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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기다릴게』는, 가정에서 이뤄진 폭력을 발단으로 십대 소년인 아들에게 대물림되는 폭력의 전이성까지 다루고 있다. 폭력의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돌아선 것이다. 화자 '제이스'가 독자들을 향해 반말투로 건네는 간결한 문체 때문인지 소설은 유쾌하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제이스가 여자친구를 향한 폭력을 가한 것으로 인해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시종일관 분노조절에 실패하면서 괴로워 한다. 중반을 넘어서면서 아빠가 행사한 상습적인 폭행이 시작된 첫 날의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한 부분을 회상할 때는 마음이 다 저려온다. 폭력의 강도가 도를 넘어서는 치명적인 상태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몸에 가해지는 상처와 고통은 두려움을 가져오고 정신적인 분열상태까지 몰고 온다. 상대방의 잘못으로 합리화해서 폭력을 일상으로 끌어들이는 가해자는 말도 안되는 핑계만 구실로 삼는다. 폭력의 고리를 끊기 위한 제이스의 처절한 노력은 결말에 이르러 승리의 V자를 떠올리게 한다.
"그 자식이 기어이 엄마를 죽인 거야?" "아냐, 아직은." -p18
..... 머릿속에 미래의 우리가 떠오른다. 난 로런의 집 문 앞에 오백 그램의 커피가루와 그녀가 좋아하는 비정제 설탕, 초콜릿을 넘치도록 채운 바구니를 가져다놓겠지. 쪽지도 남길 거야. ....... 그러다 마침내 그녀가 내 사과를 받아들이면, 난 다신 손찌검하지 않겠다고 맹세할 테고, 그녀는 한 번만 더 그러면 확 헤어질 거라고 으름장을 놓을 테지. 하지만 로런은 날 떠나지 않을 거야. -p178~179
면허를 딴 지 고작 두어 달, 제이스는 자신이 살던 시카고에서부터 크리스천 형의 주소인 앨버커키까지 열아홉 시간 거리를 쉬지 않고 운전해 왔다. 엄마에게서 받은 주소만으로 찾아낸 형은 지난 오 년 전에 가출해서 친구 부모님 도움으로 대학까지 졸업하고 병원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었다. 상황이 다른 점은, 형은 아빠를 떠난 거였고 제이스는 아빠가 내쫓았다는 것이다. 아빠는 '존 마셜 할랜'을 숭배하는 시카고 연방 대법원 최고의 청렴하기로도 유명한 판사다. 웃긴 건 형이 성을 크리스천 에머슨 '위더스푼'에서 크리스천 에머슨 '마셜'로 바꿨다는 점이다. 열여섯 살인 제이스는 금발, 곧은 콧대, 걸핏하면 노기를 띠는 눈빛까지 온통 아빠를 빼닮았다. 심지어 그토록 증오했던 '폭력성'이라는 DNA까지도. 여자친구인 '로런'이 절친 '에드워드'와의 심상치 않은 기류를 느낀 뒤 자제력을 잃고 폭력을 행사했고 현재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 폭력성이라는 전력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좋아하는 여자와 절대로 사겨서는 안 된다'고 수십번 다짐하지만 '다코타' 앞에서 번번이 무너지고 갈등한다. 하지만 이런 자신을 로런은 다시 받아주고 싶어한다. 이미 폭력과 용서라는 악순환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이다. 이렇듯 폭력이란 부모와 자식간에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물림 된다는 점에 있어 심각하다.
제이스는 형과 더불어 살면서 바로 옆집에 살고 있는 형의 여자친구인 '미리엄'이 영어 교사로 일하는 고등학교로 전학한다. 예전에 제이스의 등급은 '멋있고 똑똑한 운동선수'였고, 로런과 사귀기 시작하면서 수직상승했다. 전학 온 '랜드 오브 인챈트먼트 차터스쿨(LECS)'에서도 제이스는 축구로 입지를 다졌고 LECS의 퀸카 '케이틀린'의 추파까지 받는다. 축구 주장 '에릭'의 질투심 유발의 미끼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서점에서 크리스털 퀸을 앨버커키의 첫 기념물로 훔친 뒤 그곳에서 일하는 동갑내기 여학생 '다코타'에게 들키지만 일손이 부족한 것을 알게 된 그는, 정직과 양심을 무기로 퀸을 돌려주고 책에 대한 방대한 지식으로 채용된다. 형은 아빠로부터 흠씬 두들겨 맞는 와중에 갈비뼈가 부러졌고 그것이 폐를 찔렀으며 응급수술까지 받아야 했고, 팔뚝의 피부가 떨어져나가 타인의 피부로 이식수술까지 받았는데 이토록 응급실을 찾는 날은 너무나 자주 있었다. 형은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나갈 날을 대비해 매일 훈련을 했다. 그토록 맹렬하게 매일 달리고 또 달리면서도 매년 텔레비전으로 보스턴 대회를 지켜보는 아빠 때문에 보스턴 대회에도 나가지 않는다.
