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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의 작품이 200편이 넘는다고 들었는데, 이번 7번째 책까지 읽음으로써 157편의 이야기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엔 어렸을 때 이미 읽었던 것도 있고, 이번에 처음 읽게 된 것도 있죠.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읽다보니 간간이 비슷한 설정의 내용도 눈에 뜨이는데, 예를 들어, 제 5권에서 1년의 열두 달을 의인화한 「역마차를 타고 온 열두 사람」과, 이 책의 「요일 이야기」 같은 경우입니다. 열두 달과 일곱 요일이라는 수적인 차이를 빼면 느낌은 비슷합니다. 그 외에도 가장 처음에 나오는 「나무의 요정 드리아스」는 「인어 공주」를 연상시키고, 「그레테 닭할머니의 가족」은 「이브와 어린 크리스티네」를 떠오르게 합니다.(물론 진행이나 결말은 전혀 다르지만, 어쩐지 이브의 슬픈 사랑의 느낌이 떠올랐습니다.) 「앉은뱅이」의 경우는 「문지기의 아들」을, 「요하네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는 「버드나무 아래서」의 남녀가 바뀐 듯한 느낌도 주고요. 안데르센 시리즈 마지막 권답게 앞의 여섯 권을 모두 조금씩 떠올리게 하네요. 「치통 아줌마」의 경우엔, 얼음 공주가 실려 있던 제 5권의 작품 해설에서 안데르센 평전의 저자 재키 울슐라거가 얼음 공주, 눈의 여왕과 함께 안데르센 작품에 등장하는 세 악녀라고 평가해놓아서 대체 무슨 얘기인지 궁금했는데, 읽어보니 사람마다 확실히 느낌은 다른 것인지 저는 별로 울슐라거의 의견에 동의를 할 수 없었습니다. 이 책에서 제게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인데, 초등학생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각 시각의 숫자에 해당되는 사건들을 기발하게 맞춰 놓아 어린 마음에도 감탄했었더랬죠. 예를 들어 1시에는 모세가 첫 번째 계명을 돌판에 적고, 2시에는 아담과 이브가 낙원에서 만나고, 3시에는 동방박사 세 사람이 나타나고, 4시에는 사계절이, 5시에는 다섯 가지 감각이 나타나는 식입니다. 별로 긴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초등학생 때 그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의 전개에 매료되었던 것처럼 어른이 된 지금도 그 얘기는 여전히 매혹적이었습니다.
...죽은 사람은 결코 다시 걸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요, 하지만 예술은 그렇지 않습니다. 형체를 부술 수는 있어도 그 속에 깃든 영혼은 부술 수 없습니다....(p.154)
책 앞쪽에 안데르센의 삶에 대한 설명과 사진을 실어두었는데, 마지막 권이어서 그랬는지 이번에 실린 안데르센의 사진은 죽기 1년 전 머리가 하얗게 센 모습이더군요. 위 문장에서처럼 그의 작품 속에 깃든 영혼은 아마도 영원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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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만큼 세계의 많은 어린이들에게 영향을 준 작가도 드물 겁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 안데르센의 동화를 읽으며 자랐던 기억입니다. 「성냥팔이 소녀」, 「인어공주」, 「미운 오리새끼」, 「벌거벗은 임금님」, 「장난감 병정」, 「백조 왕자」, 「엄지공주」, 「빨간 구두」, 「눈의 여왕」등등 참 많은 동화들을 읽고 자랐죠(솔직히 어떤 것들은 내가 어린 시절 읽었던 건지, 아님 딸아이에게 읽어준 건지 혼돈스러운 것들도 있어요. 아마 둘 다이겠죠.^^).
이렇게 어린 시절 함께 성장하였던 안데르센 동화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금번 시공주니어에서 햇살과나무꾼의 번역으로 원작에 충실한 안데르센 동화집이 나왔거든요. 총 7권으로 출간된 이 동화집은 안데르센이 직접 자신의 200여 동화 가운데 156편을 뽑은 단편 모음집 『동화와 이야기』를 우리말로 옮긴 겁니다. 여기에 마치 천일야화와 유사한 느낌의 「그림 없는 그림책」(다락방에 사는 가난한 화가를 찾아온 달님이 자신이 세상 곳곳에서 본 것들을 매일 밤 이야기해주는 연작 단편동화로 33번째 밤까지 이어지고 있네요.)이 더해져 있습니다.
제가 이번에 만난 책은 마지막 7권이랍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놀란 점은 부끄럽지만 7권에 실린 동화(22편 수록) 가운데 정확하게 아는 작품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었답니다. 참 많이 알고 있다고 여겼던 안데르센의 동화를 이렇게나 모르고 있다니 하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그동안 안데르센 작품의 극히 일부만을 맛봤던 거죠. 게다가 읽은 작품들 역시 어린이들에게 맞춰 각색되거나 편집된 내용들일 테고요. 그렇기에 원작 그대로 번역된 작품을 읽을 수 있음이 얼마나 행복한 시간인가요.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조금 읽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에요. 내용이 어려워서라기보다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자답게(?) 이미 자극적인 전개에 익숙해져 있었던 거죠. 하지만, 그럼에도 한 편 한 편 꼼꼼하게 읽어가다 보면, 잔잔함 가운데 깊은 맛이 나는 것을 느끼게 되요. 이것이 고전의 힘이 아닐까 싶고요. 역시 고전은 고전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요.
