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3)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9.0
  • 50대 9.0
리뷰 총점 종이책
앤 시리즈로서의 매력 말고도...
"앤 시리즈로서의 매력 말고도..." 내용보기
앤 시리즈의 특징 중 하나는 세월이 갈수록 앤 보다는 그 주변에 포커스가 맞춰진다는 점이지만, 이번 편에 오면 이제 앤은 막내딸 릴러(사실 저는 "리러"라는 표기가 더 익숙하지만요)에게 주인공 자리를 넘겨줍니다. 열 여섯의 릴러는 앤과 마찬가지로 사랑하고, 느끼고, 배우고, 상처받기도 하고, 또 그 상처를 스스로 이겨내면서 점차 어엿한 여성으로 자라나고, 앤은 너그러운 어머
"앤 시리즈로서의 매력 말고도..." 내용보기
앤 시리즈의 특징 중 하나는 세월이 갈수록 앤 보다는 그 주변에 포커스가 맞춰진다는 점이지만, 이번 편에 오면 이제 앤은 막내딸 릴러(사실 저는 "리러"라는 표기가 더 익숙하지만요)에게 주인공 자리를 넘겨줍니다. 열 여섯의 릴러는 앤과 마찬가지로 사랑하고, 느끼고, 배우고, 상처받기도 하고, 또 그 상처를 스스로 이겨내면서 점차 어엿한 여성으로 자라나고, 앤은 너그러운 어머니로 그 모습을 지켜보지요. 우리가 늘 사랑해왔던 앤과 그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시리즈로서의 매력도 여전히 살아있지만, 사실 이번 편의 가치는 어찌 보면 생생한 전쟁소설이라는 점입니다. 총알이 오고 가는 실제 전쟁터에서의 전쟁이 아니라, 사랑하는 남편을, 아들을, 오빠를 전쟁터에 내보내고 뒤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전쟁을 어떻게 겪어내는가 하는 이야기지요. 책의 배경은 여전히 평화로운 프린스 에드워드 섬이지만, 역사책에서 읽는 1차 대전만큼이나 이 책에서 느껴지는 1차 대전도 피부에 와닿습니다. 1차 대전의 역사적 의미나 영향을 이야기하기 전에, 당시의 보통사람들에게 그 전쟁이 어떤 의미였나를 이 책은 앤 시리즈다운 시각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수십번을 읽어도 월터의 죽음은 두고두고 마음이 아프고 슬프더군요. 사실 이 앤 시리즈는 제 소녀시절을 지배한 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너무 여러번 읽어서 자연스럽게 내용을 다 외어 버렸고 원전을 읽어도 한국어 번역이 자연스럽게 떠올라버려서 영어 독해에는 도움이 별로 안 될 정도니까요. 제가 알기로는 동서문화사에서 80년대에 완역본이 이미 나왔었는데(박순녀씨 번역의 12권짜리 흰색 양장본입니다. 최근까지도 시중에서 구할 수 있었지요) 이번 번역판이 최초 국내 완역이라고 선전하는 이유는 상당히 궁금하군요.
YES마니아 : 플래티넘 a*****a 2003.02.06.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샤갈 그림과 함께 보는 앤의 마지막 권 이야기
"샤갈 그림과 함께 보는 앤의 마지막 권 이야기" 내용보기
동서문화사 앤 시리즈 8권이자 앤 이야기로서는 마지막 이야기 <아들들 딸들>은 앤의 막내 딸 릴러가 중심 화자로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30여년 전 창조사에서 나온 10권 '앤의 딸 리라'의 제목으로 익숙한 나에겐 책 속에서 번역된 릴러라는 이름이 아직 익숙지 않다. 그래서 염치 불구하고 여기서 계속 리라라고 쓰기로 한다. 리라라는 이름에서 일본 느낌이 강하고 개인적으로 일본
"샤갈 그림과 함께 보는 앤의 마지막 권 이야기" 내용보기