엄마의 관심사는, 온통 무엇이 아빠를 기쁘게 하고 무엇이 아빠를 화나게 하는지에만 쏠려 있다. 형은 도통 속을 드러내지 않으며 동생과 엄마를 지키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생각하고 끊임없이 자기자신을 보호하고 주변을 경계한다. 제이스와 달리 분노가 극에 달하는 정점에 이르러도 평정심을 유지할 줄 아는 침착성을 지녔다. 엄마는 하층민을 상징하는 공장 지대 출신이지만 집안에서 유일하게 대학을 다녔고, 반면 아빠 집안은 3대째 예일대 출신이다. 엄마가 하층민의 삶이 남편의 학대로 얼룩진 삶보다 낫다고 판단한 날은 딱 한 번 뿐이었다. 형이 처음으로 아빠로부터 속절없이 맞던 그날이다. 그때부터 형은 아빠의 샌드백 역할을 하기 시작했고 제이스는 보호받으며 지켜보는 방관자였다. 도망치려던 엄마는 손가락 사이에 세번의 망치질로 못이 박혔고 열두살의 형은 시멘트 바닥에 내리꽂혔다. 그리곤 한참 뒤에 그 짐승은 엄마에게 박힌 못을 빼냈고 어둠과 추위와 배고픔, 끊임없는 공포 속으로 몰아냈다. 이젠 형과 힘을 합쳐 엄마를 보호할 만큼 자랐다고 생각했다. 아빠로부터 엄마를 구원시켜야 한다고 믿었다. 엄마는 추수감사절이면 돈을 마련해서 우리에게 온다고 했다. 하지만 날짜가 임박할수록 아빠의 도화선이 매일 타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엄마가 오실 추수감사절을 위해 매일 미리엄 누나한테 칠면조 요리강습을 얼마나 열심히 받았는데.. 엄마와의 전화 통화에서 불안한 기류를 느낀 두 형제는 악의 구렁텅이에서 엄마를 구해내기 위해 먼 길을 떠난다. 엄마가 계신 시카고로...
두 형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작 엄마는 폭력에 길들여져 그곳을 가장 안전한 곳으로 여긴다. 자식들이 최후통첩을 날려도 꿈쩍할 생각도 않는다. 만성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그 통증을 당연히 여긴다고 한다. 마침내 다 나은 후에야 그 통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깨닫는다고 한다. 얼마나 답답한 노릇인가! 소설 속 가해자의 직업은 법을 명령하는 판사다. 어떤 검사도 판사를 기소하지 않을 것이 자명하며, 혹여 정의감에 불타는 변호사가 있다손 치더라도 다른 판사가 유죄 평결을 받게 내버려두진 않을 것이다. 법의 정의라는 건 수도 없이 실패를 거듭하고 있고, 법의 보호를 받는다고 해도 한계가 있고, 왜곡되고, 증거는 기각되고, 힘센 불의는 매번 승리를 거듭하고, 고로 가해자가 자유의 몸으로 걸어 나올 확률은 얼마나 높은가 말이다. 가장 편하게 위로받아야 할 따뜻한 공간이어야 할 가정이 오히려 가장 위험이 도사리는 곳으로 추락하고 있는 실정에 마음 한 켠이 아팠다. 현재 한국 사회 역시 자식을 죽음에 이르도록 때려 시체까지 방치한 사례가 연속해서 들려오고 있다. 절제력과 도덕성이 부족한 상태에서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한 인간들이 그만큼 많다는 결론이다. 자식이나 아내를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자신의 소유물로 보는 가부장적 사고가 한국 사회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아동학대와 가정폭력 등 가족해체를 예방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로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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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오로지 자신의 두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 남편의 학대를 참고 견딘다. 아들은 그럴 때마다 나서서 아빠에게 말대꾸를 하고 화를 돋운다. 오로지 엄마를 보호하기 위해서. 아빠의 화가 엄마가 아닌 자신에게 향하기를, 그래서 자신이 아빠의 손찌검과 폭력을 대신 견디기 위해서. 왜냐하면 그때 그의 나이는 고작 열한 살이었기 때문이다. 철없는 동생은 여섯 살, 자신의 키는 이제 겨우 아빠의 어깨에 닿을 정도였고, 그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것 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가정폭력에 관한 이 끔찍한 이야기가 정말 무서운 것은, 이것이 비단 허구의 이야기로만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 12년 동안 가정폭력에 시달려온 40대 여성이 남편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해 그를 살해하자, 징역 4년이 선고되었다는 기사를 봤다. 당시 그녀는 친정 집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주먹과 발로 온몸을 때리던 남편의 폭행을 견디다 못해 범행을 저질렀으나, 비록 피고인이 가정폭력에 의한 희생자라고 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이라는 가장 존귀한 가치를 침해하는 중대한 결과를 가져온 점에서 그 죄질이 무겁다며, 이는 정당방위는 물론 과잉방위로도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무려 12년 동안이나 잦은 폭행, 폭언 등 가정폭력을 당해 육체적·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아왔고, 범행 또한 우발적으로 벌어졌지만 말이다. 게다가 그녀는 장기간 지속된 가정폭력으로 인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이 무슨 개뼉다귀 뜯어먹는 소리인지. 정말 이 나라의 사법 체계는 약자를 위한 것이 아님을, 새삼스레 깨달으면서 화가 났던 기억이 난다.
친애하는 아버지. 어차피 당신도 내가 원하던 아버지는 아니에요. 그 집에서 내쫓아줘서 고마워요.