아울러 안데르센의 동화들이 결코 어린이들만을 대상으로 쓰인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요. 어쩌면 어른들이 읽어야 할 동화들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어른들이 읽어야 어쩌면 동화의 참 의미를 알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물론, 이런 생각도 잘못일지 모릅니다. 아이들이 어쩌면 어른들보다 더 이야기의 참 맛을 느낄 수도 있을 테니 말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뛰어나거든요. 무엇보다 더 맑고요.).
이 책에만 22편이나 되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기에 안데르센이 전해주는 참 많은 메시지들을 만나게 되요. 「엉겅퀴가 겪은 일」, 「전원사와 주인 가족」등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작가란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작은 것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 감동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해요. 「춤추어라, 춤추어라, 나의 인형아!」를 읽고는 역시 아이들의 시선과 어른의 시선은 다르다는 생각을 해보게 됐어요. 아울러, 혹 부모 된 입장에서 아이들에게 나의 시선을 강요하는 부모는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해보게 되고요. 평생 치통을 알았다는 안데르센의 자아가 투영되어 있다는 「치통 아줌마」를 읽고는 안데르센 같은 위대한 작가에게도 창작의 고통은 힘겨웠나 보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하찮은 시인이에요! 아니, 전 아무것도 아니에요. 시인도 아니에요. 그냥 발작하듯이 시를 짓는 것뿐이라고요. 치통처럼 그냥 발작하듯이요.”
왠지, 작가의 창작의 고통이 느껴지지 않나요?
「요하네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서는 도전하지도 않고 주저앉아버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도 발견하기도 되고요. 「그림 없는 그림책」의 <열여섯번째 밤>을 읽고는 작품이 전해주는 페이소스에 한동안 그 안타까움과 슬픔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렵더라고요.
「나무의 요정 드리아스」, 「바다 속의 거대한 뱀」, 「증조 할아버지」등에서는 낡은 시대(신화가 가득한 시대)와 새 시대(진보의 삶, 발전하는 과학)의 대립. 그리고 그 안에서 공존을 모색하는 작가의 마음을 느껴볼 수 있었고요. 과학과 신화의 공존. 구시대와 새시대의 갈등과 공존 등을 발견하게 되요. 아마도 안데르센은 새 시대를 배척하진 않는 것처럼 느껴져요. 새 시대의 진보, 과학과 산업, 그 문명이 허락하는 편리가 분명 있음을 인정하는 거죠. 하지만, 그럼에도 그 안에 신화를 넣어요. 나무의 요정이 등장하기도 하고, 인어가 등장하기도 하죠. 그런 가운데 작가는 이런 과학과 산업을 자칫 신봉하며 참된 신화와의 균형이 깨뜨려진다면, 자칫 문명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한다면, 이것들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뱀”이 될 것이며, 또한 드리아스 요정을 죽이는 괴물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해요. 어쩜 오늘 우리 시대가 귀 기울여야 할 메시지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당시에는 이런 경계보다는 오히려 신봉의 분위기가 만연했을 텐데 말이에요. 역시 위대한 작가는 글뿐 아니라 시대를 바라보는 통찰력도 갖추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참 여러 가지 내용들을 생각해보게 되지만, 무엇보다 안데르센이 말하는 희망은 빠뜨릴 수 없을 것 같아요. 안데르센은 「행운은 한낱 나뭇조각에도」에서 말해요. 신은 갓난아기를 보내실 때 행운의 선물도 함께 보내주신데요. 그리고 이 선물을 사람들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곳에 두신데요. 하지만 언젠가는 그 선물을 반드시 발견하게 하신데요. 그러니 지금 당장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해도 언젠가는 이 행운의 선물을 발견함으로 밝은 세상을 맞게 된다는 거죠. 어쩌면 이런 주제야말로 안데르센 이야기의 큰 축이자, 그가 오랜 세월 사랑받게 되는 비결이 아닐까요? 「그림 없는 그림책」의 <스물여섯 번째 밤>에서처럼, 어쩌면 오늘 우리의 삶이 지금 당장은 좁고 갑갑한 굴뚝을 헤매는 상황일 수 있겠죠. 하지만, 결국에는 그 상황을 견뎌내고 나아가 환한 세상, 맑은 공기를 만끽할 날이 주어지겠죠. 이런 내용의 동화들은 여느 성직자의 설교보다도 더 큰 힘이 있지 않을까 싶네요. 마치, 이야기를 통해 한스가 다시 일어나는 것처럼 말이에요(「앉은뱅이」). 비록 지금 힘겨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할지라도, 안데르센이 전해주는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의 삶이 다시 일어서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진다면 좋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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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은 덴마크의 아주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는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지금의 명성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못생긴 새끼 오리>를 어린 시절 저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못생긴 오리가 백조가 된다는 환상이 꿈을 키우게 만드는 동화 였습니다. 그 안데르센 동화집을 시공주니어에서 <안데르센 동화집> 1~7권으로 펴내어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총 7권으로 된 안데르센 동화집 중 저는 7번째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속지가 부담스럽지 않은 종이에 인쇄가 되어 있습니다. 질감도 너무 반들거리지 않고, 손을 베이는 염려는 없는 재질입니다. 흰 재질이 아니라 눈부심도 없기 때문에 눈으로 글자를 보기에도 편합니다.
