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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아마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라는 '제목'은 한 번이라도 들어 본 적 있을 것 같다. 이게 노래 제목인지 시의 한 구절인지 헷갈릴 수는 있어도, phrase 전체가 쌩판 낯설다거나 뭐 그렇게 다가오지는 않을 것 같다. 유감스럽게도, 아니 유감스러워해야 한다기보다 조금 자랑스러워질 여지마저 있는 게, 내가 심심하면 들먹이곤 하는 원제 internal affairs의 기막힌 의역, '유혹은 밤그림자처럼'만큼이나, 대체 뭔 곡절로 이런 제목이 냅다 여기 붙었는지 궁금해질 만큼 이게 잘 빠진 콤비네이션이다. 앞에서 '유감'을 들먹인 건, 원제와는 전혀 무관하게 '약 빨고 지어낸' 신통한 아우라를 풀풀 풍기는 모범적 영감 詩作의 한 예라는 점에서이다. 앞에서 '의역'이라고 했지만 의역도 아니며 전거 따위는 쿨하게 쌩까는 순수 창작에 가깝다. '자랑'을 들먹인 건, 오리지널보다 한국어 修辭의 미학적 효과가 훨씬 좋다는 이유에서...(...).
이 작품이 한국에 극장 개봉 형식으로 걸린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이런 경우 대충 참고하는 올드팬들 몇(흠)의 반응을 보면 단성사에서 이걸 관람했다고 하는 분도 있고 전혀 기억 안 난다(고 했)던 분(이분은 고인)도 있어서. 일본에서 이런 투로 의역을 하는 예는 내가 본 적이 없기에 이게 일본 제목을 생각 없이 베낀 것 같지도 않다. 인생을 자신이 속한 조직과 규칙에 충실하게 살았어야 자리도 지키고 늙막에 친구도 많이 남고 어디 가서 대접도 받을 텐데, 처세에 서툴고 머리엔 근본 없이 주워 들은 파편적 날품팔이 밑천만 떠도니 저 나이에 방구들만 긁고 앉은 것이다. 인생을 잘 산 사람은 그 시절에 무슨 트렌드 어느 문화 코드가 유행했는지 생생한 기억으로 그 인품에 녹아 낸 채 간직하고 있다. 할 말이 없으니 어설픈 경구나 견강부회로 구린 입에 올리는 것. 말을 해도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인간이 떠들어야 그게 설득력이 있는 법이다. 전 재산을 중국에 헌납하고 돌아온 주제에 아마 인민해방군이 한반도에 진군하여 조국의 강토를 접수할 무렵 홀로 방구석에서 사서삼경을 읊으면 날린 재산이나 보전해 주겠거니 감나무 밑에서 입을 벌리고 행복한 망상에 젖는 중.
무엇인가를 향해 파괴적으로 집착하는 정신이상자들의 경우 대개 과거의 (저런) 쓰라린 기억(전재산을 날렸다든가)이 그의 행동에 추동력을 제공하는 수가 많다. 극에 등장하는 스토커 이블린(제시카 월터 扮)이 그 전형적 케이스다. 보통 스토킹 케이스라고 할 때 weaker sex가 희생양이 되는 게 다반사지만, 이 영화는 반대로 남성이 여성의 집요한 욕망에 대해 표적으로 남았던 게 참신한 플롯 포인트였고, 그래서 이만큼이나 세월이 지난 후에도 명작으로 기념되는 이유 중 하나를 구성한다고 다들 입을 모은다. 사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의 출세작 중에서도 누구에겐가 집요하게 쫓기고 쫓기는 것으로도 부족해 학대를 당하고... 뭐 이러다 뒤집기를 하는(안 하면 주인공이겠음?) 특유의 동선으로 많은 이들의 뇌리에 새겨진 배우인데, 자신이 직접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에서 어느 정도 그를 놓고 셀프 패러디를 하고 있다. 혹은, 그렇게도 하고 싶었던 자가 연출 드라마에서 느끼한 자기 연민에 이 정도쯤 빠져 주는 건 관객으로서 팬으로서 눈감아 줄 의무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케인(체인이 아닙니다)을 칭칭 감은 두 마리의 뱀처럼 이 영화와 코드적으로 얽힌 두 명곡은 앞서 말한 대로 하나는 <미스티>, 다른 하나는 그 유명한 로버타 플랙의 <퍼스트 타임 에버 아이 쏘 유어 페이스>겠다. <미스티>는 전설적인 재즈 뮤지션들뿐 아니라 웬만한 가수라면 안 건드린 사람이 없을 만큼이겠는데, 엘라 피츠제럴드나 프랭크 시나트라 버전이 특히 회자된다고는 하나 내 개인취향으로는 냇 킹 콜 버전이 멋들어지게 잘 연주되었다고 생각했고, 내 나이 또래라면 아주 한때 故 사라 본의 시대착오적 인기몰이 덕분에(이 현상은 한국 영화 감독의 모 히트작 때문이었고) 그녀의 버전이 귀에 아주 익을 줄 안다. 영화에서 이블린이 집요하게 뭘 틀어달라고 하는 건 아주 살짝 이때로부터 30년 전 작품 <카사블랑카>에서 잉그리드 버그만이 '플레이 잇 어겐, 샘' 이라고 치는 그 대사의 영향이 남은 흔적이기도 하다(이건 나 혼자만 하는 소리 아닌가? 좀 자신이 없네그려. 만약 이게 정설이 아니라면 나 개인의 주장이라고 해 두지). 자, 우리의 데이브는 언제나처럼 제 곤경을 제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의외로 민첩하게 돌아가는 두뇌의 힘만으로 극복할 것인가 아니면 이럴 때면 언제나 미흡하기 짝이 없는 법의 힘에 호소할 것인가? 뭘 세금 같은 걸 내봤어야 사유화의 불합리를 떠들어도 떠들 것 아닌가. 아참 중국 공안이 있긴 했지. ㅋ
우리의 귀염둥이 잡적이 이야기가 간만에 펼쳐집니다! (덧글 참조)
 그건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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