스와티 아바스티의 (무려) 데뷔작인 <엄마를 기다릴게>는 아버지의 폭력으로 얼룩진 두 형제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열여섯 소년 제이스가 오 년 동안 연락 한번 없었던 형 크리스천을 찾아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어린 자신의 기억 속에서 늘 엄마를 대신해 아버지의 폭력을 견뎌야 했던 형, 그런데 어느 날 형은 자신과 엄마를 내버려 둔 채 홀로 집을 뛰쳐 나오고 말았다. 아버지의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무기력한 엄마, 그리고 그런 폭력의 위험 속에 자신을 버려두고 혼자 달아나 버린 형. 물론 그들에겐 각자의 사정이 있다. 엄마는 자신이 남편을 떠날 경우 그가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올 거라는 걸, 그리고 자신의 두 아이들에게 그 해꼬지를 할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알았고, 형은 아버지가 동생에게만은 손찌검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기에 엄마에게 함께 도망치자고 했었지만 결국 혼자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집을 떠나왔던 그 기간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동생은 찢어진 입술에 부어 오른 턱에, 이마를 가로지른 시뻘건 상처자국을 한 채 자신을 찾아온다. 그리고 제이스는 몇 평 남짓한 형의 작은 아파트에서 새로운 학교에 다니고,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하고, 새로운 여자친구를 만나면서, 시카고의 집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행복할 수 없다. 그에게는 또 다른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외모도, 성격도 아버지를 꼭 빼 닮은 자신이 바로 그 끔찍한 폭력적인 부분 또한 고스란히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전 여자친구인 로런에게 자신도 모르게 끔찍한 폭력을 가했던 그것을 지울 수 없었던 그는, 일상에서도 불쑥불쑥 자신 안에서 마구 분출하려고 하는 그 욕망을 내리 눌러야 했다. 사실 아동학대의 피해자였던 이가 자신이 부모가 되어 다시 그 자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악순환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당사자는 그것을 범죄의 행위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 끔찍한 것인데, 극중 제이스는 좀 다르다. 그는 끊임없이 후회하고, 고민하고,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아버지가 아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노려보면서, 도대체 내가 엄마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곱씹어본다. 추수감사절에 희망을 거는 내가 잘못된 것인가? 위험을 무릅쓰고 탈출하는 것보다 그렇게 갇혀 사는 게 더 나쁘다는 것은 확실한데. 하늘에서 시커먼 구름이 서서히 걷히고 태양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나는 달리러 나간다. 지평선에 시선을 두고 나의 맥박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박자에 맞춰 주문을 외워본다. 엄마는 온다. 엄마는 반드시 온다.
형제는 다가오는 추수감사절에 그들이 있는 곳으로 오겠다는 엄마의 약속을 손꼽아 기다리지만, 엄마가 과연 아버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집을 탈출할 수 있을 지는 알 수 없다. 이들의 이야기는 가정폭력이라는 문제가 현실적으로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매우 감.성.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가정폭력이야기에 웬 감성적인 부분이냐고 의아해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왔지만 내내 아버지가 자신을 쫓아올 지도 모른다는 (실제로 찾아와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공포에 시달려야 했던 크리스천, 형이 집을 떠난 후 엄마에 대한 아빠의 폭력을 내내 견디다 결국 그에게 반항할 수밖에 없었던, 게다가 자신이 끔찍하게 생각하는 아버지의 그것을 자신 또한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괴로운 제이스, 그리고 이들 주변에서 형제에게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인 크리스천의 여자 친구 미리엄과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하는 제이스의 전 여자친구 로런과 그의 새 여자친구인 다코타. 이들 형제가 무사히 엄마를 만날 수 있을 것인지, 아빠의 폭력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날 수 있을 것인지, 제이스는 아빠를 닮은 자신의 폭력적인 성향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 이 작품은 두 형제가 스스로 일어서며 성장하는 스토리와 함께 그들 주변의 여러 인물들이 내뿜는 따뜻함이 함께 어우러져 단단한 서사를 이루고 있다. 마치 청소년 성장 드라마인 것처럼 진행되는 이야기가 어느 순간 묵직해지고, 또 어느 순간 먹먹한 감정을 선사하는 이유 또한 바로 이들 인물들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그 어떤 순간에라도 우리가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체 어떤 인간이 자신의 아들을 죽을 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폭력을 가할 수 있는 걸까. 갈비뼈가 부러져 폐를 찌르고 응급수술을 받아야 했던 아이는 아빠가 자신을 죽이겠다는 협박을 온 몸으로 느끼고는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요즘 한창 화제인 장기결석 아동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 과정에서 충격적인 사실들이 밝혀져 한 동안 떠들썩했었다. 장기결석 초등생이 아버지에게 맞아 숨진 사실이 3년여 만에 드러났고 가출신고 된 여중생이 11개월 만에 백골상태로 발견돼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또 최근에는 딸을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하고 시신을 암매장까지 한 어머니가 붙잡혔단다. 