책을 구입할 때는 가격을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책의 내용을 보면 12,000원의 가격이 부담을 주지는 않습니다. 어른이 되어도 우리는 꿈을 갖고 싶습니다. 꿈을 갖기에 이 책은 아주 좋은 책입니다. 상상력을 통해서 많은 것을 만나고, 새롭게 펼쳐지는 세계를 동경하기에 좋은 책입니다. 아래는 책 속의 주인공들 몇을 소개합니다.
나무 요정 드리아스는 마로니에 나무에 살고 있습니다. 드리아스가 요정 드리아스가 보는 세상은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보다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나무에는 요정이 한 분씩 살고 있는가 봅니다. 요정이 하루살이 인생을 얻어 다른 곳을 여행하다 생명이 다하자 마로니에도 생명을 다하게 됩니다. 동화를 읽으면 드리아스가 보는 세상이 아름답기도 했지만, 드리아스가 죽게 되는 장면에서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안데르센은 상상력이 무척이 좋은 분인 것 같습니다.
“엉겅퀴가 겪은 일”이라는 동화 속에서는 엉겅퀴가 주인공이다. 다른 아름다운 꽃들은 집 담장 안에서 자라는데, 엉겅퀴는 집 밖에서 자란다. 엉겅퀴도 다른 꽃들처럼 집 안에서 자라고 싶다. 어느 날 스코틀랜드 아가씨가 엉겅퀴의 첫 아이 그 집 주인의 아들 단춧구멍에 꽂아 주고, 그들이 결혼해서는 막내 아이를 액자 틀에 새겨놓는다. 엉겅퀴는 울타리 아이들이 울타리 안에 있어서 행복하다. 그 때 햇빛이 말한다. 너도 좋은 자리에 가게 될 거라고……. 바로 이야기 속으로. 몇 세대를 거쳐 자랑스러운 이야기 속에 남는다는 재치 있는 햇빛의 말이 기억에 남는 동화다. 대체로 동화는 따뜻하게 마무리를 짓는다.
“채수 장수 아주머니한테 물어봐요”는 동시 같기도 하고 동요 같기도 하다. 당근영감과 당근 아가씨가 결혼했다는 이야기다. 돈이 들지 않는 식탁과 말이 많은 당근영감 이야기는, 사실은 채소장수 아주머니가 파는 채소이다. 즐겁게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채소 장수 아주머니한테 물어봐요”이다.
이 책의 뒤페이지를 보면 각 동화들이 발표된 지면에 대한 소개와 작품의 설명이 나와 있다. 동화를 읽은 후에 작품 해설을 본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418쪽에는 1~7권까지에 실린 목차가 소개 되어 있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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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동화가 현실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계단이 움직이고, 무인 자동차가 등장하고, 인공지능 프로그램과 사람이 바둑을 두기도 합니다. 우리의 상상력이 시대의 변화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이 시대의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는 세상이 열린 것 같아 끔직해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만들어갈 아름다운 내일이 아니라, 상상할 수 없는 현실이 우리를 덮쳐오는 그림이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도 하늘이 그림책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보고도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답니다. 구름이 들려주는 온갖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었지요. 아빠, 엄마가 들려준 동화를 하늘에 그려넣을 수도 있었고요.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유명한 이야기 아저씨가 있습니다. <엄지 공주>, <벌거벗은 임금님>, <성냥팔이 소녀>, <미운 오리 새끼>를 지은 '안데르센'이라는 외국인 아저씨였습니다. 그분의 책을 읽으며 우리는 가슴 속에 엄청난 이야기의 궁전을 지었고, 지금도 그 아름다운 궁전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된 지금 안데르센 아저씨의 이야기를 다시 읽으면 어떨까요? 여기 안데르센 아저씨의 <꼬리별>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어릴 때 꼬리별을 보았던 어린이가 60여 년이 지난 뒤,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 교장 선생님이 되어 다시 꼬리별을 본 이야기입니다. 꼬리별을 본 것이 꼭 엊그제 처럼 느껴지는 교장 선생님의 감상이, 어른이 되어 <안데르센 동화집>을 다시 읽은 제 감상과 꼭 같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꼬리별을 본 것이 꼭 엊그제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 사이에는 한 사람의 풍요로운 일생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지난날 교장 선생님은 어린아이였고, 비눗방울 속에서 '미래'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비눗방울은 과거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꼬리별, 112). 그렇습니다. 어릴 적, <안데르센 동화집>에서 미래를 보았다면, 이제 <안데르센 동화집>은 살아온 날들을 반추하게 해줍니다. 어릴 적, 안데르센 아저씨의 이야기는 반짝이며 황홀하게 떠지던 비눗방울 같았습니다. "비눗방울 하나하나는 얼마나 아름답게 빛났는지요! 그때 비눗방울 속에 비친 것은 온통 아름답고 즐거운 것뿐이었습니다. 어린 사절의 즐거움, 청춘의 기쁨, 햇빛 속에 펼쳐진 드넓은 세상. 사내아이를 그 넓은 세상으로 뛰어들고 싶었습니다(꼬리별, 110). 그런데 이제 우리는 비눗방울 속(안데르센 동화)에서 숨어 있는 삶의 교훈들을 읽어냅니다. "인생에는 환희의 순간도 있지만 견디기 힘든 비애와 고통의 순간도 있다"(작품해설 中에서, 393)는 것을 말입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는 엄마 아빠가 읽어주신 동화 속에서 세상을 마주하고, 살아갈 지혜를 배웠던 것 같습니다. 그 지혜는 안데르센 아저씨의 이야기를 품고, 상상하는 동안 우리 삶 속에 자연스럽게 피어올랐을 것입니다. "인생의 이러한 진실은 어린들도 어렴풋이 알고 있다. 어린이들은 안데르센 동화에서 단지 이야기의 재미와 즐거움뿐 아니라, 고통과 슬픔을 맛보고 인간의 도리와 책임, 자신의 주변과 마음속에 존재하는 악의 근원도 깨닫는다. 