동서문화사 앤 시리즈 8권이자 앤 이야기로서는 마지막 이야기 <아들들 딸들>은 앤의 막내 딸 릴러가 중심 화자로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30여년 전 창조사에서 나온 10권 '앤의 딸 리라'의 제목으로 익숙한 나에겐 책 속에서 번역된 릴러라는 이름이 아직 익숙지 않다. 그래서 염치 불구하고 여기서 계속 리라라고 쓰기로 한다. 리라라는 이름에서 일본 느낌이 강하고 개인적으로 일본인에게 국가적 자존심을 훼손당하는 큰 모멸을 겪었고 심지어 한국도 요즘 일본과 갈등상황이긴 하지만, 이 책을 번역한 일본 번역가는 반 군국주의 행동을 하셨던 아주 훌륭한 여성 분이셨기에, 이분의 번역으로 신지식 선생님이 '달아주신' 이름으로 아직은 쓰고자 한다. 이 번역에서 리라가 아끼고 사랑했던 둘째 오빠 월터를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라고 불러주었다. 이 책에서 들은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라는 말은 평생 내 귀에 흐르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되었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Rilla of Ingleside이다. 우리가 읽고 있는 책은, 미국 출판사에서 오래전 개인적이라거나 복음적이라거나 독일에 대한 비난이 너무 강하다고 판단해 편집하고 삭제한 책의 번역 책이다. 삭제되었던 그 상당한 분량은 앤의 100년 열기에 힘입어 2010년 겨우 복구될 수 있었는데, 삭제된 분량이 상당히 인간적이고 재미있다. 앤의 아이들 중에 가장 잘생긴 월터의 미모에 대한 사심 가득한 묘사도 복구된 분량 중 포함되어 있다. 새로운 완역판으로 출판되었기에 우리나라에선 아직 그 완역판을 읽을 기회가 없다. 몽고메리 여사는 원래 이 책 제목에 월터와 곧 그녀의 연인이 될 켄이 리라를 부르는 애칭 Rilla-my-Rilla를 제목으로 붙이고 싶어했는데 출판사에서 위의 제목으로 못박았다고 한다. 

 

초록 지붕집의 앤 이야기에서부터 앤의 아이들이 천진난만한 어린 시절을 보내는 무지개 골짜기 이야기까지 주민들이 모두 밝고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던 캐나다 동쪽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 어느 날 사라예보에서 일어난 암살사건이 전해지고, 긴장이 고조된 유럽에서부터 점점 전쟁의 그림자가 밀려든다. 이 책의 이야기는 지역 신문이 한 모퉁이에 사라예보에서 일어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 암살사건을 보도하던 그날로부터 시작한다. 그때만 해도, 신문에 조그만 활자로 적혀진 그 낯선 도시에서 일어난 일이 어떤 대혼란을 가지고 올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항상 유쾌한 마인드에 학업과 가사엔 담 쌓고 살며 늘 허영심에 들떠 있는 앤의 막내 딸 리라는 그녀의 첫 댄스파티가 될 파티에 대한 생각이 인생의 전부일 정도로 첫 파티에 가슴을 설레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가 기대 반, 불안 반으로 첫 댄스파티에 '입성'한 날, 달밤의 등대 아래 젊은이들이 흥겹게 시간을 보내는 댄스파티 장으로 영국이 선전포고했다는 소식이 찾아든다. 마을 분위기는 그날로부터 완전히 달라졌고, 바로 어제까지의 세상은 이제 그들에게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the old world가 되었다.