대체 이놈의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과연 이들을 사람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지 나는 알 수가 없다. 학대, 폭행 등을 당해도 신고는커녕 파악조차 쉽지 않았던 아동들에 대한 대책이 마련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정폭력은 완전히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 우리 사회의 병폐 중 하나이다. 엄마가 왜 아빠 곁을 떠나지 않는지는 틀린 질문이다. 도대체 우리 아빠는 왜 아내를 때리는 걸까? 내 의문은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아빠로부터, 나 자신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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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눈길이 창밖으로 향했다. 그때의 나는 엄마가 그저 새 동네의 풍경을 살펴보는 것인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게 아니었다. 그 때 엄마의 먼 눈길은 가질수 없는 것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팔십 제곱미터 남짓한 집 안에 갇혀 쪼그라들, 자신의 남은 삶을 내다보았던 것이다"-320
가정 폭력이 무섭다 무섭다 해도 그렇게 무서울줄 몰랐고, 이렇게 많은 곳에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제 매일 터진다 싶게 자주 등장하는 가정 폭력 소식은 정말 아무도 몰랐을까 싶을 정도로 불행을 얼굴에 보이고 있는 아이들과 함께 등장합니다. 내 주변에 있었어도 나 역시 몰랐을까 싶을 정도로 얼굴에 써있다 싶은데 다들 그 때는 그정도일줄은 몰랐다고들 하지요. 제이스네 집도 그렇습니다. 겉에서 보기엔 너무 멀쩡한 아버지, 하지만 그에게는 가족을 불안하게 만드는 주기가 있습니다. 그 주기에 이르면 사소한 트집거리가 온 집안을 발칵 뒤집어놓을수 있는 갖가지 이유가 되고, 그 때 아빠 손에 들리는 건 뭐든지 흉기가 되어 엄마를 향하게 됩니다. 그걸 떨며 지켜봐야하는 아이들에게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끔찍한 밤이 또 시작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이웃 누구도 그들의 이런 고통을 모르고 지나간다는 겁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커갑니다. 자신에게 향하지 않는 분노지만 두려워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다, 아이들은 분노가 엄마에게 향하지 않게 하는 방법을 알게되지요. 확실한 방법, 아버지에게 다른 분노의 대상을 주는 겁니다. 바로 자신을 말입니다. 그렇게 엄마에게 향하던 폭력을 조금이라도 나눠주고 싶어했던 형 크리스천이 떠나고, 남은 작은 아들 제이스가 그 역할을 대신하다 아버지에게 쫓겨나게 됩니다. 떠나지 않겠다는 엄마를 아버지와 남겨두고요.
16살 제이스가 집을 떠나며 보고싶어하던 형을 드디어 만나게 되는데요. 집을 떠난지 오래되었고, 22살의 병원 인턴이라는 직업에 애인도 있고, 독립적인 생활을 잘 하고 있는 듯 보이는 형이지만 아직 폭력의 상처가 주는 그림자가 있다는 걸 예민한 제이스는 보게 됩니다. 아버지를 많이 닮은 제이스가 폭력이 싫다면서도 분노 폭발로 폭력을 쓴다는 것보다 놀라운 건, 성인이 된 형 크리스천이 엄마가 보이지 않은 끈에 묶여있다는 걸 알면서도 강제적 집행으로 엄마를 집 밖으로 보내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폭력 상황에 놓이는 걸 너무 두려워하고 과거를 덮어두고만 싶어하는 걸 보면 어쩌면 그 역시도 폭력에 묶여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는데요. 분노를 누르려 몇 년을 노력해왔음에도 비슷한 상황에 놓이자 제이스보다도 더 극단적인 폭력에 의지하려고 했다는 걸 보면, 폭력이 주는 상처가 몇 번의 다짐이나 용기만으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분노 조절이 안 되는 자신이 너무 괴로운 16살 아이가 새로운 인생, 새로운 내가 되기를 고민하며 실수하기도 하고, 용기내기도 하며 조금씩 성장해가는 일들은 읽어가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고 크리스천도 제이스도 이제 그만 고통에서 벗어났으면 하게 됩니다. 서로 사랑하면서도 다치게 될까봐 묻어두는 비밀을 가지게 된 형제,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생겼음에도 마음을 보일 수 없는 아이들에게 소원은 남편을 선택한 어머니가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더 큰 사고가 있기전에 말입니다. 몇 번 탈출 시도를 했던 어머니가 아들들마저 떠나는데 남아있기를 선택했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아들들의 기억을 훑어 올라가며 그 안에서 보게되는 엄마의 고통은 그녀가 왜 더이상 새로운 시도를 하지 못하는지, 그냥 이대로이기만 바라는 두려움이 주는 자포자기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기도 합니다.
'엄마를 기다릴게'는 폭력이 주는 무서움이 당장의 상처보다 영혼이 망가지는데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리고 왜 우리가 가정 폭력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지도 알려줍니다. 아버지의 폭력이 결국 두 아이들의 삶에까지 좋지못한 영향을 끼치는데다, 그 영향이 주변에까지 퍼지게 된다는 걸 보면 말입니다. 이성적으로 보이고 사과가 뭔지도 아는 아버지가 시간이 지날수록 폭력이 강해지는데도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건 더 이상 그 사람의 애정이나 이성에만 호소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피해자인 아이들이 합당한 대처를 하지 못했다는 괴로움에 매사 자신을 비난하고 분노가 이유없이 누구에게나, 심지어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터지게 되고 그걸 후회하면서도 그들 안에서 끓고있다는 분노가 또 어디서 터질지 모른다는 건 폭력이란 싫어한다고 해도 옮아가는 강력한 전염성을 가진 거라는 걸 보여주니 말입니다.
