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래 책은 손에 들고 단숨에 읽어야 재미가 더하는 법인데 반더루스트는 자투리 시간 긁어 모아 5분씩, 10분씩 읽고, 그 것도 매일하지 못하고 며칠 지난 뒤에야 펴 들곤 해서 읽는 호흡이 아주 느렸다.
이 책에 대해서 그런데도 불구하고 재미있었다고 표현해야 할지, 그래서 어쩜 더 재미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해야 할지 좀 애매하다.
33일동안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동유럽을 거쳐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갈아 타고 중국으로, 중국 칭다오에서 배를 타고 인천으로 오는 주인공 반더루스트(독일어로 방랑자라는 뜻이란다. 지은이가 스스로를 이렇게 표현하길 즐기는 것 같다)의 여정이 느린 호흡과 맞았다.
다른 여행기도 그랬었는지 막상 잘 생각이 나질 않는데, 어쨌던 <반더루스트>는 ‘현재 진행형’으로 쓰여졌다. 목적지에 비행기로 도착해서 그 속에서 이런 저런 일들을 맞닥뜨리는 좌충우돌, 들썩들썩한 얘기가 아니라 열차에서 내려 하룻밤을 묶고 그 곳에서 몇몇 사람을 만나고, 또 열차에 올라 덜컹거리며 가다가 또 다른 도시에 내려 하룻밤을 묶는 그 과정에서 현재 시점의 문장들이 나를 계속 끌고 다녔다. 와~ 이 사람 재미있었겠네…하는 생각보단 함께 하는 여행이란 느낌을 주었던 것 같다.
여행, 현실 속의 나 자신과 거리 두기. 지은이가 표현한 여행의 의미이다. 맘에 든다. 중학교 1학년 때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외국 생활을 시작한 지은이는 중학교는 독일에서, 고등학교는 미국에서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군대생활을 한 후 서울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거쳤다. 언뜻 한국 내에서 복닥거리며 살아온 이들에겐 '그런 좋은 여건이 있었으니까 이렇게 살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할 수도 있지만 남다른 정체성 혼란을 느꼈을 터였다.
“아는 만큼 보게 되지만 본 만큼 알게 되는 것이 인간이고, 또한 한번 알게 된 것은 엎질러진 물과 같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이기에, 나는 지금까지 보고 배우고 체험한 모든 것으로부터 가끔씩 의식적으로 거리 두기를 해야만 했다. 내 자신을 겹겹이 에워싸고 있는 현실의 틀을 좀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 (31p)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고 간직할 것은 고집스럽게 간직하는 것, 그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오로지 여행을 하면서……내가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 즉 버릴 것과 지켜야 할 것을 정확하고 투명하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31p)
여행은 그 여행가방을 보듬고 다니면서 가벼운 삶, 무소유의 삶도 가르쳐 주는 것 같다는 것을 새삼 덧붙여 배우게 됐다.
이 책은 ‘사람’의 얘기가 많다.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2편을 내면서 그 서문에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는 말을 했는데, 반더루스트도 열차에 내려 하룻밤, 이틀밤을 자면서 그 곳의 문화유적지와 명물에 대한 얘기보다 잠깐의 인연으로 만난 그 곳 사람들과의 대화를 정성스레 모았다.
라트비아에서 만난 할아버지의 파란만장한 인생 얘기, 에스토니아의 한 여교사의 분주하고 치열한 삶, 헬싱키 호텔의 천사, 인도 신디아 고등학교의 교장과 5백명 전교생의 석양과 침묵, 베이징 미장원에서 다섯명의 미용사에게 둘러싸여 머리를 자르던 당혹스런 경험, 평양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중국의 한 여성과의 만남, 청도-인천을 오가는 배를 운항하면서 까만 밤바다와 마주하며 돌고래에 의지해 외로움을 달래는 뱃사람들의 얘기 등등.
책을 다 읽은 후엔 이 만남과 경험들을 후기에 줄긋기로 정리해서 기억해 둘 작정이었는데 그렇게 하면 <반더루스트>를 다시 읽지 않을 것 같아 또 한번의 여행을 위해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반더루스트>반더루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