그러나 어린이와 안드레센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참된 힘은 '이 생생한 고뇌와 의혹도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인식에 있다. 바로 여기에 어린이와 어린이문학의 위대함이, 안데르센 문학의 진수가 있다. 그리고 어린이와 안데르센 문학을 관통하는 이 힘과 생명력이야말로 '인류의 멸망을 막고, 인류를 이끄는 이상의 빛'이며 희망일 것이다"(작품해설 中에서, 394). 이제 나의 아이에게 안데르센 동화를 들려줘야 할 나이에 아저씨의 책을 다시 읽으니, 어른에게도 동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슴 속에 품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지혜를 얻고, 더 힘차게 어려움을 헤쳐나가며, 더 많은 행복을 가꾸어간다는 걸, 깨달은 것입니다. 비밀처럼 말입니다. 안데르센 아저씨도 "자신을 '어린이 작가'로만 한정 짓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동상을 세우는 데 아이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강하게 반대했고, 세계 도시 곳곳에 안데르센 아저씨의 동상이 있는데 아무도 그옆에 아이들의 동상을 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도 안데르센 동화집을 아이들을 위한 동화로만 한정짓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안데르센 동화집7>은 우리가 쉽게 들을 수 없었던 안데르센 아저씨의 이야기를 모았습니다. 안데르센 아저씨가 스스로 "자신의 최고작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도 만날 수 있고, "안데르센 후기 동화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라는 <치통 아줌마>도 만날 수 있습니다. 아저씨의 잘 알려진 유명 작품들보다 더 드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야기는 없지만, 우리가 몰랐던 아저씨의 작품 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곳에 수록된 작품은 아이들보다 어른에게 더 재미를 주는 작품일 것 같습니다. <안데르센 동화집>을 보니 생각나는 것이 있어, 잠시 딴 이야기로 이 글을 마칠까 합니다. 한때 출판사에서 잠깐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한 독자가 출판사로 항의 전화를 걸어온 적이 있습니다. <미운 오리 새끼>를 <미운 새끼 오리>로 출판했기 때문입니다. 원제목을 훼손했다고 항의하는 독자에게 출판사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미운 오리 새끼>라는 책 제목이 자칫 '욕설'처럼 들릴 수도 있어 제목만 <미운 새끼 오리>로 변형을 했다고 말입니다. 유명한 작품의 제목을 훼손했다는 주장과 원작에 대한 훼손은 전혀 없으나 어감상 제목만 수정했다는 출판사의 입장, 둘 다 일리가 있어 보였습니다. 다른 독자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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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안데르센 동화를 안 읽어본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만큼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동화가 바로 안데르센 동화다. 안데르센 동화는 문학작품으로서도 매우 높은 의의를 지닌다. 안데르센과 동시대에 활 그림 형제나 샤를 페로와 같은 작가들과는 사뭇 다른 행보를 걸어왔기 때문이다. 단지 구전으로 떠도는 이야기들의 원형을 그대로 살리기보다 민담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문학적인 동화로 만들어냈다. 그런 의미에서 안데르센 동화야말로 문학사적 측면에서 볼 때 최초의 동화가 아닐까 생각된다. 안데르센 동화는 많은 예술가들에게도 영향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대문호 찰스 디킨스를 비롯하여 헤르만 헤세, 토마스 만, J.R.R 톨킨, 오스카 와일드, 빈센트 반 고흐, 앤디 워홀 등 많은 이들이 안데르센 동화를 읽고 영감을 얻어 그들만의 예술 작품에 투영하곤 했다. 이번에 새롭게 출간된 <안데르센 동화집> 시리즈는 그간 국내 출간된 번역본과는 확연히 다르다. 안데르센이 직접 편집에 참여하고 선별하여 수록한 동화집을 원문 그대로 완역한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 본인이 자신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작품들만을 선별했기에 다른 작품들보다 안데르센 동화의 진가를 느낄 수 있을 듯하다. 또한, 원문 그대로의 완역이기에 이전 출간본에서 각색되어 용이 달라진 점들이 그대로 실려있다. 이는 그동안 안데르센 동화를 접해왔던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듯하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로만 여겨졌기 때문인지 해피엔딩의 결말로 끝나는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이야기들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번 동화집을 통해 작가의 숨은 의도를 되새겨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번에 읽게 된 <안데르센 동화집> 시리즈의 마지막 편에 수록된 동화들은 이전에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안데르센을 소개할 때 간혹 언급되곤 했던 작품들이 눈에 띄긴 하지만 읽어보진 못 했던 작품들이다. 그래서인지 안데르센이라는 작가가 쓴 동화를 처음 읽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전에 갖고 있던 느낌을 배제한 채 오롯이 작품에만 몰두하여 읽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동화집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완전히 새롭다. 과연 이 이야기들이 동화라 할 수 있을까. 아이들만을 위한 이야기들이 아니다. 