 

이 책은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서 소박한 일상을 보냈던 가족들이 당시 전무후무했던 전쟁을 만나 그 시절을 어떻게 견디고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었는지 피부로 와닿게 보여준다. 18세가 넘는 아들들은 너도나도 입대했고, 아들들을 입대열차에 실어 보낸 가족들은 내심 그런 용기 있는 아들들, 형제들을 가진 프라이드를 느꼈지만 그 대가로 매일이 기다림과 불안의 연속이고, 신문이나 전화가 올 때마다 바짝 가슴을 졸이는 기약 없는 세월을 보내야 했다. 일부는 가족을 잃는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아들만 셋, 심지어 앞으로 4년을 끌게 될 전쟁이 발발할 당시 벌써 두 아들이 징집연령에 포함되었던 앤은 이 전쟁이 더욱 더 뼈저리게 다가온 고통이 되었다. 진취적인 첫째 아들 젬은 목사관의 첫째 아들이자 항상 의기투합했던 오랜 소꿉친구 제리와 함께 전쟁 발발과 동시에 입대를 했고, 이지적인 쌍둥이 자매 낸과 다이는 목사관의 아름답고 용감한 첫째 딸 페이스와 함께 대학에서 간호사로 지원한다. 막내 딸 리라는 어머니의 제안을 따라 적십자 소녀단을 구성하는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구호자금을 모금하러 가가호호 방문하던 중 판잣집에서 전쟁 고아를 발견하여, 내키지는 않지만 의무감 때문에 직접 아이를 거두어 키우게 된다. 전쟁은 주민들의 일상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는다. 거리를 두고 지냈던 이웃이 전쟁을 통해 자존심을 내려놓고 일심으로 합하기도 하고, 또 전쟁에 임하는 생각이 다르다고 서로 적이 되기도 한다. 

 

앤 시리즈에는 몽고메리 여사가 추구했던 공동체의 삶이 잘 드러나 있는데, 이 마지막 권만큼 그 공동체의 삶이 서로 퍼즐처럼 끼워맞춰지며 한 실체로 닿아오는 장이 없다. 그들은 소심하고 불안해 하고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전쟁을 맞아 각자 이전과는 다른 모습, 작은 영웅의 모습을 보여, 각자의 슬픔과 불안을 감추고 서로를 다독이고 견인하기 위해 노력했다.

 

몽고메리 여사의 책이 주는 묘미는 단어의 마법과 등장인물들이 서로 주고받는 긴 대사에서 찾을 수 있다. 직접 책을 읽어보면 주옥같은 대사가 각 등장인물들에게 스며들어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개인적으로는 실제 1차 대전을 겪었던 몽고메리 여사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듯한 잉글사이드 저택의 집사 수잔과 비관적인 말을 쏟아내는 리라의 가정교사 거트루드 양, 그리고 온유하지만 강단있는 메레디스 목사가 마음에 와닿았다. 특히 거트루드 양의 대사는 그 의미와 여운이 매우 깊어서 이 책을 고전문학의 경지로 끌어올리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메레디스 목사가 재혼한 부인과 얻은 아들 이야기에서도 상당히 인상적인 말이 있었다. 인상적이기로는 동물 친구들도 빼놓을 수 없는데 젬의 충직한 도그 먼데이와 성격이 양극이라 늘 수잔의 분개를 사는 리라의 고양이 지킬 앤 하이드가 그들이다. 특히 젬이 입대열차를 타고 떠난 기차역에서 4년을 내리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린 도그 먼데이는 동물임에도 비장한 감동을 안긴다. 월요일에 잉글사이드 저택에 나타나 이름이 먼데이가 된 도그 먼데이는 외양은 아주 불쌍할 정도로 볼품 없기 짝이 없다고 묘사되었어도 그 충직성과 따뜻한 마음은 누구보다도 아름다웠다. 