이 이야기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걱정을 끝까지 하게 한다는 것 자체가 폭력의 무서움을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기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가뜩이나 분노 조절이 안되는 사회라는 말이 많은 요즘 폭력과 분노, 그 안에서도 가정 폭력이 왜 남의 집이라며 쉬쉬 하기만 해서는 안 되는 일인지, 그리고 제일 큰 피해자일수밖에 없는 아이들을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지않을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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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기다릴게/스와티 아바스티/작가정신/ 가정폭력에서 벗어나고픈 형제의 성장소설~
가정폭력이든 학교폭력이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겠지요. 특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언어폭력이나 행동폭력, 그 어떤 형태의 폭력이든 폭력은 용서할 수 없는 행위죠. 가정폭력은 세계 어느 나라든 있을 것 같기에 이런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이 착잡해집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어른학교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이 소설은 아버지의 폭력으로 힘들어 하던 아들 제이스가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독립한 형 크리스천을 찾아온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연방대법원 판사인 제이스의 아버지는 어머니에 대한 폭력으로 시작해서 큰 아들 크리스천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집니다. 아버지의 폭력으로 형은 뇌진탕이 걸리기도 하고 피부 상처가 심해서 피부이식까지 받았을 정도입니다. 병원 응급실 행은 무수히 많았기에 형은 결국 집을 뛰쳐나와 성까지 바꾸고 숨어서 살아왔어요. 동생인 제이스는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다 못해 아버지를 폭행한 뒤 형의 주소를 갖고 무작정 집을 떠납니다.
가정폭력의 피해아동들은 서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어렵겠지요. 두 형제는 서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에 형제애도 돈독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형은 갈 곳 없는 동생과 함께 살기로 하는데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행한 폭력을 보고 자란 제이스는 도벽이 생기기도 하고 거짓말과 데이트 폭력을 행하게 됩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진정어린 도움이 있다면 이런 폭력 피해 아동일지라도 평범하게 사랑하는 법을 배우겠지요. 제이스는 형과 형의 여자친구 미리엄, 아르바이트하던 서점에서 알게 된 다코타의 도움으로 망가진 몸과 마음을 추스려 형과 함께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제이스는 형의 여자친구이자 학교 교사인 미리엄의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형과의 관계도 개선하게 되고 자신의 미래를 꿈구게 됩니다. 그리고 두 형제는 엄마가 아빠에게서 탈출할 날만을 기다리게 됩니다.
가정폭력가정폭력은 예로부터 있어왔기에 세계 모든 나라의 고민거리인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은 16세 소년의 가정폭력 극복기이기에 가슴 아픕니다. 16살 성장기의 소년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롤모델이어야 했지만 그 반대로 거부의 모델이었군요. 가정폭력의 무서움을 폭로한 소설이기에 에 묵직한 울림을 주지만 문체는 재미있네요. 이 소설은 어린이와 청소년 블로거 선정 문학상, 부모선정도서 은상, 미네소타주 예술진흥위원회 선정 추천도서이기도 합니다. 수상 이력을 보니 대단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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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장기 실종아동들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집요하게 추적한 결과 2명의 아이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실태가 드러났다. 부천에서 한 명은 훼손된 시신의 모습으로, 또 한 명은 백골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을 뉴스로 접했을 때, 누구나 아찔한 기분이 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이라는 생각에 학대와 방임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서 결국 싸늘한 죽음으로 막을 내린 것을 보면서, 부모란 이름의 절대 권력자 앞에 우리의 자녀들이 소리한 번 지르고 못하고 꽃다운 나이에 저 세상으로 갔다는 사실이 같은 어른으로서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처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지 모른다. 차라리 외부에 다 알려진 폭력이라면 사람들에 의해 구조될 수 있으니 다행일테지만, 감춰진 채 폭력으로 썩어 문드러지면서도 그 굴레에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찌해야 될지 모르겠다. 이 작품에 나오는 제이스의 엄마처럼 말이다. 이 이야기는 가정폭력, 데이트 폭력이라는 이름으로 엄마가, 형이, 그리고 애인을 폭행하고 폭행당하는 고리 속에서 도피하듯 떠나게 되고, 새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는 십대 제이스의 눈을 통해 엄마, 형, 애인 등 그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내면을 시종일관 유쾌한 듯 가볍게, 그러나 묵직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16살의 제이스는 5년 전 집을 떠나버린 형을 찾아 19시간을 운전해서 찾아간다. 엄마가 넣어준 5달러짜리 지폐 몇 장과 주소 하나 딸랑 들고 국토횡단을 한 것이다. 형이 떠난 후 형의 방식으로 어머니를 폭행하는 아버지를 도발해 자신이 대신해서 맞는 것. 그러나 그날은 자신이 아버지를 때린 후 신나게 얻어터지고 내 쫓긴다. 