여느 작품들은 지극히 성인 동화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생전의 안데르센은 아이들을 위한 동화 작가로 여겨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하는데 그 의미를 어느 정도는 알 듯하다. 이번 동화집을 읽으면서 특히 좋았던 점은 원문 동화집에 실린 유명 화가들의 삽화를 함께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안데르센 동화의 전속 삽화가라 할 수 있는 천재 화가 빌헬름 페데르센을 비롯하여 로렌츠 프뢸리크, 에드먼드 뒤락, 아서 래킴, 카이 닐센 등 많은 화가들이 참여했다. 안데르센 동화를 그림으로 볼 수 있는 흔치 않는 기회가 아닐까. 동화집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든 생각은 '고전을 읽고 있구나'하는 점이었다. 물론, 고전 맞다. 그것도 보기 드문 유명한 고전 중의 고전. 하지만, 어릴 적 접했던 아이들을 위한 동화였다 보니 고전이라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색달랐다. 전에 읽었던 소설도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읽게 되면 전혀 새로운 소설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와 같이 이번에 읽게 된 <안데르센 동화집>은 완전히 새로운 동화였다. 그것도 지금의 나에게 어울리는 그런 동화. 새삼 안데르센이라는 작가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것 같다. 완역 출간된 <안데르센 동화집> 시리즈 총 7편은 소장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연령에 상관없이 모두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동화집이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라면 아이들과 함께 읽어도 좋을 듯하다. 사실 내가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도 그중 하나다. 어릴 적 재미있게 읽었던 동화를 아이와 함께 읽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줬다. 안데르센 동화에 추억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더없이 값진 선물이 될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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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시공주니어에서 안데르센의 작품 중에서 156편을 완역하여 7권의 시리즈로 소개하고 있다. 어릴적부터 안데르센의 동화를 읽어왔지만 이렇게 많은 작품이 있는줄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내가 본 책은 이 중 마지막 권인 7권이다. 사실 안데르센의 작품이 많긴 하지만 꽤 많이 읽었다고 생각하기에 이번 책에서도 몇 개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있을 줄 알았는데 오산이였다. 제목이나 내용이 번역을 하면서 상당히 의역된 부분이 있기에 낯설게 느껴질 줄 알았는데, 아예 모르고 있는 것들이였다. 인어공주, 못생긴 새끼오리-우리나라에는 미운 오리새끼로 알려져있다-, 성냥팔이 소녀, 빨간 구두, 눈의 여왕 등 많은 유명한 작품들도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왜 안데르센을 동화의 아버지라고 부르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 책을 보면서 내가 그동안 안데르센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확하게 희극이 아님을 보여주는 결말을 보면서도 왜 나는 안데르센의 동화는 모두 희극이라고 생각했을까? 너무나 아름답고 명확한 글 전개에 빠져서 그랬던 것일까? 그리고, 이솝의 글을 나이를 불문하고 시사하는 바가 있지만, 안데르센의 글은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봐야 한다는 지나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글을 보면서 이솝 못지 않게 다 큰 어른인 나도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어쩌면 지금까지 보아온 글들이 원작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많이 각색했기 때문인 영향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보건데 이번 시리즈는 완역이 아닌 직역이라고 보여진다. 어린 아이들이 보기보다는 청소년들이 보기에 무척 좋은 작품이라 생각된다. 동화의 포멧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내용들은 당시의 사회상이나 작가인 안데르센의 이상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그가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였기에 이토록 멋진 작품들이 나왔을 것이다. 이번 책에는 단 3페이지짜리 작품도 있고, 단편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긴 작품들도 있다. 이렇게 많은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지만 비슷한 포멧을 가지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도 무척 놀랍다. 다작을 발표하는 작가분들 중에는 성공적인 작품에 대한 비슷한 포멧이 상당히 많은데 모두가 다른 사람이 쓴 듯 보인다. 내가 안데르센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어서인지는 모르지만, 거의 대부분이 작품이 무척 마음에 든다. 나머지 시리즈도 천천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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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친근하게 지낸 안데르센일 것이다.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 <미운 오리 새끼>, <벌거벗은 임금님> 등. 성인이 되어서도 그 이야기와 그때 그 느낌이 또렷이 생각나는 작품들이다. 