 

이 소설엔 슬픔과 아름다움의 감정이 전면에 드러난다. 특히 이 소설을 더 없이 아름답게 느끼도록 만드는 부분을 말하라면, 아무래도 리라의 둘째 오빠, 시인을 꿈꾸었던 월터가 나오는 장면들이 꼽히지 않을까 한다. 전쟁을 바라보는 월터의 시선, 그 실질적 공포와 참혹함을 누구보다도 그의 '뛰어난' 감수성으로 느끼고 파악하는 월터의 번뇌는, 다니고 있던 대학에서 겁장이의 상징인 하얀 깃털을 익명의 편지로 전달받은 모욕을 겪으면서도 그저 괴로움과 그가 생각하는 무기력 속에 잠겨 있다가 이듬해 루시타니아 호 침몰 사건으로 겨우 시대의 부름에 응할 수 있는 동기를 발견하고 입대하는 데에서 전환점을 맞는다. 그의 상상력이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던 신체적 고통, 반 박애주의적 행위에 대한 공포에 압도되었던 입대 전과는 달리, 전쟁터에서 월터는 (켄을 비롯해 그의 동료 대학생들이 장교로 지원하는 것과는 달리 그는 병사로 지원하여) 그 누구보다도 용감하게 군인생활을 하여 훈장을 받는다. 그리고 전장터의 한가운데에서 쓴 시 <The Piper>가 런던 신문에 실려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입대한지 1년 후 이 전쟁 중 가장 참혹했다고 기록되는 프랑스 솜 전투에 투입되어 Courcelette에서 즉사한다. 월터가 전사한 지 한 달 후 셋째이자 막내 아들 셜리가 18세 생일을 맞는다. 둘째 아들의 죽음으로 깊은 상심에 빠진 어머니 앤에게 그는 묵묵히 공군으로 입대하겠다고 말하며 허락을 구한다.

 

1921년에 출간된 이 책을 읽다보면 이 책을 관통하는 슬픔을 주목하게 되는데, 그건 전쟁이 드리운 슬픔이기도 하지만, 작가 개인적인 슬픔, 평생 소울메이트로 지냈던 사촌친구 프리데리케를 잃은 슬픔이 좀 더 실제적으로 소설 전체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다. 이 책이 1차 대전을 다이어리 식으로 충실하게 기록했고 1919년 초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플루엔자의 발병사실이 빠져 있는데, 실제 무지개 골짜기를 출간하고 이 책의 집필을 시작한 1919년, 전쟁 후 귀향하던 병사들로부터 인플루엔자가 캐나다에 들어와 유행하게 되었다. 그래서 전쟁 직후 섬에서도 여럿이 그 인플루엔자에 걸려 사망했는데 그 중 여사의 평생 친구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겪게 된 이 지극한 상실감이 소설을 가로지르는 짙은 슬픔으로 배여나오게 되었다. 그 슬픔이 특히 리라가 가장 사랑했던 오빠 월터의 죽음에 너무도 잘 투영되어 있는 것 같다. 승화된 슬픔이라 한층 더 깊게 느껴지는 슬픔이다. 이 책에서 월터의 죽음이 상당한 분깃점으로 작용하여, 그 챕터를 기준으로 비포어 에프터가 나뉘는 듯한 인상을 받게 한다.

 

입대는 1년 남짓 늦었어도 결국 마을 청년들 중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소수의 젊은이 속에 속하게 되어버리고 만 월터였는데, 그 한치 앞을 못 보고, 사람들은 그가 겁장이라고, 비겁한 사람이라고, 그를 비난하는 실수를 했다. 대개 이런 비난과 질책의 감정은 자신의 가족을 전장터로 보낸 사람들이 표현하곤 했다. 그는 그 비난과 질책을 아무 말 없이 자기 것으로 흡수했다. 그러나 그는 사실 겁장이가 아니라 신중한 사람이었다. 그는 주류의 흐름에 맹목적으로 휩쓸리지 않고, 그 시류에 개인적으로 내리는 판단과 그가 그 일원으로 느끼는 감정과 그가 믿고 있는 인류애와 도덕에 먼저 정직하려 했을 뿐이다. 하지만 자신의 도덕률과 감정 때문에 시대의 부름을 거부하는 것은 그에게 더 괴로운 일이었다. 인류애와 애국심 중 양자택일. 월터는 애국심이라는 선택지에서 인류애를 수호하는 희망을 발견하고 나서야 겨우 입대를 결심하게 된다. 그는 무인지대에서 부상당한 동료병사를 구출해 훈장을 받는다. 결국 인간적으로 멋지게 명예회복은 했지만, 그 반전이 항상 월터가 사는 인생의 패턴이었지만, 중요한 건 그가 죽었다는 것이다. 다시는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할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But tonight somehow, all the beautiful things I have always seem to have become possible again and this is good, and makes me feel a deep, certain, exquisite happiness.”