카메라와 어머니가 준 돈과 함께. 5년 동안 자신을 찾지 않은 형은 과연 제이스에게 문을 열어줄 것인지 사뭇 긴장된다. 그렇게, 글은 시작한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이럴까? 내가 화나서 이성을 잃으면, 왜 다들 나한테 사과를 하느냔 말이다.' (p. 98) 제이스에게는 로런이라는 당차고, 원하는 것이 있다면 끈질기게 차지지하는 등 매력적인 여자 친구가 있었다. 로런이 자신의 절친 에드워드를 유혹하는 것을 알고 그녀에게까지 손찌검과 목을 조르는 등 아버지와 같은 모습을 보인다. 외적으로도 완벽하게 아버지와 닮은 모습이었던지라 제이스는 자신의 만행을 깨닫고 사과를 하지만, 어쩐지 그 사과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폭행한 후 변명처럼, 책임 전가처럼 느껴졌던 것과 다름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자신이 잘못한 일임에도 사람들은 도리어 제이스에게 사과하는 아이러니까지 발생한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형에게 어떻게 비쳐질지 몰라 진실을 밝히지도 못하는 와중에 로런에게 고소장이 날아온다. '그녀가 다시 한 번 고맙다고 말하곤 내 뺨에 입맞춤한 후 자리를 뜬다. 나는 눈을 감고 그녀의 향기를 실컷 들이마신다. 망할 놈의 입은 끝까지 꾹 다문 채로. 내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 그건 바로 좋아하는 여자와 사귀는 것이다.' (p. 165) 형과의 새로운 삶 속에서 알게 된 다코타에게 마음이 가지만, 다코타를 만나기가 두렵다. 자신이 좋아하는 그녀를 손찌검하게 될까봐, 그녀 역시 어머니처럼, 로런처럼 폭력에 물들고 그들 스스로 구출하지 못하며 주저앉을까봐. 그리고 어머니를 아버지로부터 떠나 자신들에게로 오도록 줄기차게 메일을 통해 연락하지만 추수감사절에 온다던 엄마는 감감무소식이다. 이 작품을 시작하며 의문을 품었던 것이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 왜 형은 혼자서 도망쳤던가, 그리고 두 번째, 엄마는 진작에 자녀들을 데리고 탈출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글을 끝까지 읽으며 그 이유들을 알게 되었고, 나의 좁아터진 사고의 폭에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던 점을 고백한다. 다른 사람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모두 허당이다. 우리는 폭력이 사람을 어디까지 몰고 가는지 이 작품을 통해 볼 수 있었다. 따라서 이 작품이 16세의 제이스를 통해 시종일관 가벼운 듯 청소년의 발랄한 느낌으로 끌고가고 있지만 한가지 놓을 수 없었던 감정은 바로 '불안감'이었다. 제이스가 자신이 아버지랑 같은 전철을 밟고 있어서 분노 조절에 실패해 '일을 망쳐버릴'까봐 조마조마하다. 그리고 형이나 어머니가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폭력의 수치가 어마어마한 것이라서 제이스를 대할 때나, 애인 미리엄을 대하는 것도 불안했다. "하지만 해결 안 하잖아. 그래서 우리도 엄마랑 같이 이 지옥의 굴레에 갇혀버렸어. 그동안 형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기나 해? 미리엄 누나한테 차일 뻔했는데, 왜인지 알아? 엄마한테 배운 침묵 때문이야. 따지고 보면 엄마가 형 입을 꿰매버린 거라고. 로런하고 나는 어떻고? 로런이 날 다시 받아주겠대. 날 되찾길 바라면서 지금 자기 방에 앉아 있다고. 세상에, 나도 용하지. 어떻게 그 애를 이렇게나 빨리 이 악순환 속에 자연스럽게 끌어들였을까? 때리고, 빌고, 용서하고...... 이 굴레에 그 애가 벌써 물들었어. 엄마는 로런이 그런 취급을 받아도 된다고 생각해? 이건 엄마만의 문제가 아니야." (p. 375) 이것은 언제 때릴지 혹은 맞을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형이 미리엄에게 자신의 일을 고백하지 못했던 이유, 제이스를 끌고 나오지 못했던 이유와 동일하게 작용한다. 즉,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가족의 고통까지 돌아보기엔 힘에 부치기 때문에 외면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형의 속마음이 드러나고, 자신이 맏형으로서 동생을 보호하고 어머니를 보호해야 하는 의무와 또한 보호받고 싶어 했던 그 상반된 마음 사이에서 치열히 싸우고 결국 외면의 길을 택하게 된 것이다. 엄마의 첫 탈출이 실패한 후 글로 표현하기가 겁이 날 정도의 처참한 아버지의 폭력이 뒤따랐고, 제이스의 한 마디로 엄마가 아버지 곁에 머무를 것을 약속한 것이 도화선일까. 만성화된 폭력은 만성화된 무기력을 낳게 하고 폭력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아버지를 기쁘게 하고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에만 안전하다고 느끼게 되는 지경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떠나야 된다는 마음과 별개로 이미 몸은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폭력 속에 자신을 던져버리는 제이스의 어머니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외형적인 것에서부터 내면적인 것까지 아버지와 닮았던 모든 것에서 끊어버리고 싶어 했던 제이스. 형이 할 수 있으면 나도 할 수 있다고 형의 도움아래 자신을 단련해 간다. '난 아버지가 아니야.' (p. 396) 우리나라에서도 이렇듯 드러나지 않은 폭력에 시달리며 항거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만성적인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지 생각해보면 아득하다. 정신과의사들이 분석하듯 폭력적 성향이 드러나는 사람들은 부모로부터 같은 피해를 당했던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라고 한다. 마치 유별난 시어머니를 둔 사람이 며느리를 더욱 가혹하게 대하듯 말이다. 제이스처럼, 그리고 제이스의 형 크리스천처럼 자신의 폭력성을 잠재우며 지난 과거와 작별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다. 그 사이에서 우리 사회가 어떤 식으로 개입해서 그 가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심사숙고 해봐야 할 것이다. 폭력이란, 제이스가 이야기했던 대로 엄마 한사람이 참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닌, 제2 제 3의 피해자까지 만드는 악의 뫼비우스의 띠와도 같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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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잊을만 하면 생기는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가보다.