내가 어렸을 적 가장 좋아했던 작가들은 안데르센과 톨스토이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간단한 이야기로 교훈을 자꾸 주려 했던 톨스토이였던가 하면, 안데르센의 작품들은 교훈보다는 슬픈 느낌이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야 그가 사회를 지적하고 풍자를 슬픔으로 표현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본다면 안데르센의 동화들이야말로 어릴 때와 어른이 되어서 접했을 때의 차이를 느끼는 매력이 있지 않나 싶다. 시공주니어 출판사에서 안데르센의 수많은 원작들을 최대한 그대로 엮어 보았다. 엮는 것에만 멈추지 않고 원작과 동일한 삽화를 넣어 주었으며, 부록으로 각 작품들에 대한 해설까지 주는 섬세함에 감사한다. 하지만 동화로서 각색되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어릴적에 읽었던 동화들이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상당히 각색되었던 탓일까. 첫 한두 작품들을 접할때 밀려오는 어색함이 당혹스럽다. 문체? 기승전결의 부재?... 정확히 콕 집어 어떤 이유에서 어색했고 무엇때문에 집중이 힘들었는지 표현하기 어렵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부록으로 달려있는 해설에 다시 한번 감사한다. 작품을 읽고 곧바로 해설을 함께하니 안데르센의 마음까지 보이는 듯 하다. 안데르센이 살던 시대적 배경은 아마도 현대문명의 이기가 점차 사람들의 삶에 정착하던 덴마크였던 것 같다. 현대문명을 비판하지도 옹호하지도 않는 모호한 입장에서 저술한 은유적 작품들이 보인다. <거대한 바다뱀>이나 <나무의 요정 드리아스> 등. 그러고 보니 <성냥팔이 소녀>도 비슷한 맥락에서 탄생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나에게 매우 귀중하고 색다른 경험이 되었다. 비단 안데르센의 작품이어서가 아니다. 동화의 원작을 읽음으로써 어린이들이 읽는 각색된 동화와의 사이에 존재하는 매력, 어딘지 모르게 비밀스러운 곳을 보고 온 기분이랄까. 앞으로도 어른들이 볼 수 있게 나온 동화들을 찾아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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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 공주', '성냥팔이 소녀', '눈의 여왕'등 너무도 유명한 동화들을 많이 쓴 안데르센. 우리가 알고 있고,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동화중에서 안데르센의 동화는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않나 싶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던 안데르센의 동화보다 훨씬 더 많은 동화를 안데르센은 썼다고 한다. 내가 이번에 읽어보게 된 <안데르센 동화집 7>로 전22편이 수록되어 있고, 시공주니어에서 출간한 안드레센의 동화집에는 1권에서부터 7권까지 무려 157편의 동화를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와우~~ 157편의 동화라,... 정말 놀랍기만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는 그 157편 중에 몇 편 안되는 셈인것.. 암튼 안데르센이 이렇게나 많은 동화를 쓴 것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안데르센 동화집 7>을 읽어보게 되었다. <안데르센 동화집 7>에는 '나무의 요정 드리아스', '그레테 닭할머니의 가족', '엉겅퀴가 겪은 일', '좋은 생각', '행운은 한낱 나뭇조각에도', '꼬리별', '요일 이야기', '햇빛 이야기', '증조할아버지', ' 양초', '도저히 믿을 수 없는일', '온 가족이 한 말', '춤추어라, 춤추어라, 나의 인형아'!, '채소 장수 아주머니한테 물어봐요', '거대한 바다뱀', '정원사와 주인 가족', '벼룩과 교수', '요하네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 '현관 열쇠', '앉은뱅이', '치통 아줌마', '그림 없는 그림책'으로 22편의 이야기가 있다. <안데르센 동화집 7>에 있는 동화들은 '그림 없는 그림책'만 빼고는 모두 낯선 제목들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만국 박람회를 보고 나무의 요정 드리아스를 통해 화려함과 동경의 대상인 파리의 모습과 타락의 도시의 모습을 동시에 담아주기도 하고, 그레테 닭할머니의 가족은 17세기 실존 인물인 마리 그루베의 일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그려내기도 한다. 요일 이름의 어원에 대해서도 알 수 있는 '요일 이야기'에는 얼마전에 읽은 <북유럽 신화>에서 나온 신들인 '토르'와 '오딘' 그리고 '프레이야'가 화요일과 수요일, 그리고 금요일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볼 수 있었다. '벼룩과 교수'는 19세기 근대 과학 소설의 선구자인 쥘 베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요하네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와 '치통 아줌마'는 안데르센 자신을 가장 가혹하게 그린 자화상으로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33편의 짤막한 이야기로 이루어진 '그림 없는 그림책'. 이 이야기는 제목은 기억나는데 읽어보지는 않았던 듯 싶다. ^^ 그래도 내가 제목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그림 없는 그림책'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동화였을 것이다. '그림 없는 그림책'에는 안데르센의 아이들을 향한 깊은 애정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나 많은 동화를 쓴 것만 봐도 안데르센이 얼마나 아이들을 좋아했었는지도 짐작할 수 있기도하다. 달님이 말했어요. "나는 아이들을 무척 좋아해, 특히 꼬마들이 좋아, 꼬마들은 아주 재미있어. 그래서 아이들이 내가 보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를 때 커튼과 창틀 사이로 방 안을 슬쩍 들여다보곤 하지." p 390 안데르센의 동화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도 필요없으리라 본다. 아이들만이 가능할 것 같은 상상력으로 펼쳐지는 안데르센 동화. 어른의 눈으로 보면 어떻게 이런 상상을 다 할 수 있을까 싶은 이야기들... 