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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동료와 충돌이 잦았다. 그러다 내 입에서 불쑥 '아주머니'라는 말이 튀어나왔는데, 그 동료 분이 갑자기 폭발할 듯 화를 내시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 좋은 동료분들은 반쯤 농담삼아 '아주머니니까 아주머니라고 하지.'라고 했지만 나는 얼른 사과했다. 인격에 모독을 줄 의도는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속으론 굉장히 부끄러웠다. 노동운동과 친하진 않았지만 그들을 아주머니라 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면서도 내가 그들을 하대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대학을 나왔는데도 나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었다. 인권 책을 그렇게 많이 읽었는데도 나는 사람을 여전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이후로 변할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요새 과하게 성공적인지 나를 내려다보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졌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높은 자리에서 뽐내고 서 있다가 언젠가 그런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보단, 죄책감을 느끼는 것보단 백배 낫다. 아주머니란 단어는 아직도 나한테 그런 의미이다.
![]() 내가 20일날 이어폰 사가는 거 까먹으면 인간 말고 개 하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했었다. 동료 직원의 질문은 그냥 얼버무렸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시간단축 되는 거야 덕질할 시간이 많아지니 그냥 그렇다고 친다. 그러나 해고라. 임금 오르는 그딴 걸로 직원들 목을 치는 직장이면 그냥 서점 직원이고 뭐고 안 할 거다. 솔직히 음식점 서빙 알바해도 이거보단 더 많이 번다.
왜 이렇게 이인휘 씨의 소설이 끌리는가, 난데없이 전권 돌파를 하기 시작했는가에 대해선 알 수 없다. 다른 작가와는 달리 직접 만나서 그러는가?라는 질문을 나에게 던져보지만 따져보면 천명관과의 만남이 나에겐 좀 더 인상깊고 친숙했다. 외모 탓인가?에서도 역시 마찬가지고(...) 책을 별로 보지 않는다는 사실도 만나고나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저 그 분의 책 한 권을 처음 보고 끌렸다고 할 수 있다. 그의 글은 겉으로 보기엔 단순하지만 퍽 깊고 순수한 면이 있다. 사인회를 하거나 강의를 하는 기존 소설가들에게선 이미 느낄 수 없는 친근감이다. 복잡하진 않지만 알 수 없는 몰입도가 있다는 그 자체에서 깊은 맛이 우러난다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 까마귀는 카라스라 한다. 烏(カラス) 새는 토리라고 한다. 鳥(とり) 왜 한 획이 부족하냐면 중국인들이 새라는 상형문자에서 눈을 뺐기 때문이다. 고대어를 일본 사람들이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에 히라가나가 아니라 일부러 가타카나로 부른다. 온 몸이 검은 까마귀는 눈까지 검기 때문에 옛날 사람들은 눈이 없는 새로 친다고 했다. 이는 맹인을 연상시키는데, 그들은 일본에선 악사로 활약하기도 했다. 농경 신화에서는 날개가 여덞개 달리지 않았나 추정되는 야타카라스가 난폭한 신들을 피하면서 천황을 천혜의 땅으로 인도해 주었다고 한다. 고구려에서도 삼족오는 까마귀가 아닌가 해석된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까마귀라 하여 그닥 불길한 새는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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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탐독 단상 –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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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를 보다 / 이인휘
“알 수 없어요”
“생존만을 위해 사는 삶은 처참한 삶이라고 말했습니다. 잘사는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난한 자들의
공격을 받고 재앙을 얻게 될 거라고도 말했습니다.” (책, 47쪽)
길을 가다
길에게 묻지 말고
길을 가다
길이 되어라
길을 가다
길이 길이고 길이 아니니
길은 무엇이고
길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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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의 불빛”
“어둠이 슬픔을 머금고 짙어질수록 공장의 불빛은 눈부시게 빛납니다.
겨울바람도 더욱 차고 거세게 유리창을 흔들어댑니다. 며칠 지나면 2014년
달력도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공장이 많이 달라졌다는 사람도 있지만
수도권 변두리에 있는 작은 공장들은 더 나빠진 듯합니다.” (책, 118쪽)
노동자의 삶은 고문이고
숨 쉬는 매 순간이 지옥이네
하루를 일하지 않으면
하루를 살 수 없다네
10시간 노동으로 150만 원 벌어서
아픈 아내 병원비 대네
이 지옥 불 철철 끓어 넘치는데
노동의 가슴은 시베리아 벌판이구나
자본가의 서릿발 쓴웃음 지으며
못 배우고 나이 먹은 할아범 닦달하네
늙어빠진 할멈 등에 올라타
눈먼 폭력의 자본 앞잡이 되는구나
. .
“시인 강이산”
“잎도 꽃도 남김없이 지워버린 뒤
눈도 그쳐 허름한
늙은 산
나무들 이름도 꽃 모양도 잊어버린 산
그 산길 외진 바위 곁 잔설 위에서
얼어가는 깃털 하나를 보았다
아, 새였던가
(책, 130쪽 늙은 산)
한숨 지고
걷는 곳, 숨이 이어져
두 숨 지고
걷고 걷는 곳, 숨이 이어져
한숨만이 절로 피네
절망의 늪에 핀
자유의 열망 밀알이 되어
노동의 나라가 되네
. . .
“그 여자의 세상”
“최승주는 아내의 유해 반을 집 뒤 은행나무 밑에 묻고 나머지 반은
붉은빛이 감도는 달빛 흐르는 남한강 강물 위에 흘려보냈다. 그녀는
갔지만 그녀의 체취는 집 안 구석구석에 배어 슬프게 반짝거렸다.
그는 생전에 더 많이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두문불출하고 술만 마셨다.
날이 추워지면서 강물은 더 푸르러졌다. 산속의 나무들도 헐벗은 몸을
차갑게 드러내며 얼어붙고 있었다. 꽃도 나무 이름을 잃어버린 채
순식간에 산이 늙어가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부유면 하늘 위를 맴돌던
길잃은 흰 새 한 마리가 그 산으로 날아가 자취를 감춰버렸다.
(책, 265쪽)
선과 악이 하나의 몸일까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의 차이
삶과 죽음은 존재의 강물에 놓인
실존의 웃음일까
이 순간, 이 찰나의 번뇌
사랑하는 것은
나의 전 존재를 주는 것
숨 한 조각 쉴 때
거추장스러운 이념의 자본으로부터 해방하라
숨 한 조각 남아있을 때
사랑이라는 이름 앞에 순결하라
나, 그대
사랑한다 말하라
. . . .
“폐허를 보다”
“굴뚝 밑에서 일제히 비명이 터져 올라오지만 들리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려고 기를 쓸수록 울타리는 더욱 좁아져 그녀의 숨통을 틀어막았다.
노동으로 한평생 길들여진
노동의 생사고락을 걷노라니
삶은 없고 노동자만 남아서
자나 깨나 질곡의 사슬만 짜고 있네
노동으로 태어나 노동자로 살다
노동의 생사고락 끝낼 때
죽음은 없고 노동자만 남아서
자나 깨나 자유의 사슬만 짜고 있네
노동으로 이 삶 걸어가노니
노동의 자유는 어디에 있는가
자유와 노동은 동행하는지
자나 깨나 노동자의 세상을 찾아가네
. . . . .
이인휘 작가의 두번째 노동소설을 읽어 내며 가슴 한구석
서늘한 양심이 싹을 튀우며 나로부터의 혁명을 주문한다.
늦게나마 그를 알게 되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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