'엄마를 기달릴게' 책의 주인공은 아버지의 폭력으로
가정폭력의 환경에서 자라 그 안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열다섯살의 소년이다.
하지만 어쩔수 없이 아버지에게 받은 유전자 때문일까
그 역시 여자친구에게 아버지와 같은 행동을 한다.
그리고 이를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 집을 나와
진작에 집을 나온 형을 찾아가고
형의 집에서 엄마도 함께 오기만을 기다리는 내용이다.
내용이 꾸밈없이 현실적인 내용을 그대로 담은 듯 해서
우리 주변에서 물론 있을법하고
우리 주변의 그들이 쉽게 털어놓지 않았던
속 이야기를 들어보는 듯 하였다.
흔히 뉴스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진작에 왜 신고하지 않았을까
왜 이혼하지 않았을까
왜 벗어나려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왜 그 끔직한 고통을 당하고만 있었는지.
이 답을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엄마는 이십오 년 동안이나 그곳에 누워 있었다.
그동안 온몸의 근육은 무뎌지고, 관절은 굳었으며, 눈도 멀었다.
이제 엄마가 볼 수 있는 것은 아빠, 그리고 스스로 집이라 부르는 좁고 답답한 공간뿐이다.
어마를 그곳에서 끌어낼 방법을 나는 모르다.
멱살을 붙잡고 사정없이 끌고 나올 수 있을지 언정, 아무것도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엄마 말대로다. 엄마 문제는 엄마 스스로 해결하도로 내버려두는 수밖에 없다.
만성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그 통증을 당연히 여긴다고 한다.
마침내 다 나은 후에야 그 통즈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이었는지 깨닫는다는 것이다."
- p412
우리 주변에 흔히 만날 수 있는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하기에
'엄마를 기다릴게'라는 책을 통해
그들의 삶을 접하고 심리를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현실문제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있게 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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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가정폭력의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관련 법안과 대책이 속속 만들어지고 있을 정도이다. 그동안은 어린이 학대의 경우 부모의 훈육이라는 이유로 공공기관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했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연일어 발생하는 문제들의 경우에는 아이들의 목숨까지 앗아간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도 충격을 선사했다.
이렇듯 부모의 자식에 대한 가정폭력은 물론, 부부 사이의 가정폭력이나 연인간에 사랑의 범주를 넘어서는 데이트폭력 또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정도로 심각한 사례들이 대중에게 알려졌을 정도이다.
케이블 방송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모 드라마의 최근 에피소드를 보면 어머니로부터 어렸을 때부터 가정폭력을 당한 아이가 연쇄살인마로 변한 사례를 이야기로 만들었는데 이처럼 어린 시절부터 가장 가까운 가족이자 보호해줘야 할 대상으로부터 폭력을 받은 경우 그 피해자가 커서 폭력의 대물림으로 폭력과 학대의 장본인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엄마를 기다릴게』는 이러한 사회문제를 전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적으로 상당히 의미있는 책인것 같다.
그렇게 형의 아파트에 살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이를 이루는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집에 두고 온 것들로 인해 그는 진정으로 새로운 삶을 살지 못한다. 더이상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아버지의 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어머니와 전 여자친구 로런을 말이다. 더욱이 제이스는 로런에게 자신이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였고 이로 부메랑이 되어 제이스에게 체포 영장으로 돌아온다.
제목처럼 제이스는 추수감사절에 형과 자신에게 오겠다는 어머니를 기다리던 중이였다. 그렇지만 아버지와 똑같은 잘못을 저지른 여전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아버지와는 다른 삶을 살기 위해서 자신의 운명에 맞서 싸우는 모습은 대견스럽다.
무책임한 방임도 학대이겠지만 이렇게 지속적인 폭력의 상태에 놓였던 제이스과 형인 크리스천이 서로 의지하고 삶을 개척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성장과정에서의 주변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부모로부터 사랑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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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살 아이가 부모에게 학대를 받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가스 배관을 타고 탈출한 사건, 다들 기억할 것이다. 나 역시 그 뉴스를 보고 경악했다. 어떻게 자기 자식에게 그럴 수가 있는지. 하지만 그것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그 소녀의 사건을 계기로 장기결석 아동에 대한 전수조사가 시작되고 더 심각한 문제들이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충격적이다.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는지 너무 화가 나고, 두려움에 떨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이 책의 주인공인 제이스도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는다. 기가 막힌 건 아버지는 판사라는 것이다. 밖에서는 존경받는 분이었지만 집에 오면 어머니를 때리는 괴물이 됐다. 어머니를 때리던 아버지는 그걸 말리던 제이스까지 때렸고 집에서 쫓아냈다. 갈 곳 없던 제이스는 몇 년 전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가출한 형을 떠올린다. 형에게 가면 형이 함께 지낼 수 있을까. 엄마는 어쩌지. 엄마를 지켜야 하는데. 읽으면서 너무 슬펐다. 엄마를 향한 아빠의 폭력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힘없는 어린 아이들, 점점 자라서는 엄마 대신 자신들이 맞는 것으로 엄마를 지켜주려 했던 아이들, 그리고 아직 그 집 안에 혼자 남겨진 엄마.