그러나 아이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다 가능하지 않을까? ^^ <안데르센 동화집 7>의 재미있는 동화들로 아이들에게는 맘껏 펼칠 수 있는 상상의 나래를, 어른들에게는 꼭꼭 잠겨있던 상상의 시간들을 꺼내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주리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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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유명한 안데르센 의 동화를 시공주니어에서 나온 안데르센 동화집 시리즈를 통해 다시 만나 본다. 동화는 언제 어디서 누가 읽어도 좋은 이야기들이라서 더욱 더 오랜 시간 사랑받고 또 주위의 모든 것들이 이야기속 주인공이 될수 있어서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사랑을 전해주고 있는듯 하다. 그 중에서도 너무나 많은 작품들로 우리에게 사랑을 전해준 안데르센의 아름다운 작품들을 만나 보았다. 모두 일곱 권의 시리즈중에서 일곱번째 이야기 모음집을 친절한 해설과 함께 만났다. 작품을 쓰게된 배경과 그 작품속 뒷이야기들을 함께 볼수 있어서 정말 행복한 시간을 가질수 있었다. 어렸을때 보다 아이를 키우면서 더 많은 동화들을 접하게 된 나로서는 안데르센의 삶과 작품을 동시에 접할 수 있어서 너무나 재미나고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수 많은 아름다운 동화들로 아이들을 꿈꾸게 하는 안데르센의 수 많은 이야기 소재들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수 있는 기회가 된듯해서 좋았다. 현대 기술의 발달로 많은 변화가 일어나던 시기를 살았던 안데르센은 "열린 마음" 을 가지고 변화하는 많은 것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자신의 작품속 주인공 또는 작품의 소재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해저 케이블을 바닷속 커다란 뱀으로 형상화한 [거대한 바다뱀]이나, 파리 만국박람회를 소재로 만들어낸 [나무의 요정 드리아스]등에서 볼수 있듯이 현대 기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그 변화 속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나 안타까움도 여러 작품을 통해 너무나 아름답게 잘 표현하고 있다.작가로서 열린 마음을 가지고 모든 사물을 바라볼줄 알았던 정말 훌륭한 작가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마음가짐을 안데르센의 작품속에서 만날수 있었다. 안데르센은 조국 덴마크에서 보다 다른 나라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얼마나 어이없고 허탈했을까? 안데르센은 그런 자신의 심정을 훌륭한 동화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나쁜 평가만을 일삼은 평론가들을 상상력이 부족해서 작가가 될수없는 사람들이라 비꼬는 이야기 [좋은 생각]을 만들어 냈다. 그 이야기들을 쓸때 안데르센은 얼마나 통쾌했을까? 또, [정원사와 주인가족] 에서 똑 같은 소재를가지고 훌륭하게 다듬고 키워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낸 정원사를 끝까지 인정하려 들지 않는 주인 가족을 보면서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덴마크 문학계와 힘들고 외롭게 신경전을 벌였을 안데르센의 고민을 어느 정도 느낄수 있었다. 이 책속의 작품들 속에서 안데르센은 남들은 신경쓰지 않는 작은 들풀까지도 자세히 보고 사랑으로 품에 안는다. 볼품없는 작은 것들에게 사랑스럽게 새 생명을 불어 넣어 줄수있는 마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싶게 만드는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안데르센 동화집 [7]로 나의 마음에도 작은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길 바래본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사랑하며 살수 있으면 좋겠는 생각을 품게 해준 훌륭한 작품집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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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짓거나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온 사방에서 글감을 얻을 수 있어. 밭작물 속에서 꺼낼 수도 있고 흐르는 물이나 고인 물에서 건져 올릴 수도 있지. 다만 방법을 모르면, 그러니까 햇살 붙잡는 방법을 모르면 아무 소용없지. [본문 '좋은 생각' 편에서] 단언컨대 호러 소설에 스티븐 킹이 있다면, 동화에는 안데르센이 있다고 주저 없이 말하고 싶을 만큼 안데르센의 이야기는 어른이 된 지금도 나에게 많은 생각을 던져주는데요. 이 두 사람 모두 다작을 한 작가로, 그들의 아이디어의 원천은 무엇이었는지 참으로 궁금해집니다. 위에 인용한 안데르센의 이야기를 보며 그의 영감의 원천이 무엇이었을지 짐작을 조금이나마 할 수 있으려나요. '안데르센' 하면 어린 시절의 나에겐 곧 '희망'이자 '상상의 세계'로 통했습니다. 그림 형제의 동화나 이솝 우화에 비해 내러티브가 좀 더 복잡하고 극적으로 느껴졌고 해피엔딩도 적었던지라, 어른들의 표리부동이나 세상의 아이러니에 대해 서서히 알아갈 무렵이었던 7~8살 즈음의 나에게는 이솝 우화보다는 안데르센 동화가 왠지 더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엄지 공주>와 <인어 공주>, <빨간 구두>, <성냥팔이 소녀>, <백조 왕자> 등등의 동화책을 모서리가 닳도록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러다 열 살 무렵에 본 영화 '안데르센 Hans Christian Andersen'은 안데르센이라는 인물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들어주었어요. 그의 일대기를 동화처럼 각색한 이 오래된 영화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고향 오덴세를 떠난 후 코펜하겐의 감옥에 갇히게 된 순간에조차 창살 너머에 있는 소녀에게 엄지 공주 이야기를 들려줄 정도로 따뜻한 사람으로 그려져 있는데요. 