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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좋아한다니깐 누가 올리버 제퍼스를 소개해줬다. 그림책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전문적으로 그걸 업으로 삼은 사람도 아니고, 본격적으로, 작정하고 그림책에 집중하여 그것만 들입다 읽는 것도 아니다 보니 아는 작가가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올리버 제퍼스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아, 그래서 개인적으로 다방면에 박학다식한 지인들이 곁에 있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기대도 않았던 보물들을 툭툭 던져주니깐.) 이 양반, 정말 '물건'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림책 작가인데, 그림책 작업만 하는 건 아니다. 타이틀이 많다는 걸로 짐작할 수 있는데, 무려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아티스트다. 거기에 구상화와 설치미술 화가이기도 하다. '아니, 뭐 이렇게 다재다능한 사람이!!!'했는데, 그림책을 덮을 때쯤엔 올리버 제퍼스보다 샘 윈스턴에게 빠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샘 윈스턴은 누구냐? 이 사람도 예술가인데, 영국의 테이트 브리튼 갤러리와 영국 국립도서관, 워싱턴 D.C의 의회도서관, 뉴욕 현대미술관 등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을 만큼 유명하고 왕성하게 활동한단다. 이 사람은 주로 타이포그래피 작업을 한다. 그게 뭐냐 하면... 바로 이런 거다. 잠시 설명 없이 그림만 감상해보자.
지금까지 본 그림들은 이 그림책의 일부인데, 올리버 제퍼스와 샘 윈스턴의 협업의 결과물이다. 그러니깐 여자 아이와 남자 아이 및 큰 그림들과 글자들은 올리버 제퍼스의 작품이고 그 바탕이 되는 그림들, 문장들로 만들어진 크고 작은 그림들은 샘 윈스턴의 타이포그래피 작품들이다. 라푼젤의 머리처럼 길게 드리워진 밧줄도, 소년과 소녀가 뗏목을 타고 모험하는 파도도, 무서운 괴물도, 아이들이 숨바꼭질을 하는 숲속의 나무도 모두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이 샘 윈스턴의 작품인 셈이다. 크고 작은 글자들은 우리가 학창시절에 했던 소위 '빽빽이' 같기도 한데, 의미 없는 문자들이 아니라 해당 내용과 관련된 고전문학 작품에서 가져온 문장들이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모두 작은 문장들이다. 그러니깐 그 문장들이 모여 그림이 된 셈이다. 이런 작업은 단순히 아이디어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인내심이나 끈기도 필요하지만, 고전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필요하다. 이 작품들을 보면서 경탄을 금치 못한 이유다.
심지어 이 여행은 우주까지 간다. 책은 얼마나 방대한가? 바다만큼 넓고 우주만큼 크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올리버 제퍼스와 샘 윈스턴은 어린시절 자신들이 읽었던 책 이야기를 하다가 의기투합을 하게 되었다. 자신들이 어려서 읽었던 고전문학 작품들을 바탕으로 한 그림책 작업을 하기로 한 것이다. 한 점, 한 점의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이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무려 6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두 작가가 이 책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나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림책 전문 출판사인 캔들윅에서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도 알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2016년에 출간된 이 책은 그 다음해인 2017년에 볼로냐 라가치 상을 수상했고, 굿 리즈 초이스 어워드 베스트 픽쳐북에 선정되기도 했다. 스쿨라이브러리 저널, 키커스, 북 리스트, 퍼블리셔스 위클리, 북페이지 등등의 극찬도 잇달았다. 전문학 작품에 대한 애정과 경의를 담은 오마주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보여준 그림들은 책의 일부를 내가 직접 찍은 거였는데, 책의 양쪽 면을 다 써서 그린 전체의 그림을 보면 이런 식이다. 이번에도 특별한 설명을 덧붙이지 말고 그저 말없이 작품만 감상해보자.
내가 왜 경이롭다고 했는지 단박에 이해가 갈 것이다. 그리고 올리버 제퍼스와 샘 윈스턴 중에서도 왜 샘 윈스턴에게 빠졌다고 했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이게 정말 인간이 만들어낸 걸까? 위의 커다란 대작들도 경이롭지만, 나는 마지막 그림이 너무 사랑스럽다. 나무의 둥치를 이루는 건 그 자체로 책이다. 그 책의 둥치에서 줄기가 나오고, 문장들이 나오고, 연둣빛 새싹들이 튼다. 이 작품의 메시지를 오롯이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아름답다. 가슴 벅차다. 나는 충만한 행복감을 느낀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누리는 행복감도 크지만,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들이 더 존재한다는 것,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한 나는 결코 외롭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의 주인공인 '책의 아이'가 혼자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또 한 명의 소년을 만나서 모험을 하는 걸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도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올리버 제퍼스와 샘 윈스턴가 만나, 그 만남이 인연이 되어 이런 협업이 가능했던 것처럼, 그들과 고전문학 작품들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이어져 있는 거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책'이라는 공통점을 통해서 말이다. 이런 거 참 좋다.
이 책은 한국에서도 번역이 되었다. 비룡소에서 나왔단다. 그런데 내 생각엔 이 책은 원서로 보면 더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샘 윈스턴의 작품을 오롯이, 원작 그대로 접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고전문학 작품이 원문들을 직접 읽어보는 것도 즐거움도 크다. 강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을 좋아하는 어린이였던 사람이라면, 단박에 이 책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연결되는 거다. 아,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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