다행히도 제이스는 형과 함께 지낼 수 있게 된다. 가정 폭력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형과 동생을 보면 알 수 있다. 형은 너무 큰 상처를 받아 마음의 문을 닫고 속을 내보이지 않는다. 심각한 폭력으로 수술까지 했다. 잊기 위해 달리고 마라톤 대회에 나갈 훈련도 하지만 텔레비전으로 마라톤 대회를 지켜보는 아빠 때문에 대회에 나가진 않는다. 동생은 죽을 만큼 싫어하던 아버지의 폭력을 닮은 것 같은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한다. 자신도 모르게 전 여자 친구에게 폭력을 가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제이스를 계속 괴롭혔다. 폭력이 대물림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에게 폭력을 가하던 아버지를 자신도 닮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두려워하는 제이스.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제이스. 그리고 추수감사절이면 돈을 마련해 형제에게 오겠다는 엄마를 기다리는 형제. 하지만 불안한 상황.
읽으면서 아버지의 이중적인 모습에 치가 떨렸고, 엄마와 아이들의 모습에 가슴이 너무 아팠다. 가정 폭력을 가족 내에서 해결해야 할 내부적인 일이라고 방치해서는 안 된다. 피해자는 처음에는 지금 가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지만 두려움에 떨고 있고, 폭력이 반복될수록 타성에 젖어 판단력이 흐려지기 쉽다고 한다. 자신만 참으면 안전할 거라는 생각. 너무 답답하지만 그 상황에 노출되어 보지 않은 사람은 그저 왜 도망치지 않느냐고 답답하다고 쉽게 말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쉬쉬해서는 안 될 일이다. 피해자들의 삶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 잘못 없는 아이들의 인생이 위태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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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의 아동 학대 현실 몇해전부터 어린이집 원아 폭행사건이 시끄럽더니 요즘의 이슈는 부모에 의한 학대가 이슈다. 10여년 전에는 학교폭력에 대한 이슈로 시끄러웠는데 더욱 문제인 사회의 근원적 요소로 찾아 들어가며 좀더 자극적인 소재를 찾아 더 어리고 더 충격적인 소재를 다루는 것 같은 느낌은 씁쓸함이다. 이슈거리일지언정 분명 가족과 지인에 의한 우리 아동들의 학대는 방관할 수 없는 문제이다. 하지만 학교폭력을 비롯한 원내 폭행과 가족의 학대는 어제 오늘 일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현대사회로 전통적 가정의 기능을 대신하며 생겨나게 된 사회적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 역시 사회구조적으로 생겨난 문제인만큼 사회구조적으로 풀어나가야 하는 답답함이 있다. 내 자식을 내가 때린다는 소유의식에서 빚어지는 학대는 결국 이 부모에 대한 제동을 걸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은 국가 밖에 없다. 자기 아이의 머리 위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부모를 누가 막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보다 더 앞서나가고 있는 복지사회 또는 현대사회의 국가들을 보면 이러한 제도가 명확하게 되어 있다. 사회복지사들은 부모 자격이 없는 판단을 내리고 그들의 집에서 아이를 구출하기도 하고 법원은 자신의 아동을 학대한 가정의 부모에게 10년이 넘는 형벌을 메기는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댄다. 이들이 이러한 법이 존재하기 까지는 이러한 일의 많은 시행착오가 생기고 법이 점점무거워진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국가들의 뒤를 따라가는 만큼 그러한 과정의 과도기에 있는 것 같다. '엄마를 기다릴게'에서 보여주는 아동학대 현실의 한계 스와티 아바스티 작가의 엄마를 기다릴게에서는 판사라는 권력과 힘을 가진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하는 엄마와 형제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형제들은 자립할 나이가 되어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고 빠져나오지만 어머니는 나오기가 힘들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구조이다. 경제력 없는 가정 주부가 20년,30년 살아온 남편의 그늘을 벗어 날 수 있을까? 책에서는 안타깝게도 사회구조적인 문제제기에 대한 솔루션을 제시해주지는 않고 있다. 학대당하는 형제의 입장에서서 학대당한 경험을 성장으로 치유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어 학대의 근본적인 사슬에 대한 탈출은 다뤄지지 않고 있는 부분이다. 또 그게 우리내의 현실이란 점에서 가슴이 아프다. 현실이 명확히 해답을 내리고 치료를 할 수 없는 것처럼 책에서 역시 현실의 막막함을 따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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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학대받는 아동들의 죽음에 대한 경악할만한 사건들이 연이어 보도되고 있다. 정말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자기자식을 그렇게 죽이고 방치할수 있는지, 보호받아야 할 사람으로부터 버림받는것도 부족해 학대받으며 공포속에 살아야 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이 책의 주인공도 그렇다. 이 책이 아버지로 부터의 학대를 참다못해 도망친 소년의 성장소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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