영화 속에서 안데르센은 가난한 구두 수선공에서 동화 작가로 이름은 알려지게 되었지만, 짝사랑을 이루지 못한 아픈 가슴을 간직한 채 결국 코펜하겐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하지만 그 후에도 그는 언제나 주변의 아이들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꾸며 들려주며 영화가 끝이 났던 걸로 기억이 나네요. 지금 이 영화를 추억하니, 영화 마지막에 아이들에게 언제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던 그의 모습이 생각나며 왠지 모르게 가슴이 짠해짐과 동시에, 그가 희망의 끈을 항상 놓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그래서 최근에 읽은 동화집인, 시공주니어의 <안데르센 동화집> 시리즈 중 마지막 편인 <안데르센 동화집7>은 저에겐 여러모로 의미 있고 신선한 동화책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안데르센 동화를 전집으로 읽어본 적이 없는 나는 그가 쓴 200여 편의 동화 중 극히 일부만 읽은 셈이었으니까요. 더군다나 이 <안데르센 동화집> 시리즈는 안데르센이 직접 편집에 참여하고 선별해 수록한 <동화와 이야기 Eventyr og Historier>를 그대로 번역한 것인데다, 안데르센과 함께 작업한 그 당시 화가들의 그림들이 수록되어 있어 이를 감상하는 것도 아주 쏠쏠했습니다. 여태껏 제목을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없는 <안데르센 동화집7>에 수록된 여러 이야기에도, 어린 시절 안데르센과 그의 동화를 보고 느꼈던 '희망', 삶에 대한 그 희망과 생명력을 노래한 이야기들이 많았답니다. 몇 가지만 들어보자면- 정원 밖 울타리에 있으며 언젠가는 정원 안으로 들어갈 거라 기대하는 '엉겅퀴'는, 결국 마지막 꽃을 피울 때까지 그 소망이 좌절되었음에도 첫째 꽃과 막내 꽃이 울타리 안에서 지낸다면 자신은 울타리 밖에 있어도 상관없다며 삶에 대한 긍정적이고도 희망적인 자세를 버리지 않습니다('엉겅퀴가 겪은 일' 편). 그리고 시인이 되고 싶어 좋은 생각을 위한 끝없는 열망에 병까지 나버려서는 의사도 손쓸 도리가 없는 상황에서도 점쟁이 할머니를 떠올리며 삶에 대한 열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한 젊은이와('좋은 생각' 편), 비눗방울 하나하나에서 반짝이는 미래를 희망하는 사내아이의 눈망울은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꼬리별' 편). 게다가 야박한 주인 가족의 몰인정에도 굴하지 않고 나라에서 제일가는 정원사가 되길 꿈꾸는 '라르센'('정원사와 주인 가족' 편), 가난이 싫어 떠나버린 아내에게 충격을 받고 실의에 빠지지만 아내가 남기고 간 벼룩을 훈련시키며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교수('벼룩과 교수' 편)에게서도 삶을 향한 희망을 엿볼 수 있지요. 우리 주변에는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매사 불평불만에 비관적이기까지 한 재단사 '이바르 욀세'같은 사람들도 있는 반면, 이런 남편의 손이 류머티즘에 걸리더라도 언제나 자신을 믿고 종교에 의지하며 항상 밝고 명랑한 행동으로 희망을 놓지 않는 '마렌'같은 사람도 있지요('요하네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 편).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따라 각자 살아가게 되는 삶의 모습은 매우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든 희망을 잃지 않는 태도가 매우 중요한 것이고요. <안데르센 동화집7>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것은 두 가지 이야기였는데요. '꼬리별' 편과 '그림 없는 그림책' 편의 '스물여덟 번째 밤'이었답니다. 먼저 '꼬리별' 이야기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역사의 반복, 그에서 느껴지는 삶의 무상함과 동시에 매우 환상적인 이야기로 다가왔습니다. 비눗방울에 빗댄 인생의 여러 빛깔들, 사내아이는 어느새 늙은 교장 선생님이 되어 인생의 끄트머리에 서서 삶의 순간들을 뒤돌아보는 나이가 되었고, 그 옛날 미래의 비눗방울들은 추억의 비눗방울들이 되어 있지요. 그리고 어린 시절 보았던 그 꼬리별이 다시 찾아온 밤, 꼬리별이 나는 궤도보다 훨씬 넓은 공간으로 날아갑니다. 그리고 '그림 없는 그림책' 이야기의 '스물여덟 번째 밤'은 지금의 나, 혹은 지금 힘을 잃고 스러진 수많은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감정이 담겨 있어서 내 가슴에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말로 설명하기엔 이 느낌을 다 표현할 수가 없어, 직접 읽어보길 권하고 싶군요. ![]() 앞서 말한 영화 '안데르센'의 이미지와는 좀 다르게 실제의 안데르센은 말년에 덴마크에서 동상을 세울 때 아이들과 함께 있는 모습으로 세우려고 하자 거세게 반대했다고 합니다. '어린이 작가'로만 자신을 한정짓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데요. 생전에 안데르센은 "어린이들은 단지 내 이야기의 표면만 이해할 수 있을 뿐, 성숙한 어른이 되어서야 온전히 내 작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안데르센의 작품들에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일찍 여읜 후 겪었던 고통스러운 생활고와 여러 아픈 경험이 반영된 게 많았기 때문이라고 보입니다. 더군다나 안데르센의 성대한 장례식에 국왕과 왕비는 있었어도 그의 죽음을 슬퍼해줄 가족은 단 한 명도 없었던 사실이 말해주듯, 제대로 된 사랑의 결실을 한 번도 맺지 못하고 평생 독신으로 살다 세상을 떠난 안데르센의 삶이 얼마나 외로웠을지 짐작도 하기 싫군요. 어쩌면 안데르센의 말대로 그의 동화는 그저 어린이들만 읽는 게 아니라 성숙한 어른이 되어야만 알 수 있는 삶의 다양한 모습들로 가득하기에, '어른들을 위한 동화 작가'라는 수식어 역시 잘 어울리는 동화 작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 옛날 '베아트릭스 포터'의 그림 동화를 아이들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읽었듯이, 동화를 읽기 위해서는 성별이 필요 없고 나이도 의미가 없답니다. 동화의 아버지 안데르센이 들려주는 이 환상적이고 재미난 이야기의 세계로 떠나기에 늦은 시간이란 건 없듯이요! 하늘의 행렬은 이미 오래전에 그곳으로 날아갔지만, 백조는 혼자 날았어. 가슴속에 간절한 바람을 품고, 일렁이는 푸른 물 위를 홀로 날아갔어. ['그림 없는 그림책' 중 '스물여덟 번째 밤'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