   “I’ll never write the poems I once dreamed of writing. But I’ve helped to make Canada safe for the poets of the future, for the workers of the future-ay, and the dreamers, too.- the future, not of Canada only but of the World.”

   “When the ‘red rain’ of Langemarck and Verdun shall have brought forth a golden harvest a generation later, when the seed sown now shall have had time to germinate and grow.”


 

   “I will keep faith, Walter, I will work and teach and learn and laugh, yes, I will even laugh through all my years, because of you and because of what you gave when you followed the call.”

 

   Una took the letter and when Rilla had gone she pressed it against her lonely lips. Una knew that love would never come into her life now - it was buried forever under the blood-stained soil, ‘Somewhere in France’. No one would ever know it.

 

 

<Chapter XXIII And so, good night!>

 

 

이 죽음의 장을 보고, 그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을 정도로, 그 여운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 죽음과 함께 다시는 메워지지 않을 구멍이 뚫려버린 기분이랄까. 월터가 등장하거나 회고되는 장면마다 감성의 편린들이 가슴에 좌표를 찍는다. 소설은 그 표들을 이어, 잡힐 것 같으면서도 잡히지 않는 장막을 그 위로 드리운다. 이 책을 만난 것으로 이 인생에서 만날 수 있는 아름다움은 다 맛본 것 같았다. 이 책은 개인적으로 문학작품 중 인생의 책으로 생각하는 작품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시간으로 진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고 그 돌아오지 못할 것을 향한 그리움으로 긴 여운을 남긴다.  

 

이 책 뒤표지에는 샤갈의 그림이 나와 있다. 표지 디자이너가 제대로 맞혔다고 생각했다가 번짓수를 잘못 찾은 걸 보고 약간 김이 샜다. 샤갈이 그린 그림을 실은 건 좋았는데, 샤갈의 '하얀 십자가'를 여기다 실었어야지요. 물론 이 아름다운 이야기와 더불어 샤갈의 그림을 보는 것만도 사실 무척 감사하긴 하다. 월터를 통해 암시하는 주제 '피리 부는 사나이'와 '하얀 십자가'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그 발견을 권하고픈 주제로, 사람의 몽상과 인간의 의무를 아우르는 이상과 현실의 이야기를 감동스럽게 선사한다.

 

 

 

이 책은 Yes24 중고서점(강남역점)에서 구입하였다.

  

 

 

   그가 화제를 돌리더니 그녀에게 지금 시간이 있냐고 물었다. 시간이 충분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없다고도 말할 수 없어 그녀가 주저하자 그가 그녀에게 Courcelette에 같이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참전비만 덩그러니 서 있다는 그 벌판에 가보고 싶어요.”
   “당신 아직도 그 책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마리옹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럼 당신은 아니에요?”
   그가 반문했다.
   마리옹의 차가 근처에 주차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녀의 차로 움직이기로 하고 그쪽으로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도중에 꽃집이 보이자 그가 꽃을 한 송이 사가지고 가자고 제안했다. 그들은 함께 백장미 한 송이를 골랐다.

