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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이라고 쓰자 손끝이 가볍게 떨린다. ‘첫’이라는 관형사가 주는 떨림이 조금씩 안쪽으로 이동하더니, 기어이 심장을 휘젓는다. 혈관이 팽창할수록 내 볼은 붉어지고, 붉어진 나의 수많은 첫들은 눈송이인 양 휘날린다. 부끄럽게 손 내밀던,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내 어린 첫 친구 또한 어쩌면 내 어린 얼굴을 떠올리며 자신의 수많은 첫 속에서 허우적대지 않을까 싶은 가을. 쥐떼가 순식간에 솜이불을 뜯어놓은 것 같은 하늘. 입은 어설프게 담배를 물고, 두 눈은 내 속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하늘을 응시하고, 두 귀는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사로잡혔던 그때. 좀처럼 떨쳐낼 수 없는 불안과 좀처럼 타협할 수 없는 현실 사이를 오가다 곧잘 구석지거나 음습한 곳에 걸터앉아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짓곤 했던 시절. 어떤 이끌림이었다. 아니면 단순히 당장의 우울을 덮어줄 무언인가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은행잎을 밟으며 걷다, 당시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었던 음반가게 문을 열고 말았다. 맑으면서도 안정적인 음성이 내 귀에 와서 철썩였기 때문. 민감해진 청각세포들은 힘을 모아 십대의 심장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첫. 음악 시간에 잠깐 배운 적 있는, 나름 낯익은 가곡이 타인과의 예기치 못한 접촉처럼 낯설고도 얼마간은 유쾌하게 다가왔다. 일 주일치 용돈으로 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것들 중 가장 근사한 한 가지와 맞바꾼 소프라노 신영옥 데뷔 음반 <Vocalise>에 실린 아홉 번째이자 마지막 곡. 테이프를 재생시키면 모차르트나 도니제티의 아리아로 압도당하지만 뜻 모를 이국어는 쉽사리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한국어를 둥글둥글하게 다듬으며 부르는 짧은 가곡은 언어의 함축성과 함축성에서 비롯된 갖가지 생각들, 그리고 그 안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연장시키는 힘을 선사했다. 게다가 음표에 실린 언어는 인간의 내면에 꿈틀거리는 온갖 감정을 먹장구름으로 만들어 비를 내리게 했다. 신영옥 비가 외투에 스며들더니 이내 맨살을 적셨다. 홀딱 젖은 채 담배를 피웠다. 때때로 하늘을 바라봤다. * 성악. 2012년을 며칠 앞두고 세운 계획 중에 하나다. 뭐, 음대 성악과에 진학하여 제대로 공부해보겠다는 커다란 포부와는 거리가 멀다. 잠깐이라도 노래에 빠지고 싶은 욕구를 표출해 보겠다는 바람으로 성악교실에 등록했다. 아직도 잊지 못한다, 성악교실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을. 못 배운 한으로 다 늙어서 한글교실에 등록하고 첫 수업을 받는 노파의 심정과 흡사했다. 연필심 혀끝에 찍어야만 정자로 글씨를 쓸 수 있다는 듯한 결연한 주름 하나가 새겨지는 것 같았다. 허나 대학교 소강당에 입장하는 순간, 왼편의 피아노가 새치름히 고쳐 앉는다. 중앙 통로와 직각을 이루는 무대는 점잔을 빼며 헛기침을 한다. 내가 선택한 의자만이 내게 손을 흔든다. 그렇게 또 다른 ‘첫’은 찾아왔다. 열정만으로는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처 알지 못한 놀라운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고 당황해 할 수 있다면!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내게 주어진 음악에 이르는 길은 감상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그렇다고 슬퍼해야 할 까닭은 없다. 살리에리처럼 천부적인 재능을 가늠할 수 있는 눈도 없으나 다행스럽게도 내겐 음악을 즐길 줄 아는 귀는 있었다. 그것이 매번 당당하게 앞으로 나가도록 부추겼다. 매주 목요일 7시부터 150분 동안 성악 수업을 받았는데 1시간쯤은 발성 연습을, 나머지는 한 사람씩 앞으로 나와 개인 레슨을 받았다. 호흡법도 제대로 터득하지 못한 처지였지만, 굳이 나가지 않아도 되었지만,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앞으로 나갔다. 로시니의 ‘약속’, 도나우디의 ‘오, 나의 사랑하는 님’ 등의 이탈리아 가곡을 그야말로 멋들어지게 불렀다면 거짓말이고 내 입에서 음표가 얼마 나오지 않았는데 교수님의 안쓰러운 눈빛을 지었고 나는 이를 외면해야 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케루비노 아리아 ‘사랑의 괴로움 그대는 아는가’ 악보를 준비해 나갈 때를 떠올리니 지금도 절로 눈이 감긴다. 아, 카운트테너 이동규의 반의반만큼이라도, 아니 그 반의반만큼이라도 이 노래를 읽어낼 수 있다면……. 프란츠와 다르지 않았다. 알퐁스 도데의 단편 <마지막 수업>의 주인공처럼 마지막 수업을 맞이하고서야 게으름이 보였다. 그 아이처럼 매끄럽게 읽어내지 못하는 언어(성악)에 주눅이 들었다. 항상 내가 앉던 의자가 마지막까지 프란츠가 되지 말라고 내게 속삭였다. 마침 가방에는 내가 좋아하는 가곡 악보가 있었다. 셰익스피어가 인생은 한편의 연극이라고 했다지. 그래 잠시 동안 성악가가 되어보는 거야. 좀 어설픈 성악가겠지만 그 역할에 충실해야 해. 오로지 음악에만 젖어보자! 앞으로 나갈 때마다 떨려오던 가슴은 그날따라 잠잠했다. 교수님께 반주자의 마지막 타건의 음이 사라질 때까지 아무런 제지를 하지 말아줄 것을 당부했다. 전주가 시작되자 가슴에 꽃잎이 하나 둘 떨어졌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난 날 아득타 기약이 없네 설도의 마음이 드디어 읽혀졌다. 당나라 여류시인의 안타까운 사랑에 몸이 떨렸다. 계절이 바뀌고 꽃이 져도 돌아올 줄 모르는 이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사람의 마음이 그대로 내 속에 들어왔다. 여인의 간절한 눈빛이 보였다. 설도의 ‘춘망사’ 중 한 수가 김소월 스승인 김억에 의해 번역되어 국내에 알려지고, 김성태의 감성으로 다시 태어난 동심초. 노래 한 곡이 마침내, 내게 이른 것이다. 천여 년의 시간을 훌쩍 넘어. 처음으로 칭찬을 들었다. 잘 불렀다기보다는 감정처리나 노력이 가상하다는 이유였겠지만 흡족함이 밀려왔다. 박수소리 끝에 희미하게 신영옥의 음성이 따라왔다. 오래전 음반가게 앞에서 듣던 내 생의 첫 중의 하나. 늘 다른 형태로 첫을 만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동심초’를 듣고 싶은 가, 을. 아마도 당신을 만든 당신 어머니의 첫 젖 같은 것 그런 성분으로 만들어진 당신의 첫. - 김혜순 시, ‘당신의 첫’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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