복의 절대량이 커지도록 우리를 인도한다. 등) 하지만 어쩌랴. 그들이 내뱉는 현란한 어휘들에 먼저 주눅들고 정교한 수학공식에 굴복하다 보면 자신이 너무 무식해서 부처님 말씀을 이해를 못 하는구나 하기 쉽다. 이런 자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쓰여진 책이 바로 이것이다. 자본주의라는 교묘한 장치하에서 어질고 정직한 백성이 곧 거지일 수도 있음을 적들이 구사하는 바로 그 이론적 틀을 사용해서 논증해 보이고 있다. 더하여 더 이상 현실을 오도하는 모델이나 가설따위에 겁먹지 않게 경제학을 위트와 풍자로서 풀어놓는다.(번역자가 딱딱한 이론서에 익숙한 탓인지 군데군데 아래 위를 다시 읽게 만드는 문장들이 있는 것이 흠이다.) 경제학 지식에 근거하여 이 책의 내용의 훌륭함을 논할 능력이 없는 처지에서 이 책에 좋은 평점을 준 것은 철저하게 '이에는 이'라는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이론이 대부분 경제학에 바탕하는 반면에 여기에 대적하는 많은 책들이 정치,사회학적 시각과 경제학의 입장을 버무려서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벽에 대고 등 긁는 그런 기분을 주었지만 이 책만큼은 경제학만을 따로 떼어내어 정면 승부를 겨룬다. 이 책을 읽고 이 용감한 승부에 많은 박수부대가 생겼으면 한다. |
| 실업은 왜 생기는가? 경제학 원론이라도 들은 사람은 너무나도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다. 노동의 수요보다 공급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간단하다. 노동의 가격을 낮추면 된다.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다른 챕터에서 이런 이론도 소개하고 있다. 가격하한선이 어떻게 시장을 왜곡시키는가에 대한 것으로 그 예로 대개는 최저임금제가 등장한다. 즉 가격이 낮아지면 실업 문제가 말끔하게 해결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제로 인해 일정 수준 밑으로는 가격이 떨어지지 않고, 이에따라 만성적인 실업이 존재한다. "개소리다." 이책의 결론이다. 경제학 원론만 이해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해하고 수긍하는 이 이론틀이 거짓이라고 말하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그 이유는 단 하나다. 경제학의 기본 전제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합리적 개인이라는 설정이다. 복잡한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이론적 모형이자 가정일 뿐인 이 명제가, 어느덧 현실이자 당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경제학자들은 현실이 이 가정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비난의 칼날을 세우고, 실업의 결과가 종종 실업의 원인으로 둔갑하는 극단적인 주객 전도의 상황으로 이어진다는 추론이다. 실제의 노동시장은 상품 시장에서나 적용될만한 수요 공급곡선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최저임금제는 한없이 낮아져 최저생활마저 위협하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고안된 것일 뿐 실업 상황을 악화시키는 제도가 아니다. 실업보험이나 고용보험은 노동 가격을 상승시켜 실업을 악화시킨는 제도가 아니라 상시화된 실업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이에 대처하기 위한 제도일 뿐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여전히 현실이다. 우리는 힘없는 노동자일 뿐이고, 모든 상황은 이미 주어진 것일 뿐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 경제,라는 것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래서 두리번 두리번 거리다가 이 책을 구입했다. 책이 작고,페이지 수도 적고, 군데 군데 삽화까지 들어가 있어서, 쉽에 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책장을 몇 장 넘겨 보니 그건 아니었다. 경제쪽엔 전혀 지식이 전무한 나에게는 읽으면서 상당한 생각을 필요로 했다. 전공쪽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귀찮은 지라 걍 눈으로만 읽고 책장을 쉽게 덮어버렸는데 그래도 읽은건 읽은지라 몇 자 끄적거려 본다면, 생각을 갖고 천천히 책장을 넘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비전공자라면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