   “아프리카에 가서 당신의 사촌한테도 이 책을 소개했나요?”
   참전비가 세워진 공원 앞에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나오며 그녀가 물었다.
   “아니요.”
   “사실 남에게 적극 추천할 책은 아니죠.”
   차를 열쇠로 잠그고 돌아서며 그녀가 말했다.
   “이 책에 다른 추억을 끼워 넣고 싶지 않더군요.”
   그가 대꾸하고, 그녀 옆으로 다가왔다.
   “그보단 남에게 그 책을 권하기가 창피한 것 아니었어요?”
   “그 책은 창피함과는 거리가 멀어요, 차라리 그 반대라면 모를까.”
   “바로 그 점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조롱할 수 있지 않나요. 인물들이 완벽하잖아요. 그런 인물과, 그런 살가운 공동체의 생활을 우리가 사는 세계 어디서 발견하겠어요? 게다가 정신도 매우 도덕적이잖아요. 그 시절에도 사람들이 무지개 골짜기 이야기는 비현실적으로 느꼈을 것 같은데요. 게다가 특히 잘생긴 인물에게 작가가 특별히 멋진 이야기를 부여하잖아요?”
   “그래요, 작가의 사심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긴 하더군요. 현실적 비판을 사람들이 할 수도 있을 것 같고.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이 책이 품은 고결함을 끌어내릴 순 없어요. 이 책은 외부의 지적에 상관없이 그 자체의 빛으로 존재해요. 그래서 타인에게 직접 이 책을 소개하기보다는 이 책을 직접 발견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요. 1차 세계대전의 후방에서 싸워준 캐나다의 여성들에게 작가가 특별히 이 책을 바치고 싶었다고 했듯이......”

 

   “유나의 마음이 참 곱지 않은가요? 유나가 월터에게 했던 사랑을 보면, 그늘 속에서 정성을 다해 피워 올린 한 떨기 백합을 보는 것 같아요.”
   참전비 아래에 그녀가 놓은 장미꽃을 바라보며 마리옹이 말했다.
   “슬픈 사랑의 기다림이 그런 거겠죠. 전쟁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사랑.”
   “그래서 하얀 십자가 아래 묻어야 했던 사랑.”   그가 말을 이어 받았다.
   “월터와 유나의 관계는, 유나 혼자 월터를 사랑했고 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고 결국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고 보기엔 어폐가 있어요. 그들이 상대방을 향하여 품은 절제와 작가가 남긴 여백에서 그 인물들이 서로에게 가진 마음의 형태를 보게 되요. 둘 다 은은하면서도 심지가 굳어요. 서로 결만 주고받았을 뿐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 역설적으로 사랑의 핵심을 보여주고 그 주변으로 잔잔한 무늬를 내고 있는 것 같아요. ”

 

 

갑자기 판을 깨는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월터가 사실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여자는 형의 약혼녀, 백합 같이 단아한 목사관의 둘째딸 유나보다는 붉은 장미처럼 화려하게 아름다운 목사관의 첫째딸 페이스가 아니었을까 싶다. 무지개 골짜기 시절 어린 말괄량이 소녀 페이스가 어울렸던 Blythe 가의 소년은 뒷날 연인이 된 젬이 아니라 나이가 비슷한 월터였다. 그러나 그때도 페이스는 같이 어울려 다녔던 온유한 월터보다 당시엔 학년차로 별 교류가 없었지만 힘 깨나 쓰는 젬한테 더 호감을 갖고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자신의 미모가 워낙 주변 사람들을 배경으로 몰 정도로 뛰어나니 굳이 남자친구까지 미모가 독보적으로 뛰어날 필요는 없었나 보다-고 장난스레 생각해 본다. 그러나 월터는 달랐을지 모른다. 그녀가 짓궂은 사내아이한테 모욕받자 월터가 어려운 결정 끝에 그녀를 놀린 남자아이를 혼줄을 내줘서 그녀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었고(정확히 말하면 자기 때문에 모욕당한 어머니의 명예회복을 위해서 싸운 것이 더 큰 동기다), 심지어 그녀가 받을 부끄러움을 그가 일부 감당해 주기까지도 했고, 20살 때는 그녀를 모델로 아주 훌륭한 소네트도 쓴 바 있어서 추측해 보았는데, 남자는 역시 미모에 약한 법인가! 하지만 23장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짧지만 강렬한 유나의 이야기가 가슴 시리게 아름다운 건 어째 부인할 수가 없다. 월터는 아무도 소유하지 않았고, 아무에게도 소유되지 않았다.

 

 

 

   “근데 전 시인의 아름다운 감수성을 지닌 Walter보다는 리라의 연인 Ken이나 제 이름과 비슷한 Carl에게 더 거울 같이 제 모습을 비춰봤어요.”
   그 말을 듣자, 그녀가 살짝 눈썹을 치켜들고 그를 쳐다보았다.
   “월터는 깊이가 있는 사람이고, 너무 완벽했어요. 전 한 길 속도 그를 따라가지 못할 거예요. 물론 그렇다고 켄과 칼 그리고 그 외 다른 사람들이 깊이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월터의 인품은 그 자신에 대한 이해와 그 주변에 있는 것들에 고귀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랑으로 형성돼요. 켄은 그의 사고와 태도에 강단 있는 냉소가 배여 있어 거리감을 느끼게 하죠.”
   빽빽한 구름처럼 그녀를 에워쌌던 불안한 예감이 그 말을 듣고 순식간에 그녀의 마음속에서 사라졌다.
   “가만 보니 Ken의 검은 머리, Carl의 파란 눈을 당신이 갖고 있네요.”
   마리옹이 씽긋 웃으며 대꾸했다.
   “그리고 켄이 여성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모습과 당신이 좀 닮아있긴 하네요. 여자가 그 앞에서 이야기를 할 때 그 이야기가 궁금해서 못 견디겠단 표정으로 들었다던 켄처럼 당신도 그녀의 눈높이에서 들어주니까요. 켄이 나오는 분량이 너무 짧아 소설가 아들답다던 그의 언변을 글 속에선 확인할 수 없었는데, 당신에게서 그 사실을 확인하는 듯해요.”
   “젤 좋은 걸 제 것으로 움켜쥐어야 직성이 풀리는 건 서로 좀 비슷하더군요.”
   그가 유머 있게 그녀의 말을 받아쳤다.
   “그리고 키도 6척이 넘지요. 근데 Ken은 여성 킬러였는데요?”
   "아, 켄이 나오는 분량이 너무 짧았어요. 명색이 주인공의 연인인데."
   그가 윙크를 하며 그녀의 말을 되받아치고 살짝 화제를 돌렸다.
   “그리고 Carl이 입대열차를 타고 떠난 후 리라가 그와 함께 보낸 어린 시절을 잠시 떠올렸을 때, 그 추억 속에 무지개처럼 펼쳐진 시간들이 책 속에서 유난히 애틋하고 싱그럽게 보였어요. 각 집안의 막내였던 그들이 약속장소로 만나 함께 놀곤 했던 무지개 골짜기가 그런 서사를 이끌었네요.”
   “때 묻지 않은 두 어린이들이 그 순간을 아주 예쁘게 흘러 보내는 모습을 보는 것 같지요. 소녀의 감성을 남성이 그의 감수성으로 풀어낼 때 그 문구가 훨씬 매력적으로 들리는 것을 봐요
.”

 

 

   “이 세상에 완전한 게 어디 있겠어요. 불완전함을 인정하면서 그것이 주어진 순간만큼은 나름 완전하게 만들어보도록 노력하는 거지요. 어린 시절 앤의 장점이 그것 아닌가요. 1차 대전을 다룬 책에선, 인간애에 대한 믿음이 소설 전반에 우러나오는 것 같더군요. 최전방으로 떠나는 젊은이들과 고향마을에서 전쟁을 피부로 겪는 주민들의 마음가짐과 생활 속에, 일상을 사는 동안엔 거의 드러나지 않던 이상과 연대 의식이 그 행동의 중심으로 솟아오르고 있더군요. 전쟁 전엔, 성격이 강한 지인을 두려워하거나, 성격이 맞지 않아 서로 절교하고 지내거나, 스스로에게서 자아효능을 느낄 수 없었던 소시민들이, 전쟁이란 큰 위기를 함께 마주하게 되자, 각자 자아를 내려놓고, 서로 권면하며, 저마다 용기를 내 서로에게 작은 영웅 같은 모습을 보였어요. 가장 불완전한 조건에서 가장 완전한 인간성이 구현되는 걸 보았네요.”
   “전 월터가 흰 깃털을 전달 받는 수치를 당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도록 오랫동안 그 벽을 넘지 못했던 두려움을 마침내 극복하고 자신에 대한 승리를 일구어 낸 것에서 가장 큰 감동을 느꼈어요.”
   “그래서인지, 이 책의 남자주인공은 월터 같아요. 리라와의 케미도 켄보다 월터 쪽이 훨씬 강렬해요. 서로 더 애틋하고. 같이 베니스에 가서 곤돌라를 타보자는 약속까지 했더군요. 결국 영영 이루지 못할 꿈으로 남고 말았지만.”

 

 

   “그랬죠. 개와 고양이까지 포함해서 섬 구성원 모두 개성이 있더군요.”
   그가 미소 지으며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책을 읽을 때마다 인물들의 대사가 새롭게 읽히더군요. 고통을 대면하는 방어벽이 실핏줄 같이 얇아 사람들이 대화를 기피하는 대상이었던 올리버 양이나 크로퍼드 양이 비관적으로 혹은 염세적으로 툭툭 던지는 말들도 나름 우리가 살면서 간과하기 쉬운 인생의 진실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들은 이 전쟁을 ‘심판의 때’라고 생각하고, 신의 존재하심을 그 마음에 받아들이고 인정했지요.”
   “몽고메리 여사는 공동체의 삶을 유기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녀가 창조한 인물들에게서, 시대정신, 휴머니즘, 그들 속에 깊게 뿌리를 내린 신교 가치관과, 각자가 선택하는, 일부는 신께 돌아가는 믿음의 태도가 정신적인 기둥을 이루고 있는 걸 봐요."

 

가장 불완전한 조건에서 가장 완전한 인간성이 펼쳐지는 걸 보았네요.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주는 고통과 죽음의 공포가 창궐하는 시대에, 도리어 사람에 대한 두려움보다 신을 향한 두려움을 선택한.

 

 

퓨전소설로 소개하는 리뷰

l****0 2019.07.19. 신고 공감 0 댓글 5
리뷰 총점 종이책
빨간머리 앤의 뒷얘기들.
"빨간머리 앤의 뒷얘기들." 내용보기
TV만화, 동화책 등으로 간단하게 알고 있는 빨간머리 앤.. 누구나 당연히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알고보면 앤이 결혼을 하고 나이가 들어 죽을때까지의 일생이 모두 소설로 되어있는 한편의 인생 드라마..^^ 이다. 어릴때... 고아로 자라 공상이 많은 소녀에서, 선생님이 되고, 주부가되고.. 엄마가 되어가는 앤의 모습을 보면서 왠지 아주 잘 아는 사람의 성장기를 보는 흐뭇함이 느껴
"빨간머리 앤의 뒷얘기들." 내용보기
TV만화, 동화책 등으로 간단하게 알고 있는 빨간머리 앤.. 누구나 당연히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알고보면 앤이 결혼을 하고 나이가 들어 죽을때까지의 일생이 모두 소설로 되어있는 한편의 인생 드라마..^^ 이다. 어릴때... 고아로 자라 공상이 많은 소녀에서, 선생님이 되고, 주부가되고.. 엄마가 되어가는 앤의 모습을 보면서 왠지 아주 잘 아는 사람의 성장기를 보는 흐뭇함이 느껴진다. 앤이라는 여성의 삶을 통해 나의 삶을 조명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너무나 평범하면서도 결국 평범하지 않았던 그녀의 이야기.. 10권이나 되지만. 읽어볼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YES마니아 : 플래티넘 g*******2 2002.01.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